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19)

-4부왕(10)-

고구려군은 호적과 장군들을 선두로 북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날이 밝기전에

기습하고자 조심스럽게 한편으론 재빨리 이동하였다. 

그런데 독안의 든 쥐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자명고가 아니었다. 고구려군 선두가 북쪽 계

곡에서 500보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적의 기습을 감지한 낙랑군 진영에서 소란이 일어

나고 화톳불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런 ..기습은 다 틀렸다. 전군!!! 돌격하라. 돌격!!!"

호적의 신호를 받자 계곡이 떠나가도록 함성을 지르며 고구려군은 낙랑진형을 향해  돌진하

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장애물은 녹각이다. 견고하게 만들어져 땅에 고정된 녹각은 원래 기마

의 돌진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것이어서 보병은  어려움 없이  타고 넘을수 있는것이나 

넘는 동작를 하는 동안 공격대열은 한덩어리로 뭉쳐 적의 사격에 쉽게 노출되고 무방비 상

태가 되어  버린다. 고구려군의 첫 번째 전열이 이 녹각무더기에 도착해 돌파하기위해 우왕

자왕하는 동안 산쪽과 도로 저편에서 궁시가 무더기로 날아와 고구려병사들을 죽였다. 얼마

되지 않아 첫째 전열(戰列)의 8할이상이 이 녹각지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무수히 많은 인간

들이 죽어 녹각지대를 따라 작은 주검의 능선이 생겼으며 녹각의 뾰족한 모서리까지 시체들 

살점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두번째 전열(戰列)은 굴하지 않고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녹각지대를 넘

어 갔다. 녹각뒷쪽에는  참호가 깊이 파여져있었고 참호뒷편에는 토벽(土壁)이 있었는데 전

면에서 벌어지는 참상에도 불구하고  토벽뒷편에는 그때까지 사람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고구려군은 화살의 푹우를 뚫고 간신히 녹각지대를 돌파하여 참호속으로 쏟아져들어갔고 다

시 기어올라 토벽(土壁)에 달라 붙었다. 그러자 도로옆 계곡 윗쪽에서 하얀기가 펄럭이고 그

것을 신호로 토벽뒷편에 숨어 있던 낙랑군 장창병대가 일제히 일어나 일사분란한  동작으로 

토벽에 접근한 고구려병사들을 찌르기 시작했다. 안간힘을  쓰며 고구려인들이 토벽을 넘어

서려했으나 토벽에 의지해 공격하는 낙랑인들의 공격이 너무나 완강하여 셀수없이 많은  고

구려병사들이 토벽아래에서 꺼꾸러 쓰러지고 제2전열도 그곳에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

고 분산되었다.  

굶주리고 1000보가까이 되는 거리를 쉬지 않고 움직여 입에 거품을 물정도로 지친  고구려

군 제 3전열도  장교들과 태자호적의 독전에 내몰려  다시 한번 토벽을 공격해 들어갔으나 

앞서 죽어간 전우들과 비슷하게 절망적인 상황만이 되풀이 되었다. 참호에서 토벽으로 기어

오르는 경사가 급해  방어동작을 취하기가 몹시 곤란했고 그래서 낙랑창병은 손쉽게 고구려

병사들을 꽤뚫어 죽였다.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창에 찔려 참호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보다못한 호적이 나섰다. 그는 짧은 검을 빼어 들고 병사들을 헤집으며 선두에서 토벽에 달

라붙었다. 그러자 그의 전면 토벽 뒤에 있던  한 낙랑병사가  그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창

을 내질렀고 호적은 바람처럼  빠른 동작으로 자신의 어깨뒤로 적의 창자루를 잡아 빼면서 

토벽에 한손을 걸치며 순간적으로 위로 튀어올랐다.  그는 토벽위로 올라서자마자 토벽상부

에 한쪽손을 짚어 의지하며  다른손에 든 검을 내리쳐 방금전에 그를 공격했던 낙랑창병의 

머리를 투구와 함께 두조각을 내어버렸다.  그러자 죽은 낙랑병사의 좌우에서  싸우고 있던 

낙랑창병이 비명같은 고함을 지르며 거의 동시에 그를 향해  창을 찔러왔다. 토벽위에 불안

정한 자세로 걸쳐있던 와중이어서 양옆에서 찔러 오는 두 개의 날카로운 창은 피하기 어려

웠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좌측의 창은 검으로 튕겨내었으나  우측 창은 호적의 옆구리에 깊

숙히 살갖을 찢어내며  박혔다. 뒤에선 고구려병사들이  이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하

지만  그는 표정한번 바꾸지 않고  자신을 찌른 두명의 낙랑병사을 순식간에  베어 죽였다. 

