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5화 (4/10)

04 <201X년 5월 1일 05:32 pm>

[..이, 이게 뭐에요..?]

유라는 낯선 번호로 보내온 사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떡하죠, 유라씨? 제가 아무래도 잠결에 사진을 막 찍었나봐요..]

[사, 사진요? 며, 몇장이나요?]

[음, 모르겠어요. 엄청 많은거 같은데.. 동영상도 있네요 허, 참..]

사진이라니, 무슨 사진? 동영상은 또 뭘 말하는거고?

그녀는 애당초 그가 하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저도 한참 뒤에 발견했지 뭐에요. 그래서 전화를 몇번 드린건데 자꾸 안받으시니...]

[...]

유라는 황급히 일어나 독서실을 빠져나온다.

행여나 누가 볼까, 그녀는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 3층의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몇번이나 다시 잠그는 문, 잘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좀처럼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일단 그래도 문자로나마 연락이 되서 정말 다행이네요.]

'도대체 왜, 왜 자꾸만 이렇게...'

유라는 몇번이고 풀리는 다리를 움켜잡으며 버텨보지만 좀처럼 일어설 수는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유라는 기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네?]

[아니 그러니까 이 사진들 어떡하냐구요.]

[무슨..]

[지워야 될 거 아니에요. 싫어요?]

유라는 정신이 번쩍하고 든다.

[아, 아뇨! 지워야죠!]

[이야, 유라씨 저랑 생각이 똑같네요. 맞아요, 요즘 이런거 유출되서 신상 다 털리고 인생 쫑나는 애들 많이 봤거든요. 애새끼들이 좋다고 찍었으면 혼자만 볼것이지, 쯧쯧.. 암튼 이런건 전부 다 지워야 탈이 없어요.]

[네, 네네!]

세상에서 그보다 달콤한 말이 어딨을까, 그녀는 기찬의 말에 정신없이 끄덕인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잊고 싶었던 하룻밤의 실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겠지만, 보이지 않게 가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 날, 대뜸 입으로 해달라며 요구하는 기찬을 봤을땐 정말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얼마나 과격했던지 그녀는 정말 숨막혀 죽는 줄로만 알았었다.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네?]

[사진 어떻게 지울까요?]

그는 다시 도돌임표처럼 돌아 그녀에게 자꾸만 "어떻게"할 지를 묻는다.

[그냥 앨범함 통째로 지워주시면...]

'스마트폰 잘 못다루나..'

유라는 진심으로 그를 의심했다.

[에이, 그러면 너무 힘들어요.]

[힘들다니..]

[제가 하루에 잘해봐야 네번 남짓이에요. 그 날 우리가 딱 그정도 했거든요. 아, 오랄까지 다섯번이던가? 암튼 대충봐도 사진이 30장은 되어보이는데, 저 그렇게 하면 진짜 죽어요ㅠㅠ]

[무, 무슨...]

[우리 이렇게 하죠! 지난번엔 입막음의 댓가로 한번 빼주셨잖아요. 그 것처럼 한번 대줄 때마다 한장씩 지워드릴께요. 물론 하루에 여러번도 가능하고, 또 화끈하게 해주면 몇장 정도는 하하..]

지워준다, 하지만 그 댓가는 몸으로 지불할 것.

그녀는 그제서야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털썩-

다리가 풀린 유라는 아에 바닥에 주저 앉는다. 학교도서관의 누구나 쓰는 곳이었기에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녀로서는 그런 사소한 걸 따지고 있을 정신따윈 조금도 없었다.

'어, 엄마 나 어떡해, 으흑...'

무서웠다.

단 한번의 달콤한 추억이라는 기찬의 말에 떠밀려, 그를 입으로 받아냈었다.

하지만 어땠던가, 그는 과격했고 마구잡이로 굴었기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이나 정액 섞인 구토물을 토해내야만 했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참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단 한번이라는 그의 약속 덕분이었는데...

