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장. 상처, 연민.. 그 끝에 남은 오해 (4/9)

20장. 상처, 연민.. 그 끝에 남은 오해

지현이는 전에 서울에서 다니던 학교로 되돌아왔다.

방학중에 전학수속을 한 지현이는 2학기부터 차질 없이 다시 등교를 할 수 있었다.

낮 익은 교정, 낮 익은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 거의 1년만에 다시 보는 반가운 모습들

이었고, 많이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이 지현이는 달라져 있었다.

이제 조금 성숙해진 외모도 외모였지만 내면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빠와 떨어져 혼자 지내던 그 기간 동안 지현이는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때문에 더 이상 이제 아빠에게만 모든 마음을 의지하던 작은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지현이는 급히 자신을 서울로 전학시키려 한 진우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우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말..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인생이란 없는 것일까..?'

그런 서글픈 생각이 지현이의 마음을 짓눌렀다.

진우는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오늘 지현이가 늦는다는 것을 기억한 진우는 열쇠로 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왔다.

지현이는 서울에 와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오늘 좀 늦는다고 했었다.

진우는 지현이가 무리 없이 서울에 다시 잘 적응하는 듯 해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솔직히 자신의 일방적인 처사는 스스로도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바였다.

그때는 참을 수 없는 어떤 감정에 불안감까지 더해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본다

면 지현이의 의사를 무시한 독단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지현이는 마음이 무척 상해있었을 것이다.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하면 크게 마음이 상할 텐데, 하물며 그녀는 사실 어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솔직히 남자친구라 하여도 자신이 바람을 피웠던 경우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로 다시 데려온 이후, 진우는 지현이의 기분을 맞추려 많이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지현이는 아직 많이 우울해 하던 것 같았는데, 이제 예전 친구들과 다시 어울리다 

보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진우가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집안에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지..? ......  여보세요..?"

"저... 거기..  지현이네 집이지요..?"

낮선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누구니...?  나는 지현이 아버지인데..."

그때였다.

지현이가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선 것은..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전화기를 통해 무척 반가운 듯 한 그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흘렀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지현이 강릉에 있을 때 친구인.. 경민이라고 합니다..."

".......!"

순간 진우는 긴장을 하며 현관으로 들어서고 있는 지현이와 시선이 맞았다.

"......?"

지현이는 평소와는 다른 그의 시선을 보자 잠시 멈칫했다.

"저..  지현이 지금 있나요..?"

전화기 건너편에서 다시 그 경민이라는 남학생의 말소리가 들렸다.

"저한테 온 전화예요..?"

지현이가 진우의 표정을 보고 짐작을 한 듯 거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순간 왜 그랬을까?

진우는 왠지 모를 다급한 감정에 휩싸여, 전화기에 대고 그만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지현이.. 지금 집에 없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이야기하는데.. 다시는 지현이한테 전화하

지 말거라..."

그리고는 전화를 탁 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제 전화 맞죠..?"

놀란 지현이가 진우에게 뛰어와 말을 했다.

"알 거 없어..."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제 전화 맞잖아요..  어떻게 남의 전화를 그렇게 함부로 끊어

요..?  바꿔주지도 않고..."

"............."

"그런데..  누구였어요..?   ........!   호 혹시..!   경민이.. 경민이 맞지요..?"

진우는 대답을 회피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등위에서 지현이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너무 하시는 것 아니에요..?  그냥 전학간 친구에게 거는 안부전화일수도 있잖아

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끊어요..?   저.. 방학중에 전학을 시킨 일은.. 그래도.. 이해하

려고 했어요..  하 하지만.. 이런 건..."

진우도 자신이 왜 그런 유치한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어른답게 대범하게 행동하면 될 것을..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더욱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안해.. 나도 왜 이런지 모르겠어...  그런 유치한 행동이나 하고..."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아침식사를 끝내고 지현이가 식탁을 치우려는데 진우가 문득 이렇게 

사과를 하였다.

"........!"

지현이가 놀라서 진우를 바라보니, 그는 애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

려 주방 밖으로 나갔다.

지현이는 우두커니 서서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뒷모습에서 어떤 서글픔과 애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아빠...'

지현이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떤 연민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요즘 아빠에게 왠지 모르는 반발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아빠의 행동 때문 만인지, 아니면 사춘기 아이의 부모에 대한 반발심도 어느 정

도 작용했는지는 모르겠다.