그 뒤 호적은 토벽건너편 낙랑창병집단속에 뛰어내려 좌충우돌 사자처럼 검을 휘둘러  적을  

죽였고 다른병사들도 그의  뒤를 따라 토벽을 넘어섰으며 점차 돌파구가 확대 되었다. 낙랑

군은 이모습을 보고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혀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었고 대열을 

갖추고 후미는 고구려군을 견제하면서 질서정연하게 뒤쪽으로 이동하였다. 

토벽도 결국 점령되었다. 그러나 호적은 고구려병사들이 다 이겼다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그 순간에  낙랑창병의 후퇴대열 뒷편에 나무로 만들어진  방책이 또 있는 것을 보고 적이 

이토록 주도 면밀한것에 경악할따름이었다. 

고구려군이 북쪽 계곡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던  시간에 호동은 남쪽을 향해 숲속을 뛰고 있

었다. 어깨에는 장검을 매고 다른쪽 어깨에는 활을 매었으며 손에는 긴창을 들고있다.  그는  

먼거리를 쉬지않고 뛰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도주병을  막기위해 남겨진 고구려군 독전대를 

만났다.. 호적이 공격에 나서기전 이런 독전대를 믿을 만한 장교들에게 맏겨 여기저기  남겨

놨던 것이다. 이들은 도망치는 아군병사들을 가차없이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왕자

에게 어딜 가시냐고 묻고 태자저하의 명령으로  이곳 아래로는 내려갈수 없다고 말했다. 

"태자저하의 명령이다. 본국으로 탈출하는  묵경기(默景沂)(다음번 왕위계승에 관한  확인이 

있는 서신을 가지고 남쪽으로 우회해 탈출하기로 한 집단의 우두머리  신하)에게 긴급히 전

달할 서신이있다. "

아무래도 이상한지 독전대장교는 그 서신을 보여달라고 한다. 도무지 지금 이상황에서 어울

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서신을 전달하려면 공격개시전에도 얼마든지 시간이 있었

고 공격이후에 다시 그런 명령을 태자가 내렸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것도 왕

자에게 직접 전달하라고 했다는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놈!! 감히 어명이 담긴 서신(書信)을 일개 군관이 보겠다는것이냐?  아무리  우리군이 이

지경이  됬다고는 하나 네놈은 군법도 모르고 위아래도 모르느냐?"

호동이 화를 내며 호통을 쳤지만 이미 이판사판이 되어버린 와중에 그 군관도 무서운게 없

었다.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이곳 아래로는 전하라도 내려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태자께서 직접 구두로 하

신 말씀이십니다. 내용을 보여주지 않으시면 왕자저하라도 절대 이곳아래로 못내려가십니다.

호동은 잠시 그들을 쓰윽 돌아본다. 군관 하나에 전사(戰士)여덟이다. 

"흐음...좋다 그러나 본국에 살아돌아간다면 네놈은 불경죄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국내성에서 무사하신 저하를  다시뵙고 목이 잘리는것도 괞찮은 일이겠지요."

호동은  서신을 꺼내려는 듯 갑주품에 손을 집어넣는다  . 그러나  나온것은 날이 새파랗게 

선 단검이었다. 호동은 그 단검으로  앞에 있던 군관의 목젖을 찔렀고  손에 들고있던 창을 

휘둘러 가까운곳에 있던 병사 한명의 명치를 찔러 쓰러뜨렸다. 둘다 급소를 맞아 즉사해 쓰

러졌다. 나머지 병사들은 넓게 퍼져 호동의 창에서 벗어난다.

"비켜라. 나는 꼭 묵경기를 만나봐야 될일이 있다. !"

"빌어먹을 개자식아. 왕자라는 놈이  도망을 가느냐?. 태자께서는  목숨걸고 싸우고 있는데. 

탈주병은 왕자라도 죽여도 된다. 이놈을 죽여라!!"

병사들은  호동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덤벼들었다. 왕자가 이유를 대지  않고 죽여도 고분고

분 목숨을 내주었던 병사들이었다. 그것이 고구려의  전사들이다. 그런데 전세(戰勢)가 어렵

고 오랫동안 굶주린데다 평소에 왕족이라는 계급에 알게모르게 쌓인 불만이 극한  상황에서 

터진 것이다. 

