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왕(王)(6)
왕비의 내전(內殿)에 도착한 호동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자리에 내려 놓았다. 왕비는 아직
도 분이 안풀렸는지 씩씩거리다가 표정을 바꿔 호동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가야. 절대 낙랑으로 가지 말거라. 절대 가면 안된다. 너마저 잘못된다면 이 애미는...흑..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냐.. "
"..."
"아가야.. 호동아.. 제발 애기해다오..이애미에게 .. 약속해다오 다신 내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응? "
모후는 호동을 있는 힘껏 껴안으려고 발버둥 쳤다. 호동은 그런 어머니를 어른스럽게 안아
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마마마 . 가지 않겠습니다. "
"그..그렇지 호동 정말이니? "
"네 마마. 가지않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어마마마곁에서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절 믿으세요. "
"흐흑.. 고맙구나 호동아. 내아기,내 착한 아기, 아가야.. 넌 내것이란다. 영원히. 저 상것(왕)
이 너를 빼으려 해도 난 절대 널 주지 않을거다. 암. 그렇구 말구. 그럴바에야 같이 죽자구
나 호동아."
모후는 그를 껴앉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미친년처럼 흐느껴 울었다. 그는 모후가 잠들 때
까지 곁에서 그녀의 손을 쥐어 주었다. 호동은 목각인형처럼 아무 표정이 없다.
그러나 며칠후 호동은 새로편성된 4천명규모의 기마대를 이끌고 남쪽을 향해 떠나고 있었
다.
그 사이 낙랑(樂浪)
낙랑과 고구려가 국경을 맞댄 지역은 수비하기 곤란한 땅이다. 요하(遼河)에서부터 국경이
일직선으로 계속 되다가 고구려와 접경한 지역에서 북쪽으로 오목하게 상승해있다. 그리고
압수를 만나면 다시 국경선이 남쪽으로 하강하기 시작한다. 그런탓에 3면에서 수비를 해야
되는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성은 8개가 있었는데 1만호(萬戶) 이상을 수용할수 있는 거성
(巨城)이 3개였고 나머지 3개는 중간정도의 성있었으며 두 개는 순수 전투용 성으로 거주
주민은 없었다.
자명고는 처음오는 지역이라 한동안 지리을 익히는데만 몰두하였다. 그러기를 두어달 그는
성의 배치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10만대병에 포위되도 끄떡없을 것 같은 세 개
의 거성(巨城)은 남서쪽에 치우쳐있고 고구려가 낙랑수도를 직공하기위해 반듯이 지나쳐야
만 하는 중앙의 평야지대에는 두 개의 작은 순수전투용성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군이
쳐들어오면 나머지 성들은 구경만 하고 두 개의 소성만이 대적해야 되는 이상한 성의 배치
였다. 그렇게 된데는 이유가 물론 있었다. 초기 낙랑국시대에 주적이 거란이나 부여계통국가
여서 거성이 서쪽을 향해 건설되 있었고 나중에 고구려가 위협적인 적으로 등장하자 서둘러
그 방면에 성을 쌓았던 것인데 이미 국력이 많이 쇠해진 상태여서 큰 규모의 성건설은 어려
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해할수 없는 것은 직접 적과 맞서 싸울가능성이 적
은 남서쪽의 세성은 정비가 충실이 되어있는데 반해 중앙의 작은 성은 상태가 형편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거주주민이 한명도 없었다. 유사시 성에 부속된 주민은 전투원으로 활용이
가능했으므로 주민이 한명도 없이 군인들만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군량도
지역주민에게 거두어 들이면 더 충실하게 거둘수 있을 것이다. 전시에 생명과도 같은 성을
방어하기 위해서 내는 것이므로 납부가 충실하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총사령관이 새로 부임했으므로 각성의 성주(城主)들과 귀족(貴族)들 그리고 중요 군지휘관
들이 모두 모여 그를 환영하는 연회를 벌였는데 그는 여기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접
하면서 왜 쓸데없는 곳에 있는 성은 정비가 잘되있고 중요한 지역의 성은 부실한지에 대해
해답을 얻을수 있었다.
