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9)

4부 왕(8)

         상상도

                           자우성

                            용봉성                그외다른 성들

                                                     성 . 성.     성.

남서쪽 세 거성

                           !

                           !

                          ↓                             

                         낙랑수도로 가는길

               

적이 남하한다음부터는 용봉성에 대한 염려도 자명고의 걱정속에 추가되었다..용봉성이 과연 

버텨줄것인가?  이런상황에 대비하여 준비는 많이 했으나.......

용봉성의 임전태세는 오히려 자우성보다 낳다고도 볼 수 있다. 북부군이 그 성 근처 평야에

서 훈련했기때문에  관리가 잘되있었고 병력수도 자우성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대려전쟁에 

참전경험이 있는 고참병들도 그쪽이 더많았으며  근위대출신 장교들은 거의 전원  용봉성에 

배치되어있다. 자신이 통제가능한 자우성보다 용봉성이 더 염려스러워 그렇게 하도록 한 것

이다. 

용봉성이 고수되고 자신들이 고구려군 보급선만  차단할수 있다면 이전쟁은 낙랑의  승리로 

돌아갈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만약 용봉성이 함락돼고  자우성의 자명고군이 적의 보급선도 

차단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자우성 분전(奮戰)도 헛된  것이 될것이며 낙랑북부지역

은 고스란히 고구려의 수중으로 들어갈 것이다. 용봉성은 북부지역을 통제할수 있는 가장핵

심적인  성이고 적이 보급을 충분히 받고 나서 다시 자우성을 공격한다면 전력이 한계에 달

하고 고립무원인 낙랑군은 견디기  어려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봉성이 함락되더라도 

자우성의 자명고군이 성을 유지하면서 적의 보급선을 봉쇄할수만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것이

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군량5일분을 가지고는 도저히 뭘 어찌 해볼수가 없었다. 군량과 원

병을 외부에서 지원받지 못한다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성은 여전히 수비군보

다 세배는 많은 적에 둘러싸여 있었다. 원병을 받아 이들을 쳐부수어야 다음 작전이 가능했

다.

외부와 연락을 기도하는 일은 여전히 곤란했으나 적의 본진에 포위되어있을때보다는 한결낳

았다.  고립된지 90여일만에 각지로 연락병들이 무사히 파견되었다. 동쪽의 세성에 급히 원

병과 군량을 자우성쪽으로 보내라고 연락하고 남서쪽 세거성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서신을 보냈다.

-그대들이 걱정하는 바를 내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적은 용봉성을 공략하느라 그

쪽까지 진출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부대를 이끌고 자우성으로 오라. 만약 이대로 적이 철군

한다면 그대들은 전하를 어찌 뵐참이냐?  그리고 상도의 까탈스러운 대신들에게 뭐라고 변

명할것인가? 다른성들은 목숨걸고 싸우고 있는동안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할것인가? 또한   

그대들이 높은 담을 가진 성에 숨어있는 사이 나혼자서  큰일을 해내었다고 큰소리칠수 있

을 것이다. 그뒤는 어떻게 될것같은가? 내가  어떠한 일을 할것같은가? 아무리 선(善)한 전

하라도 이번만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전세(戰勢)로 볼 때 아군이 절대 유리

하다. 지금이라도 참가한다면 그대들은 대공을 세워 천하에 이름을 날릴수 있을 것이다.  어

서오라. 기다리고 있겠다.-

자네들이 오지 않으면 나도 결코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의  뜻이 담겨져있었다. 만약 이번

에도 오지 않는다면 자명고는 절대로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원병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성밖으로 출격하기 위해 병사들을 재편성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그들의 도착소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동쪽 성들의 부대가 자우성으로 오는 도중에 고구려군의 매복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병을 청하는 서신에 적을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

렀는데도 바보같은 자들이 실수를 저지른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동쪽성들의 군대를 공격한  적군은 자우성견제를 위해 남겨졌던  부대중 

일부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성밖의 적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음날 자우성의 동문이 열리면서 약 500여명의 낙랑군 보병이 성밖으로 미친 듯이 내달리

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고구려군도 허겁지겁   기병을 내보내 추격했다. 자우성 동문

밖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나트막한 돌산이 있었는데 낙랑군들은 그쪽을 향해 전

력으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군 본진은 자우성 서쪽에 있어서   동문밖으로 내달리

는 낙랑군과 막 진에서 빠져나온  추격하는 고구려군기병과는 거리가 상당했다.   그런탓에 

낙랑군 500은 고구려기병의 공격을 받기전에 간발의 차로  돌산에 도달할수 있었다. 돌산에

도 고구려군경계병이 배치되있었지만  소수였으므로  낙랑군이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숨어

서 구경만하고 있었다. 낙랑군이 돌산위쪽으로 기어올라가자 추격해온 고구려군기병들은 말

에서 내려 이들을 뒤쫓갈 준비를 하였다  .  수는 7-800정도로 보였다. 절대 성밖으로 낙랑

군을 내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그때 성벽위에서 이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자명고가 신호를 보냈고  자우성 동문이 활짝 열

리면서 약 700기의 낙랑기병이 막  말에서 내려 돌산을 오르려던  고구려 기병대를 덮쳤다. 

