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실패~」
「우~ 우~」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어쩐지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즐거운 듯 보였다.
「자.. 그럼 실패하셨으니까 벌칙~」 ‘회색 트레이닝복’이 그때까지도 입을 틀어막은 채 괴로워하고 있던 은채의 양팔을 잡더니 다짜고짜 거실 중앙으로 잡아끌었다. 현택과 맞먹는 건장한 체격의 그에 의해 그녀의 약소한 몸은 힘없이 끌려 나가 그들 한복판에 놓이게 되었다.
「인디안~~~~~~~~」
녀석들은 그렇게 엎드려 있는 은채의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때리는 강도는 전혀 세지 않았으나 녀석들의 목적은 아마도 다른 데 있는 것 같았다. 엎드린 자세 탓에 벌어진 티셔츠 사이로 가슴을 엿보는 놈도 있었고, 대놓고 그녀의 뒤에서 스커트 속을 들여다보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장정 다섯 명이 행하는 벌칙을 받아내느라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밥!」
거의 1분 가까이 계속된 벌칙이 끝남과 동시에 동영상도 거기서 종료되었다. 지체하지 않고 두 번째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야야, 이제 그만 해. 다음 게임 가자고.」
현택의 목소리에 한데 뭉쳐있던 녀석들이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이 비켜선 자리에 앉아있는 은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미 상당히 마신 듯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상태였다. 하지만 아까의 ‘배스킨라빈스’ 이후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인지 나는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자, 시작한다.」
이어서 그가 6개의 나무젓가락을 쥔 손을 앞으로 내밀자 모두가 앞 다투어 뛰쳐나와 그의 손에서 젓가락을 하나씩 뽑아가기 시작했다. 아.. 물론 앉아있던 은채를 제외하고 말이다.
「아 씨x~ 내가 왕이야!」 회색 후드티를 입은 사내가 가장 먼저 그렇게 소리쳤다. 지금 진행 중인 게임은 아마도 ‘왕 게임’인 모양이었다.
너무나 노골적인 게임선정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배스킨라빈스’처럼 대놓고 그녀를 노리지는 못할 거란 생각에 차라리 다행인듯 싶기도 했다. 하지만 왕을 뽑은 그가 제일 아쉬워하고 있었다는 점은 확실히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던 은채에게는 마지막 남은 젓가락이 주어졌다. 아마 그녀는 올라오는 취기 때문에 젓가락을 가지러 일어나는 것도 힘겨운 듯 했다.
「자, 그럼 왕이 명령한다. 4번이 5번 위에서 팔굽혀펴기 10회! 」
「앗싸, 내가 4번!」 파란색의 아디다스 삼선 트레이닝팬츠를 입은 녀석이 자리에서 펄쩍뛰며 환호했다.
「5번 누구야?」 모두가 5번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어쩐지 한 곳을 향해있다. 단순히 그녀가 5번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그 가운데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뭐야? 은채씨가 5번이에요?」
「오오~ 부럽다 짱꼴라~」
..이번에도 그녀였다. 아니 어쩌면 계속 그녀만 걸려왔던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녀석의 휴대폰에 남아있는 메모리를 확인하고 있을 뿐이고, 녀석이 은채가 벌칙을 받는 영상만 가지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게임 진행에 어떤 부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을 쉽사리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일어선 채로 일제히 ‘파란 아디다스’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짱꼴라’라는 별명을 가진 듯 보이는 그 녀석은 친구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고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화답하고 있었다. 은채만이 그 들뜬 분위기 속에서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며 애꿎은 방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와아~!」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친구들의 환호가 더욱 커졌다. ‘짱꼴라’가 자신이 입고 있던 나시티를 벗어 바닥에 내던졌기 때문이다. 상체를 드러낸 그는 몇 차례 카메라 앞에 근육을 뽐내더니 거실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친구들의 시선은 은채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은채가 끝까지 주저하고 서있자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그녀에게 압박을 가했다.
「빨리 누워요~ 누워만 있으면 되는데 뭐 힘들다고.」
「... ...」
「싫으면 까짓 거 이거 한 잔 마시면 되요.」 ‘노란 티셔츠’가 아까의 글라스를 치켜들며 어딘지 비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은채는 화면을 통해 보더라도 이미 술을 더 마실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그들 사이에서 술에 취해 쓰러지는 것보다는 설령 그 미션이 무어라한들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물론 그녀가 취해 쓰러지기 전에 그들의 술자리가 끝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녀도 더 이상의 술은 마다하고 싶었는지 치맛자락을 붙잡고 조심스레 바닥에 몸을 뉘였다. 그런 그녀의 주변으로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래, 너무 오버해서 생각할 필요 없다. 까짓 거 팔굽혀펴기일 뿐이다.
