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7/10)

10 <201X년 7월 7일 08:34 pm>

"이제 제발 그만 좀 해요, 충분히 해줬잖아요!"

"물론 유라씨가 고생한거야,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죠. 하지만 그렇다고 벌써 그만두기에는..하하~"

언제나 말뿐이다.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 굴지만 딱 그 뿐이었다. 변하는건 항상 껍데기였고 진짜 속 알맹이가 바뀐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기적인 그의 행동에는 너덜거릴만큼 진절머리가 났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너무 화만 내지마요, 그리고 아까 만져보니까 꽤나 젖었던데, 이젠 좀 솔직하셔야죠 흐흐.."

"미쳤어요? 대로변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떡해요..!"

"응? 뭐 어때요, 우리 사이에~"

"..으으!"

항상 이랬다. 첫 만남과는 달리 슬슬 본색을 드러낸 기찬은 능글맞기 그지없었고, 그는 끝없이 자신을 쥐고 아무렇게나 흔들어댔다.

"역시 오늘도 한발 뽑는게~?"

그는 항상 섹스 밖에 생각이 없었다.

"..제발 좀 봐주세요. 대낮부터 왜 자꾸 그래요."

"어허~"

아무리 애원하고 매달려봐도 기찬의 마음을 돌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는 항상 하고싶은데로 했었으니까.

"아..."

유라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져갔다. 자신은 또 이렇게 그에게 유린될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어버린건지,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날, 그 날만 아니었다면...

하지만 그녀에겐 과거를 돌릴 수 있는 방법따위 없었다.

그렇게 유라는 기찬의 손에 이끌려 근처의 모텔 골목으로 사라졌다.

"헉..헉..!"

어두운 모텔 조명 속에서도 기찬의 움직임은 또렷하게 보인다.

잔뜩 고양되고 폭발 직전의 모습,

"..."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라는 신음소리 하나 없이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거친 움직임은 일방적으로 욕심을 채워갔고, 그 것은 금방 끝을 향한다.

"으윽!!"

단말마의 괴성이 방 안을 울리고, 사정을 마친 기찬은 쓰러지듯 유라에게 몸을 포갰다.

"후아~ 진짜 유라씨 몸은 최고라니까, 크크."

"...무거워요."

"앗차 앗차, 바로 나와야죠."

말과는 달리, 기찬은 뭉그적대며 포갠 몸을 떼어놓았다. 그리곤 손을 옮겨 유라의 가슴을 주물럭댄다.

"..."

유라는 그의 손길이 소름끼치도록 싫어서 몇번이고 저항했지만, 단 한번도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었다.

그러다보니 이제와서는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그의 손길을 용인하곤 했다.

"오늘은 어땠어? 우리 예쁜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기찬은 유라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으으!"

아까와는 달리, 유라는 기겁을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싫은거 아는데, 매번 그렇게까지 티 내야겠어요? 하하."

그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만, 유라는 자신의 눈에 맺히는 눈물을 막지 못한다.

너무 징그럽다.

그가 너무도 싫었다.

자신을 만지는 손길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는 눈빛도 끔찍했다.

화를 내도 소용 없었고, 울고 발버둥쳐도 마찬가지였다. 포기한 척 모든 반응을 끊어보기도 했지만, 그는 귀신같이 눈치채곤 자신을 농락해왔다.

유라는 힘없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방금 전까지 주물럭댄 그의 손길이 낙인처럼 몸에 박혀있다.

게다가 비참하게도 배와 허벅지에는 그가 아무렇게나 싸지른 정액이 말라붙어 가고 있었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현실들.

그것들은 유라를 자꾸만 구렁텅이로 몰고 갔다.

맘 편하게 쉬어본 적이 언제쯤이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나오지 않는 한숨에 그녀의 얼굴은 더욱 어두어진다.

기찬과의 첫만남 이후로 항상 가슴을 졸여왔었고, 첫 "호출"부터는 절망 만이 가득했다.

