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연희가 잠에 들었는지 쌔근쌔근한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내처럼 참으로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나는 연희를 재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고 침대에 연희를 눕히고 그 옆에
누워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려주고 있었다.
그러자 더욱 낮아진 그녀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안 들리게 말하려는 듯 목소리
를 낮추었지만 오히려 그런 목소리가 더욱 집중이 잘 된다는 걸 모르는 듯 했다.
“근데 민영아... 태훈씨... 아니다.”
“뭐야... 무슨 말을 하다말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어우... 답답해! 빨리 말해 봐... 숨 넘어 가겠다. 지지배야!”
아내는 답답함을 호소하며 소현을 재촉했고 소현은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조심스레 말
을 꺼내놓았다. 물론 내가 자리에 없었기에 꺼낸 말이란 걸 모르지는 않았다.
“태훈씨 정말 여자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내의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놀란 듯한 말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마도 커다란 눈이
더욱 커지고 얼굴을 소현 곁으로 더욱 가까이 했을 것이다.
“너 나 개코인거 알지?”
“알지~ 니 코가 보통 코니?”
“나 태훈씨한테 자꾸 여자 냄새가 느껴져...”
“무... 무슨 소리야? 향수냄새 같은 거?”
“몰라, 향수 냄샌지... 근데 분명히 여자 냄새라는 건 확실해”
“생사람 잡지 마~ 일 밖에 모르는 아주버님인데 여자는 무슨...”
“니가 봤어? 일만 하는 거? 촉이 이상하다는 거지 무슨...”
“니 촉도 많이 망가졌구나? 우리 아주버님 그런 분 아니야.... 니가 잘못 안거야...”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지 아무리 개코라고 한 들 같이 사는 여자도
아니고 잠시 잠깐 만나는 남자에게 여자 냄새를 느낀다는 게 너무 터무니 없었다. 내가 알
기로도 형은 일밖에 모르는 일벌레에 향수라는 것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또 의심을 하면
안 되지만 아내 역시 향수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자였기에 소현의 말이 우스울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갑자기 처리해 줄 일이 생겨서 그것 좀 처리해주느라고....”
사라졌던 형이 때 마침 나타났다. 알고 보니 일 때문에 잠시 복층으로 올라갔던 것이었다.
나도 완전히 잠에 든 연희를 두고 다시 거실로 나가자 아내가 장난스럽게 형에게 추궁을 하
기 시작했다.
“아주버님! 저한테 거짓말 하시면 안돼요”
“무슨 거짓말이요?”
“아주버님 혹시 소현이 말고 만나는 여자 있으세요?”
“여자요? 하하하하...”
너무 뜬금없었는지 형은 사람 좋게 웃음을 지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당황하거나 표정의 변
화는 조금도 없었다.
“있죠~ 회사에 은정씨, 세령씨, 이대리, 고과장 등등...”
“일적인 사람 말고요~”
“당연히 있죠~ 제수씨, 그리고 우리 연희 공주님...”
형은 정말 간만에 농담까지 건넸다. 얼굴에는 조금의 거짓도 깃들지 않은 순수한 표정이었
고 그러자 아내도, 소현도 모두 소소한 웃음으로 형의 대답을 인정했다.
“소현! 됐지?”
아내가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소현은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새침떼기처럼 보인다. 소
현의 모습이... 그리고 그녀가 형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괴로움은 모두 사라져만 가고 있었다. 형도 짝을 찾아 간간히 데이트도 하고 짬을 내
어 우리 가족과 함께 여행도 다녔다. 물론 먼 곳은 아니지만 놀이공원이나 키즈카페, 그리
고 가까운 유원지 같은 곳이었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던 때였다.
