소설리스트

12화 (12/15)

(3) 남해(南海) 청조각(淸朝閣)의 여고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마을을 떠난 단우비는 마음을 굳게 다짐하며 도수공공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열세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했기에 집을 향해 자꾸 뒤돌아 봤다. 그뒤 멀리에는 누나가 그를 보며 울고 있었다. 그는 그모습에 이를 악 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뛰었다. 계속보면 도저히 떠나지 못할 것같기에.....

언덕을 지나 누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뛰자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걸었다. 그가 가고자하는 항주(沆州)는 남송(南宋)대의 수도였을 만큼 번화한 곳이었다.  그의 걸음으로 적게잡아도 한달은 가야하는 거리에 있었다. 그는 그렇게 여유가 없었기에 돈을 아끼기위해 노숙을 하면서 가기로 했다. 항주에 가도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최대한 돈을 아끼기로 했다. 그렇게 십여일을 걸어서 노가진이라는 곳에 당도했다. 이곳은 궁벽한 곳이어서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었다.  그래도 항주라는 큰도시로 가는 방향에 있는 지라 지나가는 행인들은 많이 보였다.관도를 걷고 있는 데 멀리서 일대의 인마들이 급히 말을 몰아 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네 사람으로 묘령의 아가씨와 영준한 젊은 청년들로 삼남일녀였다. 그 때 어린아이가 관도를 가로질러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에 달려오던 그들은 놀라급히 피하려 하였다. 

" 아악,  아가야..."

" 아악, 뭐야, 저리 비켜..."

" 영매, 조심해."

말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그대로 짓밟을 듯 지쳐들어왔다. 그때 위험을 무릎쓰고 어린아이를 향해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단우비였다. 가장 곁에 있던 탓에 그는 아이에게 먼저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몸을 날려 아기를 옆으로 미쳐냈으나 말은 그대로 단우비를 짖밟을 기세였다. 그때 갑자기 말이 튕기며 놀라 뒤로 엎어졌다. 세 사람의 청년들은 다행히 피할수 있었으나 놀란 말 위에 있던 아가씨는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영매, 괜찮아."

" 영매 다친 데는 없어."

" 영매"

이렇게 제각기 외치며 소녀 옆으로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말에서 떨어진 소녀는 매우 아픈 듯 허리를 만지며 겨우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든 어린아이를 잡아 화풀이를 할 듯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자 단우비가 그 앞을 막으며 소리 쳤다. 

" 아니 어린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러시오."

이 소리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던 소녀는 단우비를 향해서 화풀이를 했다. 

" 네가 감히 왜 참견하느냐. "

행색을 보기에도 남루하기 그지 없는 소년이 그녀를 막자 화가 단단히 난 것이다. 십여일을 노숙하며 지나오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한 그였다. 그러니 행색이 초라할 수 밖에 없었다. 

" 참견이 아니에요, 잘못은 길에서 말을 험하게 몬 소저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아닌가요."

아직은 어린아이의 티가 벗지 않은 말투로 그녀를 공박했다.그러자 더욱 화가난 그녀는 채찍을 들어 단우비를 쳤다. 단우비는 무공을 전혀 모르는 지라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으나 매우 스라리고 아파왔다. 단우비는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그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단우비는 눈을 부릅 뜬 채 앞의 소녀를쳐다봤다. 그녀는 보기에도 화사한 분홍색 경장을 입고있었다. 일견하기에도 대단한 미녀였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청년들 또한 부티가 제법나보였다. 남색과 황색, 그리고 녹색의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어다. 단우비가 기가 죽지 않은 모습으로 그들을 째려보자 그중 황색 옷을 입은 청년이 단우비를 향해 다가왔다. 

" 영매, 참아. 이런 녀석은 나에게 맡겨."

그러자 뒤에 있던 녹색 옷을 입은 청년이 말을 거들었다. 

" 영매, 선우형에게 맡겨. 영매의 고운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어."

그러자 다른 남색 옷을 입은 청년이 말했다. 일견하기에도 이들 중 가장 준수하면서도 뛰어나 보였다.

" 영매, 선우형, 언형, 참으시오. 저들은 무예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니 그냥 갑시다."

" 영매, 양형은 혼자 잘난척, 착한 척 다하는군."

" 영매가 크게 다칠 뻔했는 데, 저녀석은 미안한 표정하나 안지고 있어. 잘못하면 사람을 치겠다고...."

