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9)

4부 왕(7)

국경을 넘어선 고구려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자우성 외곽에 도착했다. 그 뒤 그들은 

조심스럽게 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성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참호를 파고 그 뒤편에는  

녹각,목책등을 꼼꼼하게 설치하였으며 자우성북쪽부터 시작하여  남쪽까지 공사를 연장시켰

다.  작업중에도 낙랑군의 기습에 대비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10여일만에 각종장애물로 구성된 포위망이 자우성 동 서쪽 산허리 일부를 제외하고  완성되

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고구려군은 보급선보호를  위해 자우성에서 고구려국경에 통하는 

길목곳곳에 20-30명정도가 들어갈수 있는 수십개의 경계용 토루를  건설했다. 

호동의 기마대는 포위망의 남쪽에 위치하여 북상해올 낙랑군의 다른 부대를 제압하는  임무

를 맡았고 왕자 호적은 직접 성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자우성에서는 그동안 아무 반응

이 없었다.

자우성에 도착한후  공사와 경계에 온힘을 쏜던   고구려군은 보름이 지난날  진을 빠져나

오기 시작했다.    공격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보병부대가 사각형모형의 병진을 갖추며 성을 

따라서 파여진 참호선  앞에 나란히 서고  각부대의 선두에는 누거(성과 같은 높이의  탑을 

세운 수례).충차(성문파괴용 공성병기) 등 공성병기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보병부대 선두에는 큰 방패를 든 갑병이 서고 그뒤에는  운제(전투용사다리)를 든 가

벼운차림의 병사들이 따라 서있었으며 보병부대 뒤에는 역시 방패로 보호된 궁수대가  서있

다.  

왕이 어기를 흔들며 신호를 보내자 고구려군은 서서히 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거

와 충차가 움직이면서 내는 삐거덕거리는 바퀴소리와 보행중에 병사들의 장비가 부딪치면서 

내는 금속성을 제외하곤 자우성평야는 신기할 정도로 고요했다. 

한발한발 성을 향해 고구려군은 진중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열을  정확히 유지 하며 잡담소

리 하나 없었다. 

궁시의 사정거리내에 고구려군의 대열이 들어갔는데도 낙랑군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때 

잠시 정지한 고구려군은  커다란 방패를 대열선두에 세워 땅에 고정시키고 후미의 궁병대를 

그 방패 뒤쪽에 서게하여 성을 향해 조준하게 했다. 그리고 보병들은 공성병기를 원을 그리

며 보호하는 형태로 대열을 변형했다. 궁수가 뒤쪽에서 지원사격하는 사이 보병이 공성병기

와 함께 공격할  것이다. 

고구려군이 부산하게 새로운 대열을 갖추는  사이 자우성벽위에서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낙랑군이 대열을 변형하는 시기를 노

린 것같다. 미처 방패뒤로 숨지 못한 많은수의 병사들이 화살에 맞고 쓰러졌고 누거에도 엄

청난수의 화살이 곷혀 고슴도치같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궁수대는 성

벽위를 향해 사격을 가하고 보병들은 사다리를 들고 누거와 충차를 밀기도 하면서 성을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해가 가릴정도의 많은 화살의 폭우를 뚫고 고구려인들은 성벽과 성문이 바로  보이는곳까지 

도착하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었는지 뒤에서 따라오던 병사들은 전우의 시체

를 밟고서야 앞으로 나갈수 있을정도였다. 

성벽이 손을 뻗으면 잡힐듯한 거리에 고구려군 선두가 도착했을때 갑자기 맨앞에 섰던 병사

들이 땅으로 꺼진 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성벽바로 아래에 사람 키를  훨씬 넘는 함정이 

파져있었던 것이다. 앎은 판자로 위를 덮고 흙을 살짝  덮어놔서 먼거리에서는 그냥 땅처럼 

보였다. 함정밑바닥에는 끝을 날카롭게 깍은 대나무가 수도 없이 박혀있었다. 함정에 떨어진 

병사들은 그 대나무에 전신이 꿰둟려 비명한번 못지르고 죽었다.