이제는 그 사진들을 지우기 위해 몇배가 되는 댓가를 지불해야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유라씨가 생각해도 그건 무리죠? 아무리 정력가라도 하루는 진짜 무리라니까요.]

[...선배님 제발, 제발 그냥 지워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께요...]

그래도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진 않았다. 자신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긴 했지만 성욕이 왕성한 나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첫경험이라고 말했었다. 오히려 애착이 생기지 않는게 이상한게 아닐까?

잘만 부탁한다면 방법이 생길거라 유라는 믿었다.

[이거 유라씨가 그렇게 나오시면 제가 참... 하, 이거 으음..]

[..선배님 꼭 좀 부탁드릴게요..]

휴대폰을 쥐고 있는 유라의 손은 미친듯이 떨렸다. 기찬의 문자를 기다리는 1분 1초가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띠링-

"!"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낑낑대며 메세지를 확인한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그럼 그럴까요? 왠만하면 서로가 타협점을 찾아서 해결보는게 가장 좋죠.]

세상에, 세상에나.

세상에 이렇게나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

유라는 기찬의 배포에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놀라고 말았다.

[저, 정말요!?]

[네, 네. 근데 이렇게 문자로만 나눌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일단 만나서 직접 확인하시는게 유라씨도 여러모로 편하실거 같은데...]

[그, 그럴까요? 어디세요? 제가 갈게요!]

[아, 근데 제가 오늘 일이 있어서 좀 늦을텐데..]

[괘, 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녀로써는 이것저것 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사진만 지워준다면 부산까지라도 당장 갈 수 있었다.

[아뇨 아뇨, 밤 11시나 되어야 마칠 것 같아서요.]

[아...]

밤 11시는 너무 늦다. 그녀는 생각보다도 늦은 시간에 고민에 빠졌다.

[그냥 나중에 시간될때 보시는게 나으실려나..~]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도 그는 멀어질 것만 같았기에, 유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뇨, 근처에 있다가 찾아뵐게요.]

[밤인데 어디에 계실려구요?]

[그냥 커피숍에서 기다리다가..]

[어휴, 큰일나요, 큰일! 요즘 얼마나 세상이 흉흉한데 그러다가 강도라도 만나면 어쩔려구 그래요!]

[에에..]

[전 그런거 절대로 허락할 수 없어요! 만약 그렇게 밖에서 기다리신다면 저 찾아 오셔도 사진 안 지워줄거에요!]

사진을 지워주지 않는다는 말에 유라는 가슴이 철렁한다.

[..그래도 꼭 오늘...]

[허어..~]

탐탁지 않은 그의 말투에 유라는 잔뜩 웅크려든다.

그를 어떤식으로든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기껏 잡은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비로소 그녀는 자신이 기찬을 거슬러봤자 좋을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아아..흑..."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녀의 눈꼬리는 힘겹게 떨린다.

버틸때까지 버텨봤지만, 그녀의 눈꺼풀에 매달린 물기를 잡고 있기엔 역부족이다.

유라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엄마, 엄마아..엉엉..."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혹여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 숨 죽이고 있었는데, 이젠 누가 듣던지 상관 없었다.

조금이라도 소리 내지 않고서는 도무지 그녀 스스로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띠링-

"으어어..."

눈물 콧물 쏟으며 우는 유라는 문자가 오는 알림에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이렇게 하실래요?]

아마도 이건 그녀가 잡을 수 있는 마지막, 정말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유라는 기찬의 문자 한톨 한톨에 무서울 정도로 집중을 한다.

[OO구 OO동 142-3 번지 해피빌 203호.]

그는 처음보는 집주소를 달랑 보내왔다.

[제 원룸이에요. 디지털 도어락이라 비밀번호만 치면 열려요. 아, 비밀번호는 4321# 이구요.]

[...]

[밖은 정말 위험하거든요. 밤 11시까진 어떻게든 가볼테니까 안에 들어가 계세요.]

