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 편(編) – 2
제 Ⅱ 장 신혼의 첫 살림
1 – 관훈동의 이모님 집
대장 … !
나에게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더 나이가 많은 내 엄마와는 배가 다른… 이모(姨母)님이 한 분 계신거야…
그러니까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 외조부님께서… 또 다른 마나님과의 사이에서 세상에 나오신 분이신 거지…
그 당시에는 사회풍토가 양반 댁의 남자들만을 위한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의 사회였기 때문에… 좀 행세께나 하는 남자들은… 대부분이 측실(側室)을 두고…
그 몸에서 자손들을 보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을 일컬어서 소위 서자녀족속(庶子女族屬)- 들이라고 하기도 했던거야…
이들 서자녀족속들은 일컬어서…
본댁의 정실(正室)의 마나님들로부터 인해서 태어난 적자(嫡子)도령님들과 구분이 되어서… 위로는 왕족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차별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들 서자녀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수많은 애환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야사를 대부분 차지하는 그런 역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기도 한 거지…!??
이로 인해서 전 왕조시대(李氏朝鮮)에는 사회적인 논란이 많이 되는 사건들이 상당히 많았었다는 것은 대장- 들도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일 것이고…!??
그러나 그 왕조의 말기이후… 소위 개화기이후의 우리사회에는 그 서자들이라고 해서 결코 기가 죽어서 살지는 않는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은 아주 다행스런 일인 것이지…!??
내 외가(外家)집도 우리 집안과 마찬가지로 경상북도- 통천- 이라는 고장이라는 이야기도 전 에서 다 이야기 했던 대로야…!??
이씨조선(李氏朝鮮) 시대의 말엽경이라고 할까…?? 그 무슨 조대비(趙大妃)인가 하시는 왕실의 가장 촌수가 높으신 어느 여인이 역사적인 결단을 내리신이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왕조(李氏朝鮮)가 저물어가고 암흑의 왜정시대(倭政時代)가 도래하게 된…
대한제국의 한 시대까지에 걸쳐서…
천하를 주름잡던 조씨(趙氏)들의 선조 대대로부터 내려오는 종손(宗孫) 집안이 내 외가 집이라는 사실도 그때에 다 설명한대로인 거야.
또 지난 【모정 편(母情 編)】에서도 말했지만…
내 외 증조부(外 曾祖父)님 이전의 조상님들께서는…
그 이씨조선의 후반기쯤에 경상 감사(慶尙 監司)와 전라 감사(全羅 監司)까지 역임하신 양반들 중에서도 최근까지 가장 세도를 부리시던 양반들이셨지만…!??
의외에도 그분들의 직계 종손(宗孫)이신…
내 외조부(外祖父)님이신 조(趙)자 헌(憲)자 형(炯)자를 쓰시는 어른께서는…
기울어 가는 국운(國運)을 한탄만 하시질 않고... 당당하게 몸소 적진(敵陣)인 일본(日本)땅에 가셔서 활동을 하시는 동안…
내 친 외할머님보다도 더 일찍이 그 나라의 규수(閨秀)를 만나셔서…
당신의 부모님허락도 없이 장가를 드셔서 아들딸 남매를 두었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그 편(編)의 이야기를 할 때에 다 설명을 했던 것이고…!??
그래서 그 일본 여인이신 내 큰 외할머님은 비록 먼저 내 외할아버지와 혼인을 하셨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이 인정을 하시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내 외할아버지의 정실이 아닌 측실로 밖에는 대접을 받지 못하신다는 이야기도 그때에 다 이야기를 했던 것인데…!??
그래서 그때에 태어나신… 내 배- 다른 외삼촌과 이모님 역시도…
조선 땅에서 태어나고 사셨더라면… 역시도 틀림없이 서족(庶族)취급을 받으면서 온갖 사회적인 서러움을 톡톡히 받으셨을 꺼지…!??
또 내 외할아버님께서는…
고향에서 묵묵히 조상(祖上)의 사당(祠堂)을 지키고 계신 내 친- 외할머님께서 낳으신 막내딸 「조규정(趙奎貞)」이를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을 하시어서…
내 어머니이신 그 「규정」 이를 몸소 그 나라까지 데려다가…
교육도 받게 하고… 또 만주(滿洲)- 땅의 하얼빈- 이라는 곳 이라던 가…??