소출이 많고 주민이 많은 세성에는 지역에서 유력한 귀족들이 성주로 있었는데 당연히 그들
은 많은 자금과 인력을 동원해 성을 잘정비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의 전투용성들은 워
낙 위험한 지역이라 힘없고 출세길에서는 먼 군인들이 배치받아 있었으며 주민도 없으니 자
체 수입도 없고 재정이 부실한 정부의 지원도 형편없어서 그 상태로 유지하는것조차 힘에
겨울 정도였던것이다. 유력귀족들은 그 전투용성에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주민이 이주
하여 사는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놀고 있는 땅이 엄청나게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나라 같으면 정반대일 것이다.
국가의 안위라든가 공적인 일에 대한 우선은 말기증상을 보이는 낙랑에서는 도저히 찾아보
기 힘든 가치였다..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었다.
도대체 과거 이지역의 총사령관들은 무엇을 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지역귀족들이야
그렇더라도 총사령관은 모든 지역을 책임져야 함으로 이러한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야하는데 전혀 그러한 흔적을 볼수 없었다.
자명고가 모르는게 하나있었는데 그것은 전임 총사령관들은 대부분 남서쪽의 거성 출신귀
족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령부를 중앙의 순수전투용의 2개의 성중 가장 북쪽에 있는 자우(炙藕)성에 두었다.
전에는 대개 남서쪽의 성에 사령부를 두었던 모양이라 사람들이 그런작은 성에 상장군의 거
소를 어떻게 두느냐고 말들이 많았지만 그는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성보수의 인력도 보충하고 자우성주변의 미개간지도 개간하기 위해서 각지의 주민중
자기땅이 없는자들을 자우성과 그 남쪽의성 용봉(龍鳳)성(순수전투용성)으로 이주 시켰다.
귀족들의 반발이 많았지만 주민에 대한 권한은 총사령에게 있었으므로 별탈없이 이주를 시
킬수 있었다.
벌써 고구려에서 전쟁준비가 진행된다는 첩보가 무수히 전해지고 있었다. 한번 대패했으므
로 다음에는 조심스럽게 성을 하나하나 떨어뜨리며 남하할것이라고 예상한 자명고는 성보수
와 병사들의 훈련을 급하게 진행시켜 나갔다.
그즈음 고구려 남부 국경
자명고가 사령관으로 부임한후 방어준비에 열을 내고 있는 사이 고구려군도 2차원정준비를
착착 진행시켜 나가고 있었다. 공격시기는 내년 5월로 잡고 있었다. 중앙의 정무(政務)를 마
무리한 왕은 12월에 직접 남쪽으로 내려와 준비상태를 점검하고 훈련을 독려했다.
원정군은 총수 4만5천 보병 3만에 철기대 7천 경기병 8천으로 구성되있었다. 지원부대로
는 노무자 3만 마차 1만량 각종 공성(攻城)무기(武器) 다수였다. 혹독한 만주의 추위속에서
는 고구려군은 맹렬히 훈련했다. 사기는 충천했다. 왕과 호적태자. 그리고 고구려 전토에서
고르고 고른 기라성같은 장군들과 그들과 만전(萬戰)을 같이한 용감한 장교들이 병사들과
함께 들에서 추위를 무릎쓰고 훈련을 했다. 왕은 태자시절부터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백전
을 치룬 명장이고 태자호적은 왕자라는 지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선두에 서서 적진에 돌입하
는 용감무쌍한전사였으며 막내 호동은 어린나이에도 흠잡을데 없는 군인이다. 고구려왕가
는 왕족이라는 호사스러운 계급이 풍기는 나약함이란 것을 눈씻고 봐도 찾을수 없는 강인한
무사집단이었다. 당연히 병사들의 믿음도 절대적이었다.