아무리 그래도 주인없는 남의 집을 들어가서 기다려야 한다니... 미처 생각치 못한 난관에 그녀는 잠시 주저한다.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하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유라는 급하게 저울질을 한 다음, 멈칫한 마음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아, 아뇨. 기다릴게요.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았다.

[하하, 그래야죠. 유라씨는 말도 참 잘 듣고 착하네요. ^^]

[그럼 나중에 뵐게요!]

싱숭생숭했던 마음이 완전히 가신건 아니었지만 당장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런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라는 가방을 싸서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기찬을 기다리기 위해 그의 집으로 향했다.

"에구구, 미안해요. 일이 쉽게 끝나질 않다보니 참..."

"아, 아니에요. 별로 안 기다렸는걸요."

'말이 되나, 내가 새벽 2시에 들어왔는데 말야.'

기찬은 마음에도 없는 그녀의 말에 속으로 혀를 끌끌 차고 만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때, 유라는 방바닥에 앉아 거의 졸다시피하고 있었다. 아마 아까 문자를 끝난 그때부터 조금도 쉬지 못한 듯 싶었다.

"아니긴요. 안그래도 제가 너무 죄송해서 치킨 사왔어요. 이거 같이 먹어요."

"아..."

치킨의 고소한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그러고보니 점심때 기찬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로는 아무 것도 먹질 못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그땐 너무 정신이 없었고 입맛이 있을 턱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유라는 참지 못하고 침을 삼킨다.

꼴깍-

'으학!..'

그리곤 너무 크게 울린 소리에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다.

"하하, 이제보니까 유라씨 배 많이 고프셨구나? 괜찮아요 괜찮아~ 그러니까 사양말고 많이 들어요. 진리의 '반반무마니'니까요."

기찬은 치킨 박스를 열고는 가장 먹음직스러운 닭다리를 집어 유라에게 내민다.

"자, 잘먹을게요!"

조심스레 닭다리를 한입 베어문 유라의 표정이 바뀐다.

'너무 맛있어!!'

그녀는 들고 있던 닭다리를 게눈 감추듯 해치우곤 다른 조각으로 손을 뻗었다.

'하하, 귀엽네.'

기찬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페이스북을 조금만 넘겨봐도 예쁜 여자는 많았다.

뭐.. 이정도면 충분히 예쁜 편이긴 했지만, 굳이 따진다면 유라는 그들과 비교해서 약간 부족한게 사실이었다.

대신 그녀에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싱그러움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다른 이들을 압도하고 남았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남자친구의 소식을 대신 전해준 것을 제외한다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에 불과했다.

정말 길가다 스치지도 못할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

[선배님 맞으시죠? 정말 빨간 티에 청바지 입고 오셨네요, 헤헤!]

그런 자신의 환하게 맞이해준 사람이 바로 유라였다.

비록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굴러왔고 스스로도 지금의 상황에 만족스러웠지만, 그때 그녀의 모습도 나쁘지 않았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쉽게 남을 의심하지 않고 활짝 웃는 법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말이다.

'뭐 어쩌겠냐~'

약간, 아주 약간.

하지만 기찬은 황급히 솟아난 아쉬움을 꽁꽁 싸맨다.

그가 아무리 잘해서 유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그녀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녀석도 언젠가는 전역을 할테고, 그때가 되서 하하-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안 만났으면 모를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와서 곱게 헤어지기엔 너무도 멀리 와버린 것이다.

기찬은 깨닿는다.

아마 앞으로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어려울거다. 특히, 자신을 보고 웃는 경우는 절대로 없겠지.

대신 그에 못지 않은 걸 가져야겠다. 주지 않는다면 뺏어서라도 말이다.

치킨을 사길 잘했다.

"치킨에는 역시 이게 빠질 수가 없죠~"

기찬은 냉장고를 뒤적이더니 한무더기의 소주와 맥주를 끄집어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말아먹기에는 카스가 낫더라구요. 아, 이거 잔이 특이하죠? 소맥잔이라고 아이디어 상품인데 눈금이 있어서 조절하기도 쉽고 예쁘기도 하고 뭐, 그래서 하나 샀죠. 하하."