또 중국(中國) 본토의 샹하이(上海)- 라는 곳 이라던 가…?? 등등으로 데리고 다니시며…
그 당시의 국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찍부터 훈련을 시켜 왔었다는 것도 이미 지난 편에서도 다 이야기 했던 대로인거야…!!
그리고 지금도 내「엄마」는… 하늘같으신 남편인... 내 아버님께서 타계를 하신 이후에...
내가 K- 고등학교 제 2 학년에 올라 갈 즈음해서…
다시 내 그 외할아버지의 부름을 받으셔서…
일본(日本)- 땅으로 밀항(密航)을 하신 것이기도 한 거지…!??
이 이야기도 지난 편에서 다 이야기를 한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아직까지 뵙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그 나라에서 여자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사업을 하시고 계시다는 거지…!!
그래서 지금도 멀리서부터... 나한테다 보이지 않는 리모트- 콘트롤을 해주시며 나의 생활에 깊숙이 관여를 하시고 계신 거야…!??
그리고 또… 바람기가 많으신 내 외할아버님은… 그 당시의 한양(漢陽)- 땅에다가도 또 한분의 마나님을 측실(妾)로 들여앉히셨다고 하는 데…!??
그 분은…?? 선천적으로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들 하는데…??
그 당시 유명한「대구권번가(大邱券番街)」의 동기기생(童妓妓生)이었던 분이라고 하는거야…!??
어쩌다가 내 외할아버님께서 자리를 했던 주석(酒席)에서… 동참하시어 술시중을 들다가…
내 외조부님의 눈에 들어서… 머리를 얹어주시게 된 것이고…
그 즉시 그분에 의해서… 측실로 결정되면서... 한양땅에다가 살림을 차리셨다 것이야…
그리고 그 분과의 사이에서 태어나신 내 이복(異腹)이모님은… 또 대단한 내력과 예능에 특기를 가지신 분이었던 모양이었어.
그 당시 세도깨나 부리던 양반들은 대부분 자기의 본향 말고도… 한성(漢城)-이나… 또는 자기의 부임지(赴任地)에다… 또 다른 집을 마련해 놓고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 그곳에서 기거를 하기 때문에…
측실(側室)을 마련해 놓고 그 지방의 관기나 명기들을 시켜서 수발을 들도록 하는 전통들이 있었다는데…!??
내 외 조부님께서도 비록 벼슬살이는 하지 않으셨다지만…
그래도 한 가닥 하시며 큰소리를 치셨던 양반 분이시라… 그 대구(大邱)- 출신의 동기(童妓)를 데려 다가 서울의 커다란 집에서 살림을 차려 주셨던 모양이야.
그 옛날 내 어머님께서는…
그 『조』씨네 종가 집 막내딸로 자라시는 동안…
비록 배다른 동생이기는 하지만…?? 또다시 자기보다 대 여섯 살이나 어린 여자 동생이…
당신 아버님의 외도로 인해서 생겼다는 사실을 오랜 훗날에야 아시고…
무척이나 기뻐 했었다는 이야기를 나도 들었던 적이 있었어.
그래서 그 후에… 내가 자라는 어렸을 쩍부터… 나도 그 이모님을 자주 뵈웠던 적이 있었어…
그래서 그것이 빌미가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외가 집계통의 일가친척들은…
한양(漢陽) 땅에 많이 들 살고 있게 되었는지도 몰라…!??
이것도 역시 지난 모정(母情)편에서 다 이야기를 했던 것 이지만…!??
말이 났으니 하는 소리인데…!??
내 외 할아버님께서는 당신의 가장 사랑하시는 본댁의 막내딸「규정(奎貞)」이의 남편감으로… 내 아버님이신 전(全)자 만(萬)자 진(鎭)자의 이름을 쓰는…
당신의 죽마고우의 아들에게 짝지어 주신 것을 내내 후회 하시며 사셨 대… !??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아도... 내 아버님께서는 내 어머님의 훌륭한 인품과 고귀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그 품성이 모자라시는…
그때 당시의 부자 집의 철없는 도령에 불과했던 편이었던 거지…!??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엄마를 따라서 서울에 사시는 외가 쪽 친척집에 갈 때마다…
나도 그들이 내 어머님을 안타까워하시는 말들을 하는 걸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있어…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화국(花菊)」이모는 내 엄마의 배다른 자매간이시지만…
이 이모님의 생모이신 내 작은 외할머님께서는…
대구- 권번(券番)출신의 기생이셨다고는 하지만…?