매번 원치도 않은 관계에 울고불고 매달려봐도, 항상 아픈건 자신이었으니까.

유라는 무릎을 가슴께까지 당겨 고개를 처박는다.

시야가 감기며 어두운 공간이 나온다.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함,

가슴을 주무르는 기찬의 손길이 거슬리긴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낄낄대는 기찬을 지워나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그녀는 가장 조용한 시간을 맞이하곤 했다.

여기서라면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비참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밀어낼 수 있었다.

기찬도 ...동철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찬과의 섹스가 끝난 직후는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휴식시간이기도 했다.

'나,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유라는 매번 그렇게 물었다, 들어줄 사람은 자신 밖엔 없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캄캄한 시간들은 구겨지기 시작해서 그녀를 짓눌러갔다.

알고 있었다, 아무도 그리고 누구도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언제쯤이었던가. 지독하게 당하고 난 뒤, 악에 받쳐 마구 외쳤던 적도 있었다.

[나는 당신이 팔다리를 꺾어대며 가지고 노는 인형이 아냐..아니라고!..]

그래,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숱하게 그를 받아들이면서도 해본 적 없었던 저항, 유라는 스스로에게 그만한 심지의 목소리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그래? 근데 자지 안빨고 뭐하냐?]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시와 다음 행위에 대한 강요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으으...흐흑...]

나는 그 날, 그의 발 아래까지 기어간 바로 그 날, 가장 순종적인 모습으로 그의 물건을 빨았다.

[..으읍...]

내 입으로 그를 받아냈다. 아니, 받아들였다.

[으하! 역시 끝내주잖아, 유라씨! 가르친 보람이 있는데 이거?]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제 내가 발버둥친다 한들, 더이상 그를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이미 나를 자신의 아래로 보고 있기 때문에.

아니, 제대로 발버둥칠 수도 없었다.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은 건 그였지만, 그 안에 앉은 건 나였으니까.

그건 너무나 선명해서, 그래서 더욱 가슴 아팠다.

"보자,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내일도 시간 되지?"

하얀 담배연기가 방 안을 채운다. 마치 승화해버린 땀처럼, 연기는 기찬의 볼을 간지럽히기도 한다.

"..안돼요."

"뭐?"

기찬은 깜짝 놀란다.

그가 말을 꺼낸건 유라의 허락 따위를 받기 위함이 아니었다. 의레 그렇듯 확인의 표시, 거절은 없었어야 했다.

"이거, 아직까지도 그렇게 마음대로 굴 수..."

"내일 오빠 휴가에요."

유라는 기찬의 으름장을 칼같이 자르고 들어온다.

"아, 아 그래? 그래 뭐, 남친님 휴가신데..~"

행여, 나쁜 버릇이 들어서 반항하는거라 생각했던 그로써는 얼굴에 피어오르는 머쓱함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저 그래서 주말에는 고향에 내려가볼려구요."

"흐음,"

"그러니까 그때만이라도 제발..."

오늘 중 가장 가녀린 목소리가 그녀로부터 나왔다.

"제 발로 간다는데 뭐, 내가 막을 수가 있나~"

"...감사해요."

"알면 됐구,"

기찬은 담배를 꼬나 물고 거만하게 대답한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굳이 막아서 서로가 껄끄럽게 되는건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풀어주기는 좀 그렇고.. 이쪽에서도 약간의 "보상"은 필요하지, 킥킥.'

기찬은 남은 담배를 한 호흡에 몽땅 빨아들인다.

"아, 그럼 다음번엔 지난번에 못했던 그거 다시 해보는건 어때?"

"...그거, 요?"

"아~ 그거 있잖아, 후장 그거."

대수롭지 않다는 기찬의 표현과는 달리, 유라는 어깨를 파르르 떤다.

"지난번에는 아프다고 쌩 난리를 쳐서 내가 봐줬잖아."

"..."

"그러니까 그거 해주라."