쓸데없는 말까지 하며 부산스럽게 구는 기찬은 어느새 소맥을 한잔 말아낸다.

"..아, 저 근데.."

지난 번에도 실수를 했기 때문인걸까, 유라는 살짝 거부감을 드러낸다.

"취할때까지 마시자는 것도 아니고 진짜 그냥 가볍게 한잔만 하자고 그러는 거에요."

그러거나 말거나 기찬은 술잔을 더욱 내민다.

"자 자, 마셔요 마셔."

"..으음,"

그렇게 몇번의 실랑이가 오갈 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술잔은 결국 테이블에 놓여지고 말았다.

"이거 이거, 그래도 권하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면 이러시면 안되는데... 전 오늘 유라씨가 빨리 해결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최대한 맞춰준건데, 이거 섭섭하네요."

자꾸만 피하는 유라의 모습에, 결국 기찬은 살짝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아.."

그 섬뜩함에 유라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만다.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 날의 사건, 하지만 잘 닦아내지 못했던 남은 흔적이 결국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었다.

다행히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그의 말에 여기까지 무작정 왔었다.

주인없는 방에서 홀로 기다리는 동안에도, 무서움보다는 그가 어서 빨리 오기만을 바랬다.

'11시엔 온다고 했어, 11시에는..'

하지만 그가 도착한 시간은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뒤였었다.

너무나도 늦은 기찬에게 원망이 들기도 한 유라였지만, 드디어 만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배도 고팠다. 당장 누워서 푹신한 이불을 엎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할 수 있었다.

유라는 그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당장 사진을 지워줄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찬은 베푸는 쪽이었고, 아쉬운 건 자신이었는데... 그런 기찬이 조금 미적거린다고해서 자신이 불평을 하면 안되는 거였다.

싫은 티를 내지 않아야 했다. 최대한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아야 했다.

"마, 마실게요! 마실테니까 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녀는 그렇게 잔을 뺏어들고는 단숨에 마신다.

"그렇게 나오셔야죠. 이제 좀 말이 통하네요. 하하~"

고분고분해진 유라의 모습에 기찬은 만족한 듯 자꾸만 헤픈 웃음을 보인다. 그리곤 그녀의 잔이 비워질때마다 계속해서 소맥을 말아준다.

벌써 몇번째의 잔을 받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술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힘들어.. 졸려..'

아까부터 자꾸만 고개가 옆으로 기운다. 처음엔 예비군 선배님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버텼는데, 그의 웃음소리가 들린 이후로는 그냥 포기해버렸다.

'근데 치킨 먹어야하는데..'

사실 아까 그가 치킨을 들고오지 않았다면 난 정말 화를 냈을지도 몰랐다.

너무 너무 오래 기다렸고, 또 배도 고팠고..

옛날부터 유독 치킨을 좋아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후라이드치킨, 깨끗한 기름으로 담백하게 튀겨낸 후라이드치킨은 진리였다.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었다. 일주일에 5번도 먹을 수 있었다.

정말이야, 진짜로 그렇게 먹은 적도 있었어요.. 오빠한테 물어보면 바로 알려주는데, 아...

사실 양념은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바삭한 튀김옷을 눅눅하게 만드는 양념은 달아도 너무 달았으니까.

'그래도 어릴땐 좋아했었지..'

내가 꼬맹이었을때, 가끔씩 아빠가 후라이드 치킨을 시키곤 하셨는데 그럴때마다 나는 아빠 팔에 매달려서 애교를 부리곤 했었다.

'그럼 아빤 반반으로 주문해서 내게 양념을 주곤 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양념이 맛있어 보였다.

반짝 반짝 빛나는게, 오늘 먹지 못한다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아마 평생 맛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치킨 먹을래요..양념치킨..."

..그런데 좀 이상하다. 누가 치킨박스를 세워놨다. 어디로도 기울지 않은 정확한 수직, 하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불안해 보인다.