그 할머님은 또한 선천적으로 예능에 아주 특별하신 재능을 가지고 계셨었다는 분이신 거야…
또 내 외 조부님께서는 그 대구 권번가(券番街) 출신의 내 작은 외할머님 말고도 또 여러 명의 측실(側室)을 두었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는 그만 두기로 하겠어.
내 외가 집인 「조(趙)」」씨네 집안의 자손들은…
교육 수준이나 인품들이 신문물(新文物)을 일찍이 접하신 내 외 할아버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상당히 높은 수준들이었어.
여기에서 말하는 내「화국(花菊)」이모도 역시… 서울의 명문인 이화고텨(梨花女高)를 졸업하시고…
그 당시 신여성들이나 들어간다는 이화여자대학교(梨花女子大學校)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수재형(秀才型)이시고… 또 내 「엄마」못 지 않게 개화된 재원(才媛)이셨어.
특히 그녀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
나는 어렸을 적에 내 엄마를 따라서 서울에 왔다가... 이「화국」이모(花菊 姨母)를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당시의 내 인상에도 너무나 예쁘고 멋있는 여성이었다는 기억만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거야…
특히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겨울인가 였을 때였었는데… !?
그 이모를 따라서 한강까지 스케이트를 타러 갔었던 기억도 있어…
그 때 이모님은 이화여고(梨花女高) 시절부터 쭉- 스케이트 선수였었던 모양이었어…!??
같은 또래의 늘씬한 여자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아주 기다랗고 늘씬한 다리에 스케이트를 신고… 뒷짐을 멋지게 짚은 채… 허리를 구부리고…
죽- 죽- 달리 던 그 광경은 정말 멋있는 추억 중의 하나였었어.
아마도 그때쯤에는…??
그 이모님은 이미 지금의 내 이종사촌동생인「이수」란 녀석을 낳았던 후 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야…??
또 내 외가 집 쪽 자손들은… 아까도 말했지만 하나같이 미남 미녀들이 많았어.
그들 풍향『조』씨네 집안은…
가까운 일가친척들도 꽤나 많았지만 그들끼리 서로가 위해 주고 아껴 주며 화목하게 지내는 풍습은 우리네『전(全)씨』네 가문(家門)보다 한 수 위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런지「화국」이모도 상당한 미녀였고…
또 그렇기 때문에 일찍부터 신세대식 연애를 안 할 리가 없는 거 였겠지 … !?
내가 내「엄마」한테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그 이모는 이화고녀에 다니던 재학시절일일 때에...
벌써「한국봉(韓國鳳)」이라고 하는…
그때당시에 아주 유명한 화가(畵家)와 연애를 하다가…
끝내는 학업도 끝내지 못하고 불의의 씨를 배어서 집을 뛰쳐나갔던 일이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 이모는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 했다나 봐…!??
그 후에… 대동아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면서…
다시 또 6,25 라는 전쟁이 발발하던… 그 파란만장한 기간 동안「화국」이모는 무척이나 고생을 많이 하셨던 모양이야.
이야기를 들어보면 … ??
내 이모부가 되시는「한국봉」씨는 그 당시 이 나라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거물이었었고... 또 선구자 역 활을 하셨던 분 이었나봐…!??
6.25 전쟁 당시 대부분의 많은 지식인들이 그렇게 생각들을 했듯이…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양반과 상놈이라는 규범의 틀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컸었던 것이고…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 중에서는… 나라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생각들을 해서…
공산주의(共産主義)의 이념에 푹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대나 봐…!??
그래서 그 이모부 되시는「한국봉」씨도 그들의 지하 조직과 관련이 있었던 모양인지…??
6. 25- 전쟁이 발발하자…?? 그들 인민군의 정부를 위해 활약을 많이 하셨던 모양 이었었대 나 봐…??
