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26)

액정에 표시되고 있는 시간이 7분을 넘어설 무렵 현택이 허리를 최대한 들이민 채 그녀의 몸 안에서 사정을 끝마쳤다. 녀석은 천천히 자신의 물건을 빼내더니 그 상태로 천천히 재형에게 다가오며 정해진 대사를 능숙하게 처리해냈다.

「휴..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수호야.」

현택은 촬영을 마친 동영상을 확인하면서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자지러졌다. 확실히 미리 의도한 대로 자연스럽게 간간히 앵글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호의 소지품과 자신의 마지막 대사처리까지.. 이건 누가 봐도 영락없이 수호 본인이 촬영한 영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 된 거냐?」

「흐흐- 완벽해. 고맙다 야. 근데 넌 진짜 한 번가지고 되겠어? 파이즈리도 해보고 싶다더니..」

「난 신경 쓰지 말고. 아무튼 넌 그걸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해라. 꼬리가 길면 밟히기 밖에 더하겠냐.」

재형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입고 있던 수호의 옷을 벗어 은채의 옷가지와 함께 방 안에 어지러이 흩뿌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다 된 건가?」 현택이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용한 콘돔과 포장지를 집어 휴지통에 버리며 말했다. 

「그래.. 이제 나가자.」 재형이 방의 키를 집어 들며 대답했다.

「아.. 근데 너 먼저 가. 난 아까 그 방에서 좀 쉬다가 아침에 나가려고.」

「뭐? 갑자기 왜?」

「갑자기가 아니라 너무 피곤해서. 어차피 숙박으로 끊은 거 아깝기도 하고. 지금 새벽 3시가 다 됐는데.. 조금만 있으면 첫 차 다니니까 그거 타고 들어가련다. 여기서 우리 집이 좀 머냐? 택시타면 택시비 존나 깨져.」

「... ...」

그렇게 말한 현택이 먼저 방 밖으로 빠져나갔고, 재형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어쩐지 그의 태도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의 말 자체에 구태여 흠잡을 만한 구석은 없었기 때문이다.

‘달칵-’

스위치를 내리자 불이 꺼지고 방 안은 깊은 어둠에 잠겼다. 시야 안의 모든 것들이 어둠 속에 파묻힌 지금처럼 부디 오늘 일도 그렇게 묻히길 바라면서 재형은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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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씨x 나도 공범이다. 됐냐? 근데 씨x새끼야, 적당히 했어야지! 친구 여친을 한 번 손댄 것도 모자라 아예 뭐..? 너 아까 뭐라고 했냐.. 섹파? 그게 섹파냐?! 씨x 그냥 너 좋을 대로 갖고 노는 성노예지.」 재형이 전에 없이 격양된 목소리로 현택을 다그쳤다.

지난 10년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모습에 현택은 살짝 주눅이 들었고, 아까와 달리 한풀 꺾인 목소리로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야야 알았어. 앞으로는 오버 싸지 않고 적당히 할게. 응?」

「... ...」

「아 진짜.. 그래 알았다. 앞으로 수호새끼 앞에서는 두 번 다시 그 년 얘기 꺼내지도 않을게.」

「..근데 진짜 수호는 모르는 거야?」 재형이 좀 전에 비해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를 놓칠세라 현택이 냉큼 재형에게 팔짱을 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몰라. 전~~혀 몰라. 나도 저 새끼가 둔해도 저렇게 둔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크크. 씨x 어떻게 지 여친이 반년을 넘게 남한테 따먹히고 다니는데 그걸 모르지? 보지 한 번만 봐도 바로 알 텐데. 아니지.. 넣어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이제 완전히 너덜너덜 걸레 보지 다 됐거든. 분명히 그 새끼 좆으로는 허공에 삽질하는 느낌일 텐데 그걸 끝까지 모르네, 병신이. 흐흐-」

「..그 짓은 언제까지 계속 할 건데?」 재형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흐흐- 그 년도 이제 완전히 내 좆 맛을 알아버려서 말이지. 이제 우린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랄까?」 

그렇게 실없이 쪼개던 현택은 여전히 굳어있는 재형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씨x 농담이야, 새끼야. 얼굴 좀 풀어라. 무서워서 뭔 얘기를 못 하겠다.」

「..농담할 기분 아니다.」

「알았다고 씨x. 휴우.. 아닌 게 아니라 이제 슬슬 그만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 슬슬 질리기도 하고, 또 그럴 ‘일’도 생겼고..」

「그럴 일이라니?」

「아.. 진짜 이런 것까지 얘기해야 되나..」 그는 괜한 얘기를 했다는 듯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뭔데 새끼야. 말해봐.」 그의 태도에 더욱 불안해진 재형이 채근했다.

「그.. 왜 아까 수호가 오늘 하루 종일 여친이랑 연락이 안 된다고 얘기했잖아?」

「그랬지. 걱정 많이 하던데.. ..설마 그것도 너랑 관계된 일이냐?」

「..아 씨x」 녀석은 난처한 듯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리고 약간 상기된 얼굴로 어렵사리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오늘 수술했어.」

「뭐?」 재형이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걔 오늘 낙태했다고.」

「!!」

재형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택은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번 달에 얘가 심하게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피임약 먹던 걸 며칠 끊었었나봐. 그 날도 아프다고 누워있었는데 내가 술김에 몸살은 땀 한번 쫙 빼면 다 낫는다고 그냥 했던 게 화근이었던 모양이야. 솔직히 몇 달간 꾸준히 먹던 거 하루 이틀 빼먹었다고 뭔 일이야 있겠냐 싶었는데.. 이번 달 초에 약을 끊었는데도 생리를 안 한다고 하더라고..」

「씨x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재형이 워낙 큰 소리로 낸 나머지 골목 여기저기를 배회하던 학생들조차 깜짝 놀라 둘을 쳐다보았다. 현택도 너무나 놀란 나머지 그 커다란 체구를 움츠릴 정도였다.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숙인 그를 보며 재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사태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2013년 4월 6일 토요일 00:25 - 수호의 시점]

나는 불이 꺼진 복도 한 편에 주저앉아 있다. 살며시 등을 기대자 차가운 벽의 감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느낌이 결코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덕분에 멍해져있던 정신이 조금이나마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다시금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헉.. 헉..」

기대어 앉은 벽 너머에서는 그녀의 울부짖는 소리가 사라진 후부터 한 명의 소리만이 남아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를 멍하니 앉아서 듣고 있으면서 나는 지난 며칠간 안일한 기대 따위를 품고 있던 스스로의 한심한 작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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