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웅~
갑옷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동시에 육중한 둔탁 음이 들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르티어스 기사단원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발큐리아스 기사단들이 갑옷 안에 끼어 입은 옷이라는 것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보기만 해도 아찔한 가죽옷을 입었는데 그 옷은(아니 옷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그것은) 슬링 샷 이른바, 슬링 비키니라 불리는 난잡하게 생긴 아찔한 가죽옷이었다. 안 그래도 빼어난 미모와 몸매를 가진 발큐리아스 기사단원들의 몸이 거의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옷을 걸치자 아르티어스 기사단은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가슴이나 치골에 걸친 천쪼가리를 슬쩍 보이기만 해도 유두나 보지 둔턱이 보일 정도였으니 말 다한 것이다.
“어찌 저런 파렴치한 복장으로 있을 수 있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가?”
글로둔 백작은 가면 갈수록 상상을 초월하는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작태를 보고 기가 막혔다.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이런 추운 계절에도 불구하고 잘도 그런 살색 많은 옷을 입었는데 사실 그녀들이 걸치고 있는 가죽 슬링 비키니는 추위의 내성에 대한 마법이 걸린 옷이었기 때문에 이런 옷을 입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그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추운 북쪽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복장을 입었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굳이 이런 복장을 한 이유는 좀 더 공격적이고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중갑을 해제하는 것과 또 한 가지는 바로 미인계를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이, 이런.”
“...”
아르티어스 기사단원들은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면서 귀족자제들로 구성된 만큼 이런 선정적인 옷을 입은 여성을 본 일이 없었다. 게다가 발큐리아스 기사단원들은 하나같이 미소녀, 미녀들에 몸매하나는 죽여줬으니, 평소에 죽어라 검에만 매진하고 여자에 대한 내성이 없던 아르티어스 기사단원들에게는 그야말로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남자들이 대부분인 대륙의 기사단들에게 이런 미인계를 자주 사용했고 이에 자신들의 미모도 크게 한몫을 한다는 것을 자신들이 더 잘 알았다.
덕분에 실력에 있어서 만큼에 타국의 기사단에 견주어 뒤지지 않을 아르티어스 기사단원들은 발큐리아스 기사단원의 맹렬한 공격에 맥을 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야. 이 녀석들. 아랫도리를 크게 부풀려 대고 전혀 못 움직이네. 풋내기 놈들.”
“이제까지 잘난 행세를 해 왔어도 여기 제니오디 영토에서는 어림없다.”
발큐리아스 기사단들은 그렇게 외치면서 아르티어스 기사단들을 점점 한 곳으로 몰아 넣었다.
“이런 더러운 술수를 쓰다니. 더러운 창녀 같은 년들. 당황하지마라! 대열을 유지해라!”
그러자 글로둔 백작이 아르티어스 기사단의 이변을 눈치 채고 서둘러 명을 내렸다. 역시나 명물허전의 제국 제일의 기사단답게 아르티어스 기사단들은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아찔한 미인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자리를 잡으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때 호수 옆의 숲속에서 발큐리아스 기사단원들이 양옆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매복해 있던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아르티어스 기사단들이 서 있는 얼음바닥에 다가서서 무거운 망치를 꺼내 들더니 얼음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쩌적~
그러자 얼음 바닥이 쪼개지면서 몇몇의 아르티어스 기사단이 차가운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으아악! 뭐야 이건!”
“바닥이 무너진다!”
이것은 얼어붙은 호수 중 그 단면이 얕은 곳을 알아내어 미리 얼음 바닥을 더더욱 얕게 만들어 준비해 둔 다음 적들이 그 포인트에 도착하면 그 포인트에 강한 충격을 주어 호수에 빠트리는 함정인 것이었다. 덕분에 아르티어스 기사단의 반수가 말과 무거운 중갑을 걸친 채 함정에 걸려 차가운 호수에서 허우적댔다.
한 겨울의 차가운 호수에 빠진 아르티어스 기사단들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했다.