지금은 대전- 의 우리 집 양조장을 맡아서 운영하고 계시는…
내 고모- 님의 신랑인… 그 「김진영」선생이라는… 내 고모부가 그랬듯이…!??
그래서 그 이모부는 전쟁이 끝날 때쯤… 역시 저들을 따라 북쪽으로 넘어 가고 마셨다고 하시는 거래…!??
6. 25- 전쟁이라고 하면…!??
지난번에 나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내「엄마」와 함께 잊을 수 없는 비참하면서도… 또 한편… 그 시절이 그리운 추억(追憶)들을 만들어 주었던 그런 시기이기도 했었지만…!??
「화국」이모는 또 그 이모님대로… 나나 내 엄마 못지않게 더 혹독하고도 견딜 수 없는 시련의 시기를 보내야만 하셨었던 모양이야…!??
결국 이모부는 북쪽으로 넘어가시게 되고…
「화국」이모만 혼자서 면사포도 못 써 본채로… 숨다시피 해서 낳은「한이수(韓二洙)」라고 하는 아들과 함께 서울에 남게 되었던 모양이래…!??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이모부의 『한(韓)』씨네 집안에서…
이 「화국」이모와 「이수」라고 하는 아들의 존재를 인정해주는데다가… 그 집안 역시 손(孫)이 귀한 집안인모양이었다나봐… 옛날에 한 가닥 하던 집안이었었는지…!??
이모부 소유의 커다란 빌-딍이 서울의 중심가에 있고…
또 꽤나 크고 넓은 한옥(韓屋)이 살림집으로... 역시 서울의 중심부인 관훈동- 에 유산으로 남겨져 있어서…
그것들을 밑바탕으로 해서「화국」이모는 그 빌-딩 뿐만 아니라 관훈동- 의 살림집에 있는 여러 개의 방들을 세를 놓아서…
그 셋돈으로 그 집안의 대를 이어나갈… 「이수」의 그림공부에 보탬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 모양인 거야…!??
「애희」누나와 내가 결혼을 하고 난 뒤에…
서울에다 신접살림을 차린 곳이 바로 이「화국」이모 님 댁이었어…!!
물론 결혼을 하고 난 뒤에…
처음에 「애희」누나는 신도안- 의 할아버님 댁으로 들어갔었지만…!??
그곳에서 거의 두 달 가까이 시집살이를 하고 난 뒤에…
그녀는 어른들의 정식 허가를 받아서 나와 함께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그 보금자리가 바로 이곳 관훈동- 의「화국」이모 님 댁이었던 거야…
이모 님 댁은… 옛날에 아주 부자 집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어느 정도 잘살던 양반들이 살던 집 이었었나봐… !?
그런 집을 내 이모부(姨母夫)댁의 선조님께서 구입하셔서 사시다가…
이모부가 월북(越北)하신 후…
이집을 그 「한」씨네 집안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 받으셔서 이모님은 혼자서 아들하나만 데리고 살게 되었다는 모양이야…!??
그래서 이모님은... 그 집을 현대생활에 맞도록 이리저리 개조한 집이었어…
집은 몸통이 안채와 바깥채로 나뉘어 있고…
바깥채(행랑채)는… 한가운데에 그래도 솟을- 대문이 있는... 일 자(一字) 형으로 지어져 있는 집인데…
이 바깥채가… 말하자면 이 집의 성문(城門) 역할을 하는 그 당시로써는 정승들이나 살도록 거창하게 지은 양반 댁 건물인 거야…
그 솟을 대문을 가운데 두고 옛날에는 행랑 댁과 머슴들이 살았음직한 방들과 이 집의 창고 역할을 했던 광(曠)들 이 넓게 달려 있는데…
이모님께서는 그 광들과 방들을 개조해서…
각 방마다 부엌을 새로 만들어서 들여 놓고… 그 방마다에서 각각 딴살림을 할 수 있도록 꾸며서 세 집으로 활용하고 있었어…
또 안채는 『ㄷ』자형으로 건물이 되어 있는데…??
