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9)

나는 출근을 하고 나서 또 다시 괴로운 심경에 빠져버릴 수 밖에 없었다. 왠지 지금 이 시

 간 아내가 알몸으로 형과 뒹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형이 아니더라도 왠지 다른 남자

 의 품에 안겨 요분질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미칠 것 만 같았다.

“이야... 이대리가 이제 완전 다른 사람이 됐어!”

서둘러 납품할 물건을 챙기고 급하게 나가는 모습을 본 팀장은 대견하듯 나를 쳐다보고 있

 었다. 나는 우선 급한 납품부터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지하주차장부터 지상주차장까지 우

 선 형의 차가 있는지부터 살폈지만 형의 차는 없었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나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아파트 단지를 들러 그런 행동

 을 했다. 집안까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지만 왠지 그렇게 하면 아내와 큰 싸움으로 변질이

 될 것 같아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확인과 확인을 거듭하던 중 딱 일주일이 지난날이었다. 분명히 형

 은 아침에 출근을 했고 집에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형의 고급 세단이 지

 하주차장 한켠에 반듯하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심장이 떨렸다. 그리고 두 다리엔 힘이 주~욱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흔적을 찾고

 헤메었고 딱 오늘까지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보다 형의 차를 봤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올라가봐야 하나? 설마....’

머리로는 갈등을 하고 있었지만 나의 몸은 이미 현관 문 앞이었다. 조심히 현관문에 귀를

 대어 보았지만 집안에서는 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불안해졌

 다. 왜 조용한 건지 차라리 시끌시끌했으면 덜 불안했을 것이다.

번호키의 번호를 누르면 분명히 형도 아내도 들을 것이었다. 차라리 현장을 덮치려면 최대

 한 빠르게 열고 바로 복층으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야만 했다. 하지만 만약 아무것도 하

 고 있지 않다면? 정말 나의 몹쓸 상상력이었다면 그 뒷일을 감당키 버거울 것이었다.

그 때였다.

현관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이 들려왔다. 누군가 나가려는 듯 점차 문 앞까지 다가오는 소

 리가 들렸고 나는 잽싸게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몸을 숨겨야만 했다. 내가 왜 숨어야

 만 하는지도 모른채 그렇게 숨어버렸다.

 /띠리리.../

덜컥하며 문이 열리고 역시 예상했던 대로 형이 말쑥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아내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추워~ 얼른 들어가~”

 “가는 거 보고요”

 “추워... 빨리 들어가~”

 “가는 거 보고 간다니까~”

 “참... 말도 안 듣는다...”

 “피~ 오늘 언제 들어와요?”

 “일찍 올게~”

경악,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설마... 설마 저 둘의 모습이 진정 제수씨와 아주버님의

 모습이란 말인가? 다정하다 못해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에 나는 도저히 움직이기도 입이 떨

 어지지도 않았다.

형이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 아내의 허리를 감았다 놓는 광경까지 선명하게 눈에 담은 뒤

 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머지 납품을 끝내기는 해야 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 낮부터 술을 퍼먹

 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나는 모든 거래처를 돌며 납품과 수금을

 해야만 했다. 지나는 연인들만 봐도 형과 아내의 모습 같았다. 더욱이 추운 날씨탓에 더욱

 가깝게 붙어 걷는 연인들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오빠.. 오늘 늦어? 언제 와?]

거래처를 어떻게 돌았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넋이 빠진 내게 아내의 문자가 날아왔다.

나의 귀가를 묻는 문자였다.

 [오늘 우리 팀 회식이야... 먼저 저녁 먹어]

사실은 회식도 없었고 모임도 없었다. 원래는 일찌감치 들어가 사랑스런 아내와 딸에게 좋

 은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해줄 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술을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아내를 빤히 쳐다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나는 퇴근을 하면서 회사 근처의 술집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대충 마른안주를 시켜놓고 소

 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나의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기분이었

 다. 주량을 넘겨 조금 더 마셨지만 시간은 9시도 되지 않았다. 차라리 아내가 잠든 시간에

 들어가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었다. 아내는 일찍 일어나는 탓에 11시정도면 항상

 곯아 떨어졌다. 그녀의 잠버릇은 한 번 잠들면 충분히 잘 때까지 왠만한 소리에는 깨지 않

 는다는 것이었다.

술집을 나섰다. 술을 마셔도 마시는 것 같지 않아 오히려 더 빨리 술집을 나와버렸다. 칼바

 람이 옷깃에 스며들며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대신 발걸음이 우물쭈물대며 갈지자로 비틀

 거릴 뿐이었다.

괴로웠다. 다른 남자 같았으면 흠씬 두들기기라도 했을텐데... 나의 아내와 함께인 남자가

 바로 우리 형이었다. 나보다 잘났고, 싸움도 훨씬 잘하는 우리형 말이다. 혹여 내가 그 문제

 를 들먹이면 아내는 바로 나와 헤어지자고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 없이는 도저히 살 수

 가 없는데 말이다.

내가 집에 없는 지금도 아내와 형은 알몸으로 침대 위를 뒹굴 것 만 같았다. 차라리 모든

 게 꿈이길 바랐다. 차라리 의심을 가지고 살았으면 덜 괴롭고 덜 힘들었을 것 같다. 그 다

 정했던 모습... 형이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하 듯 친근한 반말과 함께 가벼운 터치에도 나의

 아내는 내게 보여준 그 어떤 웃음보다 예쁘게, 그리고 수줍게 웃어냈다.