전에는 아빠와 함께 있기만 해도 좋았는데, 이제는 이해는 하면서도 반발심이 먼저 앞섰다.

특히, 지난번 아빠의 처사는 아직도 너무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이럴까?

서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떨어져 있던 지난 기간이 어느새 서로의 마음까지도 멀어지게 한 

것일까?

그러나 동시에 아빠에게서 서글픔과 애수가 느껴지는 것은 지현이의 어떤 원죄의식 때문일

지도 몰랐다.

이 모든 일은 다 지현이 자신 때문이라는 원죄의식.

다 그 옛날의 거짓말 때문이라는 원죄의식.

그래서일까?

지현이의 마음은 어느새 아빠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아빠의 그 계속된 불안감과 민감한 반응들.

`아빠는 두려우신 거야..  나를 잃을까봐...'

그리고 사실 지현이 자신도 두려웠다.

`예전에는 그저 아빠를 바라만 봐도 좋았는데.. 함께 있으면 행복했었는데...  그런데.. 

왜.. 요즘에는.. 알 수 없는 미움의 감정까지 생긴 것일까..?'

`나는 나쁜 아이 같아..  아빠가 누구보다도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 사실은 나도 두려워...  이러다가.. 이렇게 지내다가..  이대로 아빠를 잃게 될까

봐...'

서로 서툴렀다. 

오랜만에 함께 살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

어찌된 것이 사람들이란 시간이 갈수록 타인을 대하는 것이 서툴러지는 것일까?

점점 진실을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커지기 때문일까?

"저.. 그럼 학교 다녀올게요..."

지현이가 인사를 하고는 급히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아직 꽃샘 추위가 남아있어 날씨가 쌀쌀했지만 어느새 봄이었다.

그리고 지현이는 여고에 진학했다.

진우는 베란다를 통해 길가로 나가는 지현이의 모습을 아련히 바라보았다.

16살의 지현이는 이제 싱그러운 성숙함을 빛내고 있었다.

얼굴은 아직 앳되어 보이지만, 어깨 밑으로 찰랑거리는 탐스러운 긴 머리와 그녀의 몸을 감

싸고 있는 짙은 감색의 교복은 지현이를 보다 성숙해 보이게 만들어주었다.

날씬함이 돋보이는 교복 상의의 허리 곡선이 주름진 교복 치마로 이어지며 여성스러움을 돋

보이게 해주었고, 그 밑의 날씬한 종아리와 가느다란 발목을 감싸고 있는 하얀 양발, 그리

고 예쁜 까만 구두는 여고생의 청순함을 한 것 빛내주고 있었다.

교복 밑에 숨어있는 16살 짜리 소녀의 육체는 이제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올라 있었다.

진우는 문득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사건이 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현이는 벌써 여고생이 되다니... '

`이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어느새 저렇게 컸구나...!'

`하긴.. 횟수 만으로만 따진다면 벌써 5년째인가...?'

"학교 생활은 어때...?"

진우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지현이가 옆에 앉자 궁금한 듯 물었다.

"그냥.. 괜찮아요...  솔직히.. 좀 걱정을 했는데...  고등학교는 어떨까 하고..."

지현이는 TV를 바라보며 그냥 무심코 대답을 하였다.

"응..?  당신.. 이미 한번은 고교를 나왔잖아..  그런데 뭐 새삼스럽게..."

"아...!  그 그러니까..   요즘에는 옛날과 많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아 그리고.. 이

제부터는 공부 부담도 크니까..."

지현이가 아차! 싶었는지 서둘러 무마했다.

"하긴..  옛날과는 다르겠지..."

진우는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넘어갔지만, 왠지 개운치 않은 기분의 지현이가 화제를 돌렸

다.

"아 참..  저.. 이번에 독서서클에 가입하기로 했어요..."

"독서서클..?"

"예..  말은 독서서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글쓰는 아이들 모임이에요..."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고...?"

"예..  강릉에 있을 때도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 모임은 좀 오래되었고.. 선

배들이나.. 실력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흠.. 그래..  어차피 글을 쓰려 했던 것이니..."

"그런데요..."

"응..?"

"아마 앞으로 서클 활동 때문에 좀 늦을 거예요..."

