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9)

나의 아내는 아름답습니다.

결혼 3년차... 내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토끼같은 딸 하나와 죽음과도 바꾸고 싶지 않

 은 아름다운 아내가 있습니다. 죽자사자 7년을 따라다니고, 겨우겨우 결혼에 골인한 내 눈

 에는 엄청나게 예쁜 그런 아내입니다. 딸 아이도 그런 아내를 닮아 길쭉하고 벌써부터 외모

 가 빛이 날 정도로 예쁩니다. 허니문 베이비로 아이를 갖아 이제 22개월 된 아이에게 섹시

 함이 물씬 묻어나는 외모라고 하면 딸바보라고 욕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짙은 눈썹과 빨간

 입술, 그리고 하얀 피부결은 저의 아내를 닮아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저희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가정주부로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맞벌이 하

 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녀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심성이 곱습니다. 생긴 건 남자

 를 잡아도 한 트럭은 잡았을 것처럼 도도하면서도 요염하게 생겼지만 정작 남자를 하나도

 몰랐던 순진한 여자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가 되어서야 조금 덜 해졌지만 여

 전히 제 앞에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하다못해 맨 얼굴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랑스

 런 여자입니다.

172cm의 늘씬한 키, 8등신을 자랑하는 비율에 75A컵, 24인치의 허리, 몸무게 52kg의 균

 형있고 건강한 몸매의 소유자인 저의 아내를 누가 아이 딸린 아줌마로 볼까요? 언제나 불안

 하지만 워낙 조신하고 지조있는 성격인 그녀를 믿는 수 밖에 없지만 여전히 연락이 안 되거

 나 가끔 모임 때문에 늦는날이면 저도 모르게 초조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여전히 처녀같은

 그녀를 누군가 해할까, 납치라도 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녀 나이는 28살입니다.

그리고 제겐 6살 차이가 나는 형이 있습니다. 제가 29살이니 저희 형은 올해 35살이 된 노

 총각입니다. 역시 심성착하고 돈 잘 벌고, 게다가 얼굴까지 잘생긴 저희 형이 솔로라는 게

 의문이 갈 정도로 여자에겐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키도 훤칠하고 저와는 다르게 부모님께

 좋은 유전자만 골라서 물려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끔 형을 보면 열등감마

 저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수도권에 위치한 제법 큰 도시의 아파트로 50평형대 복층 아파트입니

 다. 월급 200만원, 집도 없고 낡은 중고차 한 대를 굴리는 저로서는 꿈도 못 꿀 그런 집이

 지만 돈 잘 버는 형 덕에 저희가족은 집 걱정 없이 얹혀살고 있고 워낙 새벽에 나가 밤 늦

 게 들어오는 형 덕에 저희 아내도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빠! 오빠~~~ 어서 일어나 출근해야지~”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채광이 잘 되는 덕에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살만 쳐다봐

 도 대강 몇 시가 된 것쯤은 피부로 알 수 있었다.

“몇 시야?”

 “8시 다 됐어~”

아내의 대답에 나는 놀란 듯 몸을 일으켰다.

지각이다. 거실로 나가자 바닷물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밝은 빛이 한 가득 흩뿌려

 져 있다. 마치 유리조각을 산산이 부셔뜨려 뿌려놓은 것처럼 그 빛이 영롱할만큼 눈부시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즐기지도 못할 만큼 시간에 쫒겨 일어난 내가 원망스럽지만 감상도

 푸념도 이 시간엔 사치였다.

“형은?”

급한대로 치약을 묻힌 칫솔을 입에 물고 뒤따르는 어여쁜 아내의 엉덩이를 주물거리며 묻자

 그녀는 손바닥으로 손을 쳐내며 나를 다시 욕실 안으로 떠밀어 넣는다. 아침부터 이런 전쟁

 을 치르는 아내의 표정엔 짜증이 한 가득이었다.

“나가셨어... 당신도 좀 아주버님 반만 닮아라!”