함정에 걸리지 않고 무사한 기사들은 빠진 기사들을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무거운 중갑을 입고 빠진 터라 쉽지가 않았다. 글로둔 백작은 패닉상태에 빠지면서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함정에 빠진 그들을 처치하려고 다가오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백작님.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뭣이!”
그때 아르티어스 기사단의 뒤 쪽에서 한 무리가 나타났다. 글로둔 백작은 부관의 말을 듣고 긴장하며 또 다른 복병인줄 알고 크게 놀랐지만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 깃발은... 로제스 황태자.”
그 무리의 깃발은 바로 아르트제 제국의 깃발. 로제스 황태자와 알제르 기사단들이 때 마침 아르티어스 기사단을 지원하러 온 것이다. 원래 마을에서 구호 활동을 계속 할 생각이었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음을 느낀 로제스는 알제스 기사단의 1/3을 차출하여 아르티어스 기사단을 따라 온 것이다.
“물속에 빠진 녀석들은 빨리 갑옷을 벗어! 남아있는 녀석들은 주위의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베어 그것으로 구조를 한다!”
로제스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알제르 기사단과 남아있는 아르티어스 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다가오는 발큐리아스 기사단을 막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돌격했다.
알제르 기사단과 호수에 빠지지 않은 아르티어스 기사단은 명에 따라 서둘러 구조 활동을 시작했으며 로제스를 뒤 따라온 딘저와 그래드 그리고 함께 로제스를 따라 온 에리나가 로제스의 돌격에 합류했다.
“로제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그건 그렇고 끝내주는 복장의 언니들인데?”
“잔소리 말고 저하의 뒤를 따라라. 딘저.”
“로제스, 기다려. 혼자서는 무모하다고.”
하지만 로제스는 여유롭게 발큐리아스 기사단들을 상대하며 오히려 그녀들을 압도했다. 제국 내에서는 그저 제국의 제일가는 호색가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 별명과는 다르게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검사답게 발큐리아스 기사들을 유린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검술을 펼치면서 동시에 손과 발을 이용한 박투 술을 사용하여 발큐리아스 기사단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싸울 수 없는 녀석들은 꺼져! 여자는 웬만하면 죽이고 싶지 않다!”
챙 챙챙~
퍼억~ 파박~
혼자 적진 속에서 투박하고 내용 없어 보이지만 확실하게 적을 제압해 가는 로제스의 모습을 본 그래드는 새삼 로제스의 무용을 깨달았다. 마치 기사다 되기 전 부랑아 시절 때 본 붉은 악동 로제스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역시, 너는 정말 대단한 놈이다. 내가 이 한 목숨을 맡길 수 있는 남자답다.”
그래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로제스 곁에서 엄호를 하였다. 수십이나 되는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고작 몇 명의 방어로 아르티어스 기사단을 치지 못하고 발이 묶여 버렸다.
아니 오히려 이번에는 그 몇 명에게 위세가 뒤져 이번에는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전멸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구조 활동을 어느 정도 끝마친 알제르*아르티어스 기사단이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발큐리아스 가사단의 위기였다.
‘이런 제길. 고작 몇 명에게 우리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이런 위기를 겪다니...‘
그녀들의 리더는 분통함을 삼키고 결국 후퇴명령을 내렸다.
“후퇴! 후퇴하라!”
그녀들의 리더는 후퇴를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적진 깊숙이 들어오자 못해 아예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후방으로 돌아가 후퇴경로를 막고 있는 로제스들 때문에 후퇴가 쉽지 않아보였다.
앞에는 벌써 알제르*아르티어스 기사단이 도착하여 난전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기세가 오른 로제스가 통쾌히 외쳤다.
“이 버릇없는 언니들의 엉덩이를 걷어 차 주자! 이대로 집에 보낼 수는 없지!”
“오오오오!!!”
기사들은 표호하면서 방금 전에 당한 수모를 갚으려는 듯이 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이 발큐리아스 기사들과 격돌했다. 아대로 가다가는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전멸이다. 적어도 이 사실을 제니오디 왕국과 기사단장 세리오트에게 알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포위 돼서야 방법이 없다. 그녀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절망에 빠져 있는 그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분대장님. 저길 보십시오. 세리오트님이...”
