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조용한 은채를 잘 챙겨주던 민지언니가 이번에도 그녀를 먼저 챙겼고, 이에 대답한 현정이가 은채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치한의 손이 자신의 티셔츠 안에 파고든 채였지만, 은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활짝 웃으며 현정이가 내민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사내는 굉장히 다급해졌다.
치한이라는 자신의 입장은 망각한 채 어쩐지 억울하단 생각까지 하고 있는 그였다.
「헉!」
은채와 사내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짧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결국 참지 못한 그가 조급한 마음에 슬그머니 브라 위로 손을 올려 은채의 가슴을 덥썩 쥐어버린 것이다.
봉긋한 가슴 위로 사내의 손의 형태가 떠올랐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티셔츠는 이제 주변 사람 누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바로 이상한 점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어그러지고 있었다.
깜짝 놀란 은채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변에 눈치 챈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제발..이제 제발.. 그만하세요..'
하지만 사내의 손은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듯 그녀의 가슴과 브래지어의 컵 사이로 파고들었고 그 마지막 한 꺼풀마저 우악스럽게 끌어내렸다.
‘흐읏-’
무방비로 드러난 그녀의 작은 돌기에 사내의 손길이 스쳤다.
낯선 감각에 흠칫 놀라고만 은채는 자기도 모르게 현정이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현정이는 무슨 일인가 싶어 은채가 있는 쪽을 돌아봤지만 은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있을 뿐이었다. 현정이는 여전히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시선을 거둘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사내는 자신의 손이 닿는 순간 움찔했던 그녀의 반응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순간조차 여자를 만족에 이르게 하고 싶은 것도 일종의 본능인걸까? 여하튼 남자는 그 때부터 집요하게 그녀의 유두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새끼 손톱만한 유두를 손끝으로 쥐고 살살 문지르자 조금씩 그녀의 유두가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도 흥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남자는 이제는 눈앞의 여자가 완전히 자기 애인이라도 된 냥 거리낌이 없었다.
은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사내의 손길을 견디고 있었다. 한 번도 낯선 이의 손을 타지 않은 그녀의 여린 유두는 지금 처음 보는 남자의 손에 의해 사정없이 유린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훨씬 더 그녀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처음 느끼는 낯선 감각에 대한 것이었다. 사내가 자신의 유두를 건드릴 때마다 어쩐지 저릿한 감각이 온 몸을 관통하고 있었고, 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정말 싫지만 결코 싫지만은 않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열차가 두 정거장도 채 가지 못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요한 괴롭힘에 두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고, 은채는 손잡이에 의지해서야 겨우 서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저릿한 감각이 전신을 관통하는 빈도가 잦아질수록 숨이 가빠져 오고 이제는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마저 힘이 풀려가고 있다고 느끼는 그 때였다.
「악!!」
두 눈을 질끈 감은 은채의 뒤에서 갑자기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치한의 손이 쑤욱 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학생 지금 뭐하는 거지?」
「아 뭐야 씨x!!」
갑작스런 소란에 순식간에 열차 안 승객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직 어린 학생 같은데 지금 뭐하는 거냐고?」
「아 씨x. 내가 뭘~」
「지금 앞에 계신 여자 분한테 몹쓸 짓 한 거 같은데? 잘못 본거면 내가 사과하고.」
남자의 말에 승객들의 이목은 이제 은채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애써 태연한 척 서있던 은채는 갑작스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난감할 뿐이었다.
'친구들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데..‘
그 순간까지도 은채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아 좀 놔봐 씨x~」
「뭐야? 무슨 일이야?」
「은채야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비로소 상황을 이해한 친구들이 은채에게 다가와 물었다. 반면 은채는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아..저..친구들이세요?」
「네에..」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친구 분께서 이 학생한테 그.. 서..성추행을 당하신 것 같습니다.」
'아..'
은채는 끝내 자신이 추행당한 사실이 친구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마치 자신이 고교시절 3년 내내 따돌림 당하고, 남학생들의 성적 놀림감이 되었던 과거까지도 모두 들통 난 기분이었다.
이미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겨우 서있는 은채에게 현정이가 와락 안기며 펑펑 울음을 터뜨린 것은 그녀는 물론 주변 사람들로서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으앙~ 은채야 미안해. 우리 은채 어떡해~ 엉엉~」
현정이가 왜 우는지 영문을 모른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채의 어깨에 부드러운 두 손이 살포시 얹어졌다. 민지언니였다.
「은채야. 저 분 말이 사실이야? 바보같이 왜 말 안했어?」
「아저씨 그 새끼 꼭 잡고 있어줘요. 아 놔 저 변태새끼. 은채야 괜찮아?」
그제야 비로소 은채는 자신이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르륵-.
참았던 눈물을 흘러내렸다.
자그마치 5년 만에 받은 따뜻한 위로였다.
그렇게 터져버린 눈물은 그 오랜 시간 곪았던 상처를 다 메꾸기라도 하려는 듯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목적지였던 홍대를 한참 지나칠 때까지 멈출 줄 모르고 흐르던 은채의 눈물은 주변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열차에 탑승하면서 겨우 멎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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