'...저러면 치킨 다 쏟아지는데...'

나는 손을 뻗어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좀처럼 닿지 않았다.

저것 좀, 저것 좀 누가-

박스가 흔들리고 있는데, 저러다 다 쏟아지는데...

"헉, 헉..뭐라는거야?"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맞다, 예비군 오빠가 나 누르고 있었지..

"..잠시만요..잠시만 멈춰봐요...저거 쏟아지는데..잠시만..."

"아, 예예~ 병신같은 소리 그만하고 지금처럼 가랑이만 잘 벌리고 있으세요..~ 크으..!"

아, 근데 진짜 정말 너무 졸린다..

유라가 술을 입에 댄 순간부터 기찬은 쉬지않고 술을 따랐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해서 뒤로 갈 수록 소주의 비율을 높여갔다. 어떨땐 글라스의 절반이 소주였던 적도 있었다. 소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으..으으..."

그녀가 비틀대기 시작한 것도 그 쯤이었다.

어찌보면 버틸 수 없는게 당연했다. 그 스스로도 그렇게 마실 자신은 없었다.

"유라씨, 괜찮아요?"

기찬은 유라의 어깨를 붙잡고 세게 흔든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목이 앞 뒤로 덜렁인다.

"으..네네..괜찮.."

늘어지는 반응과 부정확한 발음.

기찬은 이때다 싶어 손을 옮겨갔다.

"어휴, 완전 취하신거 같은데."

걱정하는 말투와는 다르게 그는 바빴다.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 유라의 상의 속으로 들어간다. 맨들맨들한 맨살을 지나 봉긋한 그녀의 가슴을 가볍게 쥔다.

브래지어의 와이어가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말캉대는 감촉은 그 이상의 보상이 되었다.

충분히 재미가 있었지만, 솔직히 이쯤에서 멈출 생각은 없었기에 기찬은 유라의 옷을 벗겨갔다.

티셔츠를 올리고 브래지어를 풀어버리자 유라의 가슴이 덜렁대며 흔들린다.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럴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기찬은 뜸들이지 않고 가슴을 한입 베어문다. 당연하듯 향긋한 살냄새가 입안을 감돌았다.

그 향기는 그를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껴안듯이 유라를 지탱하고 있던 그는, 그녀를 아예 침대로 옮겼다. 그리곤 그녀의 바지를 한번에 벗겨냈다.

너무 힘을 줬던 것일까, 벗겨진 바지에는 팬티가 같이 딸려 나온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가슴을 빨아대던 기찬의 입이 유라의 사타구니를 파고 들었다.

시큼하고 지릿한 맛, 하지만 촉촉하고 뜨거웠다.

이런거라면 하루종일 입에 달고 살 수도 있을것만 같았다.

흥분이 머리 끝까지 차오른 기찬은 자신의 바지를 빠르게 내렸다.

그의 물건이 기다렸다는 듯이 꺼덕거렸다.

'젠장, 콘돔 깜박했는데...'

유라가 내 방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 때문에 흥분해서인지, 그만 편의점을 그대로 지나쳐 왔었다.

지난번처럼 밖에다 싸는 방법이 있긴했지만 오늘은 아마 넣자마자 바로 싸버릴 것만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한번 넣어보고 생각해야지, 별 수 있나..'

이제와서 편의점으로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찬은 그대로 강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구멍을 찾은 기찬은 혹시 놓칠세라 정확히 조준한다. 그리고 약간의 힘을 주자 귀두쪽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엔 구멍을 찾는데만도 한참이 걸렸는데, 거기다 구멍이 좁기는 얼마나 좁은지 수차례 튕겨나와서 삽입에만 큰 곤욕을 치뤘다.

이번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기찬은 허리에 체중을 실고 단번에 밀어부쳤다.

살을 가르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새 그의 물건이 뿌리 끝까지 삼켜지고 만다.

"크흐..!"

마치 천개의 손이 그를 감싸는 것만 같았기에 그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터트렸다.