동시에 돌산으로 적을 유인하던 낙랑군도 산을 내려오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돌산에 

오르고 일부는 말에서 내리는 와중에 있던   고구려군은 낙랑군기병과 보병의 협공을 받고 

순식간에 뿔뿔히 흩어져 달아났다. 고구려군이 동쪽성들의  아군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분산

되어  병력이 부족할것이라고 예상한 자명고는 보병으로 적을 돌산쪽으로 유인하고 기병으

로 뒤통수를 쳤던 것이다. 

그러나 기병을 쳐부쉈다고 다 끝난게 아니었다. 기병이 먼저  낙랑군을 추격하기 위해 떠난 

고구려군 본진에는 약 1천명의 보병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기병대를  따라가기 위해 진을 

나오다  우군이 당하는 꼴을  보고 맹렬하게 낙랑군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오고 잇었다. 낙

랑군은  보병과 기병의 기동력차를 이용해서 절묘하게 고구려기병을 쳐부순셈이다.

자명고는 재빨리 병사들을 지휘하여  방어대형을 만들었다. 보병은 방진을 구성하여 선두에

서고 뒤에 기병이 대기하는 형태다. 승리는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아군은 정갈한  대형을 

갖추고 있었는데 반해 고구려군은  대형을 무너뜨리고 마구잡이로 돌격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군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은 낙랑군의 단단한 방진을 보자 돌진을 중지하고 

비슷하게 방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견고한 방패로 앞을 가리고  그사이로 길다란 창을 빼고 

있다. 적군 대장은 침착한 자인 것 같다.. 고구려군은  보병 일천이었고 낙랑군은 기병7백에 

보병3백이다.  전쟁이래 처음으로 대등한 조건하의 야전이 벌어질 찰라였다. 

숫자가 비슷한 상태에서 기병이 많은 낙랑측이 유리한 것 처럼 보였지만 정작 낙랑군 대장 

자명고는 조마조마 했다. 아직도 병사들을 불신하는 마음이 많이 남아있었던 탓이다.  맨몸

으로 적과 평지에서 싸우는 것은 성에 의지하며 싸우는것과 천지차이다 .그리고  야전은 처

음있는 경우라 자명고는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이 본진으로 돌아가 쳐박히면  일

이 어렵게 될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양측은 자우성 동문밖평야에서  8백보의 거리를 두고 서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도 선

뜻 먼저 공격하려고 하지 않앗다. 낙랑군측은  기병이 많았으나  고구려군의 창병방진이 워

낙 단단해 보여 섣불리 공격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고구려군도  기병이 많은 적을 보병으

로 공격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적이 공격하기만을 기다리는 듯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런상태로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부하들은 자꾸만 자명고를 쳐다보았다. 어서  다음명령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도 아무생각 없이 있던게 아니었다. 머리를 굴리며 방도를  생

각해 내려 애썼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주  천지에 상대가 없다던 막강고구려

군과 정면대결하는 것이다. 그 시간 그는 병사들보다 더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시간은 고구려편이었다.이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밤이 오거나  최악의 경우 동쪽성의 낙랑군

부대를 공격했던 적이 돌아오면 큰일이었다. 

낙랑군이 주저주저 하는 사이 고구려군이 먼저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느릿한 속

도로 창을 가슴높이까지 세우고 전진해 오기 시작했다.  방패를  견고하게 든체 고슴도치같

이 무수히 많은 날카로운 창을 세우고 한치의 빈틈도 없이  전진하는 모습은 사뭇 위협적이

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기병은 기동력에  가속을 붙힐 시간이 줄어들어 절대  불리해진다.  

그것을 노리는지 고구려군은 아주느린걸음으로 틈을 주지 않고 천천히 낙랑군을 향해  접근

해온다. 

이제 양측의 거리는 500보 정도로 좁혀졌다.