하나 이상한 것은… 그 바깥채와 안채 사이에 상당히 넓은 공간의 정원(庭園)으로 쓰는 마당이 있는거야…?? 그리고 그 중간의 공간에 또 작은 문이 하나 있고…
그 문 옆에는 아마도 옛날에 사랑채로 쓰이면서 바깥양반들이 쓰던 커다란 방이 또 하나 있는 거야…
지금은 이모님이…
그것들도 그 쪽문과 함께 벽을 헐고 아주 특별히 조그마한 별채를 양식(洋式)으로 꾸며 만들어서 거기에도 또 하나의 큰방을 만들어 놓았어…
이모님께서는 나를 위해 최근에 일부러 그렇게 꾸몄다고 하시는데 …
그러다보니까… 이방은 이 집에서 맨 한가운데에 따로 있는 제일 큰방인 셈인 것이야…
안채는 행랑채보다 더 크게 자리를 잡았는데 대청마루가…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시원하게 넓어서...
집안 전체가 더욱 시원하고 웅장하게 보이는 거야…
그 대청마루 건너에는 또 아랫방과 윗방으로 큰방들이 있는데 이곳에는 경상도- 어딘가에서 올라왔다는... 두 자매들이 세 들어 살고 있었어…
언니는 종로 3 가에 있는 무슨 디자인 학원의 강사로 일하고 있고…
동생은 그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모 여자고등학교의 졸업반인 여학생 이었어…!??
그들 자매(姉妹)들이 살고 있는 방과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윗방이 있는데… 안방은 이모님이 직접 쓰고 있는 것이고...
그 윗방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 그분의 아들인 「한이수」라는 녀석이 쓰고 있는 거야.
또 안방과 윗방 뒤로는 넓은 뒷마당이 공터로 있었다는데…
이곳에다가는 지붕에 붉은 색 기와를 얹고 벽돌로 벽을 쌓은 위에 다시 화강암으로 덧 붙여서 제법 현대식으로 건물을 따로 지었는데…
「이수(二洙)」란 녀석이 쓰면서부터…
그 입구를 윗방에서만 드나들 수 있도록 해놓고... 제 놈의『아뜨-리에』와 자기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미술품들의 전시장(展示場)겸… 창고로 쓰고 있었어.
이 건물은 내 이모부님 훨씬 이전부터 만들어 놓은 것이라 꽤나 고풍스럽기까지 했어.
아마도 대한제국(大韓帝國)- 의 초 쯤에 건축이 된 모양이야…!??
「한이수(韓二洙)」란 녀석은 말하자면 내 이종사촌(姨從四寸) 동생이 되는 거지 …
「이수」가 다니는 학교도 역시 나나「애 희」가 다녔던... S- 대학교인데…
녀석은 그대학교의 미술대학에 다니고 있었어…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 갔을 때에 녀석은 그 대학교 미술대학의 2 학년생이었어.
녀석은… 제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그림에는 가히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 거야…??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벌써…
국전(國展) 에 입상을 하기도 하고 또 전국 학생들만의 미술전람회에서는 항상 대상(大賞)을 받아오기도 하는 가히 그림에는 독보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는 녀석인 모양이야…
녀석은 작년 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대학에 입학한 모양인데…!?
이제 대학교의 2 학년생이 되었는데도 얼른 보기에…??
전혀 어린 티가 나지 않게끔 듬직하고... 또 덩치가 너무나 커다란 것이...??
키가 거의 180 센티는 더 되도록 큰 거야…
나이는 아직 스무 살도 이쪽저쪽 일 것 같기도 한데…
얼굴에 구레-나룻 수염- 터가 짙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벌써부터 매일같이 수염을 깎아야만 하는 모양이야…
제 녀석과 나는 거의 오륙 년이나 나이차이가 나는데…?? 오히려 나보다도… 더 어른스럽게 보이는 그런 녀석 이었어…
그러나 녀석의 눈- 만을 본다면 아직도 애-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녀석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야.
내 이모도 학교에 다닐 때에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이화고녀 시절에 미술부에서 특별활동을 하시다가…
「이수」의 아버지인「한국봉(韓國鳳)」화백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고…
또 동시에 두 사람은 열애(熱愛)를 시작함으로써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 인 거래 …
내 주위에는 이상하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아…!??
사실은 내 아내인「애희」누나의 형부인「장」서방도… 화가로써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람인데…
그 형님도… 「한국봉」이라는 화백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이름만은 잘 알고 있다는 거야…
이미 한 세대(世代) 이전의 대가(大家) 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유작(遺作)은 남아 있어도...
