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가 나란히 안고 아내의 앞자리에 형이 앉았다. 그리고 천진하게 놀고 있는 연희
덕에 대화는 없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내의 밥 먹는 모습이 나
와 먹는 때보다 훨씬 조신한 느낌이 있었지만 특별히 꼬집을만큼 이상한 점도 없었다.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겠지?’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 녀석 엄마 닮아서 아주 길쭉하게 자라겠는데?”
형이 혼잣말을 하듯 내뱉자마자 나는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볼터치를 했다지만 얼굴이 더
욱 발그레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런 아내의 표정엔 수줍어 하면서도 기쁜 내색이 깃들
어 있음을 느꼈다. 내가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괜스레 형에 대한 열등감이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설마 동생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겠나 하는
상상이 마치 현실로 나타나는 것처럼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어머!”
대리석의 바닥으로 수저가 떨어지자 아내가 흠칫 놀란다. 계속된 쓸데없는 망상에 수저가
밀려나고 있는 것도 모른채 형과 아내의 얼굴을 살피다 수저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나는 의
자를 빼고 식탁 아래로 떨어진 수저를 줍기 위해 상체를 숙이자 너무도 가깝게 붙어있는 아
내와 형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발가락과 발가락이 부대낄 정도로 둘
이 뻗은 발은 너무도 가까워보였다. 수저를 주우면서도 지우지 못한 바보같은 상상은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역시 제수씨 음식솜씨는 최곤데요?”
“호호홋, 감사해요... 그리고 아주버님 아침 드시고 나가세요~ 안 먹히시면 빵이라도 구울게
요~”
“됐어요... 회사가서 안 그래도 이것저것 챙겨먹으니 신경쓰지마세요”
“그래도요... 어차피 연희 아빠 챙기면서 챙겨드리면 되는데...”
“괜찮아요.. 나중에 먹고 싶으면 말씀 드릴게요”
식사가 끝나고 미리 준비해 둔 커피와 과일을 가져온 아내는 거실의 탁자로 자리를 옮기길
부탁했다. 그리고 가족 식사이니 만큼 아내도 식탁 치우는 일을 잠시 미뤄두고 함께 소파에
앉아 과일을 깎기 시작했다. 딸 아이는 여전히 형의 무릎에 앉아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
“넌 요즘 일 어때?”
“나? 나야 뭐... 어차피 오래 다닐 것도 아니고...”
“그래? 장사한다고 했지?”
“응... 형보다 돈 더 잘 벌어 보려고~”
“그래, 그렇게 돼야지...”
형은 이상하리만치 잔소리가 없었다. 다른 형제 같았으면 다니는 회사나 잘 다니지 무슨 사
업이냐... 무슨 사업을 할 거냐...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는거냐... 잔소리가 뒤를 이었겠지만
나를 믿어주는 건지 아예 관심이 없는건지 그저 강 너머 불구경꾼처럼 일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은 거의 모든 생활비를 대주고 있었다. 나의 월급의 거의 전부는 적금으로 저축되고
있었고 착실히 사업자금을 마련할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래... 이런 형인데...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거야’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상황이었다. 세상 여자가 다 그러하듯 시댁 식구에게 경직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형 역시 동생의 아내인 여자에게 인사치레, 또는 예의상 던진 말들을
깊이 생각한 내 죄가 크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 아주버님, 혹시 저희 돈도 좀 맡겨도 될까요?”
“돈이요?”
아내는 곧 다가오는 적금만기에 맞춰 돈을 굴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되도록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높은 방법을 찾다 형에게 맡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네, 4개월 후면 만기거든요... 아마 5,000만원정도 될 거 같아요”
“글쎄요... 생각 좀 해 볼께요~”
아무리 형이라도 가족의 돈이라면 부담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잘 나가는 펀드매니
저라고 해도 수익률이 높을 뿐이지 투자하는 족족 수익이 높지는 않을거라는 판단도 들었
다.
다과를 즐기며 여느 때와 같이 심심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내는 입가심 조로 와인 한
병을 가져왔고 술을 잘 하지 않는 형도 그날따라 홀짝홀짝 잔을 비워나갔다. 워낙 술을 좋
아하는 나는 와인보다는 소주체질이어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근데 아주버님! 아주버님은 여자 없어요?”
