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9)

* * *

쿠테일, 에리나와 함께 알제르 기사단을 이끌고 북쪽 마을 근방에 있는 국경 요새에 도착한 로제스는 인원보고를 받고 있다가 전령병의 연락을 받았다.

그 보고는 바로 방금 전 까지 근방 마을에 마적들이 침입하여 약탈을 해 갔다는 소식이었다.

“아르티어스 2중단과 글로둔 백작은?”

“방금 전 연락을 받고 전원 약탈당한 마을로 향했습니다.“

로제스는 이미 이곳에 도착한 아르티어스 기사단과 지휘관인 글로둔 백작이 이미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성격 급한 글로둔 백작이라면 아마도 바로 마적들을 쫓아 갔을 텐데.’

“일단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 우리 알제르 기사단도 아르티어스 2중단을 따라간다. 아, 그리고 구호활동을 하기 위한 물품도 챙겨가도록. 이상.”

로제스의 말에 왠지 품위가 없어 보이는 시커먼 마초남들은 그래도 기사단 티를 내듯 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제법 일사불란 하게 알제르 기사단원들은 각자 맡은 물품을 들고 모이기 위해 움직였다.

“어이, 로제스... 가 아니지. 단장님. 우리도 빨리 쫓아가서 마적을 잡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 구호활동만 하다가는 아르티어스 기사단이 맛있는 거 다 먹겠는 뎁쇼?”

기사단의 제복이 제법 어울리는 딘저가 알제르 기사단이 활약할 기회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하자 로제스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 마적들은 보통 내기가 아니니까. 아무리 아르티어스 기사단이라도 이 추운 북쪽 지방은 마적들의 홈그라운드지. 우리는 여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단 구호활동을 하면서 정보수집이다.”

* * *

두두두두두!!

방금 전까지 약탈을 당한 마을사람들은 다시 저 멀리서 말들이 움직이는 땅구름이 보이는 것을 보고 다시 겁에 질렸지만, 저 멀리 아르트제 제국의 깃발이 같이 보이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르티어스 기사단이 도착하자 마을의 촌장이 글로둔 백작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먼 곳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기사님.”

하지만 표정에 거만한과 욕심이 가득한 글로둔 백작은 촌장의 인사를 무시하고 말했다.

“잔소리는 필요 없고 방금 마적 떼가 사라진 곳을 말해라.”

“네?”

이들은 이 마을을 구호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단지 길을 물으러 온 것이다. 그 사실을 눈치 챈 촌장은 땅에 고개를 숙이고 글로둔 백작의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마적들은 북서쪽 방향으로 사라졌습니다. 허나 기사님. 지금 이 마을은 누군가에게 몸을 지킬 수단하나 없고 그 마적들이 모든 걸 다 쓸어가 당장 오늘 먹을 저녁 끼니도 없습니다. 제발 우리 마을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자 글로둔 백작은 신경질이 난 듯 귀찮게 구는 마을 촌장을 발로 뻥 차며 말했다.

퍼억!

“황제 폐하의 명으로 이곳에 왔지만 우리들은 마적들을 소탕하러 온 것이지, 구제활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비천한 신분의 몸으로 내 몸을 함부로 만지지 마라.“

그때 또 하나의 무리가 마을에 도착하는 것을 목격했다.

‘저 제국 깃발과 기사단의 문장은... 허세 높은 황자가 기사단을 이끌고 왔군. 보아하니 마적들을 토벌하여 공을 세우려는 모양인데 어림없지. 그 마적들을 사로잡는 것은 나 글로둔의 공이다.’

로제스는 마을에 도착하여 글로둔 백작에게 적당히 예를 표했다. 아무리 황태자라도 기사들의 세계상 그가 연장자이자 선배였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계시네요. 글로둔 경.”

또한 로제스가 제국의 하나뿐인 황태자이기도 하고 비록 햇병아리이지만 한 기사단의 기사 단장이므로 같이 예를 표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로제스 황태자 저하. 저하께서 몸소 이곳으로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이셨습니까?”

그렇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던 중, 글로둔 경은 알제르 기사단이 구호물품을 지고 온 것을 보았다.

‘멍청한 놈. 아니 순진한 놈이라고 해야 하나. 당장의 마적을 잡는 것이 중요할진데 저런 저급한 놈들을 구하려고 물품을 가져오다니.“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자기에게 찬스였다.

“로제스 저하. 갑작스럽지만 마적들이 이 마을을 습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저희들은 이곳을 떠나 마적들의 뒤를 쫓겠사오니 저하께선 이 마을의 구호활동을 하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

한마디로 말하자면 늦게 온 놈은 빠져 있으라는 말이었지만 로제스는 그저 싱글벙글 웃었다.

“그러세요. 저희 알제르 기사단은 여기 남겠습니다.”

의외로 자기도 따라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로제스의 모습을 보고 글로둔 백작은 묘한 의구심을 품었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소인의 지휘에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아르티어스 2중단 출격한다!”

글로둔 백작의 명에 아르티어스 기사단은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맞춰 마을을 벗어나 마적들이 사라졌다는 북서쪽으로 향했다.

* * *

로제스는 알제르 기사단들에게 마을 외곽에 캠프를 치게 하고 다른 인원을 착출하여 마을의 구호활동에 나섰다. 마적들은 그야말로 먹을 것, 돈이 될 만한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쓸어갔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먹을 식량 확보가 중요했다.

