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9)

나의 업무는 말이 영업이지 납품사원이나 다름없었다. 정해진 거래처에 제때 납품을 하고

 수금만 잘 해오면 내 업무는 사실상 끝이었다. 다른 영업사원들은 신규거래처를 제법 끌고

 오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걸 할 줄도 모를 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형의 그늘에

 서 성장하면서 형성되어 온 나의 자화상 일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의 내가 굳이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 역시 그들보다 수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하고

 있었고 또한 거래처 유지도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래처를 돌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영업을 하는 남편을 둔 탓에 전화보다는 메

 시지를 더 유용하게 쓰는 그녀였다.

 [오늘 일찍 들어오지? 오늘 아주버님이랑 저녁 먹는 날이니까 일찍 와]

같은 집에 살지만 워낙에 바쁜 형 덕에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는 게 월례행사였다. 한 달에

 한 번, 둘째주 목요일이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워낙 잘

 까먹는 성격을 아는 아내는 항상 문자나 전화로 그 날을 일러주곤 했다. 내가 어긴적은 있

 었어도 형이 약속을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아내와 딸 아이인 연희 세 식구만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형은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이다. 펀드나 주식에 대해서 무뇌한이라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할

 수도 없었기에 나는 이렇게 몸으로 뛰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워낙 약속에 민감하고 매

 사에 철두철미한 형의 성격과 잘 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그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버는 직장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먼저 타계하신 부모님이 보셨으면 엄청나

 게 흡족해 하셨겠지만 지금은 형과 나, 그리고 나의 가족이 이 세상에 남겨진 혈육이고 가

 족이었다.

알았다는 문자를 보내고 사무실로 복귀한 나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퇴근시간이 막

 지나고 있었지만 누구하나 퇴근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말이라 마감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작은 회사에 대박 건수가 올라온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 같이 퇴근을 미루고 있었

 다. 분명 이런 상황에 먼저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면 팀장은 또 다시 무차별한 폭언을 날리

 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주 당당하고 당차게 말을 했다. 괜히 눈치를 보면 말하면 모습도 구겨지고 체면도 깎여버

 리기 일쑤였기에 오히려 더욱 당당했다.

“어유... 퇴근하시려구요? 이대리님?”

예상했던 대로 팀장의 빈정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미소로 화답하며 고개를

 꾸벅 수그렸다.

“예.. 오늘은 제가 약속이 좀 있어서...”

 “어련하시겠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내일도 지각하시구요”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비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오래 다니려고 들어온 회사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날 두고 뭐라하건, 비웃건 상관없

 었다.

현관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현관에는 형이 기거하고 있는 복층으로 연결

 된 대리석계단의 초입이 있었다. 아내를 배려해 구조를 변경한 형의 생각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만큼 아내는 불편함을 모르고 생활했다. 물론 주방의 옆 쪽에 연결된 계단도 있

 었지만 그 계단은 왠만해서는 사용을 하지 않는 형이었다. 칸막이로 거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를 막아버린 것도 자신과 아내를 위해 전부 뜯어고친 형의 배려에 아내는 항상 고

 마워했다.

“형!”

나는 바로 1층을 가려다 2층으로 올랐다. 나 역시 형의 공간에는 왠만해선 잘 올라가지 않

 았지만 왠지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책을 보고 있는 형을 불렀다.

“왔냐?”

차가운 이미지였다. 동생인 내가 봐도 차갑기 그지 없다. 그만큼 날렵하게 생겼고 이목구비

 가 또렷한 것이 남자인 내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잘 생겼다.

“응.. 내려가자, 밥 다 된 거 같은데...”

 “그래~”

형은 고급스레 생긴 책갈피를 책 사이에 꽂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83cm의 훤칠한 키가 천

 장에 닿을 듯 위태하지만 전혀 닿지는 않는다. 그만큼 복층 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조금의

 불편함도 없어보였다. 좁거나 답답하지도 않았다. 원룸식으로 탁 트인 생활공간과 불투명

 유리로 된 욕실 겸 화장실, 그리고 외벽부분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강이 흐르는 멋진 배경

 을 투과하고 있었다. 오히려 넓은 아래층 보다 훨씬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간편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형의 모습도 나와는 전혀 달랐다. 목 늘어난 티셔츠나 반바지같

 이 편한 옷을 선호하는 나와는 달리 집에서도 깔끔하게 다림질 된 면바지와 폴로셔츠처럼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는 형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비교될 만큼 완벽했다.

“어머! 아주버님 벌써 내려오셨어요?”

나와 형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내는 호들갑스럽게 형을 맞았다. 사실 가족이지만 난다 든다

 는 인사 없이 살다보니 따로 사는 시댁식구가 방문한 것처럼 갑자기 경직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보고는 그런 반가움이 없다는 게 좀 씁쓸하기는 했

 다.

“이 녀석이 준비 다 됐다고 해서...”

모르긴 몰라도 형이 가장 부드럽게 대해주는 사람은 바로 아내인 민영이었다. 절대 말 끝을

 흐리는 법이 없는 형이 아내에게 말끝을 흐리며 긴장을 한다. 전 달에도, 그 전 달에도 느

 낀 거지만 뭔가 형이 다르게 보인다.

“호홋... 연희아빠는 보지도 않고... 다 됐어요~ 앉으세요~”

아내의 화장이 평소보다는 짙게 느껴진다. 색조화장을 즐겨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오늘따라

 유독 볼이 발그스름한 게 볼터치도 하고 눈가 역시 붉은 계열로 가다듬은 티가 난다. 입술

 도 반짝이는 것이 평소와는 다른 립글로즈를 바른 게 분명했다.

‘왜?’

바보같은 상상이지만 왠지 나의 아내가 나의 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쓴다는 게 느껴진다.

물론 형제이지만 돈 한 푼 내지 않고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것과 집에서는 밥을

 거의 먹지 않는 형이 생활비로 100만원을 내어놓고 아이 양육비라며 50만원을 더 내 놓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아내가 나 아닌 다른 남자

 에게 잘 보이기 위해 웃음을 팔고, 얼굴을 가꾸는 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그 때 딸 아

 이가 아장아장 걸으며 형에게 다가갔다.

“어이구~ 우리 연희 공주님 오셨어요?”

형의 바짓단을 움켜잡은 딸 아이의 손을 부드럽게 매만지던 형이 아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러자 딸 아이는 세상 그 어떤 밝은 것보다 맑게 웃음을 지어냈다.

“이 녀석 몰라보게 무거워졌구나! 삼촌이 그동안 우리 공주님을 못 안아 줬나보네?”

 “많이 무거워졌죠? 이젠 제가 안고 다니기가 무척 버겁더라구요~”

잘 끓여진 해물탕을 식탁위로 올리며 아내가 말하자 형은 그녀와 눈을 맞추며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난 형의 웃음을 거의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행복하게

 웃고 있는 형의 얼굴을 보자 계속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형! 연희 이리주고 앉자~”

 “그래... 연희는 내가 안고 있을게... 오늘 아니면 언제 또 공주님을 오래보겠니?”

한사코 사양하며 나를 떠미는 형이었다. 형이 가장 싫어하는 게 술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지

 르는 사람들, 쓸데없이 음성이 높은 사람들, 그리고 우는 아기를 가장 싫어한다. 한 마디로

 시끄러운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울고 있지는 않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다.

“아주버님! 식사부터 하세요~ 연희는...”

 “아닙니다. 울지도 않고 아주 순한데요 뭘...”

형의 수저를 들고 자기도 먹고 살겠다는 몸부림을 치는 딸 아이를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지만 묘한 느낌이 드는 건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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