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왕(9)-
호적은 그날밤 원로 장군들과 대신들을 찾아다니며 왕을 설득해보도록 부탁도 하고 밤늦은
시간에 직접 부친을 찾아가 남진의 부당성을 애원조로 호소하였다. 그러나 돌아온건 점잖은
아버지의행동이라고 믿기 어려울정도의 용렬한 욕설과 더 이상 반대를 하면 대신들과 장군
들의 목을 베겠다는 엄포뿐이었다.. 호적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호동을 찾아갔다. 왕이 평
소에 끔찍히 귀여워한 호동이 전하를 설득하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것이다.
그는 호동의 천막에서 전하께서 뭔가에 홀린 듯 하다, 지금 전하는 평소의 그 침착하시던
전하가 아니다. 그러니 네가 가서 회군하도록 아버지를 설득 해보라고 부탁을 했다.
"후훗"
호적이 심각하게 말한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호동은 비웃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호적은 발끈
해서 이대로 남진해서 고구려군이 망해도 상관없는냐고 호통을 쳤다.
"형님. 형님은 뭔가를 착각하고 있군요. "
"네 이놈. 그게 무슨 소리냐?"
"전하께서 가자고 하시면 가는 겁니다. 그게 지옥이든 극락이든.고구려보다 전하의 뜻이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따르면 됩니다. 그게 신하이자 자식된 자의 아주 건전한 도리
이겟지요"
"뭐라고?"
"전하는 이나라의 왕이고 이나라의 주인이십니다. 주인께서 나라를 어떻게 하시든 그것은
주인의 마음일뿐입니다."
"이보거라. 호동! 사직(社稷)은 전하 한사람의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것도 아니다. 조상들과
대지의 신들과 천하만물의 생명있는 모든 것들의 것이다. 그것을 어찌 한사람의 것이라고
할수 있느냐? "
그러자 호동은 자리에서 벌쩍일어나 얼굴을 형의 눈앞에 가까이 댔다.
"하하.. . 내외에서 충성스러운 태자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형님입에서 전하를 부정하는 그
런말이 나올지는 정말 몰랐네요. 하하. "
이놈이 미쳤나? 눈매에 비웃는 기색이 가득한 호동을 보고 호적은 참지못하고 뺨을 후려쳤
다. 따지자면 호동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왕국이 전하의 것이 아니라고
한말도 대단히 불경스러운 말임에도 틀림없다. 그러나 밖으로 말은 하지 않았었도 고구려의
헌신적인 왕족들은 내심 그러한 생각을 다들 품고 있었다고 호적은 믿고 있었다. 고구려가
왕과 그 일족의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그렇게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봉사해왔던 것이다.
인간들의 것이 아니기에 그토록 뼈를 깍는 노력을 하면서 육체와 영혼을 바칠가치가 있다고
믿어 왔던 것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것인가? 영민하던 전하가 이상한 판단을 하고 순결하던 동생은 변해
버렸다. 호동의 말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뭔가 썩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호적은 호동의 천막을 나서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내가 이상한것인가? 그
가 조상들의 영혼이 승천하여 만들어졌다고 평소에 굳건히 믿어 왔던 아름다운 별들도 그날
밤은 고구려군의 멸망을 즐거워하는 악귀들의 사악하고 음험한 눈동자처럼 보여졌다.
또한
"개새끼"
천막을 나가는 호적의 등뒤에 대고 그의 사랑스러웠던 동생이 증오심을 가득 담고 내뱆은
이 말도 그는 듣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고구려군은 부상자들과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일부병력을 남기고 남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호적은 맨 마지막까지 남았다. 남은 호위부대의 지휘관을 불러 투항은 안된다. 고
구려무사답게 최후까지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 여의치 않으면 자살하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그순간 그는 한수의 싸움에서 포위당한 백제군 수백명이 집단으로 배를 갈라 자살한 장면을
떠올렸다.
남은 부상자들중에 상당수는 그의 부대병사들이었고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 한자들이었다.