그때까지 냉정하게 행동하던 병사들도 이  모습을 보고 혼란에 빠져버렸다.  함정은 성벽을 

따라 해자처럼 자우성전체에 파져있었다. 성에 접근할수 있는곳은 성문에 연결된 도로 뿐이

었는데 낙랑군은 그쪽을 향해 집중적으로  궁시를 쏟아부었고 수백의 고구려군인의  시체가 

도로위에 산처럼 쌓여갔다. 공격은 중단됬다.

다음날 고구려군은 이른 아침부터 다시 공격에 나섰다. 어제와  다른점이 있다면  쌀한가마

니 정도 나가는 무게의 모래주머니를 한사람당 하나씩 들고  진을 나오기 시작한것이다. 어

제 밤을 새워 주머니를 만들고 흙을 채워 준비했다.

어제와는 달리 공성병기는 널찍히 떨어져서 대기하고 궁수대가 먼저 성벽에 접근해서  공격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적이 쏘는 화살보다 세배는 많은수의 화살을 성위로 쏟아 올리며 엄

호하는 사이 모래주머니를 등에 진 병사들이 돌진해서 성벽아래함정에 모래주머니를 던지기 

시작했다. 낙랑군도 질세라 함정을 매우는  병사들에게 궁시와 크고 작은  돌덩이를 포차로 

날려보내며 공격했다.  고구려 병사들은 죽어가면서도 누구하나 등을 보이는 자는 없다. 화

살에 맞으면 자신의 몸을 함정속으로 던져 모래주머니와 함께 매워갔다.  죽기도 많이 죽었

지만 숫자가 원체 많기에 함정은 금새 매워졌다. 함정이  매워지자 뒤쪽에 대기하던 공성기

계들이 성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병들도 사다리를 성벽에  걸치며 올라타기 

시작했다. 양측이 쏟아내는 화살이 해를  가리며 공중을 날고 땅에서는  부상자들의 비명과 

전투의 열기에 도취된 병사들의 함성이 가득차 있다.   

 호적의 부대가 오늘은 선두에 서고 있었다. 성벽아래는 아수라장이었다. 성벽위에서 기와장

과 크고 작은 돌들이 무수히 떨어져 고구려병사들을 쓰러뜨린다.  호적은 악을 쓰며 병사들

을 사다리위로 올려보냈다. 가끔 겁에 질려 땅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병사를 발견하면 발로 

차고 검으로 위협해서 위로 올려보냈다. 그의 어깨 견갑에는 화살이 하나꽃혀있었고 이마에

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엄청난 소음과  혼잡속에서 그는 통증조차 못느끼고 있었

다. 공격은 힘겹게 진행 되고 있었다.  성에 수많은 사다리가 걸쳐졌지만 오래 지탱한  것은 

별로 없다. 성벽위 낙랑병사들이 길다란 막대기로 사다리를 밀어  그대로 뒤로 쓰러지게 하

거나 엄청나게 무거운 돌들을 떨어뜨려 사다리를  부셔버렸기 때문이다. 보병의 인해전술이 

고전을 겪을 무렵 느릿하게 뒤에서 전진하던 누거가 성벽에  접근하고 있었다. 누거의 꼭대

기총안에서 병사들이 화살을 성안으로 쏘다가 성벽에 가깝게 접근하자 두꺼운 널빤지를  성

벽에 걸치고 그위로 성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탑은 아래위로 계단이 연결되 있어서 성벽아래

서 우왕자왕하던 병사들도 누거를 통해 성벽위로 돌격하였다. 호적은 이모습을 보고 이성도 

이제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도 검을 움겨쥐고 누거의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성벽위는 난장판이었다.  고구려병사들과 낙랑병사들이 좁은 성벽위에 뒤엉켜 칼하나 휘두

를 공간이 없었다. 서로 몸으로 밀어붙이며 이빨로 상대의 목을 물어뜯는 난투가  벌어졌다. 

호적도 누거의 널빤지를 건너 성벽위로 올라갔다.  이작은 성안에 이렇게 많은 낙랑군이 있

다는게 신기할정도로 적의 숫자가 많았다. 고구려인들은 적의 저항이 심하기보다 좁은 공간

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성벽위로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할정도였다.     