"아니.. 왜..?"

"우리 서클이 좀 성적되는 아이들 선에서 뽑는 모임이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좀 특별

히 관리를 하세요..  아마.. 저녁까지 부실에서 스터디 모임도 같이 할 것 같아요..."

"흐음.. 그래..!  어.. 생각보다 공부를 잘하는 모양이네...?"

"아니..! 그럼..  여태까지 제 성적도 모르셨어요...?"

"어차피 나는 성적표 검사 같은 거 안 하잖아...  아내 성적표를 뭐 하러 봐..."

"에.. 그래도..."

순간 지현이가 어이없다는 듯 "풋.."하고 미소짓고 말았다.

".......!"

진우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작게 동요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본 그녀의 편안한 미소였다.

`저런 미소를 전에 봤던 것이 과연 언제였었던가..?'

진우는 갑자기 그런 아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미약하나마 혹시나 하는 기대가 마음속 저편으로부터 들었다.

혹시나 이제는 서서히 지현이의 마음이 풀릴 수 있을까? 하는..

물론, 지금까지도 지현이는 겉으로는 큰 무리 없이 지내주고 있었다.

밖에서 본다면 그냥 평범한 일상.

그러나 진우는 아직 지현이의 마음속에 가리어진 알 수 없는 장막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지만, 진우 자신 때문에 생긴 그 마음의 장막.

그랬는데.. 

이제 진우는 다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져보게 되는 것이었다.

며칠 후,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 일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띠리리리...

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지현이는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 벨소리를 들었다.

"나 지금.. 욕실에 있어..  전화 좀 받아..."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지현이가 나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랬는데 전화기 건너편에서 오랜만에 듣는 낮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거기..  지현이네 집이지요..?"

".......!"

순간 지현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경민이었다.

작년 가을의 그 때 이후 처음 걸려온 전화였다.

그때 아빠가 그의 전화를 그렇게 끊은 이후, 경민은 다시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었고, 지현

이도 사과해야지 하면서도 차마 연락을 못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혹시..?  지현이니..?"

"으응..  나야..  오랜만이야..."

"지현이 맞는구나..  하..  저 정말 오랜만이야..."

경민은 지현이의 목소리를 듣자 약간 떨고 있었다.

지현이는 그 목소리를 듣자 왠지 작은 가슴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둘은 몇 달만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경민이 문득 이렇게 물었다.

"참..  지현이 너는 어느 학교 되었니..?"

"나.. 숙명여고...  너는..?"

"응..  나는 명륜고..."

"그 쪽으로 되었구나..."

"그래..  참.. 저..."

"왜..?"

"나.. 이번 주말에 서울에 가..."

".......!"

"엄마 심부름으로 둘째 삼촌댁에 다니러 가거든..  한 이틀.."

"그래...!  그럼 삼촌댁에서 묵을 거니..?"

"응.. 상계동이야..

"좀 멀구나..  우리집이랑..."

"으응.."

그리고 둘 사이에 약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경민이 그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좀 만날 수 있을까...?"

".......!"

순간 지현이의 작은 가슴이 조그맣게 뛰기 시작했다.

"지난여름에.. 방학중에.. 그렇게 갑작스레 네가 떠나서... 솔직히 무척 당황했어..."

"응..."

"그리고 더 당황했던 것은 네가 서울로 간 후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거야..."

"미안해..."

"아냐.. 사과할 필요까지는...  다만.. 지금이라도 듣고 싶어...  나에 대한 네 생각을...  

전화가 아니라.. 직접 만나서..."

".........."

"만나줄래..?"

지현이는 잠시 동안의 망설임 끝에 작게 대답했다.

"....... 그 그래..."

"다행이야..."

"저.. 하지만..  이번 주말에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내일 다시 연락 줄래..?"

"그래..  그리고 혹시 모르니.. 내가 묵을 곳 연락처도 알려줄게..."

"응..."

지현이는 경민이 묵을 연락처를 받아 적고 인사를 했다.

"그럼.. 내일 연락 줘..  그래..  안녕.. 그만 끊을게..."

지현이는 전화를 끊고도 한참 그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든 지현이는 앞을 보고는 그만 깜짝 놀랐다.

아빠가 욕실 문 앞에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다.

".........."

잠시 동안의 침묵 후 지현이가 말을 했다.

