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6)

[아니요. 은채씨가 실수하신 건 없습니다. 실수를 했다면 제가 했죠. 그보다 정말 수호에게서 아무 얘기도 못 들으셨어요?]

[? 오빠도 그 날 완전히 필름 끊겼다던데요ㅠ]

[아.. 그 새끼 진짜..]

[왜 그러세요? 저희 오빠가 행여 무슨 실수라도..?ㅠㅠ]

[휴.. 도저히 문자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잠깐 만나서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저를요? 저 지금 학교에서 수업 중인데..]

[수업 몇 시에 끝나세요? 제가 근처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수호한테는 아무 얘기하지 말고 나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 날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하지만 분명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은채는 순순히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이미 메시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웃는 얼굴이 사라진 뒤였다.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난 현택은 한참을 곤란한 듯 뜸을 들이더니 그 날 칵테일을 연거푸 마신 그녀가 만취해서 쓰러진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채 역시 계속해서 서비스라고 가져다주던 칵테일과 자신이 차마 그걸 거절하지 못하고 곤욕스럽게 마시던 일을 떠올리고 부끄러운 듯 멋쩍게 웃었다. 애교 섞인 은채의 표정에도 현택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취해서 쓰러진 은채를 놔둔 채 두 사람간의 대화가 오갔단다. 

현택은 은채같은 여자 친구 만난 걸 행운으로 알라며 수호에게 거듭 부러움을 표시했고, 수호는 그런 은채에 대한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다고 했다. 특히 수호가 신이 나서 자랑을 해댄 건 다름 아닌 은채의 몸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했다.

'아.. 오빠는 무슨 그런 얘기를..'

은채는 자기의 몸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친구에게 그런 걸 떠벌리고 다닌 수호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현택의 입에서 이어진 이야기는 은채가 예상했던 것을 한참 뛰어넘는 훨씬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은채에 관한 자랑을 늘어놓던 수호가 현택에게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녀와 자보고 싶지 않으냐고.

쿵-

은채는 심장이 덜컹 주저앉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은채가 뭐라 대꾸도 하기 전에 현택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처음에는 여자 친구를 가지고 그런 농담하는 거 아니라고 야단을 쳤단다. 하지만 수호는 자꾸 진심이라고 이야기했고, 거듭되는 수호의 제안에 자기도 자꾸만 자제력을 잃어갔단다.

“뭐 어때? 어차피 얘 지금 완전히 취해서 기억도 못 할 거고.. 비싼 술도 얻어먹었는데 나도 뭔가 보답을 해야지.”

“오늘도 너 여친이랑 헤어진 거 위로해준다고 만난 거잖아? 여자는 여자로 잊어야 된다는 데 까놓고 내 주변에 너 소개시켜줄 여자가 있냐 뭐가 있냐. 그래서 그냥 이렇게라도 위로해주는 거다~ 생각해.”

수호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그의 입을 통해 한마디씩 전해들을 때마다 은채는 자신의 입장이 너무나 수치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요..?」

그녀가 입술을 깨문 채 날카롭게 현택을 쏘아보며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현택은 그저 「미안하다..」라고 대답했다. 

은채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오빠한테 직접 물어봐야겠어요.」 그녀가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오빠가 거짓말을 하실 리는 없겠죠. 하지만 전 수호오빠한테 직접 묻고 직접 얘기를 들어봐야 되겠어요.」 

말을 끝낸 그녀는 더 이상 그 곳에 머물기 싫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볼게요.」

「잠시만!」

황급히 떠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현택이 낚아챘다.

「더 볼 일이 남으셨나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들킬까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묻는 은채의 목소리는 이미 많이 떨리고 있었다.

「네 잠시만.. 잠시만요, 은채씨.」

「후우..」 거의 애원하는 현택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돌아와 앉은 은채가 슬쩍 눈물을 훔치곤 쏘아붙이듯 물었다.

「하실 말씀이 남으셨나요?」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수호한테 가서 물어보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죠?」

「은채씨가 아는 수호가 그런 놈입니까?」

「무슨 의미에요?」

「그러니까.. 수호가 평소에 은채씨를 그렇게 대한 적이 있었냐구요.」

아니. 절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그녀를 아껴주고 소중히 다루어 주었다. 

그녀가 왜 그를 모르겠는가? 어떻게 그녀가 그가 기다려준 지난 1년을 잊을 수 있겠는가? 

「아니요. 그러니까 못 믿겠다는 거고, 그러니까 직접 오빠를 만나서 확인을 해보겠다는 거예요.」

「후우..」 현택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어갔다.

「아마 술에 취해 자기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 하고 있을 겁니다.」

「... ...」

「은채씨도 아시겠지만 그 녀석이 워낙 천성이 착하지 않습니까? 제가 하필 그 날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해서.. 그래서 술기운에 실수를 한 게 틀림없습니다.」

「..실수..라고요?」 굉장히 냉소적이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수호가 만약 자기가 술 먹고 은채씨한테 그런 일을 했다는 걸 알면.. 아마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 할 거라는 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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