낙랑군도 만만치 않았다. 성벽위에 교두보가 만들어지면 그결과 어떤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

에 모두 필사적으로 고구려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거란이나 백제인들 못지 않다

고 호적은 생각했다. 아녀자 들 같다던 낙랑군이 아니었다. 고구려병사들이 낙랑군의 맹렬한 

기세에 눌려 서서히 밀려갈때 뒤에서 가교역할을 하던 누거가 포차의 돌덩이에 맞아 꼭대기 

부분이 날아가버렸다. 이렇게 근접한거리에서 포차를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인데 

낙랑군도 이판사판인 것 같다. 뒤쪽의 연결판자가 누거의 꼭대기와  함께 날아가 버리자 호

적과 병사들은 성벽위에 그대로 고립되버렸다. 하지만  극도로 혼잡한 혼전중이라 그런상태

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성벽위와 성안을  통하는 계단위로 무수히 많

은 낙랑군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도 호적과 소수의 고구려병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사자처

럼 날뛰며 적을 무수히 베어 죽였다. 아군이 다른 통로를 통해 성으로 들어올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숫자는 적었지만 역전의 호적과  그의 용감한 전사들은 자신

들숫자보다 훨씬 많은 적을 죽였다. 

하지만 고구려군이 다른곳을 통해 성벽위로 올라오는 기미는 안보이고 성벽위의 적수는  더

욱더 늘어가기만 했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은 호적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는 

상처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죽여서 지쳐있다. 그의 앞에는  낙랑인들 시체가 무수히 많이 

널려있다. 그는 여기서 죽는구나하고 생각했다 .  체력에 한계가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

토록 용맹하던 다른 병사들도 하나 둘씩 낙랑군의 창에 찔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

적은 두렵지 않았다. 무사답게 죽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결말은 뜻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늙은 병사가 

호적을 뒤에서 번쩍 들더니 성벽아래로 던져 버린 것이다. 그는 성아래로 떨어지면서  시체

더미속으로 낙하해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벽위의 병사들중 살아남은  자들은 

아무도 없었고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후로 매일 같이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10여일동안 일천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고구려군은 

악착같이 공격했지만 성은 떨어질 듯 하면서도 끝내 낙랑군의 수중에 있었다. 신왕등극이후 

백전을 치룬 고구려군도 이렇게 작은 성에 엄청난 희생자를 내면서 고전하는 것은 처음이었

다. 고구려군은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첫전투이후 15일째이 되던날 낙랑군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는 사신이 파견됬다. 하지만 사신

은 성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성문앞에서 실컷 조롱만 받다가 돌아와야 했다. 고구려인들

은 그날 저녁부터 방법을 바꿔 성안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서신을 묶은 화살을 수십

개 날려보냈다.

-무적의 고구려군 10만이 너희성을 포위하고 있다. 너희들은 결코 승리할수 없다. 항복하라.

군관들이 방해 하면 개인적으로라도 성을 나와서 투항하라. 소와 땅을 주겠다. 결코  전쟁포

로로 취급하지 않겠다.-

-너희들의 장군들과 성주들은 모두 사악한 거짓말쟁이에다  협잡군들이다. 그런자들에게 의

지해봐야 결코 살아남을수 없다. 고구려군에 투항하라. 만약 너희성의 중요한 지휘관들 목을 

들고 항복하면 우리고구려군은 그사람을 이성의 성주로 임명할것이다.-  

내부 분란을 유도하기 위해 별의별 내용을 담은서신을 성내로  무수히 많이 날려보냈다. 과

거 부여와의 전쟁때 효과를 본 방법이다. 썩은 기운이  넘치는 낙랑에서도 통할수 있겠다고 

고구려군은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투항병이 아니라 비슷하게 고구려군을 이간질할 내용을 담은  서신들이

었다. 낙랑군은 고구려군을 비웃고 있었다.

-고구려 병사들아.. 너희들은 참 불쌍하다. 싸움밖에 모르는 머저리 왕과 그자식들에 휘들려 

남의 나라까지 와서 이무슨 고생이란 말이냐. 평화로운 낙랑으로 들어와라. 우리나라는 죄없

는 다른 나라를 공격한적도 없고 모두가 평화롭게 잘살고 있다. 항복하면 소두마리와 여자 .

논 10마지기를 주겠다. 오기 싫다면 공격해라. 우리도 원하는 바다 .  모조리 죽여황야의 늑

대 먹이로 만들어 주겠다.-

낙랑군의 서신을 보고 울화가 치민 왕은 다음날 전병력을 이끌고 성을 공격했다. 호동의 기

병대까지 말에서 내려 성공격에 참여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하루동안 전사자만  500을 

내었고 부상자는 이루해아릴수 없을정도로 많게  발생하여 고구려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

다. 