씨익 웃어재끼는 기찬은 정말 악마와 같았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야, 솔직히 앞보지 처녀는 동철이 줬잖아. 그럼 뒷구멍 처녀 정도는 나 줘야 하는거 아냐? 행여나 이번에 동철이 놈이 나와서 마저 따버리면 나만 낙동강 오리알 되버리는데,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기찬은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동철 오빠는 안그래요. 당신같은 변태가 아니라구요!!"

자신에 대한 막말은 괜찮아도, 남자친구까지 욕보이는 건 참을 수 없었는지 유라는 빽-하고 소리를 지른다.

"허허, 이 아가씨가 아직 남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네.."

제법 큰 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기찬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 마신다.

'아, 아니야.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

하지만 그 무감각한 눈은, 그 날 자신의 위에서 헐떡거리던 동철의 모습까지도 끄집어 올려 마음대로 오버랩 시킨다.

항상 다정했던 동철 오빠, 자상한 말투 좋았고 수줍게 웃던 웃음이 좋았다.

그날은 조금 이상했지만, 그냥 조금 이상했을 뿐이다.

유라는 빠르게 고개를 털어버린다.

자신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마냥 대하는 기찬의 태도는 정말 무례했다.

그런 그에게는 조금도 지고 싶지 않았다. 비록 몸은 내줬지만 결코 자신을 가질 순 없을테니까.

"솔직히 댓가라고 하기에는 좀 너무 그렇구, 그냥 서로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고 어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비록 몇초에 불과한 그 동안 기찬과 유라는 수많은 생각을 곱 씹는다.

"..마음대로 해요."

"엇, 정말?"

"..."

"약속한거다! 약속했다!? 나중에 딴말 하면 알지??"

"..네."

이렇게 순순하게 굴다니, 기찬은 믿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엎드리게하고 후배위로 박아댈때만 해도, 부끄럽다고 질질 짜던 그녀였다.

[보지 마요..엉엉..보지 마세요...]

눈 앞에서 덜렁이는 그녀의 엉덩이는 스스로도 보지 못한 곳까지 드러냈다.

이런데서 정말 똥이 나올지 의심될만큼 작고 귀여운 구멍,

엉덩이를 틀어쥐고 있던 기찬은 손을 옮겼다.

[..거긴..제발..아..그만요..아, 제발...]

고작 손가락 하나 찔러 넣었을 뿐인데도, 유라는 수치심에 발갛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채 숨기지도 못하고 애원했었다.

"진작 이렇게 고분고분 굴면 얼마나 좋아."

기찬은 손을 뻗어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린다.

"근데, 괜찮겠어? 손가락만 넣어도 이상하다며?"

어느새 기찬의 손은 엉덩이 골을 지나 그 사이로 들어가 있었다.

회음부를 만지는 그의 손길은 알게 모르게 그녀의 조그만 구멍을 스치곤 했다.

"...어차피 할거잖아요. 내가 싫다고 해도 어차피 할거면서..."

"허, 우리 유라씨 이제 좀 말귀를 알아듣네. 이야~ 진작 이렇게 굴었으면 내가 사진이랑 동영상, 녹음파일 같은건 몇번 안하고 벌써 지워줬지. 하하!"

"..!"

유라는 기찬의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저급한 낚시에 아직도 움찔대는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암튼, 뭐 재미는 여기까지 보는 걸로 하고, 본편은 다음에 합시다."

"..."

"사실 유라씨만 괜찮다면야 나는 지금도 상관 없긴한데.."

유라의 반응이 썩 마음에 들었던걸까, 어느새 기찬은 슬그머니 손을 빼낸다.

킁킁-

그리곤 그녀 앞에서 냄새를 맡는다.

"솔직히 빈말로라도 향기롭다고는 못하겠네. 어휴, 구린내~"

기찬은 코를 막으며 손을 내젓는다.

"제가 비위가 좀 약해서..~ 하하, 이해하죠?"

유라는 상상도 못한 치욕에 어깨를 파르르 떤다.

"다음엔 꼭 관장하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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