자명고는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병사들을 바라 보다가  순간 그의 등뒤에 서있

던 한 낙랑기병이 전투를 앞두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 초원의 자비로운 여신이시여. 우리들 대지와 회색늑대의 자식들을 적의 사악한 검과 창으

로부터 보호하여주소서 . 저  마귀같은 적들을 물리치고 우리들의 드높은 명예가 당신과 함

께 하도록 우리들의 검과 우리들의 말과 우리들의 의지에 강철같은 당신의 힘과 용기를 나

누어 주십시오 . 우리들은 기필코 이겨야 합니다.. "

말갈출신인 병사였던것같다.  그런데 정말로 대지의 여신이 자명고를 구원(救援)하려고 했는

지 말갈식의 이 기도를 듣고 그는  유목민의 기마전술에 대해 쓴고구려 병서의  한 구절(句

節)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는 즉시 기병대 장교들을 불러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장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부하들에게 돌아갔고 낙랑군 기병은 보병부대 뒤에서 옆쪽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모습을 본 고구려군은 적기병의 돌격이 시작되는줄 알고 전진을 멈추고 접전에 대비한다.  

낙랑군 기병대는 한껏 위용을 부리면서 돌격을 감행하려는지 함성을 지르며  고구려군을 향

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낙랑군 보병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고구려군에 가까워 지면서 꺼내든 것은 돌격용 창이  아니라 기마용 단궁(短

弓)이었다. 낙랑군 기병은 고구려군 보병대형옆을 쏜살같이 자나가며 활을 무더기로 날렸다. 

기병의 충돌에 대비하여 단단하게 웅크리고 있던 고구려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진(鎭)방

향을 방금 낙랑군이 돌아간 방향으로 돌렸다. 옆을 공격할것으로 생각한모양이다.그러나  낙

랑군 기병대는 고구려군 보병진형의 측면을 순식간에 멀리 지나쳐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시

작했다. 고구려군은 다시 진방향을 낙랑군 기병대를 향해 뒤쪽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이번에

도 낙랑군 기병대는 고구려병진에 돌입하지 않고 옆으로 지나가며 활을 쏫아댔다. 그런행동

을 낙랑군은 수십차례반복했다. 고구려군  보병은 앉아서 전우가  죽어가는꼴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만약 상당한 숫자의 궁수대를 고구려군이 가지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것

이지만 궁병대는 동쪽으로 가고 여기에는 없었다. 기병을 직접 치기 위해 쫓아가면 멀리 달

아났다가 크게 우회에서 달려들었고 다시 방향을 바꿔 쫏아갔을때는 또다시 저멀리  달아나

있었다. 인간의 발걸음으로 기마를 따라잡을수 있을리 없었다.

자명고가 기억해낸 전술은 기병이 궁시로 치고 빠지면서 적의 힘을 빼버린후 보병과 협공하

는  것이다. 원래 이것은 말갈이나  거란, 선비족등 유목민족의 전술이다.  고구려나 부여등 

초원에 위치하면서도 산업이 발달한 국가의  기마전술은 견고한 갑옷으로 무장한  중기병이 

적중장갑보병부대를 전면에서 공격하여 한번에 격멸하는 그것인데 반해 유목민족들은  그러

한 중갑(重甲)을 얻기가 어려워 중장갑 보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이러한 전술을 개발했던 것

이다. 

계속해서 낙랑군 기병이 치고 빠지면서 궁시를 쏟아붇자

고구려군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기병전(騎兵戰)이 장기인 고구려군

이라 보병단독으로 야전에서 대결하는 상황자체가  생소해서 어찌해야 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이대로 대기하고 있던 낙랑군 보병을 공격한다면 후미나  측면이 비어 적기병의 공

격을 받을것이고 직접 기병을 공격하는 것은 월등한 기동력차이로 꿈도 못꿀일이다.

고구려군 대장은   상황의 불리를 깨닫고 퇴각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불리할수록 퇴각명령

은 더 신중하게 내려야 하는 법이다. 고대 전쟁에서  사상자의 대부분은 전투중에 발생한다

기 보다 퇴각중에 적의 추격을 받고 발생한다. 고구려군 대장을 그것을 잊었다. 기병의 끈질

긴 궁시공격에 많은 피해를 입고 겁을 집어먹고 있던 고구려군은 퇴각명령이 떨어지자 서로 

먼저 도망가기 위해 대열을 무너 뜨리기 시작했다. 적대형이  어수선해지는 것을 본 자명고

는 낙랑군 기병대에 정면공격을 지시하고 자신도 보병을 이끌고 퇴각하는 적꽁무늬를  들이

치기 위해 돌진했다. 