매서운 추위에 천지가 얼어붙을 것 같은 12월의 어느날 호동은 자기휘하의 기마부대와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다. 신병은 한명도 없이 전원 고참병으로 구성된 호동의 부대는 더이상
훈련이 필요 없을정도로 기마술이나 무술이 능수능란했다. 그래서 주로 지휘관과 병사들이
호흡을 맞추는 기마선회동작과 기동훈련등 전체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훈련시에도 완전무장을 한 철기대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호동의 구령과 깃발신호의 맞
추어 한치의 빈틈도 없이 돌진과 퇴각동작을 반복하였다.
호동의 부대가 훈련하고 있던 곳바로 옆에서는 태자 호적(胡狄)이 보병부대를 이끌고 훈련
을 하고 있다. 전투시와 똑같이 갑주와 창 칼. 그리고 등에는 보급품을 잔뜩 집어넣은 봇짐
을 매고 병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태자의 지휘에 따라 진형을 변형하는 연습을 하고있다.
호동의 부대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도 태자의 부대는 쉴새없이 훈련을 한다.
건조한 날씨탓에 훈련장 여기저기서 흙먼지가 아지랑이 처럼 끊임없이 쏟아 올라 시야를 가
렸다. 보병부대가 이동하면서 내는 안개 같은 먼지속에서 태자는 병사들 대열 바로 옆에
서 같이 걸어가며 쉬지 않고 떠들며 고함을 지른다. 태자도 완전무장에 일반병사들과 같이
봇짐을 매고 있다. 보기에도 힘겨울 것 같은 모습이지만 눈을 빛내며 태자는 정열적으로 훈
련을 독려하고 있었다. 무거운 봇짐마저도 태자에게는 가벼운 장식품처럼 보였다.
휴식중이던 호동부대의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한 듯 시선을 때지 못하였다. 그들 뿐
만 아니었다. 태자의 부대 주변에 있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정열적이고 헌신적인 태자에게
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였다. 호동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다.
식사시간에도 태자는 일반병사들과 똑같은 국과 조로 지은 주먹밥을 배급받아 병사들틈에서
먼지를 들이 마셔 가며 같이 먹는다. 그리고 훈련틈틈히 있는 여흥시간에는 병사들과 함께
씨름을 하기도 하고 그들 사이에 허물없이 끼여들어 껄껄 거리며 박장대소 하기도 한다.
병사들은 믿음직한 큰형을 보듯 태자를 따랐다.
평소와 같은 모습이다. 호동이 어린시절부터 전쟁터나 훈련장에서 항상 보와 왔던 모습이다.
그러나 호동의 표정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 주변의 모든 이의 관심과 애정을 독차지 한 태
자를 호동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 보았다.
훈련으로 고된 하루해가 저문 그날 밤. 호동은 태자의 부름을 받았다. 태자의 거처에 들어갓
을 때 호적은 고구려의 시조신을 모신 작은 신단을 향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천막안에 임
시로 만든 작은 것이다. 호동은 태자의 기도가 끝날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
무사, 전사라는 말 그자체인 태자(太子). 토인보다 더 검게 그을린 얼굴에 인간같지 않은 무
표정한 표정. 감정이라는 것은 일체 없는 것 같은 완벽한 군인. 칼로 찔러도 피한방울나오지
않을 것 같은 바윗돌같은 신체. 사(私)는 없고 오로지 공(公)만있는 인간이 바로 태자였다.
기도가 끝나자 태자는 호동을 향해 무게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호동. 요새 무슨 일 있느냐? "
"네 ? "
"훈련중에 먼산을 바라보면서 딴 생각을 하고 집중을 하지 않는 듯 하다. 말도 없고 ..병
사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전쟁전에 너 답지 않다 호동아"
"........"