우리 연희, 딸 아이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한 잔을 더 할까 하다 택시를 잡아타고 내려보니 아파트 단지였다. 그리고 들어가는 동입구

 엔 형의 고급차가 버젓이 주차되어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는 그 차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보닛에 얼굴을 대어보니 아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추운 겨울이라지만 이토록 차갑게 식을 정도면 이미 집에 도착한지는

 꽤 오랜 시간이 되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바보처럼 울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이 내 생애 가장 마음 아픈 날이지만 내가 아

 프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정말 지는 느낌일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에 올

 라타 모니터의 시간을 바라보니 9시 30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왠지 지금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끊기로 했던 담배를 사서 연거푸 연기를 피워냈다.

반 갑 정도 피웠지만 아직도 10시가 안 되었다. 이미 몸은 꽁꽁 얼어붙었고 이가 부딪치며

 추운 몸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용기가 나질 않았다. 평소처럼 내가 그녀를 대해줄

 수 있을지, 형을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말이다.

생각한대로 10시에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 현관 앞에까지 가는데는 불과 1분이면 충분했

 다. 괴로운 시간은 나를 그리 쉽게 놓아두지 않았다. 철저하게 괴롭히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마음을 굳혔다. 그저 아무 일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그래야만 나의 아

 내를 놓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번호키를 누르려는 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

 만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띠리릭~/

부드럽게 자물쇠가 열리고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돌려 비틀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나의 아내가 생글생글 웃으며 반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

 은 역시 바람일 뿐이었다. 거실은 중앙등이 꺼진 채 조명등만 켜져 있었고 집은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무심코 복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봤다. 한 뼘 정도 열려진 미닫이문에서는

 서광처럼 한줄기 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연극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처럼 비쳐

 주었지만 이미 이 집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태식이 왔나보다!”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하면서도 평소에는 듣지 못 할 여유롭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계단 아래 후미진 곳으로 몸을 숨겨야만 했다. 내가 왜 숨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채 그렇게 몸을 숨겼다.

“아무도 없어도... 그 이 오늘 회식이랬어요... 아마 12시 전까지 안 들어오걸요?”

 “그래?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러나 저러나 그 녀석 술 너무 좋아해서 탈이야...”

내가 급하게 몸을 숨기는 동안 아내가 문틈으로 아래층을 내다본 모양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는지 형과 안도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했다.

“왜요... 그래도 그 이가 술을 좋아하는 탓에 우리가 함께인 시간이 많잖아요”

 “그건 그래...”

나는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생각 같아선 쫒아 올라가 두 년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

 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미웠다.

 [민영아... 오늘은 먼저 자... 나 아무래도 많이 늦을 것 같애... 사랑해]

주머니의 휴대폰을 열어 떨리는 손으로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무엇 때문에 이런

 문자를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전송은 끝난 상태였다.

“어머! 잠깐만요”

곧 복층에서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문자메시지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답장이 왔다.

 [많이 늦어요?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요... 당신 건강 생각해야죠... 나도 사랑해요]

문자메시지를 보던 휴대폰의 창에 굵다란 물방울이 뚝 하고 떨어져버린다. 울지 않으려 했

 는데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이 담긴 메시지를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버렸나 보다.

“뭐래?”

 “이 사람 오늘 늦는데요... 오늘은 편안히 자기 옆에 오래 있어도 될 것 같아요”

 “그게 전부야?”

 “사랑한대요... 그래서 저도 사랑한다고 해줬죠~”

나는 휴대폰의 배터리를 분리시켰다. 원래 진동으로 해놓는 성격 덕에 문자메시지가 왔을

 때도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아내의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분명 말은 저렇게 해도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는 여자란 걸 알고 있

 다. 확신한다.

“연희는... 자?”

 “네... 조금 전에 재우고 바로 올라온거예요...”

 “요즘 민영이 너 대담해졌어~ 저번 아침에도 걸릴 뻔했잖아”

 “자기가 좋은 걸 어떻해요~”

저번 아침... 내가 운동을 갔다 조금 일찍 왔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날 형

 은 출근하지 않고 내가 다시 집 앞을 찾아간 시간까지 아내와 함께 있었던 것이었나?

나는 점퍼와 넥타이를 조심스레 풀어 헤쳤다. 그리고 조심히 후미진 곳을 나와 복층으로 연

 결된 계단을 납작 엎드려 오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자기가 현관 등 좀 갈아줘요...”

 “현관 등?”

내가 온 줄 모르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현관에 센서로 점등되는 등의 전구가 나가

 버린 것이다. 어렴풋이 아내가 전구 좀 갈아 달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폐

 쇄적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형의 미닫이문이 한 뼘 정도 열려진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저 불빛을 보고 누군가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구분을 하는 것이었다.

“소현이는 잘 만나고 있어요?”

점점 아내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만큼 나는 복층의 문과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이젠 숨소리와 이불의 바시락거리는 소리까지도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았다.

“걔는 왜 그렇게 거머리 같지?”

 “무슨 소리예요?”

 “쩍 하고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해...”

 “그래요? 나쁜 년... 그년하고 잤어요?”

 “왜? 뭐가 궁금해?”

미닫이 문 중간과 아래쪽으로는 2cm정도로 유리가 가로 대어져 있었다. 디자인 요소이겠지

 만 나는 그 사이로 편안하게 아내와 형이 하고 있는 행동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열린

 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나는 속 편히 볼 수 있는 것에 감사 아닌 감사를 해야만 했다.

내가 몸을 숨기고 있는 문의 뒤편은 방보다 어두웠다. 웬만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

 마도 형이건 아내건 내가 그들을 지켜보는 것을 쉽게 알아채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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