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피난처 10부
"하숙을 할거요? 아님 독채를 쓰시겠수?"
미란의 어머니가 식사하면서 나에게 물어본다.
"어떤게 나은가요?"
"편하기야 하숙이 편하겠지! 돈이 들어서 그렇지! 그런데 이 동네에는 빈집들이 많아서 총각이 혼자서 생활할 수 있다면 그냥 들어가서 살아도 되는데... 굳이 둘들여서 하숙 같은거 하지말고...."
"진짜 그냥 살아도 되나요?"
"이동네 집들은 원래 탄광하는 회사에서 사택처럼 지어준 것이기 때문에 이사나가는 사람들이 팔고가고 그런게 없거든, 마침 저 위쪽에 지난주 이사나간 집이 있는데 연탄이랑 많이 쌓아놨다고 하더라고, 아마도 그 연탄이면 이번겨울은 그냥 날 수 있을게요!"
"정말요! 고맙습니다."
"근데 대학생이라고 했는데 뭐하러 여기까지 들어왔어? 여긴 그리 좋은 마을이 아닌데? 혹시 무슨 사고라도......"
"아니요! 그런건 아니고요! 세상이 하도 시끄러워서 머리도 식히고 글도 좀 쓸까하고 여기저기 찾아보는데 다른 곳은 돈도 많이 들고 또 제가 원하는 환경이 되질 않아서요!"
"그래요? 그럼 얼마나 있다가 가실라우?"
"아마도 방학기간동안은 있을겁니다. 2월 말까지는...."
"그동안 쳐박혀서 글만쓰게?"
"제가 뭐 할 줄 아는게 있어야죠? 돈이 없어서 일을 하긴 해야하는데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고...."
"대학생이라면서? 그럼 공부는 잘 할거 아녀?"
"잘 한다기 보다는 남들한테 뒤처질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잘됐네!" 여기까지 대화를 하는데
"엄마 나 학교 늦을 것 같아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미란이가 인사를 하고는 창밖에 버스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뛰어간다.
"잘되다니요?"
"내가 시골살림이라서 많이는 못 쳐주는데 미란이가 고2거든 내년이면 고3인데 나름대로 이 시골구석에서는 제법 공부를 하나봐 근데 애미가 되가지고 다른 곳으로 유학도 못 보내주고 여기는 워낙에 바닥이 좁아서 학원도 변변한게 없거든....."
"그럼 제가 미란이 과외를?"
"그려! 어차피 총각도 하루종일 글만쓸건 아니잖아? 응?"
"그렇긴 한데요!"
"왜? 보수 때문에 그런가?"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제가 미란이의 실력도 모르고 혹시 저 때문에 오히려 공부잘하는 미란이가 뒤처지진 않을까 걱정되어서요!"
"그런건 걱정하지 마쇼! 미란이가 못하는 놈도 아니고 잘하는 놈이 더 잘하면 잘했지 설마 쳐질라고.... 그럼 허락한 것으로 알것소! 그리고 그집에 어지간한 세간은 다 있으니께 가서 살펴보고 필요한 것 적어다 주쇼! 내가 알아봐 줄테니까"
"아이고 너무 고맙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아주머니가 알려준 집을 찾아서 동네를 거슬러 산쪽으로 올라가는데 어제 대포집 작부가 말한 것처럼 진짜로 마을 끝이면서 산의 시작이고 산들도 모두 경사가 매우 급하고 키가 큰 나무는 거의 없다. 탄광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하얀색과 검은색만 보인다.
흰색은 초겨울인데도 강원도답게 제법 많이 쌓인 눈이고, 검은색은 석탄 탄광에서 나온 것들이다.
알려준 집에 도착하니 동네에서 제일 높은집 바로 아랫집이다. 맨 윗집도 빈집으로 오래되었는지 무척이나 황폐해진 상태이다.
열려진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이 두 칸으로 이루어져있고 방과 방은 조그만 문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그리고 부엌 역시 방과 문으로 연결이 되어있고 부엌에는 냄비와 세간이 제법 남아있다.