"무슨일 있다 치더라도 그것은 네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 훈련중에 그런 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 장수의 잡념은 곧 병사들의 잡념이 된다. "
호동은 말이 없다. 전 같으면 형의 주의를 들은 호동은 그 자리에서 즉각 반성하는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호동은 무표정하게 자기 무릎만 쳐다보고 있다. 태자와 호동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호무를 죽인 적국과의 전쟁이다. 이를 갈고 쓸개를 씹으며 원한을 되새겨도 모자라는 판
국에 ......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거라, "
호동은 대답하지 않는다.
태자가 가보라고 하자 호동은 태자의 천막을 별다른 말도 없이 빠져나왔다.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태자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믿었던 막내 호동이 이상하게
변한 것 같다. 사춘기라 심란한것인가?
호동이 나간후 그는 매일 저녁 하는 일인 검의 손질을 시작한다.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튼 그전까지 호동은 나이는 어렸지만 훌륭한 무사였다.
자명고는 각성의 방비를 재구성하면서 한편으로 휘하의 모든성에 파발을 보내 용봉성주변의
평야로 병력을 이끌고 모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 따로 떨어져 훈련받던 각지의 군
대를 모아 일개군을 만들어 같이 훈련시킬 요량이었다. 성을 중심으로 방어만 한다고 전쟁
이 승리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야전이 한번은 꼭 필요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모든부대
를 한 개로 통합해서 유사시 유기적으로 움직일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자명고는 자우성의 부대를 이끌고 맨먼저 용봉성에 도착해서 나중에 도착할 다른 부대를 위
해 임시천막을 가설하고 훈련장이 될 평야를 간략하게 정비했다. 그러던중 다른 중간급 성
의 부대가 차례차례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가 3일이 지나도록 남서쪽의 거
성(무공.강수. 은평성)의 부대는 도착하지 않았다. 파발을 몇차례 더 보냈지만 준비 때문에
지체될것이라는 답변뿐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충분히 준비할 여유시간을 주고 모
이라는 지시를 보냈는데도 오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 였다. 북부지역총병력중 이
세성의 병력이 6할이 넘어서 이들을 빼고 훈련한다는 것은 맥이 빠지는 일이다. 그때까지
모인 병력은 기껏 5천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모인 다른 부대들을 그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일도 내키는 일이 아니어서 훈련은 그대로 시작됐다.
훈련은 엉망으로 진행됬다. 병사들은 체력이 기본적으로 뒷받침이 안되있었고 복잡한 진형
변화는 애당초 불가능할정도로 훈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군기도 문란해서 불평
불만을 대놓고 말하는 자들이 수두룩하고 훈련시간에 몰래빠져 나가 술을 퍼먹고 숨어 골아
떨어지는 자들도 있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장교들도 그동안 얼마나 안이한 생활을 했는지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어 조금만 힘든 훈련을 해도 숨을 헐떡거리며 그 자리에 널부러
졌다.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훈련을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해도 너무했다. 이상태로 고구려군과
야전(野戰)에서 격돌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훈련이 끝날때까지 남서성들의 부
대는 도착하지 않았다.
용봉(龍鳳)성의 훈련이 실패로 끝나자 그는 이대로 가만 있다가는 멀지 않아 제대로 저항한
번 못해보고 고구려군의 밥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서쪽의 성주들에 대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훈련에 참석하지 않았을 때 그는 처음 임지에 부임하자마자
느꼈던 그에 대한 귀족들의 거부감을 기억해 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분위기로
충분히 알수 있는것이었다. 출신도 비천한 놈이 운이 좋아서 상장군에 됬다. 한마디로 말하
면 그들의 심정은 이런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자명고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도 그다지 화
를 내거나 섭섭해하지는 않았다. 분명 부당한 태도였지만 낙랑의 귀족치고 그런식으로 생각
하지 않는자가 오히려 드물었으므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
이야 어떻든 고구려의 침략이 임박한시점에서 사감(私感)을 앞세워 훈련에 불참한 행위는
정말로 역겹고도 짜증나는 유치한 행동이었다.
-출신도 미천한 나같은 놈에게 정통귀족인 자신들이 명령을 받는 것은 성질나는 일이겟지 .
