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씨x. 밖에 존나 추워!」 ‘회색 트레이닝복’이 베란다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져 선홍빛 잇몸마저 드러나고 있었다.
「자~ 1번 어디 갔어? 1번. 은채씨도 빨리 나가세요.」
「으음..」 은채가 사내들의 손에 이끌려 베란다로 내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이 취해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예상대로 이번 미션의 대상자 역시 그녀인 듯 했다. 그녀는 완전히 다리가 풀려있었고, 두 명의 남자들 사이에 끼어 부축을 받아서야 겨우 베란다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서있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지 얼마 못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야! 씨x 진짜 존나 춥다고!」 ‘회색 트레이닝복’이 연달아 소리쳤다. 그의 코는 벌써 빨개져 콧물까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차 없이 베란다 문을 닫아버렸고, 따뜻한 실내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아~ 저 더러운 새끼 콧물 흘리는 것 좀 봐.」
「ㅋㅋㅋ 둘이 알아서 해. 서로 꼭 끌어안고 있던지.」
「몸에서 열나게 같이 운동이라도 하면 되겠네. 푸하핫~」
하지만 그러는 것도 잠시. 추위에 떠느라 꼼짝도 못하고 있는 둘을 보더니 여기저기서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의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다 치더라도 은채는 아까의 그 짧은 연두색 스커트와 반팔 티셔츠 외에 아무 것도 더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추운 날씨에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어깨를 감싸고 떨고 있는 그녀는 실로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누군가 방으로 달려가 두꺼운 이불 한 채를 꺼내왔다.
「씨x 봐줬다. 이거라도 덮어라.」 ‘노란 티셔츠’가 문을 열고 이불을 던져주며 말했다. 던져준 이불을 냉큼 받아든 ‘회색 트레이닝복’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은채에게 그 이불을 둘러주었다.
「오오~ 박덕한이~ 매너남인데~」 그의 행동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커튼도 쳐줄게. 그럼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라. ㅋㅋㅋ」
‘노란 티셔츠’의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베란다 문은 닫혔고, 곧이어 커튼까지 드리워졌다. 그로인해 더 이상 베란다의 상황은 확인할 수 없게 되었고, 방 안에 남은 다섯 남자들의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야, 저 새끼 진짜로 저기서 하는 거 아니냐? 키킥-」 ‘노란 티셔츠’가 상기된 얼굴로 포문을 열었다.
「ㅋㅋ그러게. 저 여자애도 알고 보면 지금 할 마음 만땅인 거 아니냐? 좀 전에 봤지? 상근이가 귓구멍 살살 빨아주니까 손발 오므린 채로 움찔움찔 하는 거?」
「봤지~ 야 너네 막 신음소리 안내려고 참는 표정은 봤냐? 아~ 씨x 존나 귀엽더라, 진짜. 근데 상근이는 아쉬워서 어떻게 하냐? 기껏 밥상 다 차려놨더니 덕한이가 먹게 생겼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x 내가 하는 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다름 아닌 현택의 목소리였다. 아마도 그는 친구들에게 허용 가능한 수준을 사전에 정해서 일러둔 모양이었다. 조금이지만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저 짐승들 사이에서 은채가 그 이상 심한 꼴을 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에이~ 설마 저기서 진짜로 하기야 하겠냐? 저 새끼도 사람인데.. 근데 저 여자애는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냐? 존나 쩐다, 진짜.」
‘회색 후드티’가 카메라를 향해 엄지를 치켜 올리며 먼저 말하자 유일하게 반바지를 입고 있던 사내와 ‘짱꼴라’가 연이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다. 이현택 진짜 다시 봤어. 니들 쟤 팬티 봤냐? 어우~ 씨x. 보는 내내 진짜 꼴려서 뒤지는 줄 알았다. 다리도 존나 쌔끈하고.. 어우~」
「나는 처음에 쟤 옷 입은 거 보고 완전 노출증 개걸레인 줄 알았잖아. 근데 그래놓고 또 가리기는 존나 가리더라? 더 꼴리게ㅋㅋ 아까 엎드렸을 때 봤냐?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라인이 존나~ 아.. 상상했더니 또 꼴리려고 그러네.」
아마도 놈들은 그렇게 은채를 추켜세우는 것으로 그의 기분을 달래려는 듯 보였고, 작전이 먹힌 듯 현택은 어느새 우쭐거리며 대답했다.