부상자들은 모두 길가에 나와 남진하는 전우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호적은 그들
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땅바닥을 바라보아야 했다.
호적은 마지막 부대가 행군을 시작하자 자신도 그 부대뒤에 붙어 남하하기 시작했다.
떠나는 호적이나 남은 병사들이나 모두 아무말이 없었다.
고구려군이 남하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들은 자명고는 처음에 믿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경
로를 통해 들어온 소식이 모두 고구려군의 남진을 일치하여 전하고 있어서 믿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었다. 용봉성도 함락못시키고 게다가 보급선도 완전히 차단된 마당에 남진을 해?
군략을 조금이라도 알고 병서를 한줄이라도 읽은 자라면 지금 고구려군이 할수 있는 최선의
길이 퇴각하는것이라는것알수 있는때에 무슨짓인가? 그는 고구려군이 오판을 일으켜 남진하
기 보다 뭔가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열흘도 채되지 않아 고구려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낙랑국수도에서 가까운 곳에 도달
했다. 그러나 식량은 이미 한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식량을 적에게 빼앗고자 했지만 고구려
군의 진로상에 있던 낙랑의 마을에는 쌀한톨, 비를 피할 초가하나 남아있지 않고 모조리 낙
랑군에 의해 불태워졌고 기대한 야전은 고사하고 낙랑군의 그림자도 볼수 없었다. 식량이
완전히 소진되자 고구려군은 전마(戰馬)를 제외한 수송용 소와 말을 잡아 식량으로 충당했
다. 그러나 얼마안돼는 우마마저 없어지자 굶기 시작한 고구려군은 과거의 그 예기(銳氣)는
사라지고 궁핍하고 두려움에 싸인 집단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전마까지 잡아먹기 시작했
을때는 개전이래 최초로 탈주병이 나타났다. 그것도 점차 숫자가 늘어갔다.
이해할수 없는 고구려군의 행동에 잠시 상황을 지켜 보기로 했던 낙랑군도 고구려군 본진의
탈주병을 통해서 식량의 고갈과 내부분란을 알아내고 적극 공세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우선
용봉성의 군대와 자우성의 부대가 합류하여 고구려군 잔류부대와 부상자집단을 포위하고 항
복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답변은 낙랑군 사신의 목이었다.
부상자들과 굷주린 소수의 고구려군은 낙랑군의 맹렬한 공격에 전멸했다. 인간적인이유와
정보획득을 위해 포로를 많이 잡으라는 자명고의 명령은 지켜지지 않았다. 칼잡을 힘이 조
금이라도 있는 부상자들과 호위병사들은 모두 최후까지 낙랑군에 저항하며 싸우거나 자살
을 하였고 자신을 가누지 못하는 중상자들은 온전한 병사들에 의해 명예로운(?) 몰살을 당
한 후였다. 수천명을 죽였는데 포로는 200여명뿐이었다. 장교는 한명도 없었다.
자명고가 자살한 고구려군 병사들의 시체를 보며 혀를 차고 있던 그시간
고구려군 본진은 낙랑국수도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자우성과 용봉성의 고전에 질린데다 굶
주림에 시달리고 역병까지 돌아 만신창이가 되버린 고구려군은 성을 바라보는것만으로 두
려움에 떨었다. 게다가 상도는 용봉성이나 자우성에 비할바 아닌 만주최대의 거성이었다. 왕
은 적국수도의 거대한 성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펑펑흘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날밤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왕은 자신이 내린 퇴각명령에 절망햇는지 가마속에 들어가 일체 회의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
았다. 그런탓에 호적이 퇴각하는 고구려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호적은 생각했다. 그런생각의 근거는 낙랑수도에서 고구려국경까지의
거리가 짧다는데 있었다. 만약 부여나 백제였다면 적국수도와 국경까지의 길을 왕복하는 것
만으로 전부 굷어죽었을 것이다.