하지만 지금이 그럴때인가? 그러다가 모두 망해버리면 그 잘난 귀족 지위가 그대로 유지 될
것 같은가. 어떻든 이겨야 불평불만도 할수 있을 것 아닌가? 고구려의 노예가 되버리고 말
것이다. 모두다-
나중에 자명고는 세성의 성주들을 불러 애원조로 협력을 부탁했다. 그들은 알았다고 그의
면전에서 대답은 했지만 전혀 자명고에 협력할 태세가 아니었다. 일반장교나 병사들은 사령
관 마음대로 처벌할수 있었지만 장군이나 성주쯤 되는 자들은 중앙에서 허가를 내려야 처벌
이 가능햇으므로 자명고는 이들을 처벌하는것도 포기했다. 중앙에 있던 자들이 누구편을 들
지는 뻔한일이기 때문이다.
북부 지역 전력(戰力)의 6할을 가지고 있는 이 성(城)들을 자명고는 차후 전쟁계획에서 삭
제했다. 협력이 안될바에야 아예 처음부터 생각을 않하는 편이 낳을 것 같았다. 남은 것은
성5개에 병력 5천이었다.
성을 중심으로 방어를 하다가 적이 지칠무렵 반격을 할 계획이었는데 남서성들의 전력이 빠
지자 대규모 반격계획은 불가능 하게 됬다. 남서성들이 도움을 주지 않는상황하의 반격을
위해서는 그외성들의 병력을 전부 모아야 되는데 고구려군에게 성들이 포위된 상태에서 한
군데 모이게 하는 일이 몹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로지 성을 중심으로 방어에
만 중점을 두어야 할것이다. 그러다가 혹시 적이 중간의 성을 무시하고 그대로 남하한다면
보급선을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시작해야 할것이다 . 최악의 경우 성들이 차례차례 함락되
더라도 고구려군도 그만큼 손실을 입게 되므로 수도부근에서 장차 벌어질 전투에서 낙랑군
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생각은 웃기는 것이라고 자명고
는 스스로 생각했다. 북부전선이 몰락하면 낙랑은 그대로 끝장이라는게 보다 현실적인 생각
일 것이다.
자명고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남서성들을 제외한 모든 성의 전투병력을 용봉성으로 재차 불
러들였다. 성의 정비에 필요한 인력은 민간인들과 최소한의 군관들만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그는 장교들을 모두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훈련에 불성실한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형하겠다. 내말이 공갈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고 싶으면 내일부터 있을 훈련에서 농땡이를 부려봐라..알았느냐? 병사들에게 내말을 똑바
로 전하거라 "
그는 이 말만 하고 부하들을 해산시켰다.
그 뒤부터 열흘 동안 훈련에 태만한 병사 25명과 군관 7명이 처형됬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
개인 혼자 일때 느끼는 공포와 대중속에 속해있는 개인이 느끼는 공포는 공포의 근원이 같
더라도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중일때는 주변사람의 공포심이 개인이 느끼는 두려움
에 더해 전해진다. 공포는 전염과 증식이 아주 빠르다..
낙랑군은 자기 동료와 상관들이 집단으로 처형되는 것을 보고 두려움 때문에 죽기살기로 훈
련에 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경이 예민하고 피해의식이 심한 자명고가 받았던 압박감은 병사들의 두려움보다
몇배는 더 컸다. 자기편을 자기손으로 죽게 만든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후 그는 강박
적으로 긴장상태에 빠져 헛구역질을 하고 밥을 목으로 제대로 넘기지 못하였으며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잖아도 삐적 마른 그는 해골처럼 뼈만 앙상해져 갔다.