제일 먼저 달려든 병사는 호동의 교묘한 검술에 팔이 잘려  나가 떨어졌다. 호동은 팔이 잘

려 울부짖는 병사가 고구려병사들과 자신사이에 오도록 움직였고 그런탓에 한번에 달려들지 

못하고 옆쪽으로 성질급한 병사 한명만이 혼자 고함을 지르며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호동

은 교묘한 동작으로 피하면서 병사의 옆구리를 비스듬하게 내리쳤고 그 병사는 내장까지 칼

에 베여 입에 피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남은 것은 다섯이었다. 팔을 잘린 병사는 가까운 숲속으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도망가고 이

제 전면에 고구려 고참 병사 다섯과 호동혼자 대면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정예병사 한명의 

전투력은 낙랑병 5명과 필적한다는 소문이 있을정도로 막강했다.  호동이 아무리 용맹한 검

사(劍士)라도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흐흐 제법하는데? 하지만 나는 네놈이 젖먹이때부터 수도없이 많은 전쟁터를 헤맨놈이다. 

어디 놀아보자! 이빌어먹을 왕자놈아!!!"

한나이든 병사가 울부짖듯 소리친다. 그러자  호동은 피식  웃었다. 검술에서  질지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즐거웠다. 흑수에서 처음느꼈던  욕정과 강렬한 투쟁심이  뒤섞인  

그런 감정이 솟아 나와  그를 감싸기 시작했고 그것은 너무도  감미로왔다.

호동이 먼저 달려들었고 다섯명의 고구려병사도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호적은 눈을 떴다. 푸른하늘이라 칭송하기에는 너무 빛이 강해 살이 타들어갈것같은 여름날 

한낮이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 것인가?  몹시 생소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

게 마른땅에 고구려의 태자인 내가 누워있는가? 머리가 몹시 아프다.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

기 위해 손으로 머리를 만져본다. 투구는 어디론가 없어졌으나 뒷통수가 부어 오른것외에는 

이렇다할 상처는 없었다.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엄청나게 많은 시체들이 쌓여있다. 

대부분 고구려병사들이다. 그는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를 썼다. 무력하게 누워있을수만은 없

었다.  아 그렇지 . 토벽을 넘어선후 다시 뒷편의 나무로 된 방책을 공격하다가 머리에 무언

가를 맞고 정신을 잃은채 쓰러졌던 것 같다. 자신은 토벽쪽에 쓰러져 있다. 방책쪽에서 쓰러

진 것 같은데 누가 여기로 옮겨온모양이다. 아까 적의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니 출혈은 이

미 멈춰있었다. 하반신은 온통피투성이다. 

공격은 실패한 모양이다. 방책너머에는 낙랑병사들의 창이  일렬로 세워져 움직이는게 보였

고 형형색색의 군기들이 고스란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공격이 실패하자 살아남아 움직일수 있는 고구려병사들은 모두 도망갔을 것이다. 시체는 방

책과 토벽사이에 발디딜틈도 없이 깔려있다. 간혹 꿈틀대며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살려보려

는 자들은 보인다.  그들은 신음한다. 고구려를  저주하기도 하고 어머니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방책너머의  낙랑군은 이쪽으로 나오지 않는가?  왜 포로를 잡고 

중상자들을 죽이고 전리품을 챙기지 않는가?

태양을 보니 중천에 떠있다. 파리떼들이 주변의 시체와 호적의 육신의 핏자국에까지 달라붙

어 무언가를 빨아먹고 있다. 

살아남았다는게 짜증스러웠다. 혼자 함성을 지르며  적에게 달려드는 것은 웃기는  일이 될 

것이다. 혹시라도 포로로 잡히면 큰 망신이다. 개국(開國)이래 포로로 잡힌 태자(太子)는 한

명도 고구려에 없었다. 그가 이제 할수  있는 일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밖에  없을것이다. 

그러나 생(生)을 마감하기 전에  군인이자 고구려의 태자로써 해야될일이  있는가를 생각해 

내려 하였다. 그러다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우리 군(軍)을 이렇게 비참하게 전락(轉落)시킨 아버지는 어디 있는가? 새벽공격

때 중간까지는 가마에 태워져 전열사이에 있는 것을 자신이 보았는데 적진에 가까워지자 놓

쳐버렸다. 호위병들에게 아버지의 숨을 끊도록 명령을 내렸는데 지켜졌는가? 그는 일어났다. 

자결하기 전에 확인해야 될  일이 생겼다.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잠시 비틀거리다 토벽을 붙잡고 몸을 지탱한다. 