낙랑국 중앙의 평야지대를 지나 북부 산악지대(자명고의 임지)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고구려
군은 정지하고 휴식을 취했다.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차라리 적이 보이는 넓은 들판에서의
야전(野戰)이라며 아무리 고구려군이 엉망이 됬더라도 버틸수 있었겠지만 산악지대를 배경
으로 적이 유격전으로 나온다면 견딜수 없을 것이다. 단번승부가 아니라 끈질긴 인내심이
요구되는 싸움형태가 될것이기 때문에 지친병사들이 감당하지 못할것이다.그날 저녁 병사들
이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잠을 청하는사이 장군들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살아남을 방도를
생각해 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가진게 뻔한 상태인지라 좋은 전략이 떠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상태로 주저 앉아 있을수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사자(餓死
者)와 탈주병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다음날부터 고구려군은 비교적 상태가 좋은 부대들을 먼저 출발시켜 본진이 통과할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장악하여 위험을 제거한후 후위부대가 길을 따라 나섰다.
상도에서는 고구려군이 접근하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었다. 고구려군이 크게 쇄약해졌다는
소식이 여러차례전해졌지만 그래도 두려움 때문에 성내를 빠져나가려는 주민들과 탈영병이
무더기로 발생하여 성내는 혼란에 빠졌었다. 고구려군이 한번만 제대로 공격했어도 상도는
함락됬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행이도 고구려군은 공격을 포기하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조
정은 그 공포감의 여운때문인지 차후의 대책에 대해 독자적인 정책을 수립하기보다 자명고
의 의견을 먼저 물어왔다. 자명고의 위치는 북부에서의 성공적인 공방전탓에 출신과 직급을
떠나 낙랑내에서 결정적인 것이 되버렸다. 무엇이든 자명고에게 물으려고 했다. 특히 신하들
을 믿지 못하는 왕은 더욱 그러하였다. 차후의 방책을 묻는 조정의 서신에 자명고는 이렇게
답신을 보냈다.
-이제 승리는 결정적인게 되버렸습니다. 이대로 가만 나두어도 적은 아무짓도 하지 않고 국
경너머로 도망갈것입니다. 하지만 싸움은 이번 한번으로 끝나는게 아니므로 적의 병력과 왕
족중 일부라도 소모시켜야 합니다. 그렇게만 할수있다면 앞으로 상당기간 고구려군은 우리
나라를 넘보지 못할것입니다. 어차피 적은 소신의 임지로 들어오고 있으니 1만정도의 빠른
기병을 저에게 보내주신다면 소신이 그일을 해보겠습니다. 섣불리 평야에서 적과 대전하려
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적은 지쳤어도 고구려입니다. -
자명고의 서신을 받은 낙랑 조정은 기병1만기를 자명고의 휘하로 급히 보냈다. 환자집단인
고구려군이 조심스럽게 북진을 하는사이 낙랑북부군은 이 일만기를 지원받아 더욱더 강력해
졌다.
그해 여름은 만주의 날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다.
별동대가 도로를 감제할수 있는 봉우리나 고지를 점령하는 사이 고구려군은 조심스럽게 길
을 따라 행군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제대로 못먹고 병에 걸린 고구려병사들은 대열에
서 하나 둘씩 떨어져나가 길가에 쓰러졌다.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자기검으로 목을
찔러 자살하는자도 무수히 많았다. 장교들은 때리고 욕설을 하며 이들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숫자가 너무 많아지자 포기해야만 했다.성한 병사들도 이들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
았다. 그들을 돕다가는 자기들도 탈진해 쓰러질것이다. 또한 밤마다 텅비는 막사가 늘어만
갔다. 처음에는 혼자서 탈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집단으로 탈영하기 시작했다.
