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9)

4부 왕(王)(4.5)수정판

 호동은 기마10기(騎)와께 흑수(黑水)를 건넜다. 오늘 임무는 말갈내에 포섭해두었

던 세작(간첩)과 접선하는 일이다.

말갈 같이 원시적인 유목민족내에서 가치있는 정보를 적대국가가 얻어내는 일은 어려운  일

이다.. 백제나 낙랑,후연 같이 사회가 분화되고 도시가 발달한 국가는 금력으로 도시의 주민

을 매수하여 정보망을 구축하거나 직접 간첩을 파견하는 것으로 정보획득이 가능했으나  유

목민족의 경우 대가족 단위로 초원을 이동하며 생활하는 생활습성 때문에 직접 파견은 불가

능(외부인은 쉽게 눈에 띠고 안주할곳도 없으므로)했고 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때

문에 금력도 통하지 않았다. 따라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소규모 부대가 국경내로 깊숙히 

침투하여 민간인이나 군인을 납치해 이들은 취조 하거나 아니면 이들을 인질로 잡아  남아 

있는 가족을 협박하는 것이다.  특수한 경우는 정치적 대립상태인 두  집단 중 한쪽에 접근

해서 반대파를 타도하는데 도움(그들의 영지를 공격해서 피폐하게 하거나  위신을 떨어뜨리

는 행위)을 줄테니 대가로 정보제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자의 방식이 고구려가 주로 사용

하는 방법이다. 왜냐면  후자의 경우 바보가 아닌이상 반대파가  쓰러지고 나면 다음차례가 

자신들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알맹이를 뺀 정보만 전달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호동군이 접촉하기로 한 세작은 고구려가 아굴타를 몰락시키는 와중에 가족이 인

질로 잡힌 말갈 소 부족의 족장이었다. 

흑수를 건넌 호동 일행은 수고(樹高)가 높은 침엽수가 빽빽하게 들어찬 원시림을 한참을 지

나 접선장소부근에 도착했다. 밝기가 절정에  이른 보름달이 떴지만 울창한  숲내는 극도로 

어두웠다. 

일행이 대기하는 사이 부근 지형에 밝은 군관한명이 혼자 약속한 장소로 가서 세작을 데리

고 왔다. 세작은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삐쩍 마른 사내였다. 

짐승가죽을 뒤집어 쓴 초로의 늙은이가 누런이를 들어내며 호동과 일행을 보고 웃었다.

말갈어가 능숙한 한 병사가 그와 대화하는 사이 호동은  주의깊게 말갈인을 살폈다. 어딘가 

어색했다. 말하는 투나 얼굴 표정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아직 사람보는눈이 완전치  않은 

17세의 호동조차 느낄정도로 말갈사내는 조급해하고 있었다.

대규모 전투라면 호동도 경험이 적지않았기 때문에 나서서 지휘했겠지만 이런경우는 

처음이라   잠자코 부하들에게 맡기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유목민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 금방 얼굴에 그것이 나타난다. 뭔가 흉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화하는 병사나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 군관들과 병사들은 

무표정하다. 무슨 생각이 있겠지 하며 호동은 나서지 않기로 했다.  말갈어는 거란어와

비슷하다. 그래서 그들과 적대적이었던 고구려무사들은 적은 안다는 차원에서 어렸을때부터 

말갈어를 익혀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했다. 호동도 세작과 고구려병사의 대화내용을 대충 알

아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문서외에 새로운 무기도 가지고 왔다.  남쪽에서 온 백제사신이 

알려준 제련기술로 제작한 검과 창은 굉장히 위력적이다.  또한 쉽게 만든다.  고구려군의

무기와 실험해본 결과 강도가 훨씬 낳다. 내가 어렵게 그것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무거

워서 여기까지 가져올수 없었다. 그것을 가까운 마을 근처에 놔뒀다. 가지러 가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약속장소에서 벗어나자는 것은 위험하기는 했으나 새로운 무기에 대한

내용은 호동의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철이 부족한 고구려군에서는 아직도 순수 청동

으로 된 무기나 청동과 철을  조합하여 제련한 무기가 상당수 있었다.  말갈측 역시 철제가 

귀해서 청동제 무기가 거의 8할이 넘었고 그것은 장기전시 무기가 쉽게 마모되거나 갈라져

(철제무기와 여러번 부딪칠 경우) 전투력의 약화를 가져오곤 했는데 만약 대량의 철제

무기가 말갈에서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 세작과 대화하던 병사가 군관을 바라보며 씩 웃고 그 군관은 호동을 향해 고개를 돌리