대충 둘러보니 환경은 제법 깨끗한데 관리가 되지 않아서 지저분하다. 청소를 하면 제법 쓸만할 것 같다.
필요한 것을 적어서 다시 구판장으로 내려갔다.
"아주머니 이런게 좀 필요할 것 같네요!"
하면서 내가 메모한 종이를 건네주니
"총각 난 글씨를 몰라! 자네가 한 번 읽어줘봐!"
[호? 글씨를 모르면서도 구판장의 여러 가지 물건들을 외워서 장사를 하시는 구만 대단하시네]
"네 제가 읽어드릴께요!" 하면서 목록을 주욱 읽어드리니
"응 그 중에 이거 이거는 내가 해결해 주면 되고...." 하더니 전화기를 들고는 전화를 걸어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면서 챙겨오라고 일러준다.
한 번 읽어준 목록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서.....
"그건 되었고 자! 하면서 손 걸래하고 빗자루하고 요강을 세수대야에 담아서 주면서 번개탄 두 개를 함께 준다.
"먼저 가서 방에 불지피고 이 걸래로 방도 닦고 청소도 하고.... 그 정도는 할 줄 알겠지?"
"물론이죠! 저 군대도 갔다왔어요!"
"어여가서 청소해!" 하고는 날 다시 그 집으로 올려보낸다.
한 두시간 정신 없이 청소를 하고 나니 제법 사람 사는 집처럼 되었다.
외벽에 쳐놓은 바람막이 비닐이 조금 허술하긴 하지만 아주머니가 주문한 물건이 오면 보수하기로 하고 대충 정리해서 다시 구판장으로 내려왔다.
구판장 안에는 아주머니들이 여러분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지 수다를 떠는지 약간 소란스럽다.
"대충 정리를 마쳤습니다." 하면서 빌려간 세수대야를 드리니
"에구 그건 뭐하러.... 내가 그냥 준거야! 어차피 청소는 계속해야 될거 아녀? 세수도 해야되고..."
"하긴 그렇네요! 고맙습니다."
"아휴 인물이 훤칠하네! 이 동네, 아니 사북에 나가도 이런 인물보기는 힘들겠다." 하면서 옆에 있는 30대 초반정도 되어보이는 아주머니가 끈적한 눈길을 주면서 말한다.
"그러게! 내가 나이만 맞으면 연애 한 번 하자고 졸라보겠는데...." 역시 30대 초반정도 되어보이는 다른 아주머니가 맞장구 치듯이 말을 받아넘긴다.
"뭐 어때? 나이가 문제야? 어차피 세상 함께 늙어가는거 남편도 없는데 이렇게 젊은 영계 애인하나 있으면 좋지! 않그래?"하면서 다른 여자가 거든다.
"그래그래! 애인이 뭐 대순가? 눈맞으면 그만이지 깔깔깔----" 마지막 여자가 말 끝에 웃음을 단다.
"이놈의 여편네들이 사내구경을 오랫동안 못하더니 이제는 숫컷만 보면 정신을 못차리네..." 하면서 미란의 어머니가 혼내듯이 장난을 친다.
"깔깔깔-----" 다섯 여자들이 웃어제치고 난 놀이개 아닌 놀이개가 되어 가게 한쪽에 앉으면서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미란이는 언제부터 시작할까요?"라고 미란엄마에게 물으니
"총각이 좋을대로 해! 오늘은 아무래도 힘들거 아녀?"
"어? 형님 미란이 뭐하는데?"
"응! 서울갈 준비해야지?"
"서울 갈 준비가 뭐야?"
"아 그동안 미란이 대학보내려고 모아둔거 미란이가 대학에 붙으면 아예 이 지긋지긋한 동네 뜰라고 그런다."
"형님 그게 농이 아니었어요?"
"농은?---"
"근데 총각하고 미란이가 뭐하는데?"
"응 여기 있는 동안에 미란이 공부좀 봐주기로 했어!" 하더니 여자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곧바로 "물론 보수는 따로 줘야지!" 한다.
