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장. 에필로그 - 이별. (9/9)

25장. 에필로그 - 이별.

그 날 이후 2주가 지났다.

이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정말 행복이란 것을 맛볼 수 있었다.

서로 소중한 이에게서 사랑을 확인한 기쁨.

그것도 그 동안의 차가웠던 기간과 상처를 지나 얻은 이 사랑의 확인은 정말 행복한 것이었

다.

그러나 그 후에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가질 기회는 없었다.

이미 서로 마음을 열고 몸을 받아들인 터라,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원하기만 했다면 아주 쉽

게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에도, 그러나 둘은 이후에 끝까지 선을 넘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은 두 사람 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지현이는 아직도 그 날밤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이 작게 떨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도 놀라웠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결심을 했을까?

아무리 그때, 아빠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서 감정적으로 고조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그리고 많은 일들을 겪어서 정신적으로 약해졌었으며, 육체적으로도 아프고 민감했었다 할

지라도..

무슨 마음으로 여자아이가 아빠에게 순결을 바치겠다는 대담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 날의 결심, 그리고 행동은 지난 5년 간의 자신의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었

고, 그리고 아빠에 대한 사랑의 결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앞으로는 다시 얻을 수 없는 그런..

`그래.. 이제는.. 다시 얻을 수 없는...' 

지현이는 혼자 방안에 앉아 그렇게 생각했다.

꿈결같았던 그 첫경험은 지현이에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그 날, 아침에 깨자.. 창가로 스며든 따스한 햇살이 지현이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스러운 듯 내려다보고 계시는 아빠의 시선.

아빠는 지현이의 흐트러진 머리카락들을 이마에서 쓸어 올려주시며 이렇게 속삭였다.

"이제.. 깨어났니..."

`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순결을 주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무언가 사랑이 충만한 듯한 이 행복한 기분.

지현이는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아빠의 손길을 느끼며 이대로 영원히 멈추고 싶었

다.

그러나 이대로 지속될 수는 없었다.

지현이는 그 날 아빠에게 순결을 바치기 전에 이미 결심을 하고 있었었다.

아빠에 대한 사랑의 추억으로 자신의 처녀를 아빠에게 드리고, 이제 지현이로 돌아가기로..

그렇게 결심을 하고 있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현이는 지금 다시 망설여지고 있었다.

엄마의 역할에서 벗어나 지현이로 되돌아가는 것이..

애초에 그렇게 결심을 했었건만..

"내가.. 과연..  아빠의 사랑을 잊을 수 있을까..?"

"아빠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있을까..?"

"매일 아침..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잊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지현이는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자아이의 마음은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지현이가 이렇게 흔들리는 이유 중에는, 그 날 이후 여자아이의 몸에 서서히 관능이 

자라고 있기 때문도 있었다.

이것은 중2 때부터 해오던 자위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여자가 되었어...'

`아빠가..  나를..  여자로 만들어 주셨어...'

이제 어느덧 성숙해져 가는 16살의 소녀.

아빠에 의해 남자를 알게 된 소녀.

지현이는 밤마다 아빠의 몸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동안 몇 번이나 아빠의 방문을 두드리려 망설인 적이 있었다.

만약에 언제라도 아빠가 손을 내밀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안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럼.. 서로..  불행해지는 길이야...'

`그 날밤 일은.. 이제 추억으로 가슴 깊이 간직하고.. 이제.. 지현이로 돌아가야 해...'

지금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영원히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아빠에게 사랑하는 여자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의 현실은 허락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 사실 그런 것은 사랑을 위해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의 윤리, 시선, 그리고 친구들, 친척들, 그들과의 관계,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

어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빠를 영원히 속여야 한다.

그 때문에 언제 또 서로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제까지나 속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아빠도 사실을 알게되실 지 모른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을 때는..

`결국..  모두.. 불행해질 거야...'

처음 거짓말을 시작했을 때는 어린 마음에 철이 없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모두를 위해 결단

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지현이는 그 후에도 아빠에게 안기고 싶었지만..

아빠의 품이, 아빠의 체온이, 아빠의 손길이 그리웠지만..

결심이 흔들릴까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는.. 되돌아가야 해...  결심했던 것처럼...'

`아빠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아빠의 사랑으로부터 떠나야 해...'

`우리 두 사람이..  불행해지기 전에...'

`그리고.. 아빠에 대한 내 사랑을.. 고이 간직하기 위해...'

"하지만..   정말.. 내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지현이의 두 눈에 이슬이 맺혔다.

진우는 그 날밤의 황홀했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마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러나 또한 슬프기까지 했던 정사였을 것이다.

`지현아...'

진우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딸아이의 이름을.. 소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내가.. 딸아이의 몸을 범하다니...'

`아무리.. 상황이 그랬었다 할 지라도...'