그때 낙랑군 진영에서 이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뭐라고 떠드는  외에는 달리 행동을 취하지

는 않는다. 화살이라도 날아올만한데 그것도 없었다. 

토벽을 넘어섰다. 아주 힘겹게. 그 아래로  고구려병사들의 시체가 참호에 가득차있다. 그뒷

편 녹각에도 토벽아래에도. 인간이라기 보다 구더기 처럼 서로 얽혀 처박혀 있다. 

호적은 그들을 위해 무언가 기원의 한마디라도 하려다 그만둔다. 그들은 할 일을 하다 죽었

을뿐이다. 동정심은 필요 없다. 그리고 나도 곧 너희들을 따라갈것이다. 

그곳에서 빠져나와 호적은 가마를 찾고자 했다. 가마에서부터 아버지의 행방을 찾을 것이다.

호동은 한손에 검을 다른 한손에는 장창을 들고 고함을 지르며 독전대 병사들에게 달려 들

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모르는게  있다. 나는 내  목숨조차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단 말이야. 

응? 이놈들아!

병사들도 지지않고 달려들었다. 한 병사의 검을 검으로 막고 다른손에 들은 창으로 배를 찔

렀다. 거의 동시에 다른병사가 호동의 어깨를 향해 칼을 휘둘렀으나 그는 상체를 살짝 돌려 

피했다. 그리고 발로 그를 차버렸다. 창을 배에 찔린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지고 

발에 치인 자는 나둥그라졌다가 다시 벌떡 일어난다. 나머지는 넷. 다시 셋이 살인적인 기세

로 동시에 달려든다. 동물적인 병사들의 기세에 피할만도 한데 호동은 신경질적으로 웃으며 

그 세명 사이로 대담하게 뛰어든다. 놀란 것은 병사들쪽이다. 그들이 호동의 기세에  주춤하

는 사이 가운데 병사의 목에 호동의 검이 깊숙히 박혔다.  그러나 목뼈에 검이 걸렸는지 쉽

게빠지지 않았고 그틈에 좌측병사가 호동의 옆구리에 창을 찔렀다.  피가 터지며 살이 부서

지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의 세포조직이 통증을 제어하기 위해 모든 기력을 쏟아 붇는 사이 

호동은 고통의 무아(無我)지경에 빠져들었다. 고통과 함께 욕정도 한층더 커져 온몸이 불타

버릴 것 같았다. 그의 동작은 미약에 취한 환자처럼 훨씬 빨라졌다. 호동의 옆구리에 창으로 

상처를 입힌 자가 창을 빼내려는 사이  호동은 그의 목을  잘라 버렸고 우측의 병사가 호동

의 기세와 뛰어난 검술실력에 질려 허우적대며 검을 엉성하게 휘두르는 그 틈으로 검을 수

평으로 휘둘러 허리를 잘라 내었다. 인간의 허리를 자른다는게 쉬운 일인가? 하지만 호동은 

그것을 한번에 해내었다. 피분수가 쏟아지며  방금전까지 하나였던 하체와 상체가  두 개로 

나누어졌다.

"흐흐흐흐흐.... "

남은 자는 한명 그는 공포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쉰다. 순식간에  병사들을 해치운 솜씨가 

인간의 그것 같지가 않았다. 몇보 떨어지지도 않은 호동의 귓가에 까지 천박한 그의 숨소리

가 전해진다. 호동은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누이며 잔인한 미소를 띄웠다.

"고구려의 용감한 병사여. 보거라 내 옆구리의 상처를,  그런데 너는 멀쩡하다. 그리고 너는 

백전을 치룬 노장이고 나는 호사스런 왕궁의 어린 애송이다. 그렇지 않느냐? 자 와라. 쉽게 

나를 죽일수 있을 것 같지 않느냐? 어서 와서 내목에 칼을 찔러봐라. .어서..흐흐흐흐"

요사스런 웃음소리. 광기에 찬 눈빛. 병사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과 대면한 듯 두려움에  떤

다. 그는 호동과 싸워 공포가 더 연장되기 보다 삻을 포기하므로써 얻는 안식(安息)을 택한

다. 그는 무기를 버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저저저..하... 죽이소서.죽여주소서."

"흐흐흐흐.."