고 역시 씩하고 웃었다. 호동이 그의 웃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는 사이 말에서 내

린 군관이 갑자기 주먹으로 세작의 얼굴을 후려쳤다. 세작은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고 

어느새 말에서 내린 다른 병사들이 마구잡이로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사전에 계

획한 것 같이 날랜 동작이다. 호동 혼자만 황당해 하며 말위에 그대로 있었다. 늙은이는  피

투성이가 된 채 나무에 꽁꽁 묶이고 그때서야 군관이 호동에게 다가와 이놈은 지금 거짓말

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나도 처음부터 감은 잡고 있었지만.. 거짓말이란  증거가 있느냐? 만약 그런 무기가  있   

다면 큰일이지 않으냐!"

 "하하.. 저하. 저놈 태도를  보십시오. 원래 말갈인들은 거짓말을  잘못합니다. 원체 미개한   

것들이라. 그리고. 그 무기  얘기 말입니다. 말갈  놈들은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    

런 새로운 무기제조기술은 아굴타때 백제놈들이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을 지금이라고 거짓  

말 하는 것   입니다. " 

 "그래? 아굴타가 살아있을 때? 허나 내가 그때 본바에 의하면  말 갈놈들은 청동무기가 대

부분이었다 .심지어 짐승뼈로 활촉을 만드는 것도 봤고. 그런 기술이 그때 전해졌다면  그럴

리야 있겠느냐.."

"그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왜냐하면 .."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알아도 철(鐵)이 없으면 말짱 헛 것이기 때문이죠. 저하께선  지금까지 

말갈놈들이 광산하나 제대로 개발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으신지요...주로 다른나라에서 양

이나 말과 교환으로 철을 수입하는 판국에 그 양은 쥐꼬리 만큼도 돼지 않습니다. "

그렇구나. 그렇게 단순한 이치를 몰랐다니. 호동은 부끄러웠다.  군관들뿐 아니라 미천한 병

사들도 행동을 보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자신만  몰랐던 것 같아 창피해진 호

동은 얼굴이 붉어졌다. 군관의 말을 듣고 자세히 생각해보니  아굴타와의 전쟁때 자신도 그

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고구려도 광산하나 파는데 엄청난 시간, 자금과 기술

이 들어 힘겨워하는데 미개한 말갈인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일 것이다. 요동에 있는 

철산(鐵山)은 철성분이 대량으로 함유된 암석이 지표에 가까운곳에  매장되 있어 쉽게 철을 

얻을수 있었지만 그외 지역에서 철을 대량으로 얻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흐음.. 그렇군.. 그런데 이자는 어떻게 할거지? 없애버리고 빨리 자리를 떠야 하는  게 아니  

 냐?"

"아마 이자가 저희들을 끌어들이려 한 곳에 적군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기다려 보다 않 오

면 이쪽으로 올 것이지만 거리가 꽤 되니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이놈을 족쳐 몇가지 알아

낸 다음 없애고 자리를 뜨는 게 어떨지요.?  궂이 성까지 끌고 갈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얼마 안 있어 버릴 놈이었으니까요."

"좋다. "

호동이 현재 있는 장소는 흑수에서 가까운곳으로 말갈군도 맘놓고 다니는 장소가 아니었다. 

혹시 정찰대끼리 작은 접전이라도 일어났다가 호동군의 주력이 쳐들어오면 큰 분쟁이  일어

날 수 도 있어 고구려와의 전면전을 두려워한 말갈인들은 자기국경내인데도 오기를  꺼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흑 수에서 꽤 떨어진 마을근처까지 유인하려 한 모양이다.  고구려 정찰대

가 주로 피해를 입는곳도 흑수쪽에서 멀리 떨어진곳이었다.

