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피난처 2부
다음날 아침 모녀의 분주한 아침준비소리에 잠이 깨어 더 이상 누워있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라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는 동네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로 향했다.
황당하다.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똥탑이라는 것을 거기서 처음으로 봤다.
제래식 목조 화장실에 변을 보는 구멍 위까지 변이 얼면서 쌓여있다. 마치 색깔만 하얗다면 동굴속의 석순처럼 보인다.
일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하지만 몸 속에서 밀려나오려는 배설욕구는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어쩔수 없이 똥탑을 피해서 간신이 일을 보고 나와 구판장 모녀가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에 난 지난 일을 생각하면서 담배를 물고 회상에 빠져든다........
난 누군가를 몰래 미행하고 있다. 여자다! 내가 지금 미행하고 있는 사람은 여자이고 그녀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나름대로 날렵한 몸놀림으로 여관으로 들어간다. 난 그녀가 다시 그곳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한 갑이 넘는 담배를 피워댄다.
난 대학생이고 당시에 민주화 항쟁에는 참여하지 못한 소심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운동권 친구들을 내 방에 가족들 몰래 숨겨주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달래는 정도의 학생이었다. 연일 학원가는 학생들의 돌과 화염병, 전경들의 최루탄으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학원가의 상점들도 아침에 문열었다가 시위가 시작되면 셔터를 내리고 다시 저녁에 해가 넘어가면 문을 여는 그런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야! 상호가 끌려갔는데 글쎄 바로 연행해서 각서 쓰고 군대로 끌려갔데!"
"야! 그나마 상호는 나은 거야! 은식이는 반항하다가 두들겨 맞고 집에는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데 어머니가 누군가를 통해서 알아보니 남한산성에 끌려가서 죽지 못해서 산다고 하더라!"
"뭐? 남한산성? 거긴 조직폭력배나 흉악범들만 사회정화차원에서 끌고 가는데 아냐?"
"사회정화 좋아하네! 부부싸움 하다가 끌려간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젠장 이 썩어빠진 씨팔놈의 나라 같으니라고..."
엊그제 친구녀석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한 대화의 내용이다.
끌려갔다는 친구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형수가 들어간 여관의 건너편 화단에 앉아 다시 담배를 피워문다.
"정우야! 네 형수가 요즘 이상하다! 내가 알아보고 싶어도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그렇고, 또 이렇게 멀리 나와 있으니.... 미안하다 동생한테 이런 부탁까지 해서.... 조금 시간 내서 네 형수의 뒤를 한 번 캐봤으면 좋겠구나!....."
사우디에 나가 있는 형의 편지 내용이었다. 형은 형수가 편지도 잘 하지 않고, 편지를 해도 내용이 내가 알려준 내용과 틀린 내용이 많다고 나보고 형수의 뒤를 캐보라고 했다.
아침에 학교에 간다고 나서는 내게 "도련님 이거 용돈이예요!" 하면서 만원을 건네준다.
평소에는 데모만 하는 학교는 뭐하러 가느냐고 투박만 하던 형수가 오늘은 용돈까지 주면서 생글거린다.
난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가지 않고 반대편 골목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뭔가를 기다렸다. 아침부터 화장기 있는 얼굴로 생글거리는 형수의 얼굴에서 무언가 수상한 느낌을 받았기에 오늘은 형이 이야기 한 형수의 이상한 그 무엇인가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나올 때 화장을 마친 형수였기에 내가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덜컹!" 하면서 형수가 철 대문을 열고 나온다.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출복이다. 조금전 날 마중하던 얼굴보다 화장이 더 짙어졌다.
집에서 나온 형수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이내 걸음을 재촉하여 마을을 빠져나간다. 형수는 형이 사우디에서 모래폭풍과 싸워서 번 돈으로 서슴없이 택시를 잡아탄다.
평소에 나 뿐만 아니라 조카들에게까지 십 원 한 푼이라도 아끼라고 소리 높이던 형수가 무슨 일이 있기에 택시를... 난 잠시 망설이다가 형수가 준 돈이 생각나 나도 택시를 잡아탓다.
택시는 금호동을 빠져나와 성수대교를 건넌다. 그리고 우회전해서 신사동으로....
형수는 거기서 내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더니 대낮부터 깜빡거리는 전구를 켜놓은 동경캬바레라는 곳으로 들어간다.
난 급한 마음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정문 안쪽에 있던 덩치 좋고 인상 험악한 녀석들에게 제지당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기다려보자!"하는 생각으로 기다리니 형수는 얼마 되지 않아 어떤 남자랑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나온다.
"이런 씨팔!" 속에서 욕이 나온다. 형수쪽으로 달려가려다 '아니지! 여기서 발뺌하면 그만이지!'하고서 그들을 따라갔다.
캬바레 바로 뒷골목으로 향한다. 능숙하게 남자가 먼저 여관으로 들어가고 형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여관으로 들어간다.
"후-----!!" 내가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여관의 유리문이 열리면서 형수가 먼저 나온다. 난 일부러 형수가 나오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헉!!" 조그만 골목도로 건너편에 앉은 내 귀에도 들릴 정도로 형수는 놀래서 헉 소릴 낸다.
형수는 다급하게 뒤를 돌아본다. 형수가 뒤돌아보는 여관에서는 그놈이 뺀질 거리는 얼굴로 문을 열고 나온다.
"자! 가지?" 하면서 형수에게 말을 하는데 형수는 안절부절못하면서 그놈을 밀친다.
"왜그래? 응?" 그놈이 형수에게 물어본다.
"저리가 우리 도련님이야!"
난 일어서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놈은 여러번 당해본 일인지 잽싸게 줄행랑을 친다. 난 왜그랬는지 몇 발 쫒아 가는 척 하다가 포기하고 형수에게 다가갔다.
형수는 고개를 숙이고 안절부절못하고 쭈삣거리고 있다.
"도련님!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내 팔의 옷깃을 잡고서 애원한다.
그녀의 얼굴이 가증스럽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존재로 보인다. 일순간 내 양미간이 찌그러지다가 내 손이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짝!-----" "헉!!" 내 손길에 형수는 쓰러질 듯 두어 걸음 주춤거리다가 고개를 들지만 날 제대로 보질 못한다.
난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집에 돌아오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형수가 들어온다.
난 형수를 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형수는 내 눈과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숙인다. 그래도 양심은 남아있나 보다
"도련님 시장하시죠?"
"........." 그녀와 대화하기가 싫었다. 그녀랑 대화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생물과 대화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녀를 무시하고 들어올 때 사온 소주를 식탁에 꺼내놓고 안주도 없이 크라스에 따라서 마시기 시작했다.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녀는
"도련님 속 버려요! 이거하고 같이..." 하며서 그녀가 밑반찬을 내온다.
식탁에 놓여진 접시를 사정없이 손으로 날려버렸다.
"쨍그랑!!" 접시는 씽크대에 부딪쳐서 박살이 나버리고 밑반찬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흑흑!! 미안해요! 죄송해요! 내가 미쳤지! 잘못했어요! 도련님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네? 엉! 엉!"
그녀는 식탁의자에 앉아있는 내 다릴 잡고서 무릎꿇고 앉아서 애원을 한다.
난 사정없이 그 손을 내리치고 일어서서 소주병을 들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남은 술을 모두 마시고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