그 말에 그녀들의 리더가 로제스가 막고 있는 후방을 주시하자 저 멀리서 수많은 말무리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백은의 왕녀기사 세리오트. 그녀가 남아있는 모든 발큐리아스 기사단들을 이끌고 그녀들을 구원하러 온 것이었다. 그녀들은 살았다는 안도의 표정을 보였지만 반대로 로제스는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동시에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소문의 기사왕녀 세리오트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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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일단 떡신이 없습니다. 떡신 기대하신 분들 죄송여...-_-;; 대신 외전 -쿠테일의 하루-를 준비했으니 그것을 봐 주시길 바랍니다. ㅎㅎ
요즘들어 집안에 일도 있고 글도 은근히 안 써져서 슬럼프여서 쭉 놓고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 보면 자기가 원하는 퀄리티의 글이 안써져서 고민하다가 연중하고 그러시던데 딱 제가 그 고비네요. (써 놓은 비축분도 없고)
간신히 텐션 회복해서 이래저래 써 봤습니다. 내용은 다 짜놨는데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역시나 어렵군요. 일단 연중 안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여신 아이누의 전생, 발큐리아스 뱅가드의 기사단장, 백은의 기사왕녀라 불리는 세리오트 왕녀의 별명이다. 그런 세리오트 왕녀가 드디어 로제스의 눈앞에 서 있었다.
과연 소문대로 얼음으로 미녀의 조각상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이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으며 당당하고 냉정했다. 그리고 세리오트에게는 무언가 로제스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비유하자면 마치 높은 벼랑에 홀로 피어있는 꽃을 꺾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었다.
세리오트와 발큐리아스 뱅가드 전원이 도착하자 로제스들은 공격을 멈추고 그녀들을 견제했다. 그리고 백은의 기사왕녀 세리오트가 로제스에게 말했다.
“당신이 바로 아르트제 제국의 황태자 로제스인가?”
“그러면 네가 바로 소문의 기사왕녀 세리오트겠네. 소문대로인데.”
두 사람은 서로 통성명을 하는 가운데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그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과도 같은 탐색이 이루어졌다. 로제스는 유심히 세리오트의 전신을 훑어봤다. 신비로운 은발, 기품 있고 강단 있어 보이는 자태, 그리고 전투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연한 적색의 눈동자와 로제스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큰 키에 그리고 왕녀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럽게 몸에 밴 고고한 행동거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제스는 그녀의 가슴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예리하게 눈치 챘다. 비록 두터운 중갑으로 몸매를 가리고 있었지만 가슴이 큰 여성들은 늘 어깨 결림으로 고생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어깨에 부담이 가지 않는 자세를 취한다는 것을 수많은 여자를 품어본 로제스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세리오트의 가슴이 흔히 말하는 거유라는 것을 대번에 눈치 챘다.
‘음, 정말 쿠테일이나 에리나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미인이구나.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역시 다른 이들과는 다른 매력이 돋보인다.’
그렇게 속으로 세리오트를 품평한 로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쪽이 피해자인 만큼 문제제기를 해 줘야 갰군. 여기 있는 너의 부하들이 하얀 로브로 모습을 감추고 우리 아르트제 제국 민들의 영토를 습격하며 제물을 약탈해갔다. 이에 대해 뭐라도 할 말이 있나?”
로제스가 이미 국제적인 문제로 번진 북쪽마을 약탈 건에 대해서 말을 하자 세리오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게 한 동안 대답이 없다가 세리오트는 말에서 내려 로제스에게 다가간 후 정중히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사과하겠어. 죄송하다.”
세리오트의 깍듯한 태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놀랐다. 그도 그럴 듯이 국가 간의 문제가 벌어진 경우에는 누가 잘못을 했던 간에 먼저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잘못을 했더라도 일단 큰소리를 치고 봐야 나중에 유리한 것이기 때문에 기선제압 차원에서 먼저 사과하는 행위는 좋지 않다.
