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부 (3/15)

3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내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에 깨어보니 형수가 맨바닥에서 자고 있는 내게 이불을 펴주고 있다.

"저리치워 씨팔! 확!"하면서 다시 내 손은 하늘로 향했고 내려치려는데

"치세요! 도련님이 화가 풀릴 때까지 저를 치세요! 그리고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제발!" 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에이 씨팔! 더러운 년" 난 오늘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욕을 많이 해봤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자에게 욕을 해본 것 도 처음이고, 이렇게 상스런 욕을 해보기도 처음이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집을 나서는 내 귀 뒤로 형수의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무작정 집을 나서 친구녀석의 자취방으로 갔다.

가는 길에 주머니에 있는 몇 천 원으로 소주와 라면을 삿다. 

"무슨 일이냐? 오늘은 학교에서도 모습이 보이질 않더니? 이 시간에 소주를 사 가지고 오고?" "그냥 술이나 먹자!"

친구녀석이 몇 번인가 이유를 물어봤지만,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술에 취해서 친구녀석 자취방에서 잠이 들고 다음날 오전에 학교 가기 위해서 집으로 향했다.

조카들은 학교에 가고 형수는 집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오셨어요? 도련님!......" 목소리에 힘이 없고 눈이 퉁퉁 부어있다.

"......."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내방으로 들어가니 정리가 깨끗하게 되어있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들고 다시 나오니 형수가 내 방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뭐하는 거야? 씨팔!" 이제 난 형수를 대할 때 말끝에 욕이 붙어버렸다.

"용서해주세요! 도련님!"

"비켜! 확 발로 차기 전에"

"차고 가세요! 저를 용서하지 않을거면 차라리 죽도록 차고 가세요!"

"어휴!----- 씨팔!! 좆같네 세상!" "쾅!" 난 형수대신 내 방문을 걷어차고 그 소리에 놀란 형수가 몸을 움찔 할때 슬쩍 밀고 나와버렸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내게로 달려온 형수가 주머니에 뭔가를 쑤셔넣는다. "밥 챙겨드세요!"라면서......

그날도 난 학교에서 술에 만취해서 귀가했다. 그러지 않고는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삼춘 왜 술을 그렇게 마셔요?" 하면서 중학교 다니는 큰조카가 물어온다.

"왜냐고?" 하면서 형수의 얼굴을 봤다. 형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그냥 임마! 너도 삼촌처럼 대학 다니면 많이 먹게 되어있어 임마!" 하고는 필름이 끊어졌다.

겨울의 초저녁에 잠이 들었으니 그 잠이 길게 가지 않는다.

갈증과 숙취에 시달려 뒤척이다가 잠이 깨어보니 머리맡에 주전자와 컵이 쟁반에 올려져있다. 주전자를 들어 들이붓다시피 물을 마시고 거친 숨을 돌리면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젠장!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형수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형수는 매서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도 나에게는 누나처럼 일찍 돌아가신 엄마처럼 날 대해주었고, 중학교시절부터 형수를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주는 고마운 존재로 알고 있었고, 항상 나에게는 첫 번째 의논상대가 바로 형수였다.

담뱃불을 끄고 자리에 눞는데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난 가만히 내 방문을 열고서 거실을 보는데 거실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소리는 계속 들린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형수가 주방에 불을 켜놓고 식탁에 앉아 울면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형수는 원래 술을 잘 못한다.

내가 주방으로 다가서니 술을 마시던 형수가 날 발견하고는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살짝 비틀거리다가 내 눈을 보면서 다시 억지로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지만,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비틀거린다.

난 무의식중에 형수에게로 달리듯 다가가 형수를 부축해서 자리에 앉혔다.

"훌쩍-----훌쩍!! 흐흐헝!------" 형수는 소리나는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아마도 조카들을 의식한 것 같다. 서글프게 운다.

난 가만히 형수의 잔을 가지고 술을 따라서 한 잔 마시고 다시 형수에게 한 잔을 따라주었다.

"도련님! 저 용서하기 싫죠? 아니, 용서 못하겠죠? 흐흑!!"

"왜요? 왜 그랬어요? 형수가 무엇이 부족해서 그랬어요? 사막에서 모래폭풍과 싸우면서 고생하는, 그렇지 않아도 여름만 되면 체력이 달려서 기운 없는 형님이 거기서 죽자 사자 벌어준 돈으로 호의 호식 하면서 무엇이 부족했어요? 형님한테 미안하지도 않았어요?"

난 조카들 때문에 크게 소릴 지르진 못했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형수의 잘못에 대해서 힐책하면서 이유를 물었다.

"엉--엉---엉!!!" 형수는 이제 조카녀석들을 의식하면서 소리를 죽일 수 있는 통제력을 잃고서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조용히 하세요! 아이들 깨요!"

"흐끅!!흐끅!!" 형수는 간신히 억지로 울음을 참는다.

"저에게 할 이야기 있으면 해보세요!" 뭔가 난 형수에게서 구차한 변명이 아닌 사실을 알고 싶었다.

"제가 도련님에게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그래도 도련님한테는 설명을 해야할 것 같아요!" 하면서 형수가 나에게 해준 말은

동네에 잘 놀기로 소문나고, 멋쟁이라고 소문난 순이 엄마라는 아줌마가 있는데 이 아줌마가 언제부터인가 낮 시간에 이집저집 돌아다니면서 아줌마들에게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하루는 같이 어울려서 집에서 춤추던 아줌마들을 꾀어서는 한시간만 캬바레에 다녀오자고, 자신이 비용은 모두 댄다고 하면서 반 강제로 동네아줌마들을 5명 정도 데리고 캬바레에 갔는데 아줌마들은 모처럼 나들이에 들떠있었고, 캬바레에 가니 음악소리와 조명들이 그 기분을 한층 더 흥분시켜주고.....

형수와 아주머니들은 거기서 만난 남자들과 춤을 추면서 한시간여를 노는데 형수는 자신이 술을 못한다는 것도 잊고서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한 두잔 마셨는데 나중에는 주변이 빙빙 도는 것처럼 취해서 집에 오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다른 아주머니들은 짝을 지어서 없어진 다음이었고, 

자신과 춤추던 남자가 부축해준다고 손을 내밀어 어쩔 수 없이 부축을 받았는데 거기까지만 기억이 나고 술이 깨어보니 벌거벗은채 여관방에 그 남자와 나란히 누워 있었고, 

반항하는 자신을 강제로 한번 더 관계를 갖고는 연락할 때 전화를 받지 않거나, 나오라는 곳으로 나오지 않으면 집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하고 헤어졌고, 그때 함께 캬바레에 갔던 아주머니들은 모두들 쉬쉬하고 있지만, 모르긴 몰라도 지금 모두다 형수와 같은 처지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들킨 날은 그놈과 세 번째 만나는 날이었고, 그 날도 역시 여관에서 관계를 가졌는데 이번에는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걸리자 놈은 도망쳤고, 그 이후로는 연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놈들도 현장에서 걸리면 손을 떼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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