군관은 비웃는 듯한 얼굴로 나무에  묶인 말갈사내의 얼굴에 침에 뱆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라. 대답여하에 따라 널 살려줄 수도 있고 우리가 데리고 있는 네놈가족도 살려줄 수 

있다. 왜 배신했지? 배신하지 않았다. 오해다. 난 충성스런..군관은 얼굴을 다시 후려쳤다. 왜

배신했지? 아니다.. 아니다. 정말이..윽..군관은 가슴에서 단도를  꺼내 말갈사내의 어깨를 찔

렀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리며 사내의 살을 헤집기 시작했다. 병사한명이 비명이 세지  않게 

사내의 입을 손으로 둘러막았다. 그래도 비명은 새어나왔다. 아아악... 왜 배신했지?  아니다.

아아아.. 제발.악.. 허..요놈봐라. 팔을 잡아라. 병사한명이 사내의 팔을 잡아 뻗게 만들었다. 

군관은 단도를  모로 누여 손톱밑에 칼을 갔다댔다. 다시 한번 묻는다. 왜 배신했지? 그때까

지도 어색한 연기를 되풀이 하던 노인은 자기손톱밑에 날카로운 칼끝이 놓이자 새파랗게 얼

굴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어깨에서 흘린 피가 시커멓게 의복을 적시고 있었다.

호동은 그 모습을 보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공포에 질린 얼굴과 어깨에서 흐르는 피. 

달빛에 반짝이는 날카로운 단도의 끝. 왜 흥분하는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처음으로 전

투에 뛰어들어을 때 처럼 그의  남성도 흥분과 함께 불끗 서있었다.  찔러 찌르란 말이야!!! 

목구멍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미치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무언가 채워

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노인이 고통으로 일글어지고 시뻘건 진홍의 피가 칼을 적셔야만 

채워질 것 같았다. 본인은 몰랐지만 호동의 눈에는 잔인한 기운이 뻗치고 있었다. 

말갈인이 자백을 거부하자 군관은 칼끝을 손톱밑에  조금씩 찔러넣었다. 고구려병사의 손바

닥에 가려진 노인의 입에서 말로 형언할수 없는 고통의  비명이 새어나왔다. 호동은 호흡이 

더욱 더 빨라졌다. 더 더 깊히 찌르란 말이야!!. 

노인의 눈이 뒤집히기 시작하자 군관은 칼을 빼고 다시  물었다. 왜 배신했지? 윽윽..발각됬

다. 으으 저번 너희 병사한명이 우리쪽에 생포 됬는데 그놈이 내이름을 댔다.. 남은 가족(노

인이 말갈에서 다시 이룬가족)이 소한(小汗) 에게 인질로 붙잡혀있다. 너희를 유인해주면 살

려준다고 했다. 마을쪽에 적이 있나?. 그렇다. 50명 정도가 숨어있다.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손가락을 붙잡고 몸부림 쳤다. 군관은 호동을 바라보며 아까처럼 씩웃는다.  호동은 이대로 

끝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여체에 삽입하고 사정이 가까워 졌을 때 행위가 중단된 것 처럼 

호동은 미칠것만 같았다. 이대로 끝낸선 안돼!!!

군관은 냉혹하게 웃으며 노인을 바라본다. 그런데  한가지 해줄 말이 있다. 너희 가족  말이

야. 2년전부터 우리가 데리고 있다고 한.. 그 짐승들은 사실  붙잡고 나서 바로 노예로 팔아

버렸다. 뭐뭐... 뭐라고? 그냥 보내면 섭섭해서 기집들은 우리병사들에게 돌렸지. 특히 니 딸

년. 거 이름이 뭐더라? 하치? 그년은 쫄깃쫄깃한게 아주 인기가 좋았다. 노인은 분노하기보

단 어처구니가 없는지  멍하니 군관을 바라본다. 지난 2년간  동족을 배신하며 정보를 전달

해온 것은 오로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였다.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오직 그것하나 때

문에 초원남자의 긍지와 자부심도 버리고 고구려의 개가 됬던 것이다. 

후후. 그리고 한가지 더. 네놈은 여기서 죽는다. 우릴 배신한놈은 살려두지 않아. 특히  너희

같은 야만종들은 말이야. 이 버러지야. 그러나 네놈이 원래 보고하기로 한 내용을  사실대로 

말하면 고통없이 죽여주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어때 . 이 자비로운 제

안이.. 군관은 미소짓는다. 노인은 원래보고하기 로 했던 내용. 말갈서쪽 국경군대의  이동사

항이나 새로운 병력배치에 대해 술술 털어놓는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의 눈은 이미 산

자의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것이었다. 삶을 포기한 것이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군관은 노인뒤에 서있던 병사에게 눈짓을 하고 병사는 검을 꺼내 노인

의 가냘픈 목을 댕강 잘라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병사와 군관에게 까지 흩뿌려졌다. 