"허으..싸, 쌀거 같은데.."

기찬은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바로 싸버릴 것만 같았기에, 최대한 주의하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맛본 유라의 구멍은 여전했다.

특히 좁고 빡빡한 그 느낌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했다.

"헉헉!!"

기찬은 사정감을 어느 정도 조절하자, 본격적으로 펌프질을 해댔다.

얼마나 즐겼을까,

"...으으...."

별안간 유라가 신음을 흘린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해도 완전히 맛이 갔었는데,

한참 재미를 보고 있던 기찬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유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치킨 먹을래요..양념치킨..."

"...뭐라는거야?"

뜬금없는 유라의 양념치킨 타령은, 한창 흔들고 있는 허리를 멈추게 할만큼 어이가 없었다.

'이딴 거에 놀라다니!'

스스로의 새가슴에는 정말 감탄을 금할 바가 없었다.

그는 그런 자신을 씻어내기라도 하듯이 더욱 강하게 허리를 흔들어댔다.

삐걱- 삐걱-

싸구려 침대의 프레임이 방 안을 울렸고, 기찬은 그 박자에 속도를 맞춰간다.

"아, 씨발.. 그냥 한번만 넣어보고 바로 뺄려고 했는데, 크...!"

솔직히 이제와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조절 잘해서 밖에다 하면 좋은거고, 타이밍 놓쳐서 안에 싸버리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근데 안에 싸면 어떤 기분일까?'

이상했다. 단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인데, 생각은 바로 꼬리를 물어버린다.

'좋을까? 좋을까? 진짜 시발 그 이상 좋을게 없을만큼 좋을까?'

아무리 다른 방향으로 돌려볼려고 애를 써도 꿈쩍 않더니, 어느새 녀석은 단단히 자리를 잡고 덩치를 불려버린다.

그것은 사정감을 느껴가는 동안에도 계속 지속되었다.

'으으, 이왕 저지르는거...!'

기찬은 갑자기 유라의 뺨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찰싹거리는 소리가 방안을 울려가고, 유라의 뺨이 발갛게 부어오를 때쯤이었다.

"으으...무, 무슨..."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잠깐이다, 그녀는 깊은 잠에서 아주 살짝 고개를 내밀었을 뿐이다.

"유라씨! 일어나세요! 일어나시라구요!!"

기찬은 거기서 멈추지않고 유라의 이름을 부르며 마구 흔들었다.

오늘 저지른 일은 진짜로 돌려막을 수가 없었다. 착한 척, 좋은사람인 척 그렇게 구는 것도 이제는 끝이다.

기찬은 그렇게 가면을 벗어던진다.

하고 싶다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할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왕 안에 싼다고 마음 먹었으면, 유라가 제정신일때 하고 싶었다.

나를 감싸고 있던 그녀의 살이 잔뜩 움츠린다.

맞닿아 있는 배에 힘이 들어가는 걸 기찬도 느낀다.

"...어, 어어...하, 하지마세요..!!"

그녀가 정신을 차렸음을 확인한 기찬은 힘겹게 쥐고있던 사정의 고삐를 그대로 놓아버린다.

"아, 안돼에!!!"

유라의 절규는 나와 같았다.

그래, 마치 사정 같았다.

"..또, 왜..."

그녀가 울었다는 것은, 잔뜩 갈라지고 메말라버린 목소리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왜, 그랬어요..왜..."

"후우~ 미안해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매캐한 담배 연기가 그의 입에서 가득 뿜어져 나온다. 니코틴이 돌았기 때문일까, 기찬은 그녀의 원망을 곧잘 받아쳐낸다.

하지만 그 뿐, 그 정도 건성거림으론 유라를 조금도 납득시킬 순 없었다.

"솔직히 그때보단 유라씨도 즐기는거 같던데, 영 별로였나봐요?"

"무, 무슨 그런..!"

유라는 소스라치며 놀란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이젠 아예 뻔뻔스럽게 구는 기찬의 행동에 치가 떨린다. 유라는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기억을 더듬어간다.