“여자요?”
“예.. 잘생겼겠다. 능력있겠다. 성격 좋겠다.. 따라 다니는 여자 없어요?”
“하하.. 예 없어요~”
형은 술기운 탓인지 얼굴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어느새 딸 아이는 형의 무릎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나는 아이를 받아 침실에 눕히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제수씨 같은 여자면 뭐... 만나볼게요”
아이를 눕히고 나오자 형의 입에서는 아내와 같은 여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이놈의 불치
병인 의심병이 또 다시 도지려고 하는지 마음이 다시금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눈치 없는 아
내는 점점 신이 나서 중매를 서기 위해 연신 떠들고 있었다.
“제 친구 중에 정말 예쁜 애 있는데... 만나보실래요? 제가 안 그래도 걔 한테는 아주버님
얘기를 많이 해뒀거든요~”
“그.. 그래요?...”
형이 못하는 걸 하나 찾아낸다면 연애였다.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형이 연애를 한다는
흔적도 얘기도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나 몰래 누구를 만나도 만났겠지만 형의 연애사는
그리 길지 않고 많지도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호홋!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 엄청 글래머예
요... 키도 크고 늘씬하고요...”
“쭉쭉빵빵이면 좋죠~”
형이 저런 저급한, 아니 유행어를 쓰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자에게 관심 없는 척
하는 형도 결국 글래머라는 단어에 쓰러지는 뭇 남성들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조
금은 인간답게 보이고 있었다.
“약속 잡을게요~”
“그... 그러세요~”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있는 가족식사는 기분 좋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쓸데없는 상상에 짜
증이 난 나만 빼고 말이다. 형이 자신만의 공간으로 올라가고 아내는 식탁을 치우고 있을
때 나는 샤워를 했다.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둘 사이에 풍기던 오묘한 분위기가 잊혀
지질 않았다. 내가 따라다닌 탓일까? 아내는 나와 연애를 하던 시절에도 그런 미소를 보인
적이 없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형에게 보인다는 것이, 아니 형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보인다는 것이 무척 기분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다.
씻고 나오자 아내는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주방에는 아내가 넣어 둔 식
기세척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그 외에 씽크대나 식탁 위는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민영아~”
“응?”
헤어 밴드를 해서 얼굴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아내의 얼굴에 콜드 크림이 잔뜩 묻어 있었다.
거울을 통해 치켜 뜬 눈을 보니 아내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새삼 들어왔다.
“형한테 소개 시켜준다는 친구 말이야...”
“아~ 오빠 소현이 알지? 왜~ 가슴 큰 애 있잖아~”
김소현,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물론 겉으로만 본 것이지만 가슴이 유별나게 커다랗고
얼굴은 무척이나 서구적으로 생긴 아내의 친구였다. 아내의 친구 중 가장 눈에 띄는 외모와
몸매를 소유한 퀸카 중에 퀸카인 그녀라면 내 쓸데없는 상상도 잠재울 수 있을만큼 매력있
는 여자였다.
“알지... 근데 그 친구 남자친구 있었잖아~”
“헤어졌대... 왜, 남자친구 있었던 게 걸려?”
“아냐... 아냐... 당장 소개해 줘, 소현씨 정도면 최고지~”
“치~ 나보다 더?”
여자들은 항상 이런식이다. 자신의 친구지만 그녀보다 항상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아내는
화장을 다 지웠는지 말끔한 얼굴이 되자마자 실내등을 끄고 스탠드에 불을 밝혔다. 불편할
법도 했지만 아내는 언제나 맨 얼굴이 되면 조명을 낮추거나 아예 불을 꺼버리기 일쑤였다.
아직도 내게 못난 얼굴을 보이기 싫다는 핑계였지만 난 그게 싫지는 않았다. 민영이를 안지
10년차이지만 난 여전히 이 세상에서 그녀가 가장 예쁘고 가장 신비스러운 여자로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노란 스탠드 불이 아내를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점차 나의 그곳
도 그녀를 보며 서서히 빳빳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