그 훌륭하신 인걸(人傑)은 이미 가고 안 계시다는 이야기인 거지…!??
내가 근무하는 관청(官廳)은 을지로- 입구에 있는 어느 커다란 빌-딍에 있었고…
또「애희」누나의 직장은 시청 앞 광장 건너편의 덕수궁과 국회의사당 사이의 골목길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살아가면서… 서로가 출퇴근하기가 편리한 곳에다 살림방을 얻으려고 물색을 하고 다녔던 거야…
어느 날 나는 직장에서 퇴근한 후에 하루라도 빨리 적당한 살림집을 세(貰)로라도 얻어야만 내 사랑하는「애희」누나를 신도안- 에서 데리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종로 2 가 일대의 복덕방을 찾아다니고 있었어…
그러다가 우연히 관훈동- 에서 살고 있는…
「화국」이모님 생각이 나서… 무심코 한번 들렀던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때에 이모님은 나의 자초지종 사정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마침 당신의 집에 적당한 방이 비었으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자기네 집으로 이사를 오라고 흔쾌하게 승낙을 해주시다 못해…
반은 강요를 하시다시피 하시는 것 이었어…!?
그리고는 즉석에서 신도안- 의 내 할아버님과… 또 일본- 의 내 엄마에게도 연락을 하셔서 승락을 받으시는 거였어…!??
역시나 이 이야기를 듣고는 신도안- 의 어른들이나... 일본에 사시는 내「엄마」도 대 찬성들을 하셨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거지…!!
그래서 나는 결혼 한지 거의 두 달이 지나서야…
나와「애희」 누나만이 함께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장만함으로써…
완전한 내 자신만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독립을 하게 된 거야…
아침이면 「애희」누나와 같이… 나는 집을 나서서 종로 2 가의 전차 타는 곳까지 걸어서 나오는 거지…!!
그 때가 내게는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대 였었어…!!
그녀는 워낙에 키가 크지만은…!??
처녀 때에는 그 위에다 더욱 멋을 부리느라고… 언제나 굽이 더 높은 5 승 짜리 하이-힐을 신고 다녔대나 봐…!??
그러나 나와 결혼한 후부터는… 키가 작은 나를 고려해서 그러는지…??
아주 굽이 얕은 단화(短靴)로 바꾸려고 하기도 했었어…!??
그러나 나는 그녀가 오히려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또각- 거리는 소리도 경쾌하게 걷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아서… 결단코 그녀가 단화를 싣는 걸 절대로 용서하지를 않았었어…!!
처음 몇 번은 사양하던 그녀도… 내가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자… 별로 싫지 않다는 듯이 다시 굽이 높은 구두로 바꿔 신게 된 것이야…!!
그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그 기다랗고 쪽 곧은 다리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그 당시에 새로 유행하기 시작하는… 무릎 위까지밖에 내려오지 않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로…
또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율동미 있게 움직이는…
그 커다란 히-프가 유난히 돋보이고… 또 늘씬한 각선미(脚線美)로 유난히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던 거야.
그녀가 나와 나란히 걸을 때면… 나보다 목 하나는 더 길어 보일 정도로 키가 크기 때문에…
언제나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해야만 했어…
나는 묘하게 그렇게 키가 큰 그녀를 올려다보며 걷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고 또 그런 상태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 나름대로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어
. 그런 식으로 길을 걷는 것이 습관이 되다보니까…
그녀도 언제부터인가 부터는 그런 점을 은근히 좋아하는 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종로- 1 가 화신백화점 앞 네거리에서…
나는 을지로- 입구로 해서 서울역- 쪽으로 가는 전차를 타고 가다가 미우만- 백화점 앞에서 내려서...
내 직장으로 가고…
그녀는 또 그녀대로 서대문- 으로 해서 마포- 로 가는 전차를 타고 한 두 정거장을 가다가… 광화문- 에서 내려 가지고 정동- 뒷골목으로 해서 그녀의 사무실로 가기도 하는 것이지…!!
다소 시간이 이를 때면… 좀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같이 무교동- 까지 걸어가서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져서 걸어서 가기도 하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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