`그 날밤.. 내 정신이 어떻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날 자신이 깨달았고, 자신이 했던 행동은 바로 자기 내면의 진실이었다.

지현이를 여자로서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자신은 딸아이의 첫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수시로 딸아이의 그 탐스러운 몸이 눈에 선하며 욕정이 솟고는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막상 딸아이의 몸에 욕구를 느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 날의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사람이 그 동안의 관념을 저버리고 쉽게 다시 딸아

이의 몸을 찾을 수는 없었다.

또한, 아직 딸아이에게 직접 요구를 하기에는 쑥스러움에 망설여지고는 했다.

더구나 이미 지현이의 거짓말을 알았지만, 아직 그 사실을 밝힐 수가 없었기에 더욱 주저하

게 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나 이 사실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딸아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딸인 줄 알면서도 자신을 품은 아빠

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도 드는 것이었다.

비록, 그 날밤에는 서로의 감정이 주체못할 상태였다는 구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후에 

자신이 계속 딸아이의 몸을 요구한다면 지현이는 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딸인 줄 알면서도 딸아이의 몸에 욕정을 느껴 일부러 모른 척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진우는 지현이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이런 파렴치한으로 오해받는 것은 두렵고 싫었다.

그래서 스스로의 욕구를 억제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냥.. 눈 딱 감고.. 모른 척 할까..?  그래서 영원히 지현이를 아내로 데리고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잘못하면 딸아이의 인생을 망칠 수 있어..  현실 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은 불가능하니까...'

`그렇다면.. 사실대로 말을 해버릴까..?  네 비밀을 알고 있다고..?'

`그러나.. 그러면 지현이가 수치스러워하며 큰 충격을 받게될지도 몰라...'

`그리고 지현이가 딸아이로 돌아간다면..  나는.. 영원히 사랑하는 그 아이를 잃게 될지

도...'

`이제.. 어떡해야 좋지..?'

그런 생각을 하던 진우는 문득 전에 보았던 지현이 일기장의 내용이 기억이 났다.

그때 일기장에는 지현이의 비밀과 함께 그녀의 결심도 적혀져 있었다.

자신의 처녀를 아빠인 자신에게 바치겠다고..

그리고 이제 지현이로 되돌아가겠다고..

사실 그때 진우는 놀라운 비밀을 안 충격 때문에 그것에까지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그 날밤 지현이가 자신의 침대로 들어오고 나서야 그 결심이 다시 상기되었었다.

그랬는데..

`지현이는 대체.. 어떤 결심으로 나에게 순결을 준 것일까..?'

`그 때 일기장에는 지현이로 돌아가겠다고 했었다..'

`그럼.. 혹시..?'

진우는 어렴풋이 어떤 짐작을 할 수 있었지만, 차마 지현이에게 확인을 할 용기는 내지 못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망설임과 고민 속에 그 날밤 이후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망설임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다시 며칠 뒤에 두 사람에게 불현듯 찾아왔다.

예고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두 사람이 이제 어떤 결심을 해야하는 순간이...

띠리리리...

처음 사무실에 그 전화벨이 울렸을 때도 진우는 그 전화 한 통이 자신의 또 다른 운명을 결

정지을지는 몰랐다.

"사장님.. 전화 왔습니다.."

경리 여직원이 키폰으로 바꿔주는 전화를 진우가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저.. 지현이 아버님 되십니까..?"

"예.. 그런데요..?"

"아.. 안녕하세요.  여기 지현이 학교입니다.  저는 지현이 담임이구요.."

"아..! 안녕하십니까..  우리 애 선생님이시군요.  이거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아니.. 괜찮습니다.  저.. 그나저나..."

"예.. 무슨 일로..?"

"저..  지현이가 수업 도중에 쓰러졌습니다.  졸도를 한 것 같아요.."

"예...!"

진우가 놀라 벌떡 일어섰다.

"아니.. 우리 애가 왜..?"

"아.. 걱정 마세요...  괜찮다고 하니까요..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  예..."

"그런데 요즘에 지현이 무슨 일이 있나요..?  빈혈이라는데요..."

"빈혈이요..?"

"예..  친구들 말로도.. 그 동안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지.. 우울해하고.. 식욕도 별로 없

었다고 하더군요..."

"............"

"요즘에는 좀 나아진 것 같지만..  그래도 고민은 많은 것 같더라고..."

"아..  그 그렇군요.."

"아마.. 지현이..  어머님도 안 계셔서..  그맘때 고민 나누기도 힘들 테니..  아버님께서 

신경을 좀 써주세요.."

"예..  이거..  제 불찰입니다..."

"저.. 그런데 혹시.. 학교로 데리러 와줄 수 있으세요..?  아무래도 그냥 조퇴를 시키려고 

하는데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죠..  제가 데리러 가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죠.."