호적은 이 참상을 보고도 굴하지 않고 대열전체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고함을 지르고 격려
하며 한명의 병사라도 더 끌고 나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신도 굶은지 얼마나 됐는지 기
억도 못하고 있었으나 그는 결코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여름의 마지막, 더위가 잠시동안이나마 쏟아지는 비에 가셨다고 좋아
하는 사이 별동대로부터 급보가 전해졌다. 아군 진로상의 도로옆 고지 여러군데가 적에 의
해 점령됬다는 것이다. 사전에 탐지했으므로 매복공격은 피할수 있었으나 이들적을 물리치
지 않는한 돌아갈 길은 없었다. 호적은 주위신하들의 만류를 거절하며 자신이 직접 별동대
를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그는 공격에 나서기전에 신하들에게 자신이 적을 공격하는사이
중앙을 돌파하라고 지시했다. 공격이 성공해도 얼마나 지탱할지 모르므로 처음에 빠져나가
는게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호적의 공격은 예상대로 난관에 부닥쳤다. 적이 견고한 참호와 녹각등으로 잘 만들어 놓은
진지를 지친 고구려병사들의 육탄공격이 쉽게 깨트릴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두에
선 호적의 용전과 여겨서 실패하며 모두가 죽는다는 위기감에 악이 받친 고구려병사들의 독
기 때문에 고전 끝에 고지 두군데를 모두 함락시킬수 있었다. 그사이 고구려군 본대가 도로
를 따라 북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호동은 본대의 후미를 책임지는 부대장이었는데 형이 산봉우리에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옆의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호적의 무사를 기원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는 아주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태자는 위기에서 더욱더 빛을 바라
고 있었다. 그래서는 ...........
밤이 왔다. 내일만 지나면 전에 주둔했던 용봉성 부근의 평야가 나오게 된다. 평야로만 무사
히 들어갈수 있다면 한숨쉴 여유를 찾게 될 것이다. 용봉성에서 고구려국경까지는 아주 짧
은 시간에 도달할수 있는 거리다.
밤은 무사히 지나고 아침이 오자 희망적인 생각을 가득품고 고구려인들은 출발준비를 서두
르고 있었는데 그들의 야영지 주변 산봉우리에 배치됬던 병사들중 일부가 온몸에 상처를 입
고 도망쳐오고 있었다. 적이 밤사이 고구려군숙영지 주변의 높은 고지들을 모조리 점령했다
는 것이다. 물론 고구려군도 밤에 이곳에 부대를 파견하여 지키고 있었는데 어찌된일인지
아침에 온 연락외에 일체의 경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자명고군이 주도면
밀하게 대부대로 포위하여 한명도 살려나가지 못하게 해서 그렇게 된것이고 피로가 극에 달
한 고구려군 병사들이 모두 잠에 곯아 떨어져 제대로 저항못한것도 거기에 더해진것이지만
고구려인들은 낙랑군이 귀신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한것이라고 생각할정도로 놀랐다.
움푹파여진 고구려군 야영지를 주변의 산등성이들이 완전히 포위하는 지세였는데 어느곳이
나 낙랑군의 군기가 펄럭였다.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주변의 산은 물론이고 도로에도 벌써
방책과 녹각이 설치되어있었다. 함정에 빠진 것이다. 어제 낮 고지에서의 낙랑군의 위협은
그날 저녁 고구려군을 안심시키려는 기만작전이었던 것이다. 낮에 전투에서 승리한탓에 안
심한 고구려군은 그날밤 경계를 소홀히 했다. 자명고는 적의 피로가 극에 달하고 평야가 눈
에 보이는 이지점을 최후의 공격장소로 정하고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여러 가지 장애물
과 부대들을 미리부터 준비하여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
고구려군은 북쪽으로 통하는 길에 집중하여 우선적으로 공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곳에
배치된 낙랑군은 용봉성과 자우성에서 백전으로 연마되고 잘먹고 잘쉬여 체력이 남아나는
낙랑고참병 부대였다. 엄청난피해를 입고 고구려군은 야영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다시밤이 되었다. 일부병사들이 어디선가 고기를 구해와서 허겁지겁 먹어댔다. 무슨 고기인
지 묻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그러나 호적과 장군들은 모르는체 하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고구려군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낙랑군이 공격해오면 깨끗이
전멸하든지 아니면 반격하여 활로를 모색하려고 했다. 먼저 공격하기에는 지형이 너무 불리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의도는 이제 분명해 졌다. 아군을 굶어죽
이려는 의도다.