2월이 되자 후방에서 지원병력이 보내져 왔다. 수도의 어전회의에서 지원의 필요성을 끈질
기게 주장한게 통한 모양이다. 그런데 지원병중에 상당수는 과거 고구려와의 전쟁때 그가
지휘했던 부대의 병사들이었고 또한 장교들중에는 봉정산에서 같이 싸운 근위대 소속군인
들도 있었다. 자명고와 같이 싸우고 싶어 자청해서 온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용봉성주변에
도착해서 자명고를 보자 천지가 떠나갈 것 같은 함성을 질렀다. 감격이라는 감정을 비웃는
그였지만 그때만은 근위대의 좋은 보직과 후방의 편안한 생활을 마다하고 자기를 찾아온 사
람들을 보고 조금은 감격했다.
4월 고구려
훈련은 완벽했다. 마무리를 겸한 여러차례의 전군 사열(査閱)에서 고구려군은 고도로 효율화
된 전쟁기계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이번에야 말로 낙랑
을 한번에 멸망시킬 것이다. 병사들은 좀이 쑤셔 공격개시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고구려군의 작전계획은 단순했다. 성을 차례차례 떨어뜨리면서 남하하는 것이다. 거점을 착
실하게 장악하면서 낙랑군이 기책(奇策)을 쓸 여유를 주지 않을 계획이다. 이때쯤해서 그들
에게 자명고의 이름도 알려졌다. 모두들 이를 갈았다. 그렇다고 1차원정때처럼 여유만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돌발사태를 예상해서 그에 대한 완벽한 대비책을 세우고 그럴경우
의 각부대의 행동에 대해 모의 연습까지 해놓고 있었다. 왕은 회의때마다 방심하지 말 것을
장군들에게 당부했다. 사실 그럴필요도 없었다. 1차원정때 고구려군의 방심은 예외적인 것이
다. 항시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과 싸워야 했던 고구려인들은 세심함이 몸에 배어 있었
기 때문이다.
4월말 낙랑
새벽. 해가 뜨기전에 사령관은 용봉성 남쪽 평야에 주둔하고 있던 낙랑군중에서 제일 먼
저 일어나 낡은 천막 밖으로 나온다. 큰키에 마른 체형이라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
다. 그래두 구부정한 자세로 성큼성큼 걸어다닌다. 그리고 인간이 가장 졸릴 시간인 이때의
초병들을 순찰한다. 혹시 졸고 있는 자를 발견하면 일단 깨우고 낡이 밝은 다음 그 초병과
그시간의 보초장을 처벌한다. 주로 태형이다. 작년만 해도 바로 처형됬지만 최근에는 매질로
바뀌었다. 기상을 알리는 전고(戰鼓)가 울리면 병사들은 졸린눈을 비비며 천막밖으로 꾸역꾸
역 빠져나온다. 그리고 한군대 모여 인원점검을 받는다. 인원점검이 끝나면 왕이 있는 남쪽
을 향해 간단히 예를 올리고 바로 아침 훈련에 들어간다. 주로 개인적인 기술인 창술.검술을
연마한다. 이때도 사령관은 가만있지 않고 훈련중인 부대를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전체적으
로 훈련이 미진하다고 생각되는 부대를 지목한다. 그부대는 아침밥을 굷어야 한다. 아침훈
련이 끝나면 막사주변을 간단히 청소하고 식사준비에 들어간다. 솥을 꺼내서 장작더미 위
에 올려놓고 불을 지피고 가까운 시내에서 물을 길러다 밥을 한다. 병사들이 깐깐하고 무섭
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령관이지만 이때만은 인기가 있다. 전에 그들은 일년에 한두번
백미밥을 구경했을뿐이다. 하지만 그 깐깐한 사령관이 오고 나서부터는 적어도 5일에 한번
은 흰쌀밥을 먹을수 있다. 반찬은 국과 소금에 절인 채소가 전부다. 병사들은 배식을 받고
나서 주변에 부대별로 대열을 갖추고 앉아 식사를 한다. 병사들의 배식이 끝나야지만 장교
들과 그 삐적 마른 사령관도 똑같은 밥그릇과 똑같은 수저를 들고 똑같이 줄을 서서 똑같은
음식을 배식 받은 다음 병사들 옆에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다. 병사들과 똑같
이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맨땅에 앉아 먹는다. 전에 병사들은 장교들이나 장군들이 뭘
먹는지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당번병을 제외하고.... . 하지만 이제는 매일 본다. 뒤구멍으로
뭘 더먹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병사들과 똑같이 먹는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본격적인 오전 훈련이 실시된다. 전에는 창술과 검술만 지겹도록 했는데
두어달 전부터는 진법훈련을 주로 실시한다. 그 무서운 사령관이 뒤에서 깃발로 신호를 보
내면 병사들은 일제히 진을 변형한다. 처음에는 헷갈려서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새는 제법 진형이 제대로 갖추어진다.