호동은 그가 원하는대로 끝장을 내주려 하다 검을 내린다. 묵경기의 행방을 묻는다.  병사는 

덜덜떨며 얼마전에 이곳을 지나 낙랑수도로 통하는 도로 옆 산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고 한다. 호동은 그에게 도망가도 좋다고 한다. 도망가라고 하고 뒤에서 활로 해치울 생각이

다. 그러나 병사는 눈을 감고 떨기만 할뿐이다. 호동은 낄낄거리며 병신같은 놈이라고  욕을 

한다. 단칼에 병사는 목이 달아났다. 

호동은 갑주를 벗고 옆구리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의외로 상처가  깊었다. 장(腸)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으나 출혈이 심했다. 호동은 속옷을 찢어 상처를 동여맺다. 시간이 지나면  출혈

의 영향이 올 것이다. 몸이 정상일 때 묵경기를 찾아야 한다. 호동은 다시 남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호적(胡狄)은 새벽에 고구려군이 지나온 길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다 쉽게 가마를 찾을수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는지  가마는 반쯤 부서져 있고  주위에는 호위병들의 

사체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호적은 가마의 문을 열고 안을  살펴 보았으나 속에는 아무것

도 없다. 벌써 아버지는 적에게 잡혀간것일까? 이상한건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된 가마의 외

부장식이 많이 뜯겨져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죽은 호위병  시체들의 차림새도 갑주는 없이 

대부분 속옷 차림에 목이 없다. 근위병들이라 비싸고 화려한 갑주들이었다. 누가 이렇게  만

들었는가? 지금 까지 보아온 낙랑군은 군기(軍紀)가 엄정해서 이런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

다. 그렇다고 고구려인들이 할리도 없고 주변에 산적(山賊)이라도 있어 그들이 한것인가? 

가마주위의 땅바닥을 주의깊게 살펴보니 무수히 많은  말발굽 자국이 나있었다. 그 기마(騎

馬)의 흔적은 북쪽도로에서부터 거꾸로 나있는 가마를 맨 우군병사들의  짚신자국과 반대방

향에서 시작했다가 이곳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루고 다시 그들이  온 남쪽으로 나있었다. 가

마가 왜 전진(戰陣)에서 이쪽으로 움직였을까? 자신은 분명히 적당히 시점에 왕을 죽이라고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었다. 그들이 겁을 집어먹고 가마를  돌렸을까? 아니면 왕의 명령에 

따라 이곳까지 온것인가?  어쩌튼 왕의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니면 

적의 포로가 됬는지 빠져나갔는지.. 호적은 말발굽의 흔적을 따라 남쪽으로  움직였다.

그시간 호동

저 앞 숲속 공터에 30여명의 낙랑기병이 모여 있다. 그들은  술을 먹으며 크게 웃고 떠들고 

있다. 그들의 말안장에는 고구려인들것으로 보이는 인간의  머리 10여개와 역시 고구려인들

에게 빼앗은 것으로 보이는 무기와 갑주들이 매달려있다. 고구려군 본진이 계곡에서 대패하

고 나자 도망병등을 죽이고 얻은 모양이다. 호동은 가시덤풀속에  숨어 이것을 지켜보고 있

다. 그는 지금 낙랑군의 경계선쪽을 직접 넘어가기 위해 움직이는 도중이다. 묵경기  일행이 

지나간 곳이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쪽이어서 안전하기는 해도 늦게 그들을 쫓는 호동이 그길

을 따라만 가서는 너무 늦기에 위험을 무릎쓰고 지름길로 가는 도중이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호동의 눈앞에 있는 자들은 지금까지 보아온 낙랑군들이 아닌 것 같

다. 군복과 갑옷은 제대로 갖추어 입고  있다. 오히려 전에  용봉성과 자우성쪽에서 보았던 

낙랑군의 거지같은 차림새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런데 전선에서  술을 먹고 사사로이 전

리품을 자신들의 품에 소지하고 있고  행동거지도 군인이라기보다 화적떼 같아  고구려군을 

그토록 괴롭힌 사나운 그전의 낙랑군과 전혀 다른자들같은 행색이다.  어쩌튼  그것은 호동

이 상관할바가 아니었다.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호동이 원하는대로  

술취한 병사들은 기성을 지르며 말을 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시간 낙랑군 진영.

"지금 그놈들이 제멋대로 날뛰는걸 보고만 있으실 겁니까? 이렇게 그냥 놔두면 싸움은 않하

고 구경만 한 그놈들이 고구려군을 전부 쳐부수었다고  전하에게 아뢰고 우리의 전공(戰功)

을 가로 챌것입니다. "

"기다려봐라 그쪽 장수에게 병사들을 수습하라고 연락을 보냈으니 뭔가 기별이 올 것이다."