다음날부터 고구려군은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최후의 수단이었다. 커다란 천막으로  공사장

을 가리고 파낸흙은 쌀가마니에 담아서 멀리 내다 버렸다.  그러나 말이 땅굴이지 평지에서 

무너지지 않게 굴을 파는 것은 보통힘든일이 아니었다. 처음 팠던 굴은 토질이 모래가 많은 

곳이라 금새 무너져 버렸다.  갱내에서  공사중이던 백여명의 병사들도 그대로 생매장됬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굴하지 않고 주변 산에서  밤마다 나무를 베어 갱목을 만들고  수천명이 

동원되서 단단한 지층을 찾아 밤새도록 굴을 팠다. 낮에는  낙랑군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재

지 못하도록 위장공격을 가하였다.

자우성

병사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원군이 올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수도의  회의

에서 나는 성이 포위되더라도 원병을 보내지 말라는 요구를  했다.   원병이 오더라도 결코 

고구려군과 야전에서 싸워 이겨낼수 없을것이다. 승산도  없는데 지원와서 적에게 패한다면 

적의 사기만 높이고 눈이 빠지게 원군을 기다리는 성내병사들을 절망케 하는 결과가 될 것

이다. 그러나 거짓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수도에서  이곳까지는 불과 닷새가 걸릴뿐이다. 

벌써 한달이 다되가는 지금까지 원병이 오지 않으면 병사들은 중앙에서 우리를 구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할 지도 모른다. 그것이 걱정이다. 병사들은 지금까지 잘 해주었다. 길어야 보름 

정도 버틸것으로 에상했는데 의외다. 하지만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자명고에게 걱정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식량은 충분했지만 화살이 많이 모자랐다.  처음 

10만개를 준비했는데 벌써 7만개를 소비했다. 고구려군이 쳐들오기전에 성내 민간인들과 군

인들을 총동원해서 만들었지만 소비량이 예상치를 훨씬 초과 하고  있었다. 화살의 대는 충

분했지만 깃을 만들 짐승깃털이 모잘랐던 것이다. 화살이 떨어지는날 이성도 끝장일 것이다. 

그는 고참 궁수들에게만 화살을 배분하라고 명령했다. 활을 요번  전쟁전에 처음 잡아본 병

사들은 표적도 보지 않고 마구잡이로 쏘는 경향이 있어 낭비가 심했다.  

자명고는 밤마다 전쟁전에 그가 기록해놓은 모든 공성법에 대한 대비책을 읽고 지금까지 고

구려군이 사용한 방법을 제외하고 남은 것이 무엇이 있는지 점검하였다. 남은 것은 수공. 화

공. 땅굴. 포차의 집중공격등이 있었다. 수공은 성주변의 대하의 물줄기를 바꿔 성으로 물길

을 돌리는것인데 자우성주변에는 이렇다할 큰 강이 없었다. 화공은  말그대로 불로 성을 태

워버리는것인데 자명고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었다. 자우성은  작은성이라 성내에 건물이 오

밀조밀하게 밀집된 형태로 건설되어 있었으며 성내에 우물이 10여개가 있었는데 유량이  풍

부한 편이 아니어서 먹기에도 부족할정도였다. 큰화재가 일어난다면 우물물만으로는 소화하

기 어려울것이다. 만약 적이 불화살을 쏘거나 포차로 유황과 기름을 칠해 불을 붙인 불덩어

리를 대량으로 성내로 쏟아 붇는다면 생각하기 싫은 끔직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땅

굴? 고대기록에 자주 보이는 공성법의 하나였지만 자명고는 머리를  설래 설래 저었다. 100

보의 땅굴을 파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아마도 한달은 걸릴 것이다. 지금 고구려군 진형

은 성에서 천보가 넘게 떨어져있었다. 땅굴을 하나 파서는  소용이 없으므로 여러개를 파야

될것인데 제대로 된 땅굴을 완성하는데는 최소한 6개월은 넘게 걸릴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포차의 집중공격? 전의 자우성같으면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자우성은 낙랑후대에 