"적기병 돌격!!. 창병선두로 검병 후미. 방진(方陣).!!!!!"
사령관의 깃발신호를 본 장교들이 큰소리로 외치면 창병이 앞으로 나가 창을 겨누고 검을
든 일반보병은 뒤로 빠져 창병뒤로 줄을 맞춘다. 금새 사각형의 튼튼한 방진을 이루어진다.
병사들은 자신이 가야 될곳을 기억해두었다가 재빨리 움직인다. 잘못하면 점심밥은 없다.
"적 보병 돌격.!!!!! 학익진!!! "
병사들은 가위처럼 양옆으로 비스듬하게 늘어선다. 중간에 어벙벙한 바보들이 자기자리를
못찾아 헤매고 있으면 장교들이 찾아와 발길질을 하거나 같은 병사들이 욕을해댄다. 한부대
의 누가 잘못하면 연대 책임을 지기 때문에 모두가 처벌받는다.
"적기병 측면 공격.. 기병방어!!!!!!"
그제서야 구경만 하고 있던 기병들이 뒤에서 보병대열 측면을 돌아 앞으로 뛰쳐나간다. 병
사들은 7-800기정도 돼는 기병이 돌진하면서 내는 말발굽소리와 흙먼지에 모두 감탄성을
지른다. 그외에도 수많은 진이 있다. 도대체 그많은 것을 다 외웠는지 병사들은 스스로 감
탄한다.
진법훈련이 끝나면 병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군이 있다. 용봉성 주변의 나트막한 산등성이
를 점심전까지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돌아오는 것이다. 거리는 15리가 조금넘는다. 사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무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힘이 든다. 그리고 천천히 걷는게 아니라
속보로 뛰다시피 한다.
이때는 기병도 말에서 내려 같이 걷는다. 장교들 그리고 그 비쩍 마른 사령관도 같이 걷는
다. 평소사람같지 않은 사령관도 이때는 조금 사람같다. 병사들과 똑같은 무장을 한데다가
투구에 갑주까지 입고 있으므로 굉장히 힘든지 땀을 뻘뻘흘리면서 허우적거린다. 창피한지
도 모르는모양이다. 사령관이 되가지고 병사들 앞에서 비실되는 모습을 보이는것이..처음 그
모습을 보고 병사들은 오래가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그 독한 사령관은 여섯달이 넘도록 하
루도 안빠지고 훈련을 같이 한다. 허욱적 거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으면서 끝내 행군
을 마친다.
그것으로 오전 훈련은 끝이난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용봉성으로 가서
성방어훈련을 한다. 병사들은 모두 활쏘는 훈련을 한다. 전에는 궁수들만 활쏘는 훈련을 했
는데 사령관이 바뀌고 나서부터는 모든 병사가 활을 쏘야야 한다. 성아래에 허수아비가 세
워지고 부대별로 돌아가며 사격을한다. 이때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
사격훈련이 끝나면 자리옮기기 훈련을 한다. 웃기는 훈련이라고 병사들은 생각한다. 성 중앙
에 모여있다가 장교가 어디로 가라고 외치면 재빨리 그곳으로 가야한다.
"1대대!!! 북문성루로!!!! 빨리 빨리"
사령관이 시간을 재고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혼이 난다. 장교들이 고래고래 고함
을 질러댄다.