이들은 사실 무림명가의 후손들로 항주에 급한 볼일이 있어 가던 길이었다. 소녀의 이름은 유소영이었고  절강패주 천강보주의 여식으로 유화성의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황색을 입은 자는 강남 선우세가의 소가주로 오래전 종남파에서 무공을 연마한 청년으로 이름은 선우 인이었다. 그리고 녹의를 입은 청년은 무림 십대세가의 하나인 진주언가의 사공자로 개산신권 언보라는 명성를 얻을 정도로 권법이 능숙하였다. 그리고 남의를 입은 청년은 금릉 양가보의 소가주 양명으로 비록 이들 중 집안 배경은 가장 뒤떨어지나 자질은 가장 출중한 청년이었다. 오랫동안 무술을 익히기 위해 가문을 떠나 십년만에 돌아와 장강일대의 수적들을 일거에 소탕해 금릉신검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하나같이 강호의 명문출신인 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항상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왔다. 그런데 비천해 보이는 단우비가 그들에게 대항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 너희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났기에 사람을 치느냐. 오히려 사과는 너희들이 해야 하거늘."

단우비는 그들의 안하무인 격의 행위에 화가나 대들었다. 이러자 이말에 분노한 유소영과 선우인은 그를 향해 일장을 날렸다. 무공을 알지 못하는 그가 이 수법을 피할리 만무였다. 그대로 삼장밖에 피를 뿌리고 곤두박질 친 단우비는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일어났다. 

" 명문을 자처하는 것들이 죄없는 사람을 마구치는구나. 흥, 명문은 무슨 개뿔같은 ...."

마구욕을 해대자 선우인은 더욱 분노하여 그를 죽일 기세로 단우비의 따귀를 좌우로 십여대쳤다.비록 내력은 실려있지않으나 순식간에 부어 올랐다.

" 하하하, 애송이,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때를 구분 못하다니.."

" 호호호, 선우 오라버니, 아주 따금하게 혼내 줘요. 오빠가 그러는 데 비천한 것들은 거칠게 다뤄줘야 한데요."

이렇게 두남녀는 선우인 이 괴롭히는 것을 즐기자  양명이 나서서 말리고자했다. 그러자 언보가 양명을 제지하며 나섰다.

" 양형, 왜이러시오. 재밌지 않소. 그러니 가만있으시오. 영매도 젏게 좋아하니 구경이나 합시다."

" 아니 그럴 수..."

"악"

이렇게 말하려고 할때 선우인이 갑자기 왼팔을 쥐고 땅바닥에 굴렀다. 단우비의 뺨을 치던 손등에는 풀잎이 박혀 있었다. 이 모습에 언보가 주위를 살피며 소리쳤다.

" 누구냐. 누가 감히 암습했느냐. 정정당당히 나와라."

이때 바닥에 구른 선우인도 손을 잡은채 일어났다. 그러나 어디서 누가 그를 암습했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이때 양명이 우측 십장정도 떨어진 곳의 한여인을 보며 두손을 모은 채 읍하는 자세로 공손하게 물었다.

" 어느 방면의 고인이신지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몹시도 놀랐다. 선우인을 암습한 수법은 적엽비화의 수법으로 고절한 내공이 없이는 도저히 펼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흥, 그대들은 명문의 후손들인 듯 한데 어찌 무공도 없는 사람을 괴롭히지요."

단우비는 갑자기 나타나 자기를 도와 준 그여인을 바라보았다. 화사한 푸른 치마를 입고 있으며 좋은 방갓에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있어 용모는 알 수 없으나 나이는 적지 않은 듯 보였다. 이때 당한것에 분노한 선우인이 그녀를 향해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종남검법이 펼쳐지기도 전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선우인은 일장밖으로 튕겨져나갔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녀가 어떻게 손을 썼는 지 알지 못했다. 그러자 언보와 유소영도 각각 자신들의 절기를 발휘하며 덤벼들었다. 언가권과 절강무림의 최고 절기라는 천강장의 수법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접근도 하기 전에 선우인과 마찬가지로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 연화장(蓮花掌)"

양명의 입에서 그녀의 무공수법을 알아본 듯 외쳤다.

" 대단한 견문이군요. 저는 강호에서 이수법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 데 단번에 알아보는 군요. 소협의 사문은 어디죠."