나중에 자명고가 감탄했듯이 낙랑군 기병대는  자기편 보병대가 고구려군 후미에  도달하기 

까지 휼륭하게 참고 기다렸다가 보병과 함께 동시에 고구려군에  공격했다. 그들이 공을 다

투는 마음에 먼저 쳐들어갔다면 피해가 상당햇을것이다.

전투는 일방적안 낙랑군의 학살(虐殺)로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났다. 고구려군 보병1000명중 

살아서 도망간자는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낙랑군 사상자는 단 50명이었다.  

적병을 일방적으로 섬멸했는데도 불구 하고  병사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아주 차분하고 여유롭다.  자신감이 충만한 인간들만이 볼일수 있는  행동이다. 

오히려 자명고가  병사들보다 더 감탄했다. 유목민의 가마 전술은 과거 그가 훈련시켰던 것

이 아니라 갑자기 생각난 것을 오늘 처음으로 지시했던것인데 그것을 능슥하게  해낸데다가 

그리고 우군보병이 고구려군에 도달할 때 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동시에 협격한  그 자제심

과 지혜!! 

낙랑군은 이제 그 무능하고 엉망인, 과거 만주에 살던  다른국가의 사람들이 조롱하던 군대

가 아니었다. 자명고라는 희대의 명지휘관을 맞아들여 혹독한 훈련을 받고 석달간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자신감을 얻어 훌륭한 군대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물론자우성 부대에 한정된것

이지만..

성밖적을 일소한 낙랑군은 그대로 동쪽으로 진군해 나갔다. 그리고   아군을 매복공격한 적

을 발견하고  기습하여  패주 시키고 드디어 동쪽성의 군대와 만났다.  양쪽 부대원들은 죽

었다 살아난 형제를 만난 듯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과거 용봉성에서 훈련할 

때 정(情)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그쪽 장교들도 자명고를 보고  눈물을 지었다. 살아서 다

시 이 이상한 사령관을 볼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이제 자우성 인근은  완전히 낙랑군에 장악되었고 고구려군 보급선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

었다. 원군과 군량을 얻고 사기 충천해진 낙랑군은  고구려국경을 향해 곳곳에 건설되 있던 

토루들을 하나둘씩 파괴하여 고구려군본국과의 연결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남서성들의 부대

는 그때까지 오지 않고 있었다. 자명고는 그들이 참기 힘들정도로 괘씸했지만 지금 가진 부

대만으로도 충분해서 더 이상 꼴도보기 싫은  그들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때까지 용봉성은 고수 되고 있었다.

고구려군

용봉성 공격에서도 고구려군은 이루말할수 없는 고전을 겪고 있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공격하여도 용봉성은 불가사리 처럼 끝끝내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몸소 선두에 서서 공격

을 독려하던 고위장군 두명이 적의  화살에 맞고 전사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제 몸이 성한 

병사들을 수용한 막사보다 환자들을 수용한  막사가 더 많을 지경이다.  사기는 밑바닥까지 

저하되었고  군수품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말을 조심하던 장군들도 이상황을 

더보고만 있을수 없어 왕에게 퇴각하기를 진언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왕은 막무가내로 공격

할 것을 지시하며 퇴각을 권한 장군들을 패배주의자로 몰아  붙쳤다. 주위에서 말리지 않았

다면 흥분한 왕에게 목이 날아간 장군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우성을 견제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부대가 전멸하고 적이 아군 보급선을  완전히 

차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퇴각외에는 다른 수가 없을  것이

다. 

그런데 과거 그토록 현명했던 왕에게서  정말로 이해할수 없는 어명이  떨어졌다. 용봉성은 

무시하고 적수도로 진군하라는 것이다. 

적 수도로 진군하라?

고구려의 태자 호적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게 될말인가? 이제 군량은 10여일분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부상자들이 너무 많아 부대가 

전투기동하기에 버거울 정도였다.  왕은 적의 군량을 탈취하면 보급  문제는 해결돼고 부상

자들은 이 자리에 남기고 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삼천명정도의 병사들을 남겨 부상자들을 

호위하게 한다고 한다. 그게 말이 되는것인가? 4천의 아군을 며칠도 안돼 쳐부순 적이 이들

을 그대로 놔둘것인가? 군량을 적으로부터 탈취해? 말이  쉽지 고래(古來)로 적의 군량을가

지고  보급에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더구나 적은 청야전술밖에 가진게 없는 자들이다. 우

리가 빼앗아 먹을 군량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고구려군의 사기저하는 호적이 군문

에 들어온 이후 본일이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병사들은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고 전쟁수행

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다. 호적은 병사들이 목숨을 거는  것이 그 전쟁의 유불리가 아니

라 얼마나 현명하게 치루어지고 있느냐란것을 알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심사숙고해서 진행

된다면 불리한 상황하에서도 용감히 싸우고 심지어 자기자신의 목숨도 쉽게 버리는게  병사

들의 생리란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전쟁지도에는 자신의 희생을 

바라지 않는게 보통병사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왕의 잘못된 아집은 직접 전해지지는 않았

지만 알게 모르게 병사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던것이다.  