호동은 첫 참전이후 잔인한 장면을 보고 나면 고통이나 혐오보다 욕정을 더 느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끝나면 가라앉곤 했는데 오늘은 노인이 죽고 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돌아가는 와

중에도 호동은 흥분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군관이 옆에 와서 뭐라고 했지만 하나도 들

리지 않았다.  피를 보고싶었다. 

흑수를 향해 나아가던 도중에 참다못한 호동이 다시 돌아가자고  말한다. 군관은 펄쩍 놀라

며 어디로 말입니까 하고 묻는다. 마을로 가자 적이 숨어 있다는곳까지. 호동은 말까지 더듬

는다. 위험합니다. 절대 안됩니다. 저...저 노인의  .흐. 말(국경상황의보고)을 믿을수 있느냐? 

포로를 잡자 말갈병사를(사실확인을위해). 안됩니다. 적이 준비하고 있는데.   정 그러시다면 

여기서 기다리셨다가 성에서 병력지원을 받으신 다음에.. .

"이놈 헛소리마라 야만인 50명쯤이야 우리 고구려무사 10명이면  충분히 물리칠수 있다. 그

리고 전투가 아니라 포로만 잡자는 것이다.  겁이 나느냐?.?

호동은 검을 빼들고 칼옆면으로 군관을 내리쳤다. 실은 베버리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고 있

었다. 

"무엄한놈 왕자가 가자는데 일개 군관놈이........."

 군관은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호동이 호승심 때문에 무모한 짓을 한

다고 생각하며 왕자도 살고 자신들도 살방법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그러시다면 저희는 먼저 가고 병사한명을  보내 성에 보내 지원병을 요청하는건  어떻습니

까"

"좋다. 그렇게 해라. 시간이 없다. 어서가자. "

호동은 군관 이마의 핏방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말머리를 돌려 동으로 말을 달리기 시작했

다. . 군관은 병사한명에게 성에가서 지원병을 이끌고 오라고 말하고 호동의 뒤를 따라갔다.

죽은 말갈인이 가자고 했던 곳은 흑수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던 마을이었다. 호동은 외

곽에 도착하자 병사 한명을 보내  마을주위를 살펴보게 했다.. 당장이라도 마을에  쳐들어가 

적과 싸우고 싶을정도로 흥분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理性)이 그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죽은 늙은이가 적병은 50명이라고 했는데 돌아온 병사가 확인한  것은 30명정도 였다. 호동

은 그들을 공격하자고 말한다. 그러자 군관은 남은 20명을 발견할때까지 기다리자고 말했고 

그는 다시 얻어맞았다. 

"네놈이 그렇게 겁쟁이라면 나 혼자 가겠다. "

할수 없이 나머지 고구려인들도 호동의 뒤를 따랐다. 말에서 내린 그들은 동쪽으로 숲을 크

게 우회해서 말갈병들의 매복장소뒤쪽으로 접근했다. 흑수에서 마을로 통하는 작은 소로(小

路) 부근의 숲이었다.  소로쪽만 신경쓰느라 반대편은 경계가 허술했다. 호동을 선두로 급습

이 감행되자  말갈인들은 크게 놀라며  뿔뿔히 흩어지고 30여명중에 20여명이 현장에서 살

해됬다. 호동은 악귀처럼 날뛰며 죽이고 또 죽였다. 적을 죽여 승리를 얻고 자신이 살기위해

서가 아니라 죽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처럼 보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병사들도 적보다 

호동에게 더 큰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순진하던 왕자가 왜 저러는지 도저히 이해할수 없

었다.  적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날뛰는 호동은 지옥에서 돌아온 마귀같았다.

날뛰는 호동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포로를 잡고 허겁지겁 빠져나온 일행이 말을 묶어둔곳에 

도착해 숨을 고르던 순간 숫자미상의 말갈군이 습격해왔다.