또한 세리오트는 로제스들이 본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저열한 이미지하고는 딴판이었다.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대륙에서 통하는 기사도 정신이 없는 자들이라면 반대로 이 기사왕녀 세리오트야 말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진정한 기사인 것이다. 로제스는 겉모습이 아름답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품도 올곧음을 알고 조금은 감동했다.
“그렇게나 잘못 했다고 인정한다면 너희들이 지금 순순히 우리에게 투항하는 것이 이치 아니겠나?”
그때, 뒤에 있던 글로둔 백작이 나서서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역시 국가 간의 알력싸움에 대해 잘 알듯이 세리오트의 정중한 사과를 발판으로 지금 상황을 유리하게 잡으려는 것이다. 로제스는 내심 이런 아름다운 미녀와의 대화를 방해한 글로둔 백작에 대해 심술이 났다.
‘거참. 이야기 좀 나누게 내버려둘 것이지. 저 아저씨는...’
한편 글로둔 백작의 말을 들은 세리오트의 표정이 다시 처음과 같이 냉정하고도 무언가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귀하의 나라에 침입하고 힘없는 제국 민들을 대상으로 약탈을 한 것은 죄송하다.”
그리고 세리오트 왕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귀하의 의견을 들어줄 수 없다. 나는 제니오디 왕국의 왕녀. 그리고 발큐리아스 뱅가드의 기사단장으로서 우리 단원들을 구해야할 의무가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제니오디 왕국의 여왕폐하의 검이다. 검은 오로지 주인의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 나 자신이 원치 않지만 여왕폐하께서 원하신다면 그 일을 행한다.”
백은의 기사왕녀 세리오트는 그 말과 함께 등에 차고 있는 거대한 검을 뽑았다.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대검은 검신만 해도 1m는 족히 넘고 검신의 넓이도 사람 머리 크기만 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이었다. 보통 여자의 힘으로 아니 힘 좋은 장사의 손으로도 들 수 없는 무게의 검을 세리오트가 쉽게 한 손으로 들어 올린 것을 보니 그 검의 정체는 신화에 전여신 아이누가 신화의 마수 루비아탄을 무찌르는데 사용했다는 제니오디 왕가에 내려오는 마법검 아이시클 소드가 분명했다. 그리고 세리오트는 그 대검을 로제스에게 겨누며 계속 말했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당신들에게 죽을 위험에 처해있는 우리 단원들을 구하고, 더불어 오늘 일이 타국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말은 곧 여기 있는 아르트제 제국의 모두를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다. 로제스는 그 말을 듣고 마음에 든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같이 검을 뽑았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 재미있지. 어디한번 백은의 기사왕녀님의 검술실력 좀 보자고.”
로제스 역시 검의 길을 걷는 검사답게 세리오트의 도발에 응했다. 지금의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수는 알제르*아르티어스 기사단의 수보다 많았다. 당연히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전원이 전부 모였고 이쪽은 본국에서 소수만 파견 나왔기 때문에 그 수가 적다. 이대로 기사단 간의 전투가 벌어지면 수에 밀려 백전백패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지금은 후퇴하는 것이 답이다. 그리고 로제스는 자신이 나서 세리오트의 앞길을 막음으로서 그 퇴로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글로둔 백작님. 후퇴지휘를 맡아 주시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전원 서둘러서 후퇴한다. 전원 후퇴.”
글로둔 백작 입장에서는 이미 적들의 전술에 농락되어 패한 장수의 입장이고 로제스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입장임으로 순순히 로제스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그래도 로제스를 방패막이 삼아 달아나는 것은 기사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글로둔 백작은 명령을 내린 후에 로제스와 같이 남아 있으려 했다.
“로제스 저하. 저도 같이 남아 돕겠습니다.”
하지만 로제스는 싱긋이 웃었다.
“그러지 마세요. 당신들을 보내고 나 혼자 죽겠다는 것이 아니고 퇴로를 지키는 사람이 많으면 나중에 도망가기 힘들어서 그럽니다. 안 죽을 테니까 걱정 말고 이곳에서 벗어나세요.”