싸은 성이지만  벽돌로 평지에 건설한 지나식 성이었다. 평지의 벽돌성은 빨리 만들고 보수

가 간편한 잇점이 있지만 대신 동이계열국가들이 만드는 구릉이나 산악을 기본으로  그위에 

자연석을 올려 만드는 성보다 강도가 훨씬 약했다. 이런 성들을 포차로 공격하면 성벽이 무

너질 위험이 다분했다. 그런데 자명고는  처음 이곳에 부임하자마자 이런  약점을 눈치채고 

성벽뒤에 흙을 경사지게 쌓아놓는  대비책을 실행했다. 자연석성보다야  약하겠지만 포차의 

공격으로는 성안쪽에 언덕을 만들어 지탱을  한 성벽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

다.

고구려군

땅굴공사를 시작한지 10여일째 4개방향에서 파들어간 땅굴은  불과 100보정도 였다. 병사들

이 악전고투하며 사력을 다했지만 좁은 땅굴끝에서 공사할수 있는 인원이 제한적이라  그정

도 거리밖에 팔수 없었다. 왕은 노발대발 하며 작업 태만의 책임을 물어 장교 몇 명과 병사

들 10여명의 목을 잘랐다. 하지만 도저히 땅굴을 기한내에 자우성에 도달시킬수 있을 것 같

지 않았다.

낙랑군(樂浪軍)

그럭저럭 두달이 지나갔다. 고구려군의 공격은 반복해서 가해졌지만 기세가 전만 못했다. 자

명고와 그의 부하들은 고구려군이 지쳐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낙랑군도 가랑비에 옷젖듯

이 사상자가 누적돼서 7-800명 가까운 인원이 전투에서 참여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의 원

래 방어병력은 2천이었고 성내주민에서 남자들1천명을  동원하여 총3천명이 방어에 임하고 

있었는데 거의 3분지 1이 사상한 것이다. 고구려군도 많이  죽거나 다쳤지만 병력차가 워낙 

커서 낙랑군은  한계상황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것  뿐만 아니었다.  전쟁전에 만든 화살이 

전부 소모돼서 낮에 고구려군이 쏜 화살을 밤에 몰래 수거해 사용하는 형편이었다.  

자명고는 밤마다 부상자들이 수용된 막사를 방문해서 그들을 돌보곤 했는데 그를 만나는 병

사들마다 언제 원군이 오는지를 물어왔다. 그런데 요새는 묻는이가 전혀 없다. 병사들도  원

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그렇지만 자명고가 우려하던  불온한 기색은 전혀 찾아

볼수 없었다. 전투시에는 적에게 노출된 곳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병사들과 같은 밥을 먹

고 병사들이 자는 허름한 집에서 똑같이 생활하는  이 이상한 사령관에게 불만을 가진자들

은 거의 없었다. 전의 사령관들같으면 이런 최전선의 위험한 성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

다가 전쟁발발직전에 원병으로 참가한 1차 대고구려 전쟁때 자명고와 같이 싸웠던 병사들이  

서로서로 힘내라고 격려하면서 사기를 잃지 않도록 원래 자우성의 병사들을 다독거리고  있

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때문에  낙랑군은 적어도 사기면에서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정확히  고구려군의 내습이 있던날로부터 60일이 되던날밤 자명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성내

를 돌아보고 있었다. 고구려군의 야습에 대비하기 위해 성벽위와 성내에는 화로가 수십개가 

지펴져있어 대낮같이 환했다. 북문이 최근 적의 충차공격을 받아  부서져 수리하고 있는 현

장을 방문하기 위해 가던중 성남문쪽에서 떠들썩한 소음이 들려왔다. 적의 야습(夜襲)인가? 

자주 있던 일이라 자명고는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성중앙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비대 숙소까지 한달음에 뛰어갔다. 성의 각방면에는 방어병력이 있고 중앙

에서 별도의 병력을 배치하여 유사시 한곳이  뚤리면 그곳을 막기 위해 예비대가  출동하는 

체제를 만들어두고 있는데 이번 전쟁에서는 그들은 여러차례 위기를 넘기는데 큰 기여를 했

다. 그가 급히 예비대를 이끌고 남문으로 향하려던 찰라  장교한명이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

다.

"무슨 일이냐.."

"적이.. 땅굴을 통해 성내로 들어왔습니다."