"예.. 예...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진우는 한동안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이미 그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가여운 것..  그동안.. 이 나쁜 아빠 때문에..  그동안 어린것이 얼마나...'

어서 빨리 학교에 가야지 하면서도 진우는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의식이 든 지현이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체육 수업 때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이제.. 정신이 들었니..?  여기 양호실이야..."

"양호실이요...?"

"그래..  너.. 체육시간에 졸도를 했어..."

"졸도요..?"

"그래.. 빈혈이야...  아..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누워있어..."

"예..."

지현이는 이제야 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왕에 온 것이니.. 좀 푹 쉬어..  그리고 너희 담임 선생님이 조퇴시켜 주실 테니.. 오늘

은 그냥 들어가..."

"아니에요...  저.. 괜찮은데..."

"괜찮기는..  보니까..  몸이 많이 축났더라...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 지는 모르겠지만.. 

먹을 것도 제때 먹고 다녀라..  너희 때는 그저 잘먹어야 해..."

"예..."

사실 스스로 생각해도 그 동안 너무 걱정이 많았나 보다.

지현이는 편안한 기분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조용한 양호실 안에서 모처럼 안정을 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참.. 그리고..  이따가 너희 아버님이 너 데리러 올 거야..."

"아빠가요...?"

지현이가 놀라서 눈을 떴다.

"응..  너희 담임선생님이 연락하셨나봐.. 데리러 오시라고..  너 혼자 보내기는 좀 그래

서..."

"아...!  예..."

"그래..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얌전히 누워있어라..."

"............."

지현이는 아빠에게 걱정을 시켜 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그때까지는 그저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꿈에서 본 것은 어떤 영화였다.

아주 오래 전에 한밤중에 TV에서 보았던 영화.

꿈속에서는 그때처럼 엄마와 함께 어린 지현이가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보기 좀 어려운 것 같았지만, 잠자라는 엄마의 말씀도 듣지 않고 거실에서 엄마

의 품에 안겨 같이 보고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아마 영국영화였을 것이다.

그 영화는 실종이 된 어린 딸을 찾는 부모의 이야기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딸.

타고 가던 자전거만 교통사고를 당해 거리에 나뒹굴 뿐, 딸아이는 사라진 것이었다.

부모들은 그 아이를 찾느라고 몇 년을 눈물로 보내야 했다.

지현이도 어린 마음에 어서 저 사람들이 딸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지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기대와는 달랐던 전혀 뜻밖의 결말이었다.

그 부모의 딸은 납치나 사고로 실종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 아이 스스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것이었다.

딸을 찾은 부모들이 너무나 기가 막힌 나머지 그 딸에게 왜 사라졌었느냐고 물었다.

" `바로 지금이야..' 하고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래야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딸의 대답은 아마 지현이가 기억하기에 이런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던 그 딸이 순간 깨달았던 것.

바로 지금이야말로 세상에서.. 자기를 알던 세상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기회

라는 것.

그 어떤 미지의 기회에 대한 유혹이 그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딸의 그 뜻밖의 대답은 당시 어린 지현이의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아마도 어렸지만 예민했던 작은 소녀의 감수성에 그 대사의 파장이 맞았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이런 이야기를 나중에 글로 써야지 하고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왜였을까?

지금 꿈속에서 이 유년시절 기억의 파편 하나가 문득 되살아난 것은 왜였을까?

지현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지현이의 두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줄기가 되어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양호실에는 양호선생님도 어딘가 나가신 듯 안 계셨다.

지현이 혼자 누워있는 양호실에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멀리 운동장의 아이들 소리도 아련히 들려 올 뿐이었다.

이런 조용한 공간에 지현이 혼자 누워있었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아마도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아빠가 자신을 데리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않았어도..

하지만.. 지현이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 꿈을 꾸면서 이미 깨어나기 전부터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이라는 것..

자신이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는 것..

더 늦으면 더욱 되돌아가기 힘들어 질 것이라는 것..

그러면 자신의 마음이 약해질 것이라는 것..

그래서 지현이는 결심을 해야했다..

그리고...

진우는 학교에 도착을 하자 주차를 하고, 우선 담임선생님을 뵈러 교무실로 갔다.

그리고 잠시 인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지현이를 보러 양호실로 내려왔다.

"제가 내려갔을 때는 의식이 없었는데, 지금쯤 아마 돌아왔을 거예요.."

담임선생님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곧 수업에 들어가느라 진우 혼자 양호실로 가야 했다.

걸어가면서 그는 학교 안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지현이 입학식 이후에는 처음 와보는 딸아이의 학교였다.

`내가 그동안.. 많이 무심했지..  부모라고는 나 하나뿐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양호실에 도착하자 우선 조용히 노크를 했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들리지 않자 살며시 문을 열었다.

"저..."

