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무작정 청량리역에서 되는 대로 표를 사서 올라탄 열차는 나를 그곳에 떨궈주었다.
[사북]이라는 곳. 잠간의 실수로 인해서 난 돌이키기 힘든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고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피난처를 찾아 떠도는 생활의 시작......
그 출발점이 되었던 사북 하고도 한참을 들어간 그곳. **라는 곳이었다. 사북역에서 기차를 내린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고 10월의 강원도 탄광촌의 시계는 도심의 그것과는 달랐다.
이미 거리에는 역사 주변의 불빛말고는 보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역이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터덜터덜 주변을 둘러보면서 길가로 내려가니 그곳은 그래도 몇 곳 불이 켜진 상점도 있고,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출출하다. 가까운 곳에 대폿집이 있다.
"어서오세요!" 하며 나를 맞는 해퍼 보이면서도 뭔가 천박한 느낌이 드는 30대 중반의 여자가 달려나온다.
막걸리 한 사발을 시켜 단숨에 들이키고 같이 나온 김치 조가리를 대충 엄지와 검지로 집어 입에 넣고는 "얼마예요?" 그녀는 내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150원이요" 조금전의 반기던 목소리와는 다르다. 하긴 늦은 시간에 돈 좀 되는 손님인가 해서 반겼는데 딸랑 막걸리 한 사발이니....
"길좀 물어볼께요."
"예 말해보세요!"
"여기서 가장 오지가 어디예요?"
"오지? 오지가 뭐 이 동네는 다 오지지 뭐!"
"아니 길이 없는 동네나 마을이 끝나고 산이 시작되는 곳 말입니다."
"그런데라면 **2리쪽으로 가보셔! 그 동네 끝이 깍아지른 산이니까. 거긴 토끼나 다닐까 사람은 거의 안 올라가니... 거기가 좋겠구만! 아니 근데 이 추운 날씨에 거긴 뭐하러 가실라고? 이제 조금 있으면 오는 버스가 막차인데 거기까지 갈라나 모르겠네?"
"왜요? 거긴 버스도 안 들어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동네 막차는 운전수 마음이라서 가다가 손님 없으면 그냥 빠꾸해서 돌아가거든요! 그리고 거긴 이 시간에 가는 사람도 없고, 나오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하긴 여자들이 이 시간에 나올 리가 없지!....."
대충 버스에 대해서 물어보고 담배를 피워 물면서 대폿집을 나섰다.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니 서있는 사람은 없고 몇 자리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아마도 막차라서 인 것 같았다.
"어디가요?" 기사가 퉁명스럽게 물어본다.'"**2리요! 얼맙니까?"
"어이런 하필이면!....젠장 오늘 일찍 들어가긴 틀렸구만...."
눈 쌓인 도로를 체인 감은 뒷바퀴가 텅텅텅거리면서 시골버스가 가파른 언덕을 올라간다.
한참을 가는데 뒷바퀴 쪽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린다.
"쾅쾅쾅!!" 차는 얼마가지 않아 보이는 정류장에 선다.
"이 씨팔새끼가 제대로 좀 손보라고 했더니...." 육두문자를 쓰면서 기사가 뭔가를 들고 내린다. 뒷바퀴 쪽에서 뭔가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기사가 다시 운전석에 올라타면서...
"들어가서 만나면 아가리를 찢어놓던가 해야지 주둥이로만 다했다고 하고.... 개새끼..."
역시나 육두문자를 뱉어내더니 이내 차를 출발시킨다.
거리 상으로는 몇 백 미터 되지도 않는 거리를 비탈지고 눈이 많이 쌓인 탓에 버스는 힘겹게 시간을 소요하면서 올라간다.
그리고 두 세 정류장을 채 못 버티고 뒷바퀴의 체인은 다시 끊어져 뒷바퀴 쪽 하체를 두드리고 그때마다 기사는 육두문자를 뱉어내면서 연장을 들고 차에서 내려 굵은 철사로 끊어진 체인을 임시방편으로 묶어주고 올라온다.
대충 30분이면 갈 거리를 체인과 씨름하는 바람에 1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했고, 조금전 대폿집 작부의 말대로 어느 지점을 통과하면서 부터는 버스엔 나만타고 있었다. 아무도 이 시간에 이 동네까지는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계속해서 투덜거리는 버스기사를 뒤로하고 마을 입구에서 내리니 불빛이 보이는 곳은 몇군데 있지만, 대부분이 가로등이고 사람 사는 창문 같은 것은 잘 보이질 않는다.
한곳이 유난히 밝은 불이 켜져 있다.
가보니 "새마을 구판장"이라고 되어있다. 서울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구판장'
문을 열려고 하니 잠겨있다.
가게 안의 불은 켜져 있는데 잠겨있다.
유리문을 살펴보니 서투른 글씨로 "두둘기세요!"라고 되어있다.
"탕탕탕!!" 유리문을 두드리니 얼마 되지 않아 안쪽에서 40대 초반의 여자가 나온다.
어두운 곳에 있는 나를 자세히 보려는 듯 눈가에 인상을 쓰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가오더니
"누구여?"라고 묻는다.
"예?" 누구냐니? 내가 누구라고 하면 알긴하나?
"왜요?" 하면서 표현을 바꾼다.
"뭐좀 사려고요!"하니
그때서야 잠금 고리를 풀어주고 문을 열어준다.