"뭐..? 땅굴? 정말 땅굴이냐? 확인했느냐.."

"확실합니다. 적병이 수도없이 땅속에서 기어나오고 있습니다."

말도 안돼는 일이다. 천보가 넘는 땅굴을 불과 두달만에 만들어?  혹시 적이 전쟁전부터 몰

래 낙랑내로 들어와 공사를 시작했었나? 아니면 천연동굴이라도 발견해서 그것을 통해 들어

온건 아닐까? 어쩧튼 전쟁위래 최대의 위기였다. 절망적인  기분이 드는 가운데서도 자명고

는 병사들을 이끌고 남문을 향해  뛰어 갔다.  남문쪽은 민가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었는데 

민가를 사이에 두고 낙랑군과 고구려군이 치열하게 전투을 벌이고 있었다. 땅굴은 민가에서 

개방되어있는 것 같다. 아직 많은수가 나온 것은 아닌 듯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고구려군은 

낙랑군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땅굴을 통해 선두로 적성에 들여보낼정도의 병사들이라면 최

고의 정병(精兵)들일 것이다. 하지만 자명고가 이끄는 예비대가 도착하자 수적으로 밀린 고

구려군은 순식간에 뿔뿔히 흩어져 성내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민가사이에서 땅굴입구를 발

견한 병사들은 연기가 많이 나는 나무에 불을 붙여  땅굴속으로 집어 넣었다. 땅굴안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낙랑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자명고는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일이 아니었다. 땅굴이라는 비장의 수를 이렇게 허무하게 

써먹을 정도로 고구려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땅굴쪽으로 아군의 주의를 돌리고 뭔

가 다른 것을 꾸미고 있을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에 화가 났다. 원래 땅굴이라는 고전적

인 공성법에 대비하기 위해 성벽바로 안쪽에 참호를 깊히 파서 귀가 밝은 늙은이들과 어린

애들을 배치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땅굴공사의 작업소음을 탐지할수 있게 하도록  계획을 

잡고있었는데 섣불리 땅굴작전이 불가능하다고 지레짐작하여 경계인들을 배치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이번에는 성의 북.서.동문방면에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원래 작은성이라 떨어진 

남문에서도 그 소음이 싸울 때  나는 소리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었다. 남쪽으로 낙랑군을 

유도한 다음 다른 세군데 방면의 완성된 땅굴에서 뛰쳐나올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연락병 몇 명을 모아서 각성벽의  방어부대에 침착하게 현위치를 고수할 것을  명령했

다. 예비대가 적을 칠것이니 성내에 적이 보이더라도 성벽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했다.  오로

지 성밖에서 공격할지 모르는 적의 본진에 대비하라고 했다.

남문 쪽 땅굴을 간단히 봉쇄한 자명고와 병사들은 동문쪽으로 달려갔다. 동문쪽은 어둠속에

서 서로 뒤엉켜 싸우느라 엉망진창이었다. 예비대가 전투에 가세했지만 적의 기세는 꺽일줄 

몰랐다. 무엇보다 적과 아군이 구별돼지 않아서 난장판이었다. 난전에 난전을  거듭하면서도 

땅굴입구는 찾아서 봉쇄하기는커녕 적병숫자는 갈수록 늘어가기만 했다. 직접 뛰어들어  칼

을 휘두르던 자명고는 할수 없이 성벽위로 올라갔다. 성벽위에는  자명고의 명령에 따라 성

내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군인들이 그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던 궁수대를 모아 땅굴입구를 중심으로 개떼처럼 모여  혈전(血戰)을 벌이고 있는 군중을 

향해 활을 쏘라고 명령했다. 그들중 상당수는 아군이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침착하게 자명고

의 지휘에 따라 약 백여명의 병사들이 활을 쏘았고 어둠속에서 볏단이 쓰러지듯 비명과 함

께 무더기로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적은 성벽위까지 기어올라오고 있었는데 다른 병

사들이 간단히 그들을 제압했다. 땅굴입구가 성벽위에서 바로 보이는곳에 있어서 그나마 다

행이었다. 동문을 제압하고 났을 때 북문과 서문쪽은 이미  입구에서 적을 저지해야될 차원

이 아니었다. 적은 끊임없이 땅굴속에서 빠져나와 성내로 침투해서  불을 지르고 혼란에 빠

진 낙랑군을 도륙하고있었다. 낙랑군 예비대는 동문쪽에서  거의 소모(消耗)됐다. 이제 성벽

방어부대를 제외하고 이들을 제압할 다른 부대는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번에는 성밖에서 고구려군 본진이 총공격에 나서고 있었다.  자우성의 