"다.. 들으셨어요...?"

"응..  필요한 내용들은...  미안해.. 엿들어서..."

"그렇군요..."

"만날 거야..?"

"친구를 오랜만에 보는 거예요..  그리고 먼 곳까지 오는 것이고..."

"나가지마.."

"왜요..?"

"몰라서 물어..?  나가면 그 녀석에게 대답을 해주어야 하잖아..  그 아이도 그것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찾아온다는 것일 테고..."

"하지만..  어떻게 안 만나요..? 멀리서 오는 친구를..."

"............"

"그냥 나가서.. 거절만 하고 올게요..."

"그래도 나가지마.."

"너무.. 마음대로 하시려는 것 아니에요..?"

"나도 걱정이 되어서 그래.."

"..........."

지현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지현이도 어렴풋이나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아빠의 마음을..

아빠는 지금 불안해하고 계시다.

지현이도 그렇게 아빠의 마음을 짐작은 하면서도, 그의 억압적인 태도에 갑갑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약간의 반발심에 이렇게 말했다.

"싫어요.."

"나가지마.."

"저 만날 거예요..  제발.. 허락해 주세요..."

"만약에 당신이..  정말 나를 남편이라 생각해 준다면..  이번 일은 내 뜻대로 해줘..   부

탁이야..."

그러나 지현이는 그런 말까지 하는 아빠에게 정말 서운한 감정이 일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

"결국..  저를 못 믿으신다는 것 아니에요..?"

지현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 .........  정말이지.. 작년 여름과 하나도 변한 것이 없으시네요..."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왜 또 이렇게 된 것이지?

다시 잘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 왜 또 이렇게 변하고 만 것이지?

왜 스스로도 무리인 줄 알면서 아내에게 그런 고집을 피운 것이지?

그냥 아내를 믿고 그녀가 알아서 처리하게 맡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아니 그러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를 내보내면 이대로 잃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그 왠지 모를 불안감이 진우의 눈을 순간 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일이 엉키고 마는 것이지?

지현이는 자기 방에 들어와서 침대 위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하얀 볼 위로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말.. 너무하셔..  아빠는..'

지현이는 무엇보다 자신을 못 믿어주시는 아빠에 대해 야속함이 느껴졌다.

지난 가을이후 그 동안 스스로 아빠를 이해하려 애를 쓰며 잘 지내려 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아빠도 나름대로 노력하신다는 것을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지만..

아빠는 어떤 불안감 때문인지? 자꾸 자신을 가두고 속박하려 하시고, 자신은 그런 아빠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반발심이 일었다.

여자아이는 어느새 자유롭고 싶어졌다.

`아빠의 마음은 알지만..  그러나 이런 것은 옳지 않아...'

그러다 지현이는 문득 경민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은 과연 그를 사랑했던 것일까?

그를 사랑함에도 아빠 때문에 의무적으로 헤어져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실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

지현이는 한참 동안이나 곰곰이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의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어쨌든 경민과는 만나야 했다.

경민과의 일은 정리해야 할 부분이라 하더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예의이고, 그

리고 아직 경민에 대한 조금의 감정이 남아있기도 했다.

다음 날 지현이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 경민의 전화를 기다리느라 초조했다.

전화가 올 때마다 화들짝 놀라고는 했다.

'아빠가 퇴근하시기 전에 전화가 와야 할 텐데...'

그렇게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지현이는 망설이고 있었다.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경민이는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 전화가 한 통 왔다.

"안녕.. 나야..."

이번에는 경민이었다.

지현이는 경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차마 거절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응.. 그래..."

"그래.. 일요일 점심 때..  그러니까 1시에.. "

"강남역 시티극장 앞에서 만나.."

지현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들을 하고는 끊었다.

그녀의 손에는 약속 장소를 메모한 메모장이 하나 남겨져 있었다.

"어..! 마침 오는구나.."

금요일 방과후 독서부 부실에 내려가자, 문 앞에서 마주친 2학년 선배 언니 한 명이 지현이

를 보더니 말을 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언니.."

그 선배 언니는 싱긋 웃더니 앞에 서서 이야기를 했다.

"너.. 이번 일요일에 시간 있니..?  오후에..."

"일요일이요..?"

"이번 일요일에 부장이 1학년들 데리고 신입생 환영회 한다고.. 자기 집으로 초대한 데.."