확인하지 못한 20명이었다. 어둠속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와 병사몇명이 죽고 고구려군

은 서쪽으로 급히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로에 가까운  숲에서 말이 갑자기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무밑둥과 밑둥을 연결해 놓여진 밧줄에 말의 발목이 걸린 것이다. 말갈인들은 

죽은 늙은이가 고구려군을 유인하면  그쪽으로 몰아넣고 없앨생각이었는데 하필 호동일행이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호동도 말에서 튕겨져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뒤쫏아온 말갈군이 그들을 덮치자  어둠속에서 난전(亂戰)이 벌어졌다. 호동은 태어나서 처

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이미 마성(魔性)에 눈을 뜬 호동에게는 그것조차 

황홀한 욕정을 일으키는 강렬한 자극일 뿐이다..  어둠 속에서 말 탄 인간이든 땅에 떨어져 

비틀거리던 인간이든 살아있는 것은 모두 칼로 찌르고 베고 후벼팠다.  그게 적이든 아군이

든 가릴 것 없이.. 호동은 초인(超人)처럼 날뛰었다. 그는  그때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수십

명의 인간을 혼자서 죽일수 있게 했던것은 그의 육체적인  힘과 뛰어난 검술만이 아니었다.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그의 마성이 그를 그렇게 하게 한것이다.

호동이 마지막 생명체를 두 동강이  냈을 때 서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고통에 

울부짖는 부상자들의 신음소리만이 숲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만족못한 호동은 들개처럼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개중에 고구려인

들도 있었으나 실성한 호동에게는 쾌락의 대상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호동이 일을 마치고 허리를 숙인채 숨을 고르는 사이 또  다시 말갈인들이 공격해 왔다. 아

마 호동군이 처음 공격했을 때 살아남은 자들 같았다. 호동은 마을 쪽으로 달아났고 쫒아온 

말갈 인들과 마을한복판에서 싸웠다. 

그때 말갈인들은 중대한 실수를 했다. 급히 쫓느라 대열이 일자로 늘어서게 된 것이다. 그런

탓에 호동은 거의 일대일로 싸울수 있었다. 10여명의 말갈병들도  얼마되지 않아 호동의 검

에 모두 찔려 죽었다. 

여전히 흥분상태인 호동은 시체더미사이를 헤치고 곁에  있던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일가족

이 밖의 소음에 놀랐던지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다. 호동은 검을 그들에게 들이댔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고구려 무사(武士)는 저항하지 않는 민간인을 죽이지 않는다.

고구려 무사(武士)는 민간인을 전투에 이용하지 않는다. 

고구려 무사(武士)는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그런 행위는 무사(武士)의 수치이다. 동명신사에서 입이 닯도록 외웠던 구절이다. 

호동은 킥킥 웃기 시작했다.  껄걸 거리며 호동은 검을 거두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나 운명은 그를 동명신사에서 순결하기를  다짐하던 해맑은 소년이기를 바라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리석은,,.,, 가족앞에서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그집의 가장이  작은 검을 들고 막 몸을돌려 

초가를 빠져나가려던 호동의 등을 찔렀다.  겨드랑이에 작은 상처를  내는 정도였지만 거기

서 흐른 빠알간 핏물은  되돌아갈수  없는 강을 건너라고 손짓하는  악마의  초대장이었다. 

그는 단숨에 남자를 두토막을 내고 남은 가족도 전부 참살해 버렸다. 

초가를 나갔다. 다른집에 들어갔다. 살아있는 것은 전부 죽였다. 다시 나와 다른집에 들어가

또 죽였다. .  마을에 살던 주민 전부를 죽이고 나서 호동은 비틀거리며 시체들 사이로 들어

가 쓰러져 누웠다. 그리고 인간의  살점과 피로 범벅이 된 양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나 눈만은 사람임을 포기하는 이별을 슬퍼하듯 자그마한 이슬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때로부터 2개월후

자명고(自鳴鼓)는 봉정산 전투 후 상장군(上將軍)에 정식으로 재수  됐다. 상장군 직위는 전

쟁중 임시로 내려진 것이었으므로  원래직위로 돌아갔다가 몇 단계 승진하는 것에 그칠것으

로  예상했던 자명고로서는 전혀 뜻밖이었다.  기쁘다는 생각이 없진 않았으나  벼락출세한 

자가 관료사회에서 처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던 그였기에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

다.