"1대대!! 다시 북쪽 성벽으로 !!!! 이병신 새끼들 더 빨리 못움직여!!!!"
"1대대 남문 성문 아래로!!!!굼뱅이도 너희들보다 빠르겠다. "
"1대대 군수창고로....!!2대대 보다 늦으면 너희들!!국물도 없어!!"
가끔은 손에 무엇을 들기도 해야한다. 주로 모래 주머니나 물을 든 양동이다. 왜 하는지 병
사들은 모른다 .그냥 시키니까 한다. 또 제대로 못하면 밥을 굶거나 매를 맞아야 한다.
잠시 휴식시간. 이번에는 덜커덩거리며 포차가 나온다. 병사들은 이것을 좋아한다. 사령관
이 새로 만들었다는 포차는 커다란 돌덩이를 성에서 멀리떨어진곳에 그려진 원에다 떨어뜨
린다. 거대한 돌덩이가 하늘로 쒸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이것들 이 다끝나면 병사들은 땅을 파거나 흙을 성벽뒤쪽에 쌓는일을 한다. 성밖 성벽바로
아래를 깊이파기도 하고 성안쪽을 파기도 한다. . 밖을 파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성벽 안쪽
을 파는 것은 아무도 왜그러는지 모른다. 용봉성만 파는게 아니라 훈련을 아예하루 쉬고 멀
리떨어진 다른성에 가서 땅을 파기도 한다.
흙쌓기와 땅파기가 끝나면 저녁시간이다. 저녁밥은 누구나 먹는다. 오후훈련에서 잘못하더라
도 매를 맞거나 고된노역을 더하는 것으로 끝내지 밥을 못먹게 하지는 않는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다시 청소를 하고 부대별로 주변 냇가로 가서 목욕을 한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왜 매일 목욕을 해야되는지 병사들은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주로 시골에서 크고 자란
병사들은 그전까지 기껏해야 일년에 두세번 목욕하는게 전부였으므로 새사령관이 오고 나서
한 목욕횟수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목욕횟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목욕이 끝나고 나면 병기손질시간이다. 동물기름을 바른 천으로 무기와 갑옷등을 닥는다. 물
론 검사를 받아야 한다. 불합격이면 또 얻어맞는다.
이것까지 끝나면 그날하루는 끝이다. 그뒤는 자유시간이다. 가끔은 술이나 간식이 배급되기
도 한다. 간식은 주로 옥수수(이때 옥수수가 있었는지 모름)나 칙을 삶은 것으로 보잘것없었
지만 혈기왕성한 병사들의 배고픔을 달래는 데는 제격이다.
병사들은 모여서 잡담을 하기도 하고 천막안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한다. 대개는 잠을 잔다.
이렇게 고된훈련을 5개월이 넘도록 계속 받아본일이 없던 병사들이라 모두 지쳐있다. 좁은
천막안 20-30명의 병사들이 옹기종기 누워 더러운 이불을 덮고 투구나 갑옷을 베게삼아 잠
을 청한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병사는 한명도 없다. 모두 땅에 머리를 대자 마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실제 취침시간이 됬을때까지 깨어있는 병사는 거의없다. 그러나 취침시간이 되면 병사들은
다시 일어나야 한다. 인원점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원점검이 끝나면 초번보초를 설
병사들은 보초장인 고참병의 인솔을 받아 그날 당번장교에게 가서 주의 사항을 들은 다음
보초를 서기 위해 진 외곽으로 나간다. 그때가 되면 어김없이 사령관이 다시 나타난다. 그는
잠도 없는 모양이다. 전 초소를 일일이 돌아다닌다. 별말은 없다. 다만 병사들의 무장상태를
쓰윽 쳐다볼뿐이다.
5월 황량한 만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꽃이란게 조금씩 피기 시작할 무렵 사기충천한 고
구려군은 낙랑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4부 왕(6)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