"신입생 환영회요..?  부장 언니 집에서요..?"

"왜 지난번에..  미술부 애들.. 학교에서 신입생 환영회 하다가 사고 쳤잖아...  그 때 선

생님들한테..  좆나 깨지는 바람에 다른 부들까지 피해를 봤잖아..."

"예..."

"그래서.. 그 때 신입생 환영회 못한 게.. 부장이 무척 아쉬웠나 봐..  원래 걔.. 노는 건

수 안 놓치는 애거든.."

"그런데 집에서 해도 되요..?"

"응.. 그날 부모님이 어디 가시나 봐..  그리고 쪼옴 살거든.. 부장네가...  뭐.. 여차하면 

딴 데로 새지 뭐..  어쨌든지.. 너 시간 되는 거지..?   2시쯤인데..."

지현이는 선배 언니가 묻자 잠시 머뭇거렸다.

"저.. 그날 점심 때..  1시쯤에 선약이 있긴 한데요..."

"그러니..?  중요한 약속이야..?  웬만하면 다음으로 미루면 안돼..?"

"저어..  멀리서 오는 친구라서요..."

"그러니..?  이런.. 모두 모여야 하는데..."

"죄송해요..  언니.."

"할 수 없지.. 뭐..  그럼.. 그 친구하고 약속 끝난 뒤에라도.. 늦지 않았으면 일단 들

려..."

"예.."

지현이는 일요일에 약속이 겹쳐 버리고 좀 난감했다.

`어쩌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사실 지현이는 경민과 약속을 한 뒤에도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멀리서 오는 친구를 만난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솔직히 자신을 못 믿어주시는 아빠의 태도

가 어린 마음에 서운한 나머지 약속을 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현이는 아빠의 단호하셨던 태도가 끝내 마음에 걸렸다.

`아빠가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셨는데..  이대로.. 경민이를 만나도 되는 것일까..?'

`사실.. 아빠가 반대하시는 이유를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어쩌면 아빠 입장에서는 당연

한 것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들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독서부의 모임 약속도 겹쳐버린 것이다.

아빠의 말을 무시하고 경민을 만나기에도 왠지 마음에 걸렸고, 그렇다고 멀리서 온 경민을 

안 만나기에도 망설여졌던 지현이는, 독서부의 약속으로 다른 구실이 생겨버리자 난감하면

서도 한편으론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는 부질없는 핑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요일 아침. 결국 지현이는 이날 아침까지도 망설임을 거듭했다.

그러나 오전 11시가 가까워지자 그녀는 겨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전화를 해주지 않고 늦어버리면 경민이 약속장소로 떠날지도 몰랐다.

`그래..  아빠 말씀을 따르는 것이 나을지 몰라...  어쩔 수가 없어...'

이렇게 스스로 핑계를 만들었지만, 사실은 지현이도 이제 와서 경민의 얼굴을 마주보기 두

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현이는 경민을 직접 만났을 때, 과연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었다.

지현이는 메모장을 뒤져 전에 받아 적었던 경민의 연락처를 찾았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하려하자 전화기를 쥔 손이 작게 떨려와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

`경민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도.. 내가 약속을 취소할 수 있을까..?'

지현이가 겨우겨우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전화기를 통해 처음 들려온 것은 낮선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

"여 보 세 요...?"

"저... 혹시..  경민이 있나요..?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인데요.."

지현이의 가슴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경민이 전화를 건네 받기 전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현이에게는 아득히 느껴졌

다.

그리고 전화기 건너편에서 경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경민인데요..."

순간 지현이는 떨리는 마음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여보세요..?   지현이니..? 맞지..?"

"으응..  나.. 나야..."

그렇게 지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미 미안해..  나 오늘 못나갈 것 같아..."

그러자 저쪽에서 들리는 경민의 목소리가 뭐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

다.

그저 지현이는 이렇게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이제..  이제 나한테.. 연락하지 말아 줘..."

" .......  사정이 좀 있어..  .......  너한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야..."

"너와.. 사귈 수가 없어..."

"사실은 널 좋아했던 것이 아닌 것 같아..  그저 네 친절한 마음에 감동했을 뿐.. 하지만 

그것은 사랑과는 다른 거야...  언젠가 너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힐 것 같아..   지금 헤어

져..."