날씨는 점점 추워져 겨울을 향해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조루증세를 겪고 있었지만 발기
부전 증세는 금세 회복되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젊다보니 잠시 겪었던 스트레스성 발기부전
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조루는 전혀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욱 악화만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주변에 아는 지인들에게 은근슬쩍 물어보니 아내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
는 마음이 크면 그럴수도 있다라는 대답외엔 딱히 정답을 내릴만한 대답은 없었다. 그렇다
고 병원을 다니기에도 마음이 당기질 않았다. 사랑스런 아내는 언제나 입구만 더럽히는 나
를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도 발기부전처럼 잠
시 머물렀다 지나 갈 현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발기부전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운동이었다. 매일 아침 조깅과 헬
스로 하루를 여니 몸도 마음도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좋아하던 술 마저 예전보
다는 많이 줄였고 담배 역시 금연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사이면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6시쯤 출근하는 형의 아
침식사부터 7시쯤 나가는 나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원래부터 부지런
한 여자였다. 가끔 늦잠을 가지도 했지만 자봐야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그녀였
다.
“운동갔다올게~”
나는 5시 30분 쯤이면 항상 운동을 나간다. 겨울 날씨라 나가기가 엄청나게 귀찮았지만 젊
은 나이 발기부전이라는 끔찍한 질병을 앓아보니 차라리 귀찮음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형 역시 출근을 준비하는지 복층에서는 조용하지만 부산스런 느낌이 들었다.
“갔다 와~”
아침이지만 말끔하고 맑게 화장된 아내의 얼굴을 보는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일찍 일
어나 몸치장을 하고 남편의 출근을 돕는 여자는 아마 나의 아내 밖에 없을 것이다. 곳곳에
눈이 쌓인 길가를 달리며 나는 아내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강변을 따라 뛰고 걷기를 하
자 아침부터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이리 많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젊은이부터 노인들까
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하루의 시작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동안 게을렀
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나름 정해놓은 반환점에 도착을 하자 매일 보는 사람들이 눈인사를 건내온다. 하나 같이 좋
은 사람들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표정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생활하는 면면이 일반 서민과
는 다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최고급 아파트 단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좋은 아파트인
지라 건강에 힘쓰는 사람들이 많다. 벌어놓은 돈을 두고 병들기는 싫은가보다.
유독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세차 조금은 일찍 들어가고 싶었다. 참아보자 참아보자 했지
만 칼바람에 얼굴살이 찢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시계를 보니 이제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었다.
‘에이... 들어가자... 춥다...’
내일부터는 바로 헬스장으로 가서 런닝머신을 뛰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가
는 길은 꽤나 멀게 느껴졌지만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어으.... 추워!”
현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기운 후끈하며 나를 반겼다.
“민영아~ 나 왔어~~~”
아내는 거실에도, 주방에도 없었다. 그리고 화장실에도 없었다.
“민영아~ 연희 엄마!!!”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아내의 대답은 없었다. 나는 우선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
어가 씻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어딜 간거야...’
양치를 하고 따뜻한 물이 몸을 감싸자 춥게 몸을 감싸고 있던 한기가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
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의 의심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나를 외면했던 그 녀석이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호... 혹시...’
나는 대충 몸을 닦아내고 서둘러 욕실을 빠져나왔다. 물기도 대충 닦는 둥 마는 둥 하고 조
심스런 발걸음으로 복층을 향해 내딛었다. 가슴이 떨렸다. 왠지 모르게 아내가 이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민영이가 여기 있으면 어쩌지? 뭘 하고 있을까?’
온갖 잡다한 생각이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과 조금
씩 가까워지는 복층의 문이 나를 너무도 힘겹게 하고 있을 때였다.
“오빠!”
“으... 응?”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주시했다. 연희를 안고 나를 바라
보고 있는 아내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주버님 출근 하셨어... 거기서 뭐해?”
“아니, 운동 갔다 와서 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
“빨리 밥 먹고 출근 준비나 해!”
“으... 으응”
또 다시 시작된 나의 의심에 아내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나 같았어도 분명 그랬으리라..
하지만 떨쳐내지 못한 의심은 결국 다시 고개를 들 수 밖에 없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기관리가 철저한 우리 형... 그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눈빛, 도저히 이대로 두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