「걸레는 무슨.. 내가 저 도도한 년 자빠뜨리려고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는데. 옷은 내가 니들 좋은 구경시켜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입도록 시킨 거야. 크큭- 쟤가 빨통이 워낙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다리도 진짜 어디 내놔도 안 빠지는 명품이거든. 크크.」
「설마 아다였냐? 그건 아니지?」
「뭐.. 아다는 아니었지만 거의 아다나 다름없는 상태였지. 이제는 뭐 내가 존나 써먹은 덕분에 거의 걸레가 다 됐지만. 크크-」
「그래도 우리 과 애들 정도는 아닐 거 아냐? 앞으로 우리 개강하고 은주나 민영이 같은 애 먹어도 뭐 감흥이나 있겠냐? 씨x년들 보지는 존나 헐렁헐렁해가지고는 안주빨만 더럽게 세우고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 맞아. 그년들 안주 그렇게 쳐먹더니 요즘 뱃살 장난 아니더라.」
「아무튼 이번에 네가 여자 데리고 오겠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별 기대 안 했는데, 저렇게 예쁘고 빨통도 죽이는 애를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 야. 씨x 어떻게 저 몸매에 가슴이 D컵이냐? 사기다 사기.」
「흐흐- 남자 여섯이서 무슨 재미로 노냐? 눈요기할 계집애 하나는 둬야 술맛도 돌지.」
「그래. 오늘 네 덕분에 눈요기는 실컷 했다. 근데 그림의 떡이라 더 죽을 맛이야. 보기만 하고 먹지를 못하게 하니까..」
‘회색 후드티’가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했다. 보아하니 녀석은 평소에도 현택의 기분을 맞춰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듯 했고, 이번에도 능숙하게 그의 비위를 맞추며 분위기를 리드하고 있었다.
「흐흐- 그건 진짜 미안하다. 아직 돌리기에는 위험부담이 커. 그냥 아까 게임하면서 물빨한 걸로 만족해라.」
「알았어. 대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돌려야 된다. 알았지?」
「알았다, 새끼야. 근데 애들 나간 지 얼마나 됐냐?」
「음.. 이제 8분 정도 지났네.」
「얼어 죽은 건 아니겠지? 진짜로 밖에 춥긴 존나 춥던데..」
「설마ㅋㅋ 뭐하고 있나 좀 볼까?」
「이 미친 새끼 진짜로 하고 있는 거 아냐?ㅋㅋㅋ」
녀석들은 살금살금 창문에 다가가더니 숨을 죽인 채 조심스레 커튼을 열어 젖혔다. 그 숨 막히는 긴장감에 그 상황을 휴대폰 액정을 통해 지켜보고 있는 나까지도 덩달아 숨을 죽인 채 베란다의 상황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런. 유리창에 반사되는 실내조명 때문에 도저히 카메라에 비친 영상으로는 베란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반면에 실제로 현장에 있던 녀석들은 뭔가 보이긴 하는지 유리에 바짝 달라붙은 채 손으로 빛을 가리고 바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야 씨x. 저 새끼 진짜로 하나봐!」
「저 미친 새끼~ 진짜 하냐? 저 추운데서 진짜 그게 돼?ㅋㅋ」
「ㅋㅋㅋ야 저거 찍어. 앞으로 존나 놀려먹어야지.」
쿵! 뭔가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진짜로 저기서 하고 있다고? 아까 그 ‘덕한’인가 뭔가 하는 놈이랑 은채가?
「아~ 저 개새끼. 내가 하지 말라니까.」 옆에 있는 녀석들이 웃겨 죽겠다는 듯 자지러지고 있는 가운데 현택만이 그 상황이 불쾌하다는 듯 그렇게 읊조리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그 말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그럴 리 없다며 애써 상황을 부정하며 간직하고 있던 실낱같은 가능성을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야! 시간 됐어. 그만하고 나와!」
참다못한 현택이 베란다 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끝으로 세 번째 동영상도 끝이 났다. 하지만 화면이 꺼지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는데다가 불과 1~2초 남짓한 시간이었기에 정확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난간 근처에서 커다란 이불이 들썩거리는 모습을 나 역시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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