술김의 실수, 처음엔 분명히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술을 조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계속, 계속 자신의 잔만 채웠을 뿐이다.

- 무엇을 위해서?

"에이, 이거 봐봐요. 신음소리도 막 내면서 즐겼다니까요."

- 가지기 위해서지.

그가 내민 휴대폰에 그 모든 이유가 담겨 있었다.

낯 익은 방, 낯 익은 침대, 낯 익은 얼굴, 앨범 속의 사진은 분명한 유라, 자신이었다.

"이, 이건.."

하지만 이건 그때의 모텔이 아닌데...

"아, 방금 전에 찍은 따끈따끈한거에요. 꽤 잘나왔죠?"

기찬은 비열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흔든다.

" 이, 이건 강간이에요..!!"

"으응? 이게요?"

기찬은 한번 더 휴대폰을 흔든다.

"..거질말쟁이..지워준다고 해서 그래서 믿고 왔는데..."

"물론 지워줘야죠. 보자..~ 오늘 꽤 재미도 있었고,"

기찬은 연신 턱을 쓰다 듬는다, 그의 표정엔 일말의 고민이 섞여있어 보인다.

유라는 신경의 촉을 세웠다.

기찬에게 배신감을 느끼던 와중에도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치를 봐야하다니, 스스로가 밉고 창피할 만큼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진을 지워줄지도 몰라...'

충분히 늦었지만, 비록 지금이라도 그가 사진을 지워주기만 한다면 ...모든걸 용서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짠, 인심 써서 두장 지웠어요! ..아, 오늘 10장의 사진을 찍었으니 8장 늘었다고 해야하나? 암튼 고분 고분하게 잘 좀 해줘요."

"..."

유라는 눈을 질끈 감는다. 역시는, 역시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젠 더 나올 눈물도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애당초 믿은 자신이 바보였다.

그를 만나지 말았어야했는데...

하지만 후회는 너무 늦었었다. 돌이킬 수 있는건, 언제나 그러하듯 아무 것도 없었다.

"대신 비밀은 잘 지켜줄게요. 괜히 동철이 귀에 들어가면 뭐, 걔가 탈영 밖에 더 하겠어요? 사람은 살리고 봐야죠."

기찬의 눈이 자신의 몸을 벌레처럼 훑는다.

'하지만 나만 견디면, 나만 참으면 돼..'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마 오빠를 본다고해도 해맑게 웃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참아 낸다면, 그래도 스스로가 참아낸다면, 모두가 평소처럼 행동할 수는 있을 것만 같았다.

끔찍했지만 그래서 된다면, 자신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동철 오빠한텐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 말 뜻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같나요?"

"..."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 충분히 아는데도 기찬은 끝까지 그녀를 물고 늘어진다.

좀 더 확신에 찬 말을 원했다. 말도 안되는 거래에 대해 그녀 스스로가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웬만하면 제대로 듣고 싶은데요, 이런건 서로 이해가 잘못되서 오해가 생기면 큰일 나잖아요."

기찬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라의 가슴으로 손을 뻗는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

차라리 기찬이 웃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스스로의 성욕에 차서 자신을 깔보고 몸을 탐하는 것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의 가슴을 마음 껏 주무르는 와중에서도 조금의 낯설음도 보이질 않았다.

"왜요, 싫어요?"

거대한 벌레가 자신을 씹어먹는 것만 같았다.

"...아뇨."

"뭐 그럼 앞으로 이렇게 종종 이용하는 걸로, 오케이?"

유라는 기찬의 발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곤 눈물을 한껏 머금고 그의 발에 입을 맞춘다.

"네, 알았어요.."

모든건 자신을 손을 떠났다고, 유라는 스스로 생각했다.

괴로움과 힘겨움, 눈물이 앞을 가릴지라도, 설령 자신의 선택이 훗날에 어떠한 결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저 받아들이고 스스로가 망가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빌 수 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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