실함은 눈앞에 다가선 것 같다.  자명고는 자신이 가진 이성으로 판단했을  때 이제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병사들은 약간은 긴장하는 듯 하면서도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다. 자명

고는 그들을 돌아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침착한 것인가. 왜 겁에 질려  떠들

며 우왕자왕하지 않지? 

지극히 이성적인 자명고라는 인간은 자신외에 다른 타인은 모두 나약하고 감상적인  인간들

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난 두달간   수많은 전투속에서 용감하게 싸워 자신을 

단련시킨 병사들은 전의 그 병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기계처럼 무표정할뿐이었다.  그

리고 이 이상한 사령관에 조금씩이나마 감격하고 있었고 또한 깊게 믿고 있었다. 지금 여기

서 죽는다 한들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알게 모르게 다짐하고 있었다. 그동안 스스로 비천한 

인간들이라도 생각해온 병사들은 지난 두달간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찾았다. 자명고라는 

냉소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은 죽어도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할 것은 한다.  그는 동문수비병력중 절반(折半)을 빼내서 북문으로 향했

다. 성내로 침투한 자들은 그대로 놔둘 예정이었다. 그들과 숨바꼭질할 시간이 없었다. 땅굴 

입구만 봉쇄하면 적본진공격의 방어에 나설생각이었다. 벌써  성내 여기저기서 화재가 발생

해 매캐한 연기가 작은 작우성내에 가득차고 있었다. 낙랑군은  불길과 연기속에서 적의 땅

굴 입구를 발견하고 공격해 들어갔다.  그사이 성밖 고구려군은  이번에는 대량의 불화살을 

성내로 쏟아넣고 있었고 포차로 밤하늘 유성같은 불덩어리를 날려 보냈다. 하늘에는 수많은 

불덩어리들이 날아다녔으며 땅에는 연기와 씨벌건 불의 열기가 가득하고 인간과 인간이  격

돌하면서 춤추는 피와 철의 난무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는 지옥(地獄)이었다. 대

형(隊形)도 진법(陣法)도 필요없고 오로지 인간 개개인이  가진 육체의 힘과 의지많이 격돌

하고 있었다. 낙랑군은 용감하게 싸웠다. 광기와 살육의 열기속에서 미친 듯이 싸웠다. 칼로

싸우다 칼이 부러지면 주변의 돌덩이를 쥐고 덤볐으며 돌덩이도 없으면 손으로 할퀴고 이빨

로 물어뜯었다. 검에 배를 찔려 쓰러진 병사들도 악을쓰며 적의 발목을 잡아 넘어 뜨렸다. 

기적이라면 기적이고 그동안 훈련의 성과라면 성과라고할  일이 벌어졌다. 북문과 서문땅굴

입구의 그많은 적병을 소수의 낙랑군이 제압한 것이다. 고구려군도  물러서지 않고 서로 등

을 맞대고 최후까지 싸웠지만 독안에 든 쥐처럼 발악하는 낙랑군의 광기에는 이겨내지 못했

다. 북서문 땅굴 입구를 막은후 직접 싸운 자명고도 여기저기 창상과 자상을 입고 비틀거렸

다. 살아남은 병사들이 그에게 다가와 등에  그를 업었다. 그리고 다음 에는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동문쪽으로 돌아가서 방어에 임하라고 말했다. 연기  때문

에 눈물이 날뿐이라고 생각했다.

새벽 여명이 밝아올 무렵 전투는 끝났다. 성내는 화재로  전소되어 남아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지만 성벽위에는 여전히 낙랑군의 군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셀수 없이 많은  고구려군의 

주검이 성벽과 성안에 널려 있었다.  군량저장고와  군수창고. 그리고 다른 모든 것과 많은 

전우를 잃었지만 어쩌튼 낙랑군은 승리했다.