이말에 양명은 생각했다. 오래 전 사문에서 무공을 수련할 때 사부로 부터 들은 무공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선우인등도 양명의 말을 들었으나 생소한 절기였다. 

" 제가 감히 어찌... 오래전 스승으로 부터 들은 바가 있어 알아봤을 뿐입니다."

" 양가가. 저 여자가 누구인지 안다는 거에요."

유소영의 이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뺨을 얻어맞았다. 그러나 워낙 빨라 언제 쳤는 지도 몰랐다. 유소영이 당하자 선우인과 언보는 다시 면사녀를 향해 달려 들었다. 

" 선우 형, 언형, 모두 그분께 무례하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모두 뺨을 얻어 맞은 채 삼보씩 물러나고 말았다. 그녀의 무술은 그들이 보기에도 그들의 부친이나 스승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좋아 하는 여인 앞에서 수모를 당한지라 그것을 만회하려는 듯 다시 덤벼들려 했다.  그러자 오히려 더욱 화가난 면사녀는 연화장의 연화불류의 수법으로 이번에는 엉덩이가 하늘로 드려진 채 땅에 거꾸로 쳐박아버렸다. 이에 그때까지 지켜보던 양명이 적수가 안되는 것을 알고도 검을 뽑아든 채 면사녀를 향해 공격해 갔다.

" 숭양검법"

면사녀는 양명의 검법을 한번에 알아보며 경시하지 않고 연화장의 수법으로 그의 검법을 격퇴시켰다. 양명은 십여초나 공격했으나  면사녀의 연화장을 어찌하지 못하자 자신이 도저히 적수가 되지 못함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공격을 멈추고 검을 거둔채 삼장 밖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내쉰채 말했다.

" 휴우,  선배, 과연 청조각의 연화장은 명불허전입니다.제가 도저히 적수가 되지 못함을 시인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남해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하며 일행들을 일으켜 세우고는 읍한채 물러갔다. 청조각이라는 말에 사색이 된 선우인등은 순순히 물러갔다. 이들의 떠나는 모습을 보던 면사녀는 양명이 훌륭한 기재란 것을 알고 말했다. 

" 소협의 숭양검법 또한 훌륭했어요. 단지 검법의 초술에 너무 얽매어 있고 기검에 치우쳐 초식이 끊어져요. 검법은 물흐르듯 막힘이 없어야 해요."

이말에 크게 깨우친 듯 양명은 감사를 표하고 인사한 후 떠나갔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단우비는 면사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 아주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이말에 면사녀는 단우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 아니에요, 소협은 무공도 모르는 듯 한데, 어째서 나서서 낭패를 보았죠."

" 흥, 그들은 명문을 자처하면서도 정말이지, 후안무치이기 짝이 없습니다."

하며 분노를 그대도 표현했다. 그의 그러한 모습에 그녀는 자신이 잘아는 한사람을 떠올리며 물었다.

" 소협의 성씨가 혹시 백인가요,"

" 아닙니다. 제 이름은 단우비라 합니다."

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 아이가 백문의사람이거나 천우일리 없지. 존귀한 몸인데 이렇게 다닐 리 없잖아.' 

이렇게 생각하였으나 단우비는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과 너무도 닮았기에 정이 갔다.그러나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그녀는 말했다. 

" 소협, 강호는 위험한 곳이에요. 아직 어린나이이니 부모와 같이 다니세요."

하며 그녀는 그에게다가와 얼굴을 쓰다듬은 뒤 바람같이 어디론가 사라지듯 달려갔다. 떠나는 그녀의 모습에 단우비는 감사도 다 표현하지 못한지라 그녀의 뒤에 대고 물었다.

" 아주머니. 언젠가 이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러니 누구신지라도 ..."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말이 들려왔다. 

" 소협, 그렇게 신경쓸거 없어요. 가시는 길까지 별래무양하기를......'

단우비는 사라져가는 면사녀의 뒷모습을 살펴 보았다. 그는 웬지 그녀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알 수없는 포근함... 결코 자기를 구해 주었기에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웬지 깊은 아쉬움이 남았으나  갈 길이 바쁜 지라 갈길을 재촉해 걸었다. 가는 도중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선우인 에게 맞은 곳이 아파야했으나 아픈 곳이 없었다. 실상 그것은 면사녀가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내공으로 상처를 치료해 준 것이나 무공을 알지 못하는 단우비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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