호적은 어전회의에서 이대로 적수도로 진군하면 우리고구려군은 전멸이라고 말하고  고구려 

최정예병력을 여기서 이대로 전부 소모한다면 거란 말갈. 부여 백제  옥저등 이 일제 히 들

고 일어날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무엇을 가지고 그들과 싸울것이냐고 반문했다.지금  낙랑

원정에 동원된 부대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정예부대들이다. 이정도 수준의 병력을 다시 재건

하는데는 일이년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아직은 물러날  기회가 있으며 

지금 남은 병사들이라도 온전하게 데리고 귀국하는 것이 최선의 방도라고 말했다. 낙랑정벌

은 언제고 다시 할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낙랑은 우리의 주적이 아니다란 뜻이었다. 마지

막으로  자신과 고구려군 지도부의 과오에 대해 격렬하게 자아 비판을  했다. 적을 너무 경

시했으며 아군의 전투력을 너무 과신했다고. 태자라는 신분이 아니면  할수 없는 솔직한 반

성이었다. 장군들도 모두 동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왕은 지금까지의 희생을 헛되이 하고 어떻게 돌아갈수 있느냐고 말했다.아직 군량은 

며칠동안 버틸분량이 남아있다. 적이 뜻밖에 성방어를  잘했다고는 하지만 야전에서 고구려

군을 당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적 수도부근까지 진군하여 주변을 초토화 시키면 적은 참지 

못하고 야전을 도발할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아군의  필승은 분명한것이고 지금까지의 패

세도 단번에 만회할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고구려군이 이런 작고 약한국가

에게 꽁무늬를보인다면  다른강한 적들이 우리를 우습게 볼것이라고 말했다.

호적은  아버지의 변화가 놀라울뿐이었다. 아버지는 단순히 용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

명했다. 무식하게 용감하기만 왕에게  지배받았던 국가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몰락했는가를 

역사에서 그는 무수히 많이 배워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왕이자 자신의 아버

지는 과거 용감하면서도 적당히 자제할줄 아는  지혜가 있는 진정으로 존경할만한  왕이었

다. 그 대병을 가진 아굴타와 그 살인귀 같이 지독한 백제군들과 중원의 강자 후연의 그 개

미떼 같이 무수히 많은 적들과의 진창같이 어렵고 긴 싸움에서 왕은 고구려군을 수도 없이 

위기에서 구해냈다 . 그 지혜로..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눈빛이 정상이라고  볼수 

없을정도로 아버지는 뭔가에 집착하고 있었다. 무엇이 부친을  저렇게 만들었나? 뭔가 한가

지 납득할만한 이유만 있더라도 그는 아버지가 저렇게 지독하게 집착하는 일에 찬성을 하고 

싶었다. 자식된 도리로써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 낙랑수도로  진격한다는 

것은 만에 하나도 성공할 가망성이  없는 백해무익 필사필망(必死必亡)의한 일이다.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전고구려의 운명을 위태하게 할 그런일에 절대 찬성할 수가 없었다. 

고구려는 왕한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고구려는 누구의 것도 아닌  존재하는 그자체로 가치

가 있는 이 천지에 가장 위대한 절대 존재 였다. 그것을 운명이 아닌 한명의 인간탓에 끝장

나게 할 수는 없었다.

왕이 바보가 된것을 누구 탓으로 돌려  야 할것인가? 한가지 있긴 하다.  그것은 왕이 패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과거 패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  굴욕에 어떻게 대처 해야되는

지를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져본 경험이 없었다. 한번의 패배가 모든 것의 종말이  아

니고 그것을 잊지않고 교훈으로 삼으면 오히려  더 크고 종국적인 승리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을 영원히 촌놈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촌놈에서  벗어

나는길은 승전(勝戰)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그런데 1차 원정때 패했고 이번에도 

또 패하게 생겼다.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이겨야만 했다. 절대  이대

로 돌아갈수 없었다. 그 왕궁의  혐오스러운 미친년과 거드름쟁이 귀족들에게  절대로 패한 

모습을  보일수 없었다. 

-4부 왕(8)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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