그 말에 글로둔 백작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로제스 황태자님. 무운을.”
로제스는 그렇게 기사단을 후퇴시키면서 다가오는 발큐리아스 기사단과의 전투를 준비했다. 로제스의 곁에는 에리나와 그래드, 딘저, 그리고 소수의 알제르 기사단만이 남아서 퇴로를 확보하기로 했다.
알제르 기사단은 비록 아르티어스 기사단처럼 무용이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대신 적의 공격을 피하고 도망가는 재주 하나는 알아주었다. 아르트제 제국의 기사단 중 가장 강력한 기사단은 단연 아르티어스 기사단이었지만 기동력에서는 알제르 기사단을 능가하는 기사단은 없었다.
다다다다!!
먼저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세 사람이 로제스에게 다가가 공격을 가했다.
“건방진 제국의 황자놈. 각오!”
채챙~~
그러자 로제스는 가볍게 검을 받아 넘기고는 한명을 그대로 종아리를 걷어 차 넘어뜨리고 다른 한명은 검을 들어 막는 동시에 주먹을 복부에 내질러 날려버렸으며, 그 동작을 이어 검의 옆면을 마치 야구방망이 삼아 나머지 한명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이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순식간에 진행되자 발큐리아스의 세 기사는 그야말로 한 동작으로 쓰러졌다.
털썩~
“이, 이럴 수가...”
“이렇게나 허무하게...”
방금 전의 세 기사는 발큐리아스 분대 내에서도 2~3위 정도의 실력을 갖춘 베테랑 기사였는데 그런 베테랑 기사를 죽이지도 않고 순식간에 때려눕힌 것이다. 쓰러진 기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로제스의 공격을 받아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 가쁜 숨을 내쉬었다.
“자, 빨리빨리 덤비라고 언니들. 어디 그 잘난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무용을 보여 달라고.”
로제스는 밑에 쓰러진 발큐리아스 기사단을 신경 쓰지 않고 손짓을 하며 말하면서 공격 태세를 갖추는 300명에 달하는 발큐리아스 기사단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것은 마치 굴러오는 마차바퀴에 맞서는 사마귀와 같은 당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발큐리아스 기사단들은 방금 전의 로제스의 검술실력에 기세가 눌려 섣불리 진격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를 틈타 아르티어스 기사단은 서둘러서 호수를 벗어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르티어스 기사단을 놓쳐 이 일이 밖으로 새 나갈 것임을 깨달은 세리오트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로제스를 상대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당신의 상대는 나 인 것 같군. 로제스 황태자.”
그러자 로제스는 상큼하게 마성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세리오트 누나. 빨리 나와 한번 겨뤄보자고. 헤헤.”
로제스가 세리오트를 누나라고 부르면서 장난스럽고도 천박하게 말했지만 세리오트는 묵묵히 그 말을 받아드리며 발큐리아스 기사단에게 명령했다.
“황태자는 내가 막을 테니 전 병력은 아르트제의 기사단을 추격한다!”
“알겠습니다!”
이 말에 모든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말 위에 오르며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 아르트제의 기사단을 추격하려 했다.
“그걸 우리가 넋 놓고 보고 있을 소냐!”
“우리들을 잊으면 섭섭하지 언니들.”
그때 그래드와 딘저, 그리고 알제르 기사단이 나서서 그녀들의 앞을 가로 막았다. 딱 봐도 다수 대 소수의 상황이라 불리하기 그지없는데도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그녀들의 추격 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들은 뭐라도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지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당당했다. 그리고 그 믿는 구석이 무엇인지는 에리나를 통해 금방 들어났다.
“에리나 왕녀님. 시작해 주십시오.”
“알겠다고! 타올라라! 파이어!”
그래드의 말에 에리나가 대답하며 전번에 로제스와의 대결에 썼던 화염구 세례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 대상은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아니라 바로 얼어붙은 호수 바닥이었다.
