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휴대폰 갤러리에는 총 184개의 파일이 저장되어 있었다.
한 장씩 화면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자세, 다양한 신체부위로 그의 성욕을 받아주고 있는 어떤 여자의 사진이 이어졌다. 그가 전에 했던 말처럼 대부분의 사진에서 여자의 얼굴은 식별하기가 어려웠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가구와 침대시트는 내게도 많이 친숙한 것이었다. 그때 녀석이 굳이 그렇게 배경을 지웠던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왜 이런 사실을 조금 더 빨리 눈치 채지 못했던 걸까..
사진을 넘기는 손에 조금씩 속도가 붙고 있었다. 보다보니 자꾸 비슷비슷한 사진이 반복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차마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이걸 계속 봐야만 하는 건가? 괜히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상처만 들쑤시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 전까지 빠르게 사진을 넘기던 손이 멈추었다. 파일명 ‘video-2013-02-22_11-05-13’. 아..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했지만 그건 틀림없는 동영상 파일이었다. 나는 한동안의 망설임 끝에 떨리는 손으로 화면 가운데 표시된 재생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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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시작부터 난데없이 울려 퍼진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자칫하면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 했다. 현택도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나를 보는 바람에 잠깐이지만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녀석은 바로 내 눈을 피했고 상황을 이해한 듯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 동영상은 그렇게 그녀의 비명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다 됐으면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나와. 흐흐흐-」
목소리의 주인공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지금 내 눈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욕실에서 허겁지겁 바지를 끌어올리고 있는 그녀의 팔을 잡더니 다짜고짜 끄집어냈다.
「자..잠깐만요. 아얏!」
하지만 그녀는 무자비하게 침대 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녀석은 그런 그녀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그녀의 화장대로 간 뒤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 앵글이 그녀를 잡았을 때 그녀의 앞에 무언가 툭 하고 던져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평소 즐겨 사용하던 바디로션이었다.
「지난번처럼 아프기 싫으면 꼼꼼히 잘 발라둬야 할거야. 흐흐-」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지나 침대 옆 스탠드가 놓인 선반 위에 휴대전화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때문에 이후의 대화는 매우 작게 들려 정확히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진행하려고 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가 뭐라고 말하자 그녀는 힘없이 일어나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가 던져준 로션을 짜내 그의 성기에 정성껏 바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놀림은 점차 빨라졌고 녀석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몸을 뒤로 젖혔다. 문득 그녀가 나와 할 때는 한 번도 그와 같이 나의 성기를 손으로 만져주거나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생각나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동영상은 쉼 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화면 속 녀석은 그녀의 핸드잡으로도 부족했는지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가슴에 위치시켰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는 듯 그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유두를 혀로 할짝할짝 핥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그녀의 봉사를 즐긴 녀석은 그녀에게 또 뭐라 지시했고, 그녀는 침대 위에서 엉덩이만 치켜든 채 넙죽 엎드린 자세를 취했다. 녀석은 선반 위에 놓여있던 휴대전화를 다시 집어 들고 그녀의 뒤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 반바지를 무릎까지 끌어내린 뒤 드러난 은밀한 부위를 구석구석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막상 그가 다가가자 겁이 나는 듯 손으로 저지하기도 하고 앞으로 기어 도망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저항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결국 그녀는 머리채를 잡힌 상태로 그의 페니스를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예상대로 그녀가 그를 받아들인 부위는 통상의 그 곳이 아닌 다른 구멍이었다.