사신이 왔다. 항복을 권하는 사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왕족중한명과 병사들중 절반을 넘기면 나머지병사들의 무사귀환을 보장하겟다는 것이다.
사실 자명고가 고심하여 짜낸 그다운 내용의 서신이었지마 결과적으로 잘못된것이었다. 차
라리 전부가 항복하라는 내용이었다면 모를까 전우 절반만 넘기라는 내용은 고구려군이 선
듯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자명고는 전원이 항복하라면 용봉성에서 부상자집단이 그러
하듯 지독하게 항전하다가 낙랑군도 많은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해 그렇게 적어 보낸것인데
전우애라든가 체면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실수였다. 고구려군은 분격하여 사신
을 죽이고 그 머리를 말꼬리에 매달아 낙랑진영으로 돌려보냈다.
정말로 강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실수로 인한 뒷수습에 최선을 다할것이
지만 고구려왕은 화려한 천막속에 틀여막혀 절망만 한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부끄
러웠던 것이다.
호적과 고구려군 장수들은 모욕적인 낙랑군의 서신에 자존심이 상하여 최후의 공격을 다짐
했다. 그러는 한편 여기서 고구려 왕과 왕자들 전부 죽을 경우에 대비해 다음번 왕위 계승
에 대해서 까지 논의를 하였다. 일부 신하들은 호적과 호동이 전하를 모시고 탈출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호적은 반대하였다. 아주 강한 어조로.... 왕족은 많다. 전하와 나 그리고 호동
은 5만 장병을 죽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된다고 말했다. 듣는 신하들 전부가 모두 놀라
한참을 말을 하지못할정도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비쩍 마르고 독기가 가득찬 서슬퍼런 호적
의 말에 모두가 반대를 하지 못하였다.
호적은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그렇게 회의에 참석하도록 말을 했건만 왕은 눈물만 흘릴뿐
나오려 하지 않았다.
-저런 왕은 이제 고구려에 필요치 않아. 살아남아도 해만 될 것이다. 여기서 죽는게 국가를
위해 좋을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내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나도 자결하겠다.-
다음번왕위 계승자는 호적의 숙부이자 왕제인 고비원의 장남으로 결정하고 호적이 직접 왕
의 옥쇄를 서신에 찍어 왕의 확인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왕에게는 알리지도 않았다. 그는 정
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구려군이 총공격에 나설 때 탈출할사람들은 남쪽으로 우회하여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호적은 장군들과 장교들을 모두 모이게 한후 최후의 연설을 하였다.
"여러분들에게 죄송하다. 모두 전하와 나의 책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명성왕의 자식들이며
위대한 고구려의 무사다. 살아서 적의 포로가 되거나 굶어죽느니 싸우다 죽자. 내일 새벽에
일제히 총공격에 나선다. 모두다 싸우다 죽어라. 한명도 포로가 되지 마라. 내 죽어서도 적
에게 포로가 된자들을 용서치 않으리라"
그리고 호적은 왕의 호위병을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 적당한 시기에 전하를 죽이라고.. 살아
서 낙랑군의 포로가 되 자자손손 수치가 되느니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이다. 병사들은 눈물
을 흘렸지만 호적은 냉정하게 등을 돌려버렸다.
새벽어둠속에서 고구려군은 전원이 도열하였다. 왕은 가마로 옮겨져 대열의 맨선두에 세워
지고 호적은 한손에 창을 들고 병사들에게 등을 보이며 섰다. 이제 마지막 임무는 고구려무
인라는 이름에 걸맞게 용감하게 싸우다 죽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
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 내정신과 육체가 가진 모든힘을 쏟아부어 싸우다 죽는게 내가 지금
30여년을 살아온 유일한 목적이다. 호적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4부왕(9)-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