펑~펑~펑~
에리나의 화염구에 꽁꽁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차가운 호수 물을 들어냈다. 이에 알제르 기사단은 2인 1조로 행동하면서 구멍 난 호수바닥을 이용하여 발큐리아스 기사단을 견제하였다.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비록 말을 타고 있었지만 기마실력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기에 잘못 헛딛으면 차가운 호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자고 말에서 내려 싸우자니 도망간 아르트제 기사들을 쫓기 위해 말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들로선 도저히 호수를 건널 방법이 보이지를 않았다.
“제길, 저들 중에 마법사가 있었을 줄이야.”
또한 에리나가 호수 바닥에 적절히 구멍을 내고나서 본격적으로 견제공격에 들어가자 추격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한동안 알제르 기사단과 발큐리아스 기사단간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 드디어 로제스와 세리오트간의 전투가 시작됐다.
“타앗!”
먼저 선공한 것은 세리오트였다. 세리오트는 거대한 대검을 마치 젓가락 휘두르듯 한 손으로 내려찍기를 가했다.
쿠웅~
세리오트의 마법검 아이시클 소드가 호수바닥과 닺으면서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간발의 차이로 황급히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한 로제스가 말했다.
“휴우. 설마 했는데 저 검은 역시 마법검 이었나? 방심하다 골로 갈 뻔했네.”
세리오트의 마법검 아이시클 소드는 주인을 선택하는 마법검인 모양이었다. 저런 마법검은 주인 이외의 자에게는 손잡이를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반대로 주인에게는 무게에 대한 딜레이를 받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때문에 무게가 저렇게 무거운데도 세리오트가 여자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한손으로 저 대검을 가볍게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차 세리오트의 검격이 이어졌다.
부웅~ 부웅~
육중한 대검이 이리저리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쏟아졌지만, 로제스는 다람쥐 마냥 미꾸라지처럼 피하기도 하고 공중제비도 넘으면서 마치 서커스의 곡예사같이 재주 좋게 공격을 피했다.
로제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르트제 기사단이 후퇴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고, 덤으로 세리오트의 검술실력을 되도록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때문에 로제스는 힘을 아끼면서 진심으로 세리오트를 상대하지 않고 잔재주만으로 세리오트의 공격을 피하는데 집중했다.
‘확실히 대단한 실력이군. 마법검 하나만 믿고 기사놀이를 하며 설치는 왕녀님인 줄 알았는데, 이 검술실력은 진짜다.’
세리오트의 날카로운 검격이 수많은 세월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을 느낀 로제스는 점점 세리오트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동시에 세리오트에 대한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름다운 외모에 냉정한 성격. 기사도를 숭배하는 모습과 뛰어난 검술실력. 그 밖의 세리오트의 매력이 로제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로제스에게 세리오트를 노예 메이드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심어줬다.
‘대단해. 대단하다. 기사왕녀 세리오트. 너무나 가지고 싶다. 내 것으로 하고 싶다.’
로제스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세리오트의 공격을 피했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아르트제의 기사들이 무사히 후퇴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로제스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좋았어! 모두들 이제 우리도 도망이다! 모두들 후퇴!”
그 말에 알제르 기사단은 일제히 부리나케 호수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동시에 에리나가 얼어붙은 호수바닥에 손을 집고 주문을 외웠다.
“내 눈앞의 적을 멸살하라. 플레임 필드!”
쿠구궁!!!
그러자 드문드문 에리나의 마법으로 구멍이 생긴 호수바닥이 이제는 완전히 녹으면서 박살이 나 커다란 호수가 되었다. 발큐리아스 기사단과 달아난 알제르 기사단 사이에 건너기 힘든 커다란 호수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발큐리아스 기사단이 있는 곳에는 아직 로제스 황태자가 남아있다.
“하지만 아직 황태자가 남았다! 붙잡아!”
“흐아아아아!!”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알제르 기사단마저 놓치자 크게 분노하며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로제스에게 달려들었다. 적어도 로제스 황태자만이라도 생포하면 협상의 여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로제스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이런. 이놈의 인기는 이 북쪽 땅에서도 알아주는구먼. 저런 예쁜 언니들이 나를 보고 이리도 환호하며 달려들다니.”