로제스가 물품 리스트를 보면서 구호물품을 나누다가 물품이 부족한 것을 알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우리가 가져온 물품만으로는 모자라겠는데?”

“그러면 제가 아이들을 이끌고 토끼 사냥이라도 다녀오겠습니다.”

기사단의 분대장급 단원이 나서서 말하자 로제스는 그것을 허가했다.

“좋아. 그러면 일단 사냥문제는 됐고 다음은 방벽수리인가...”

그때 마을의 촌장이 다가와 로제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마을을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별 말씀을요. 그런데 촌장님은 이 근방 지리를 잘 아시나요?”

로제스는 황태자이면서도 촌장을 대우해주며 묻자 촌장은 감격스러운 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지요. 저희들을 위해 이렇게 수고해 주시니 황공할 따름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지요?”

로제스는 마적들을 상대하기 위한 작전을 짜기 위해 궁금한 점을 물어봤고 촌장은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로제스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 * *

아르티어스 기사단은 마을 촌장이 말 한대로 북서쪽을 향하다가 저쪽 멀리에서 말을 탄 무리들이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보았다. 새하얀 로브로 전신을 가린 것을 보아 소문의 마적 떼임이 분명하다.

“가증스러운 것들. 이곳은 분명 제니오디 국경부근이니 놈들의 정체는 역시나 이겠군.”

글로둔 백작은 무인다운 투박한 수염을 쓸어내리고 부관에게 지시했다.

“부대를 둘로 나눠 놈들의 전방과 후방을 동시에 친다. 내가 전방을 맡지.”

간략한 부대편성을 마치고 글로둔 백작은 자신이 맡은 부대를 이끌고 마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마적 놈들. 제국을 우롱한 죄 엄히 묻겠다. 아르티어스 기사단 돌격!”

두두두두두!!

요란한 말굽소리가 땅을 뒤흔들며 중갑을 걸친 한 무리가 나타나자 마적들은 이를 발견하고 잠시 멈췄다. 그리고 자기들 끼리 한동안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별안간 자기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때문에 마적들의 후방으로 간 기사들도 마적들의 갑작스런 움직임으로 뒤를 덮치지는 못했다.

“놈들. 우리 아르티어스 기사단의 위용을 알고 겁이 먹었구나. 좋다! 전군, 녀석들을 쫓아 본진을 친다!”

글로둔 백작의 명에 아르티어스 기사단은 도망가는 마적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그들의 뒤를 쫓았을까? 얼마 있지 않는 눈이 쌓인 벌판이 사라지고 눈 덮인 숲과 얼어붙은 호수가 나타났다. 이미 마적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빌어먹을. 놈들이 어디로 사라진 거지?”

“저기입니다! 백작님!”

분노하는 백작이 마적들을 찾자 한 단원이 저만치 얼어붙은 호수 너머로 보이는 마적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마적들은 로브에 달린 후드를 벗고 그 정체를 드러냈다. 역시 출정 전에 황제 에릭이 말 한대로 그들은 제니오디 왕국의 국경수비기사단 발큐리아스 뱅가드가 틀림없었다. 여자로만 이루어진 기사단이면 알려지기로는 이 발큐리아스 뱅가드가 아직까진 유일하다.

“역시나. 네놈들은 우리와 불가침 협정을 맺었는데도 이런 짓거리를 한단 말이냐?”

글로둔 백작이 분노로 말이 떨리자 마적들 중 리더로 보이는 누군가가 나섰다. 발큐리아스 뱅가드에 대한 소문이 그렇듯 역시나 상당한 미모였다.

“그거야 알바 아니고 당신들은 지금 있는 이곳이 우리 제니오디 왕국의 영토임을 알고는 있는가? 너희들은 지금 우리 제니오디 영토에 불법침입을 했다. 이에 우리 발큐리아스 뱅가드는 너희 침입자들을 처단하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적 질을 하더니만 순식간에 기사의 신분을 대며 오히려 글로둔 백작의 아르티어스 기사단을 불법침입자로 만든다. 글로둔 백작은 그야말로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정녕. 네년들에게는 기사도 정신을 기대할 수는 없겠구나. 역시 야만족다운 짓거리다.”

“기사도 정신인지 나발인지는 알 바 아니고 붙어 보려면 빨리 여기까지 와 보시지.”

발큐리아스 기사단의 리더는 그렇게 말하고 얼어붙은 호수 건너편에서 아르티어스 기사단이 접근하는 것을 기다렸다. 아무리 봐도 뭔가 수상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지만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난 글로둔 백작의 눈에 그런 것이 보일 리가 만무했다.

“전군, 저 건방진 년들의 목을 쳐라. 우리 제국 기사단의 힘을 보여줘라.”

"네! 알겠습니다!"

명령은 명령이기에 옆에 붙은 부관이 말리기도 전에 기사단은 기마들을 이끌어 얼어붙은 호수를 건넜다. 이곳 지리도 그렇고 날씨가 날씨인지라 호수는 완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어서 무거운 중장갑에 말을 타고 있어도 호수의 얼음은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다행이 미리 확인을 해 두었기에 아르티어스 기사단은 조심히 그들에게 접근했다.

그때 발큐리아스 뱅가드의 리더가 지시했다.

“전원 탈의!”

그러자 하얀 로브를 입고 있던 그녀들은 몸에 걸친 로브와 무거운 갑옷을 일제히 벗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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