" .....  미 미안해..."

그렇게 지현이는 목이 메이는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힘없이 전화를 끊은 지현이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그 다음날 월요일은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이었다.

그 비는 어제 일로 울적했던 지현이의 마음을 하루 종일 이어지게 만들었다.

"비가.. 하루종일 올 모양이네.."

방과후 복도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지현이가 문득 들리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국어

선생님이 서 계셨다.

독서부 지도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 선생님이셨다.

"오늘 좀 울적한 모양이구나..."

"예..  그냥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기운 내..  그리고 부실에 내려가서.. 이따가 들린다고 전해

라.."

"예..."

지현이는 걱정해주시는 선생님에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부실로 내려왔다.

부실로 내려가 보니, 아이들이 어제 신입생 환영회 때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돌려보

며 웃고 있었다.

"어..!  지현이 왔구나..  이리 와봐..  네 사진도 있어.."

"응..?  어제 못 보던 사진이네..."

"부장 언니가 몰래 찍은 스냅이래..."

"그렇구나.."

지현이는 그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쓸쓸하면서도 애써 즐거운 표정을 꾸미던 있던 한 여자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어.. 지현이 왔구나..  너 전에 이야기한 원고 써서 가져왔니..?"

그때 선배언니 한 명이 지현이를 보고 물어보았다.,

"예..?  아.. 그거요..  잠시만 요.."

지현이는 원고를 찾기 위해 책가방을 뒤져보기 시작했지만, 웬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어..?"

"왜 그래.."

"어쩌면 좋아..  집에 놓고 왔나 봐요.."

"어..!  야 그러면 어떡해..  이따가 선생님 오시면 제출해야 하는데..."

"아.."

"그럼.. 빨리 집에 가서 가져와라...  한 40분 정도면 돼..?"

"예.. 그 정도면 다녀올 수 있어요.."

"그럼.. 내가 선생님한테 말씀드릴 테니..  빨리 다녀와..."

"예..."

지현이는 급하게 학교 건물을 나와 비가 오는 운동장을 우산을 쓰고 뛰어나갔다.

요즘 들어 일손이 잡히지 않던 진우는 좀 쉬고싶어 먼저 퇴근을 했다.

왠지 술을 좀 마시고도 싶었지만, 오후부터 벌써 마시기도 그렇고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진우가 집에 들어서자 집안에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그는 확인을 위해 무심코 지현이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렇게 문을 닫고 나가려던 진우는 문득 다시 방안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낮선 풍경이 된 그녀의 방.

그러자 왠지 알 수 없는 아릿한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방으로 들어와 그 안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지현이의 방에 들어와 차분히 둘러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지현이가 중2 올라올 때 이후에는 처음인 것 같았다.

그 사이 방안의 풍경도 조금씩 변해 있었다.

이제 그녀의 방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조금씩 성숙한 소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있었

다.

진우는 지현이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쓸어보았다.

그렇게 어떤 향수 어린 감정으로 지현이의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문득 덩그러니 놓

여있던 메모장에 시선이 갔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메모장.

아마도 깜박 잊고 놓고 간 듯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작은 종이조각들.

순간 진우는 그 메모장에 호기심이 일었다.

저 작은 종이조각들 안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까?

아마 작고 사소하겠지만 지현이의 흔적들이 담겨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아가 그 메모장을 펼치고 있었다.

사실 지현이의 비밀을 엿보려는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너무 오랫동안 지현이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했고, 점점 두 사람의 공감대가 적어진다는 

안타까움에, 요즘 지현이가 지내는 모습의 흔적이나마 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이런 말은 좀 우습지만, 그것이 사소해 보이는 메모장이 아니라 만약에 다이어리 정도만 되

었어도, 진우는 아마 그것을 볼 엄두를 못 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메모장을 뒤적이던 진우는 어느 순간 동작을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눈앞의 작은 종이 조각에 고정되어 있었다.

`경민이. 일요일 오후 1시. 시티극장 앞.'

이것이 메모장의 한 페이지에 적혀있던 내용이었다.

진우의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현이의 방을 나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분명히..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었는데...'

더구나 어제의 경우, 외출하던 지현이에게 어딜 가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때 지현이는 분명히 독서부 선배 집에 간다고 했었다.