그리고 슬슬 도망 갈 준비를 하면서 로제스는 세리오트에게 말했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군. 세리오트 누나. 누나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누나라고 불러도 되지? 다음에 다시 놀아보자고. 하하하.”
“기다려라!”
세리오트도 로제스를 사로잡기 위해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로제스는 녹아내린 차가운 호수로 몸을 던진 후였다. 아무런 장비 없이 그저 무방비하게 몸을 던진 로제스를 보고 세리오트와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경악했지만 그때 호수 건너편에 있던 에리나가 주문을 외웠다.
“적을 꿰뚫어라! 아이스 스피어!”
그러자 두꺼운 얼음의 창들이 생성되면서 로제스가 빠질 호수의 바로 밑으로 깔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촌장에게 이곳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음으로서 사전에 이런 방식으로 도주하기로 미리 에리나와 약속을 한 것이다. 마치 나룻배가 표류하듯 둥실 떠 있는 얼음의 창들을 로제스는 균형한번 안 잃고 하나 둘씩 디뎌가며 알제르 기사단이 있는 호수건너편까지 도착했다.
“자, 그럼 다음 이 시간에 계속! 하하하!”
“!!!”
로제스가 세리오트와 발큐리아스 기사단을 놀리며 그렇게 떠나가자 다들 분한 듯 땅을 차고 묵묵히 그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야말로 세리오트와 발큐리아스 기사단은 닭 쫓던 개꼴이 되어 로제스들이 달아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추격을 따돌리고 돌아온 로제스는 아까 전에 구호활동을 해 준 마을 쪽으로 움직였다. 알제르 기사단의 캠프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너는 언제 봐도 무모한 행동만 한다니까. 짜식.”
딘저가 로제스가 타고 있는 말에 옆으로 붙으며 말을 걸었다.
“그러게 말이다. 너의 무용이 대단하기에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겠지만 조금은 우리의 기분도 생각해다오.”
“맞아. 나는 정말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
그러자 그래드도 로제스의 다른 쪽 옆에 붙으며 딘저의 말을 거들었고 에리나도 한 말했다. 기본적으로 지휘관이 할 일은 전투가 벌어졌을 때 선두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뒤에서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로제스는 한 기사단의 기사단장이면서도 아까전과 같이 툭 하면 앞으로 나서서 적들을 상대하곤 했다. 장수로서는 유능할지는 몰라도 지휘관으로서는 점수를 낮게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로제스가 머리가 전술전략을 펼치는데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피를 이어 받아 무술실력이 뛰어나듯이, 천재전략가였던 아버지의 피도 이어 받았기에 잔머리 하나는 기발했다. 다만 로제스의 성격상 뒤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성미에 안 맞을 뿐인 것이다.
덕분에 로제스가 전투에 선두로 나설 경우 항상 알제르 기사단의 맏형격인 철두철미 그래드가 전투의 지휘를 어쩔 수 없이 도맡았다.
“하지만 방금 같은 경우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세리오트라는 그 예쁜 누나의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고 그 누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나 뿐 이었을걸?”
그렇게 로제스가 변명을 하자 순간 다들 숙연해지며 무언의 긍정을 표시했다. 방금 전 보았던 세리오트의 무시무시한 실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제스의 말 대로 백은의 왕녀기사 세리오트는 생각보다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세리오트를 정면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로제스 뿐이었고. 잘 쳐줘야 황금의 마법왕녀 에리나 정도가 간신히 견제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만 앞에 나서서 녀석들을 막은 게 아니라 너희들도 도와줬잖아. 그것에 대해서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고. 너희들 때문에 나는 뒤를 걱정 안하니까.”
“짜식아. 대장이 앞서 나가는 데 쫄다구가 따라가야 하는 건 당연하지.”
“하하하.”
로제스의 말에 딘저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그 모습에 우스꽝스러웠는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오늘은 다들 작전대로 잘 해주었어. 내일 있을 전투도 잘 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