「어윽.. 꺼으윽..」
아까의 대화로 봤을 때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입에서는 연신 고통을 참는 신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침대시트를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작은 주먹에서 그녀가 겪고 있는 괴로움이 여실히 느껴졌다. 스피커를 통해 재현된 그녀의 안쓰러운 음성과 녀석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그와 그녀의 교접 부위에서 발생하는 불쾌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우.. 존나 좋아.. 씨x.. 헉.. 존..나..!」
「!!」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은채의 움직임이 일순 경직되었다. 그는 그 뒤로도 얼마간 자신의 허리를 그녀의 엉덩이에 치대고 있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녀석이 사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휴우..」
그는 아쉬운 듯 시간을 들여 천천히 페니스를 빼냈다. 그가 떨어져나가자 그녀는 탈진한 듯 중심을 잃고 침대에 쓰러졌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그녀의 골반을 잡고 억지로 들어 올리더니 곧바로 그녀의 은밀한 부위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보통의 상태보다 조금 더 벌어진 그녀의 작은 구멍 사이에서 로션인지 그의 흔적인지 모를 하얀 것이 새어나오는 장면을 끝으로 그 동영상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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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 과도하게 몰입한 탓인지 나의 입술은 바짝 말라붙어있었다. 냉장고에서 생수라도 꺼내 마실 심산으로 일어나는 순간 아랫도리에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럴 수가. 그제야 나는 바지 안에서 잔뜩 부풀어 오른 채 괴로워하고 있는 나의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혹스러웠다. 내가 지금 본 것은 흔해빠진 일본 야동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크흠-」
멋쩍음에 괜한 헛기침을 한 나는 행여나 현택에게 그 모습을 들키진 않았는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부엌으로 이동했다. 냉장고 안의 생수를 꺼내 컵에 따르지도 않고 들이켰다. 칼칼했던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느낌에 겨우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아예 생수병을 들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래도 계속 발뺌할래?」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끝까지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나는 깊은 한 숨을 내쉰 뒤 다시 휴대폰 화면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항문성교 장면을 담은 사진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굳이 그걸 더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썸네일 이미지를 띄워 그것들을 빠르게 넘겨버렸다.
두 번 정도 화면을 밀어내자 이전의 살색 사진들과는 전혀 다른 스키장 풍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슬로프나 리프트 같은 곳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184개의 파일이 전부 은채의 사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다시 화면을 넘겼을 때 나는 아마도 전날 밤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술자리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익숙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속 은채는 굉장히 짧은 연두색 치마를 입은 채 어떤 남자의 무릎위에 걸터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세가 자세인지라 그녀의 가지런히 모아진 다리 사이로 하얀 속옷이 살짝 드러나 있는 것도 신경이 쓰였지만, 그보다 더 나를 경악케 한 것은 심지어 사진 속 남자가 현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진을 앞으로 넘기자 이번에는 또 다른 남자의 목을 끌어안은 채 러브샷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한 장 더 넘기자 이제는 아예 남자의 무릎위에 올라타 그와 밀착한 채 입을 맞추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남자의 손이 은채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녀석이 본인이 은채의 몸을 탐한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 앞에서까지 그녀를 욕보였다는 사실에 부아가 치밀었다. ‘돌아가기’ 버튼을 눌러 아까의 목록을 띄운 후 관련된 동영상의 존재를 물색했다. 같은 날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이 무려 3개나 있었다. 시간 순으로 보기 위해 가장 뒤쪽에 있던 동영상을 먼저 재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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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6」
시작된 영상에서 사람들은 빙 둘러앉아 술자리 게임인 ‘배스킨라빈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둘러 앉아있는 인원은 총 여섯 명. 화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상황을 촬영하고 있는 현택을 포함하면 총 일곱 명이 방 안에 함께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중에 여자라고는 은채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전에 본 적 없는 남자들이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 27, 28」 어느새 게임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고,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십~ 구우~」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내가 거기서 말을 마치자 몇몇은 이미 그때부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게임의 결과는 이미 뻔히 예상되는 것이었다.
「삼! 십!」 예상대로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내가 큰 소리로 숫자를 외치자 모두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지금 그 상황을 화면을 통해 지켜보고 있는 나와 화면 속에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채,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오오~ 3연속 당첨!」
「이야~ 은채씨 술 너무 좋아하시는 거 같아. 혼자 술 거덜 내시겠는데?」
「자..잠깐만요. 아까부터 너무 저만..」
은채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뭐라 항변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일제히 그녀를 부추기며 그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쭉~」
결국 은채는 마지못해 눈앞에 놓인 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상황에서 게임을 받아들인 그녀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누가 보더라도 홍일점인 그녀가 타겟이 될 게 뻔한 상황이었고, 더욱이 ‘배스킨라빈스’같은 게임은 실력이나 운에 의해 승패가 가려지는 게임도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한 말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벌주로만 석 잔 이상을 마시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알기로 그녀의 주량은 최대한 많이 쳐줘야 맥주 2,000㏄를 넘지 못했다. 더욱이 벌주라고 쥐고 있는 술은 아무리 봐도 맥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닌 듯 했다.
「오오~」 은채가 벌주를 입에 흘려 넣기 시작하자 또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역시 연거푸 세 잔은 무리였는지 그녀는 벌주를 끝까지 다 마시기 전에 그만 잔에서 입을 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