아마도 다른 여자들이 자기들 자식공부도 공짜로 봐달라고 조를 것 같으니까 선수를 치는 것 같았다.
"어? 얼마나 주기로 했는데?" 하면서 나와 미란엄마를 번갈아 쳐다본다.
"몰라!" 미란엄마가 말을 짧게 자른다.
"왜몰라? 그건 정하고 하는거 아냐?"
"저는 많이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생활하는 동안 밥이나 먹을 수 있으면 됩니다." 라고 내가 미란엄마를 돕듯이 이야기 하니
"그럼 밥먹을 때 반찬도 있어야지요?" 하더니
"우리 큰애가 내년에 중학교 들어가는데 예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하지 않고, 할 여건도 제대로 되질 않아서...."
이렇게 시작된 여자들의 이야기는 결국 4명중 자식이 있는 3명의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주머니들은 모두 돌아가고 난 물건이 도착하기를 미란엄마와 함께 구판장에서 기다렸다.
"총각! 저 여시들 조심해!"
"예? 무슨......"
"지금 왔다간 여자들 모두 과부야!"
"예! 근데 조심하라는 건....."
"둘은 탄광 붕괴사고 때 남편을 잃어서 10년 과부고, 하나는 술쳐먹고 죽고, 다른 하나는 남편이 진폐증 걸려서 장성에 있는 폐병원인가에서 치료중인데 아마도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 여자도 벌써 4년째 과부신세거든"
"그런데요?" 난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계속 물어봤다.
"에구 아직 어린 총각한테 내가 못할 소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
"그냥 젊은 여자들이 끼가 있으니까 조심하란 이야기야....."
미란엄마는 말꼬리를 흐린다.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하면서 미란엄마가 옛날이야기를 해준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중흥기 였던 60년대 초반에 이곳에 남편과 함께 들어왔다고 한다. 사실은 남편이 전과가 있어서 여기 저기 아무리 일을 하려고 해도 일자리를 주지 않아 결국 이리저리 흐르다가 정착한 곳이 이곳이란다.
이곳에 와서 미란이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탄광사고로 남편이 죽고 앞길이 막막했다고 한다. 재혼을 하려고 해도 미란이가 걸리고 또한 이곳에 당시에는 남편만큼 믿음이 가는 사람이 없어서 재혼은 엄두도 못내고 남편의 사망 보상금으로 이 구판장을 차려서 운영하는데 나름대로 70년대 말까지는 제법 이곳도 사람사는 분위기가 제법 있었고, 요 몇 년 사이에 석탄 산업이 많이 침체되면서 경기도 시들해진다고
그동안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해서 모은 돈으로 서울에 조그마한 집도 한 채 사두었고, 미란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의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를 만들었기에 미란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서울로 이사갈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
미란엄마의 눈가에 그간의 세월이 스치면서 이슬이 맺힌다.
"에구 나도 늙어가나 보네 주책맞게 눈물이...." 그러는 그녀의 어깨로 세월의 시름이 느껴진다.
[혼자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설움을 겪으면서 미란을 이날까지 키워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미란도 참 착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고생함을 알고서 착실하게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
구판장 앞으로 트럭이 한 대 들어온다. 화물칸에는 이런저런 잡화들이 주렁주렁 실려있다.
"제시간에 맞춰서 왔네? 내가 말한 물건들은 빠짐없이 잘 챙겨왔지?" 미란엄마가 차에서 내리는 트럭기사에게 다가가면서 말한다.
"마침 차에 다 실려 있는 것이라서 별도로 챙기지 않고 바로 왔습니다."하면서 기사는 분주하게 화물칸에서 몇 몇 가지 짐을 내리기 시작한다.
"자 이거하고 저거하고 요렇게는 오늘 주문 하신거고요! 다른 거는 매달 들어오는 겁니다. 계산은 달아놓을까요?"
"그래! 다음달에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차 좀 여기 세워둘께요! 피곤해서 한 숨자고 가야지 원" 하더니 기사는 차를 한쪽으로 대고는 차 속에서 잠을 잔다면서 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