「자, 하나~」
구령에 맞춰 ‘짱꼴라’가 팔을 굽혔다. 눈을 마주보고 있기 부끄러운지 아예 눈을 감아버린 은채와는 달리 구경하는 녀석들은 신이 나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더~ 더~ 더 내려가라고, 새끼야.」
친구들은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고 짱꼴라도 그에 맞춰 계속 상체를 낮추고 있었다. 이제 그의 얼굴은 은채와 불과 몇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저러다 입술이 닿기라도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은채 역시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지 꼭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오오~ 닿았다 닿았어.」 허리를 숙인 채 지켜보던 녀석들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 아마도 입술보다 가슴이 먼저 ‘짱꼴라’의 몸과 닿아버린 것 같았다.
「야, 이 아래에서 찍어.」 ‘회색 후드티’가 카메라를 향해 손짓했다.
덕분에 이번에는 카메라도 완전히 낮은 각도에서 그의 몸이 그녀의 가슴과 닿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는 그녀의 가슴은 누워있는 상태임에도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예쁘게 솟아있던 가슴은 그의 체중이 실릴 때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뭉개지고 있었다. 녀석은 그렇게 아주 천천히 미션을 수행하며 그녀의 부드러운 감촉을 만끽했다.
「이제 두 개 남았다.」
「으.. 벌써?」
오히려 미션이 끝나는 것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인 ‘짱꼴라’가 아직도 무언가를 더 할 작정인지 준비자세 그대로 몸의 위치를 조정했다. 불안했지만 그래봐야 이제 앞으로 두 번밖에 남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던 나는 화면에 이어진 충격적인 영상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홉 번째 구령에 맞춰 팔을 굽힌 ‘짱꼴라’가 다시 팔을 펴는 과정에서 상체를 들어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버린 것이다, 그 결과 옆에서 보이는 모습은 흡사 둘이 성행위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더욱이 은채가 입고 있는 것이라고는 얇은 스커트 한 장과 속옷이 전부인 상황..
「에고.. 힘들어.. 좀 쉬었다 해야겠다.」 녀석은 자신의 하반신을 은채의 거기에 밀착시킨 채 로 태연하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녀석의 근육은 팔굽혀펴기 10회가 아니라 50회도 너끈히 수행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에이~ 그게 뭐야! 똑바로 해. 방금 그건 노카운트.」
「뭐 노카운트? 그런 게 어디 있어?」 녀석은 짐짓 억울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빠른 속도로 자신의 하반신을 은채의 거기에 부딪혀오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어디.. 이래도? 이래도?」 녀석은 팔굽혀펴기라는 미션이 무색할 정도로 팔과 상체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연신 허리를 튕겨댔다. 그건 정말 삽입만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완전히 성행위라고 봐도 무방한 행위였다.
‘퍽- 퍽- 퍽-’
「꺄악--!!」
눈을 꼭 감은 채 미션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은채가 뒤늦게 눈을 떠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꼼짝없이 그의 팔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였고, 그저 주위를 애타게 둘러보며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미친 새끼!」 하지만 구경하던 친구들은 모두 녀석의 돌발행동에 배를 부여잡고 자지러지는 중이었다. 현택도 말리기는커녕 더 가까이 다가가 트레이닝팬츠를 뚫고 나올 기세로 부풀어있는 녀석의 하반신을 확대해 비추고 있었다.
「ㅋㅋㅋㅋ야야 적당히 해라. 너 그러다 싸겠다.ㅋㅋㅋ」 결국 보다 못한 누군가 그를 제지하면서 동영상은 끝이 났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은채가 무려 2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그 치욕을 당하고 난 후였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은채가 현택과 정상적인 교제를 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평소에도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은채의 성격까지 고려해본다면 둘이 사귀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헌신적인 그녀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느 정도 본인이 하기 싫은 일도, 수치스러운 일도 참아낼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현택이 진심으로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세 번째 동영상 파일을 보고난 뒤 그런 나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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