양호실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양호선생님이 없는 것을 안 진우가 잠시 양호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구석의 침대에 누워있던 지현이가 보였다.

"아..  여기 있었구나..  지현이.."

그러나 아직 의식이 없는 것인지, 잠이 든 것인지 눈을 감고 있었다.

진우는 손을 뻗어 지현이의 뺨을 어루만져 주며 애잔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지현아...'

그리고 옆에 앉아 딸아이가 깨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을 때..

"으 으응.."

지현이가 잠시 뒤척이더니 의식이 드는 것 같았다.

"이제 정신이 드니..?"

"으 으...  음.."

지현이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러나 눈을 뜬 지현이는 혼란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

"왜 그러니..?"

"아..  아빠..?"

"으 응.."

"여기..  어디예요..?  여기..?"

처음에는 그저 이제 막 의식이 돌아와 그런 줄 알았다.

"여기 너희 학교 양호실이야...  수업하다 쓰러졌데..."

"양호실..?  엄마는요..?"

"어 엄마..라니..?"

"엄마..  옆에 같이 있었는데...?"

".............."

순간 진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

지현이도 안타까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진우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그 그렇구나...!'

순간 진우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지현이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진우의 심장은 지금 마구 뛰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래..  지현이로.. 되돌아가겠다고 했었지..  역시나...'

"아 아빠...?"

자신을 바라보는 지현이의 안타까운 눈빛은 마치 `제발 믿어주세요..' 하고 간절히 애원하

는 것 같았다.

지현이는 지금 아마도 졸도 할 때의 쇼크로 자신의 영혼이 되돌아 온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사실 이런 것이 아니면..  영혼이 되돌아온다는 적당한 구실을 찾기는 힘들 테

지...'

지현이는 자아를 찾기 위해.. 딸아이로 되돌아가기 위해.. 이 아빠한테 안타까운 거짓말을 

또 하나 하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리고 저런 안타까운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진우는 지현이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그 마음과 고민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딸아이가 안쓰럽고 슬퍼 보였다.

`내 딸..  사랑하는 내 딸...'

`이제.. 나는.. 지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았으니..  모든 것을...'

`이미 나는 지현이를.. 내 딸아이의 몸을 가진 것을...  그리고 이 아이의 사랑을 알아 버

린 것을...'

그렇다고 알면서 모르는 척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런 것이 통할까?

이 아이도 언젠가는 눈치를 챌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진우는 지금 자신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기로에 서 있음을 알았다.

지금 자신의 결정이 앞으로의 운명을 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지현이에게 속아주는 척 해야 할까..?'

`그래서.. 지현이가 안심하고.. 딸아이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까..?'

`하지만... '

`하지만.. 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날마다 지현이를 바라보면서.. 날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집에 같이 

살고.. 숨을 쉬고.. 내음을 맡고.. 하면서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저.. 지현이에 대한 사랑을.. 아빠로서의 사랑으로만 만족하고..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남자에게로.. 사랑하는 이 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야만 하겠지...'

`내 딸의 인생..  내가 사랑하는 이 아이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내가 진정으로.. 지현이를 사랑한다면..  이 아이를 위해서..  그래야 하겠지...'

진우는 마침내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겨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 지현이..?   너.. 지금 지현이니...?"

그는 그렇게 그녀를 보내주었다.

`아...!'

지현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빠가...  .......... '

`아빠..  안녕...     내가 사랑한...    아 안녕...'

그리고는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 지현이의 마음을 눈치챈 진우는 자신도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 지현아..  아빠.. 잠깐 전화 좀 하고 들어올게..  돌아와서 다 이야기 해줄 테니.. 누

워서 안정하고 있어라..."

진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겨우 양호실 문을 나섰다.

문을 나서기 직전 문 옆에 걸린 거울에, 지현이가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죽여 우는 모

습이 보였다.

`아...!'

진우는 복도에 나와 벽에 기대어 섰다.

뜨겁게 흐르려는 눈물을 감추려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창 밖으로 운동장에서 해맑게 재잘거리는 여고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은 밝고 환한 세계처럼 보였다.

`그래..  이제 지현이를.. 저 세계로 되돌려 보내주어야 한다...'

그는 그렇게 딸의 몸 속에 있던 아내를 보내주었다.

지난 5년 동안의 그녀는 비록 거짓이었다 할지라도, 진우에게는 정말 소중한 아내였었다.

지현이는 정말로 지난 5년 동안 죽은 수진이를 대신하여 그를 지켜준 아내였었다.

아니 거짓도 아니었다.

지현이는 엄마의 대역으로서가 아니라, 그 스스로 너무나 소중했던 진짜 아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에서 그들 둘만이 가졌고, 그 둘만이 영원히 간직할 비밀이었다.

`안녕...'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안녕...'

그의 마음 속 깊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비밀 - 내 딸의 몸, 그 속의 아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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