자명고군의 본진. 한 젊은 장교가 와서 자명고에게 따지고 있는 와중이다. 북부군에  나중에 

증원된 상도의 기병 일만기가 명령도 받지 않고 산을 내려가 지금 고구려군 본진을 약탈하

고 도주중인 고구려병사들을 살해하여 그목을 챙기고 있다고 한다. 자명고군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북쪽계곡에서 북부군이 고구려군 본진과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자명고가 적의 측면

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그것은 무시했다가 전투가 끝나자 제멋대로 산을 내려간 것

이다. 

자명고(自鳴鼓)는 자기부대 병사들이 진을 이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통상 전투에서 

승리하면 약탈과 학살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병사들의 노고에 보답하고 패배자들

에게 잔인한 대가를 치루어주는 과정이다. 하지만 자명고는 생리적으로 그런 것을 싫어하였

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면 부대를 집단으로 움직여 뒷처리를 할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힘들게 됬다. 탐욕에 눈이 뒤집힌 상도의 병사들과 도주중인 고구려병사들이 뒤섞인 수라장

으로 지금 병사들을 보내면 우군끼리 서로 전리품을 빼앗고자  싸움을 벌일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자명고군 병사들은 상도의 병사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더 그러하였

다. 상도의 잘차려입은 병사들은 거지같은 자명고군의 행색을 보고 비웃었다. 자명고는 병사

들의 군복에 장식을 달거나 비싼 물품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상도의 병사들과 

옷차림이  비교가 되지 않았다. 북부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사이 

후방에서 편히 놀고 먹은 주제에 시비를 거는 그들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모든게 자기탓이라고 생각했다. 상도기병의 장수는 불과  1년전만해도 하급장교인 자명고가 

제대로 얼굴을 보기도 힘든 고위 장군이었다. 그가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리 없었다. 그 

장군에게 병사들을 수습하고 구역을 나눈다음 전장정리를 다시 하자는 연락을 보냈다. 그렇

다고 병사들이 다시 산으로 올라올것이라는 희망은 품고 있지 않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천신만고 끝에 승리하였는데 이렇게 뒷끝이  좋지 않아서야. 부정적(否定的) 인간 자명고는 

신경이 너무 쓰여 쓴물이 목구멍으로 넘어 오려고 하였다.

호동은 쉽게 낙랑군 경계선을 넘어  갈수 있었다. 원래대로 라면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할 

낙랑병사들이 모두 산아래로 내려가 약탈에 정신이 없어 길목길목  빈곳이 많았다. 산을 넘

어 반대쪽으로 내려간 호동은 묵경기가 다시 북상할것이라고 사전에 계획된 장소로 가서 그

들을 기다렸다. 어제 마지막 회의에서 탈출로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잡았기 때문에 호동도 

알고 있었다. 일단 낙랑군 포위망이 가장 허술한 남쪽  통로로 빠져나간다음 서쪽으로 돌아 

용봉성남쪽의 적포위망외곽과 은평성(북부지역의 서남방에 위치한 귀족들의 성)사이에서 다

시 북상할 작정이었다. 호동은 남쪽으로  우회하는 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직동으로 움직여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왜 묵경기를 만나려 하는가?

지겨운 밤이 또 왔다.

아무리 체력이 강한 호동이라도 낮에 입은 상처에서 피를 많이 흘린 영향이 밤이 되자 서서

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몸이 노곤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전에 전군이 굶주릴때도 호동은 굶은 적이 없었다. 태자는 스스로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 한다고 굶었지만 호동은 웃기는 소리 말라며 왕족들에게 배급된 쌀을 꼼꼼히 씹어 먹

어 후일을 대비하고 있었다. 무언가 변화의 시간이 다가 온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

고 있었다. 호동이 군문에 나선이래 이러 대패는 처음이었다. 욕망에 눈을 뜬 그에게 현재같

이 제 2왕자로써의 지위가 지겹도록 계속돼 변화없는 인생을 사는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

회가 오리란 것을 운명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굶을수 없었다. 그런데  진정

으로 기회가 왔다.

토끼나 쥐를 잡아 그것을 생으로 뜯어 먹으며 그는  조금이나마 체력을 보충하려고 하였다. 

밤이라고 잘수는 없었다. 언제 묵경기일행을  만날지 알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피는 달콤

하다. 그것이 인간의 피든 짐승의 피든지. 호동은 토끼의 배를 갈라 거기서 흐르는 피를  아

귀(餓鬼)처럼 빨아먹었다.

-4부 왕(10)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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