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채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주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귀여운 용모는 물론 학업 성적까지 우수한 그녀였지만 특유의 상냥하고 겸손한 성격 탓에 그녀를 시기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선생님들도 그런 그녀를 예뻐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어쩌다보니 3년 내내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친구들과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은 항상 그녀의 자리로 모여들어 이야기꽃을 피웠고, 남자 아이들은 서로 그녀와 짝이 되기 위해 종종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불운은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뒤바꿔 놓았다.
고등학교 배정에서 1지망으로 썼던 고등학교를 배정받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똥통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 해 집계된 그 지역의 고교배정상황은 1지망 배정률이 85%를 넘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 2지망~3지망에 거의 배정이 되었기에, 이 불운은 언뜻 사소해보이지만 어쩐지 그냥 운이 조금 나빴다고 넘겨버리기에는 묘한 불안을 야기하는 이질적인 사건이었다.
친구들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발표 후 일제히 은채의 곁에 모여 그녀를 위로했고, 은채는 친구들에게 최대한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괜찮아. 나도 너네랑 같은 학교 다녔으면 더 좋았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
「나쁜 친구들하고 안 어울리고 나만 열심히 하면 돼. 오히려 내신관리하기 편하고 좋은 거 아냐? 막이래ㅋ.」
하지만 주변 환경이라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향을 끼치기에 무서운 것이었다.
은채는 아직 어렸기에 이런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아니 무서움을 과소평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채가 그런 현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학식에서부터 그녀의 빼어난 외모는 남학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새로 입학한 미소녀에 대한 소문은 학교 전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반 배정이 끝나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교실 문이 열리더니 한 눈에 보기에도 불량스러워 보이는 남학생 무리가 들어왔다. 떠들썩하던 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 진짜 대박 예쁜데? 어디 학교에서 왔어?」 무리 중 한명이 다짜고짜 은채의 책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화양중이요..」 당황한 은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캬~ 목소리도 예쁘네? 어디 이름이..」 라고 말하며 명찰을 확인하던 남자의 손이 아직 채 영글지 않은 은채의 봉긋한 가슴을 슬쩍 건드리고 말았다.
「꺅!」
낯선 남자의 손끝이 자신의 몸에 닿자 깜짝 놀란 은채는 급히 몸을 움츠렸다.
「오~ 이 풋풋한 반응 뭐야? 존나 신선한데? ㅋㅋㅋㅋ」
은채는 난생 처음 겪는 상황과 수치심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반 아이들은 다들 모른 척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 무리의 남자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그 뒤로도 한참을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너넨 뭐야, 이 새끼들아! 빨리 너네 반으로 안 돌아가?」
몇 분 뒤 겨우 등장한 담임선생님으로 인해 사태는 겨우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서은채.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누가 괴롭히면 오빠들한테 얘기하고. ㅋㅋㅋ」
이 후 은채의 고교 생활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으로 꼬이고 말았다.
처음 며칠간은 소문을 듣고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남학생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겨우 남학생들의 관심이 사그러들자 이번에는 좀 논다하는 여자 선배들이 예쁘장한 외모의 은채를 자기네 그룹에 넣기 위해 반을 찾아왔다. 이유야 제각각이었지만 그렇게 상급생들이 교실을 찾아올 때마다 반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은채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조금씩 고립되어갔다. 뿐만 아니라 수차례 이런 일을 목도한 담임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조차도 은채를 성적이 좀 좋다 뿐이지 품행이 단정치 못한 학생으로 오해해버리고 말았다.
누구라도.. 아주 조금만 더 은채에게 관심을 갖고 편견 없이 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그녀의 비극은 어쩌면 이때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기 초 몇차례 고백을 거절하고나자 은채에게 향했던 남학생들의 호의는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등하교시나 체육시간이나 언제나 홀로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은채는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의 대상으로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무서운 것은 처음에는 대부분 놀림이나 장난 수준에 그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도가 지나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브래지어 끈을 당기고 도망가던 아이들은 이제 그런 장난을 쳐도 전처럼 반응하지 않게 된 은채를 보며 장난의 수위를 높여갔다.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버리고 도망가는 경우는 물론, 가슴을 멋대로 만지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조차도 만족하지 못하게 된 일부 아이들은 결국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저기 있다! 잡아!」
체육시간이라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은채를 향해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우르르 뛰어오며 소리쳤다.
「!?」
은채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그녀에게 달려든 4명의 남학생들 앞에서는 무의미한 저항일 뿐이었다.
「뭐에요.. 왜 이러세요!!!」
「야. 꽉 잡아!」
버둥거리는 은채를 에워싼 남학생들은 순식간에 그녀의 팔을 하나씩 잡아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꺄악--!!!」
은채의 비명이 복도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몇 초 뒤-
「ㅋㅋㅋㅋㅋㅋㅋㅋ야 튀어!!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아 씨x 대박!!ㅋㅋㅋㅋㅋㅋ」
곧 비명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교실에서 나온 아이들이 은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녀는 복도바닥에 주저앉아 양 팔로 어깨를 감싸고 울고 있었다.
「뭐야? 야. 쟤들 뭐한 거냐?」
「나도 몰라. 무슨 일이냐?」
「ㅋㅋㅋ야 그게 말이지.. (소근소근)」
「뭐?ㅋㅋㅋ 진짜? 씨x 존나 대박ㅋㅋㅋㅋㅋㅋ」
「뭔데 새끼야? 씨x 나한테도 말해줘 봐.」
「(빡규랑 애들이 쟤 브라자 벗겨서 튄 거래..ㅋㅋㅋㅋㅋㅋ)」
「헉 진짜?! 씨x 그럼 쟤 지금 노브라야!?」
「쉿! 듣겠다,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