"하--- 춥다! 호---"난 손을 비비면서 입김을 손에 불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가게 안은 제법 온기가 있다. 한 켠에 연탄난로가 열기를 내고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가면서 "아주머니 뭐 요기할만한 것 있나요?"
"요기요? 이 시간에? 여긴 식당 같은 것도 없는데"
"여기서 대충 때울만한 것이 없을까요? "
"글쎄요? 원래 내가 돈받고 파는 것은 아니지만, 라면이라도 끓여드릴까요?" 하면서 그녀는 선반의 라면을 하나 꺼낸다.
"두개 끓여주세요! 계란이 있으면 하나 넣어주시고요!"
"호호! 그래도 구색은 모두 갖추네요!"하더니 조그만 냄비를 가지고 오더니 불길 좋은 연탄난로 위에 올린다.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요!"
"서울에서 이 시간에 뭐 하려고 여기까지?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아뇨! 사실은 대학생인데요! 방학이라서 글도 좀 써보고 사람사는 경험도 좀 해보려고 나섰는데......."
"에이구! 그래서 이렇게 도시사람처럼 생기셨구만!"
"엄마 안 들어 오구 뭐해요?" 그때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그 집 딸이 안쪽에서 나오면서 말하다가 날 보더니 가슴을 가린다.
그애는 속옷차림으로 나오다가 날 보고는 왠 사낸가 하는 놀란 눈으로 가슴을 가리고 다시 방으로 뛰쳐들어가 버렸다.
"저년이 저렇게 덤벙댄다니까... 지애미가 나와있으면 혼자있을까? 쯪쯪쯪!!"
라면 물이 끓고 아주머니가 라면을 끓이기 시작할 때 "소주 한 병만 주세요!"
"라면 끓으면 같이 드세요!"하며 안쪽으로 가더니 그릇과 젓가락과 김치 등을 챙겨온다.
"고맙습니다." 난 시장기에 라면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드세요!" 하며 아주머니가 언제 가져왔는지 물 잔을 내민다.
어느 정도 먹고는 소주를 음료수 잔에 따라서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에구 무슨 술을 그렇게?......"하더니 아주머니가 조그만 잔에 자신도 한잔 달라고 한다.
내가 아주머니 잔에 술을 따르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있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술 먹지 말고, 먹을 때는 안주 좀 실하게 챙겨 드시라니깐....."하면서 좀 전의 그 애가 손에 무언가 든 냄비를 가지고 나왔다.
진작부터 나오고 싶은 것을 핑계거리가 없어서 기다리다 나온 것처럼......
그 애는 난로 가에 의자를 가져다 앉는다.
"아저씨는 누구예요?"
"훗! 내가 아저씨 같아 보이냐?"
"그럼 오빠라고 해줘요?" 하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럼 고맙지!"
"피--이 언제봤다고???" 하면서 입술을 내민다.
난 아주머니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그런데요! 혹시 주변에 기거할만한 집이 없을까요?"
"에이 이런 동네에....... 뭐 빈방이야 과부집 마다 하나씩은 다 있는데 이 밤에 어떻게 말을 해? 벌써 잠들었을 텐데..."
"그렇네요!"
"아! 아저씨, 아니 오빠 오늘 잘대가 없구나?"
"네-- 아가씨!"
"우리집에서 자요 그럼!"
"이놈의 지지배가 우리집엔 여자만 둘인데 어떻게?......."하면서 내 눈치를 본다.
"뭐 어때? 나는 엄마랑 자고, 오빠는 내방에서 자면 되지!"
아직 어린지 뭘 모르는지 그 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제가 셈은 해 드릴 테니 오늘은 여기서 잘 수 없을까요? 지금 이 시간에 마땅히 알아볼 때도 없고 시내까지 나가는 차도 끊어져서..."
"그게....."아주머니가 뜸을 들인다.
"자! 받으세요!" 하며 아주머니에게 다시 잔을 권했다.
난 큰잔에 따라놓고 조금씩 마시고 아주머니는 작은 잔으로 계속 마셔서 나와 비슷하게 마셨다. 둘이서 라면국물과 그 애가 가지고 온 냄비의 생선조림으로 벌써 3병째 마시고 있다.
4병째 병을 반쯤 비웠을 때 "아휴 이러다가는 술 마시면서 날 새겠다."
"그러게요!"
"미란아! 얼른 들어가서 네 방에 자리 봐드리고 엄마 방으로 건너와라!"
"아이고 고맙습니다.!"
난 대충 가방을 방에 넣어놓고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방을 찾으니 문이 하나밖에 없다.
"아저씨 이리 들어오세요!" 미란이가 문을 열고 날 부른다.
"거긴??" 미란이가 들어오라고 한 곳은 조금전에 미란과 엄마가 들어간 방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미란의 어머니는 벌써 잠이 들었고 미란은 날 들어오라고 하더니 맞은편을 가리킨다.
그곳엔 문처럼 생긴 곳에 조그마한 천으로 커튼처럼 만들어놨다.
천을 걷고 들어가니 조그마한 쪽방이 있다.
"오빠 잘 자고요! 혹시 화장실 가고싶으면 큰 거는 밖으로 나가서 오른쪽 건물 끝에 있고요! 작은 거는 대충 조금 전에 수돗가에서 처리하세요!" 하더니 그 방의 불을 끄고 이불을 덮는다.
[큰거든 작은거든 저방을 지나가야 되잖아!]
난 밀려오는 피로와 술기운이 중복되어 오랜 생각하지 못하고 옷만 벗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