`그럼.. 지현이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리고 그 녀석을 만나러 간 것일까..?'

진우는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이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렇게 묵묵히 앉아있었다.

지현이가 현관문으로 들어선 것은 진우가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앉아만 있을 때였다.

"어.. 왠일이세요..?  벌써 집에 계셨네요..?"

"..............."

지현이가 들어오다가 뜻밖이라는 듯 물었지만, 진우는 굳은 얼굴로 앉아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급했던 지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만, 무얼 찾아서 다시 나

가려 했다.

"또 나가니..?"

그때서야 진우가 지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  깜박 잊고 갔던 독서부 과제가 있어서요..  급해요..."

"그 이야기는 정말이야..?"

"예..?"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던 지현이가 순간 멈칫하며, 무슨 소린가? 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독서부 일이냐고..?"

"그게 무슨..?  거짓말이라뇨..?"

"어제처럼 말이야..  당신 어제..  독서부 선배네 집에 간다고 나가고서..  사실은 그 경민

이란 녀석 만나러 간 것 아냐..?"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기 메모장에 약속이 적혀있잖아..  어떻게 된 거야..?"

"아...!  서 설마.. 남의 책상을 뒤지신 거예요..?"

지현이가 깜짝 놀라서는 진우 앞으로 뛰어왔다.

"내가 그렇게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제 책상을 뒤지신 거냐구요..?"

"그런데도.. 다른 곳에 간다 거짓말까지 하고.. 그 녀석을 만나..?"

"아...  이 이제는..  제 책상까지..  함부로 뒤지시나 보죠..."

지현이의 숨결이 어느새 거칠어지며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것은 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

"..................."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작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이윽고 진우가 다시 지현이를 뚫어지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어제..   그 녀석을.. 만난 거야...?"

"그런 것..  남의 방.. 함부로 뒤지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일부러 뒤진 것이 아냐..."

"일부러 뒤진 것이 아닌데..  내방 책상 위에 있던 메모장을.. 왜 보신 거예요..?"

"어쨌든 당신은 나를 속인 거 아냐..?  이야기 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야기하라니까..."

진우의 언성이 높아졌다.

순간 지현이는 울컥하는 심정이 들었다.

"그래 나갔어요..  그냥.. 멀리서 온 친구 만나는 것인데..  그게 뭐 어때요..."

그녀는 아빠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그만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  여 역시..  그런.. 거야..?"

지현이의 확인을 받자 진우의 목소리는 어느새 떨리고 있었다.

`아...!'

순간 지현이의 얼굴에는 후회하는 빛이 미세하게 감돌았다.

이전에도 그랬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괜한 반발심으로 말해놓고는 마음속으로 후회하는 것이다

"저..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요..."

지현이는 얼굴이 붉어진 채 진우를 외면하며 현관문으로 나가려 했다.

"나가지 마..."

"잠깐 뭐 챙기러 들어왔단 말이에요.. 지금 가야 해요..."

"안 돼.. 이야기를 계속 해..."

"왜 이러세요.. 정말..."

"왜 이러는 지 몰라서 물어..?"

지현이는 자기 마음속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더욱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으시잖아 요..."

"무슨 소리야..?"

"그 여자 이야기 말이에요..."

그때 지현이가 주희의 일을 거론하며 아빠에게 따졌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 지난 일을 가지고..  벌써 2년 전 일인데..."

"저야말로 지난 일인 줄 어떻게 믿어요..?"

"뭐...?"

"혹시.. 나 없었던 동안..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찰싹..

"아앗..."

"........!"

순간적으로 진우의 손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뺨을 맞은 지현이나, 때린 진우나, 모두 지금의 사태에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

을 뿐이었다.

"이 이런..."

"아..."

지현이도 그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이 심한 소리를 했다는 것을 알고는 곧 후회가 되었었다.

그러나 아빠에게서 난생처음 뺨을 맞았다는 충격이 더 컸다.

잠시 넋이 나가있던 지현이가 곧 눈물을 흘리며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흐 흐흑..."

지현이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깥을 우산도 없이 뛰쳐나갔지만, 진우는 따라가 붙잡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손을 붙잡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진우도 자신이 지현이를 때렸다는데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내가 아내를 때리다니...'

`이 이런..  최악이다...'

사람이란 이렇게 약한 것일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서로 상처 입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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