아내가 밥 먹듯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또 다시 귓전에 머문다. 옛말에 ‘형만한 아우 없다’라

 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짜증나도록 싫었지만 나의 상황만 놓고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왜 또 아침부터...”

치약을 우물거리며 빛과 같은 속도로 양치를 끝낸 나는 벌써 샤워기의 물을 머리에 뿌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샴푸를 대충 눌러 거품을 냈고 다시 물로 깨끗하게 헹군 뒤 수건걸

 이에 걸린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다시 옷방으로 향한다.

형은 철저하게 막힌 복층을 사용했고 방 5개가 있는 아래층은 온전히 우리 가족이 사용을

 하고 있었다. 복층만 해도 30평이 될 정도로 넓고 욕실도 딸려 있어 형도, 나도, 그리고 아

 내도 불편할 것이 전혀 없었다. 원래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하는 복층구조를 나와 나의 식구

 를 위해 과감하게 뜯어 고쳐준 형 덕분이었다.

“지갑, 아! 차 키... 아! 민영아! 내 핸드폰 좀....”

아내의 이름은 민영이다. 나는 넥타이를 매며 양말을 챙기고 있는 아내에게 수많은 요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 있는 아내에게 부탁하는 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단지 내일부터는 알람을 맞춰 둔 시간에 일어나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수 밖에

 는...

“으휴! 아침마다 전쟁이다. 전쟁이야!”

결국 참지 못한 아내는 푸념과 짜증이 섞인 말을 내어 놓는다.

“다른 집도 다 이래...”

온갖 소지품을 손에 든 아내가 나를 한심한 듯 바라보며 말했고 나 역시 언제나처럼 둥글하

 게 그 상황을 모면해 나가고 있었다.

“뭘 다 그래! 아주버님 좀 봐... 얼마나 부지런하냐?”

 “원래 우리 형은 인간이 아니무니다야~ 어쩜 저렇게 사나 몰라~”

어려서부터 형과 비교당하는 게 이골이 난 나였다.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결혼을

 한 지금도 난 형과 비교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형은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완벽한 사람이라고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된 이상 그는 내 경쟁상대가 아닌 신과 같이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갔다 올게~”

언제나처럼 아내에게 키스를 나눠주는 건 잊지 않고 집을 빠져나온 나는 곧장 회사를 향해

 급하게 출발을 했다.

“늬 형 반만 닮아라”

 “니가 태훈이 동생이니?”

항상 나는 이태훈이라는 사람의 동생으로 기억됐다. 공부, 운동, 싸움, 미술, 음악... 세상이

 이토록 불공평한 걸 일깨워 준 장본인이 우리형이었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형의 그늘에

 서 숨 쉬며 살아가는 게 어린 내겐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엄청난 고민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군대를 제대할 즈음 형은 내 머릿속에 이길 수 없는 존재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

 람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에 대한 적개심이나 열등감은 복종 내지는 이해와 굴

 복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리! 넌 오늘도 지각이냐?”

다급하게 뛰어 봤지만 이미 조회는 끝이 난 상태였다. 역시 먹잇감을 기다렸다는 듯 숨통을

 조이는 팀장의 눈치를 보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서야 자리로 돌아왔다. 작은

 유통회사 영업팀에 근무하는 나는 원래 대리 직급이 아닌 사원이었다. 하지만 여느 영업팀

 과 같이 영업의 원활함을 위해 대리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것 뿐 급여는 인센티브를 합해봐

 야 200만원이 겨우 될 정도였지만 잘난 형의 그늘이 그토록 시원한 안식처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돈에 대한 개념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너 그렇게 할 거면 때려치워!”

오늘도 팀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로 멀찌기서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다. 서둘러 납품

 물건을 챙겨 나오기 전까지 팀장의 입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욕설은 아니지만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말들로 구성된 그의 언변은 자존심에 상처를 주

 기 충분했다. 하지만 워낙 성격이 낙천적인 나는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기술을 이미 마친 상

 태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