고구려

비장의 수인 땅굴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고구려군은  자우성공략을 포기했다. 그들은 이작

은성의 악귀같은 낙랑군에 질려버렸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연히 지하에 지하수(地下水)의 유로(流路)를 발견해 그것을 통해 땅굴을 한달만에 완성하

고 자신만만하게 작전을 실시한것인데 무참히 실패로 끝났다.

낙랑의 국경을 넘은지 석달 . 성하나 떨어뜨리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돼자 고

구려군 사이에서는 조심스럽게 퇴각을 타진하는자들이 늘어갔다.  왕의 전쟁 계속의지가 너

무 커서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런자들이 늘어가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어전(御前)회의(會議)

"자우성 공략은 포기한다. 대신 남쪽으로 진군한다."

"..."

왕의 말에 좌중은 대답이 없다.

"용봉성을 치던지 아니면 그대로 적수도로 진군한다. 내생각이 어떤지 의견을 말해보라"   

 왕은 저번 땅굴 공사때 장교들을 처형한것, 적의 유치한서신을 읽고 흥분하여 무리하게 성

을 공격하다가 많은 병사들을 죽인것등 이번 대전에서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장군들은 말을  조심하고 있었다. 다른 자들이 말이  없자 호적이 입을 

열었다.

" 전하. 이미 아군은 휴대한 보급품을  전부 소모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국에서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자우성의 적을 그대로 두고  남하한다면 적은 아군의 보급선을 차단할것입니

다. 그렇게 되면 아군이 노리는 야전은 고사하고 전부 굷어 죽게 될것입니다."

"그러니까 용봉성을 치자는 것이 아니냐. 왕자. 용봉성을 함락시키고 자우성의  적을 견제할

부대를 남겨두면 보급선은 안전하다. 그리고 그대로 수도를 밀어붙이면 전쟁을 끝낼수 있을

것이다."

"하오나 전하 지금까지의 사상자 8천에 자우성 견제 병력까지 빼주고 나면 남은 수는 2만에 

불과합니다. 그숫자로 용봉(龍鳳)성을 함락시킬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장차 수도까지 진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피해가 너무 큽니다. "

"태자. 너는 겁을집어 먹었느냐. 과거 아굴타때 아군은 1만오천이었는데 4배의  적을 무찔렀

다. 요동의 강자라는 말갈군도 아군에 당할수 없었는데 낙랑군이야  수만 많아도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우리 무적의 고구려군대에 당할자는 이세상에 아무도 없다"

왕은 얼굴을 붉게 상기시키며 호통을 쳤다.

이미 그 무적의 고구려군은 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식을 벗어난 말이었다. 당시는 모험이었고 내외의 여건이 너무 불리했기에 어쩔수 

없이 시도한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과거의 행운에 기대여 현실을 왜곡하는  왕을 

보고 호적은 답답했다. 하지만 왕이자 아버지의 그런 잘못을  태자가 꼬치꼬치 지적할수 는 

없었다. 왕이 막무가내로 주장하자 회의는 남쪽으로 진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왕의  행

동도 그렇고 자우성의 낙랑군의 용감무쌍함도  그렇고 이래저래 고구려군은 암담하기만  했

다. 용봉성의 적도 만약 자우성만큼 잘싸운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것인가. 헛되이 병사들의 

소중한 목숨만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만약 적이 저번  처럼 7만의 대병을 거느리고 반

격한다면 오랜 전투에 지치고 사기가 저하된 고구려군이 1차전쟁때처럼 용감하게 싸울수 있

을것인가?

호동도 그 회의에 참여 하고 있었지만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자우성을 견제하기 위해서 4천명 규모의 부대를 남기고 나머지 고구려군은 남하하기 시작했

다. 호적(胡狄)은 최하 8천은 남겨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용봉성 공략에 전력을 염려한 왕은 

그숫자 이상 남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적이 남쪽으로 빠져나가는것을보고 낙랑군은 모두 얼싸않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긴 것

이다. 그러나 자명고는 군량 때문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전투때 화재로 전

부 타버려 남은 것은 전군이 5일동안 먹을 것에 불과 했다. 적이 남하하면 보급선을 공격할

생각이었는데 군량이 없어서야 공격은커녕 모두 배를 움켜지고 쓰러져 있어야 될  형편이었

다. 다른 낙랑인들이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춤을추며 난리를 피우는 동안에도 자명고는 머리

를 싸매고 군량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4부 왕(7)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