전쟁이 승리로 끝나자 상도에서는 공훈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실제 고구려군을 

격파한 것은 자명고와 그의 병사들이었으나 저마다 자기공을 치켜세우는 자가 한둘이  아니

었다. 봉정산의 대패후 도주하는 고구려 패잔병의 목을 베고 그것을 자랑하는자도 있었고  , 

실제지휘는 자명고가 했는데도 근위대지휘관들은 평소훈련이 자기들 탓에 잘되서 그게 가능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람 좋은 왕은 그들 모두에게 상을 주었다. 벌을 받은자는 거의 

없었다. 개전초기 야전에서 졸렬한 지휘로 낙랑군 주력(主力)을 망하게 한 장군들도 와신상

담(臥薪嘗膽)의 기회로 삼으라며 너그러이 용서한다고  한다. 자명고는 기가 막혔지만 항상 

그러하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명고에게는 상장군 직위외에 영지(領地)와 상도에 거대한 저택, 그리고 왕이 거느리고 있

던 미녀 10인(人)과  노예 50두(頭)가 포상으로  내려졌다. 몇차례 거절했지만  왕이 화까지  

내는 통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숙부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조카들은 분가해 각기 일가

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혼자인 자명고에게는 분에 넘친 선물이었다. 

자명고는 50이 될 때까지 혼인하지 않았다. 연희와 옥정을 잊지 못했다기 보단 혼인할 경제

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조카들을 교육시키고 생활비를 대느라  그의 녹

봉은 남아나는 때가 없었다. 혼인비용이 엄청난 시대에 거기에 쓸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전쟁이 종결된후 직위만 내려지고 임지는 한동안 결정되지 않아 자명고는 하는일없이  상도

에 머물렀다. 그 동안 조카들이 찾아와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숙부의 묘에 출세했음을 알리

는 제(際)를 올리기도 했다. 귀찮기도 했으나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에게 이러한 행복

한 시간은 정말로 오래만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이후에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게 한가지 고민되는 일이 있었다. 저택은 그렇다 쳐도 왕이 하사한 노예와 미녀

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가족이 없던 그에게 노예50명은 너무 많았고 미녀 10

명을 또 어디다 써야될지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어린시절 그의 집안이나 이웃에는 노

예가 없었다. 주업이 육체노동력이 많이  필요치 않은 무역인탓도 있었지만  노예를 낳을수 

있는 계급이라는게 없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낙랑에서 산지도 30여년이 넘은 탓에 자연스

럽게 노예라는 개념을 받아 들이기는  했지만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저렇게 노예로서 

남이 시키는 일만 하기보단 풀어줘서 각기 살도록하면 훨씬 생산이 풍부해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적이 있는 그였다. 바로  면천을 시키자니 왕의 하사품을  그런식으로 처리하면 

불경(不敬)이라하여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르는 일이었다. 한참을 생각한 자명고는 1년이나 2

년후에 왕이 그것들을 잊을 만한 시간이 지나면 그들을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미녀들(궁녀들중 아름다운 여자들을 선발한)도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문서화된 증서는 

없었으나 어린시절부터 궁에 들어와 오로지 복종과 순종만 배우며 세상과 단절된채 자란 그

녀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인간들이었다. 풀어주면 들병이가  되거나  굷어 죽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명고는 그녀들을 하사받은 저택에 그대로 있게 했다. 나중에 어떻게 처

리할지 생각하기 로 한 것이다. 그가 상도에 있는 동안 미녀들이 그에게 시중을 들어주고자 

노력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목욕한다거나 의복을 착용한다거나  하는 일을 남이 도와준다는 

것은 괞한 낭비라고 생각했다. 군대생활30여년을 하급군관으로 지낸 그는 모든일을 혼자 처

리하던 습관이 있었으므로 오히려 더 불편했다.

"내일은 상관말고 너희들은 가서 너희들 편한대로 지내거라 ."

"하오나 장군님. 고귀하신 상장군께서 그런일을 직접하신다는 것은 말도 안돼는 일이옵니다. 

"

"내가 고귀해?"

나는 결코 고귀하지 않다. 나뿐만 아니라 인간중에 고귀한 자는 한명도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자명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순진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말하는 여자들을 보고  왠

지 안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왜 안스럽게 느끼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자명고가 하사받은 영지는 과거 문수의 영지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땅이란 땅은 모두 귀족

들의 차지인 낙랑에서 자신에게 내릴 땅이 또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하여튼 그는 그 땅을 

어떻게 처리해야될지를 결정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다.  저택과 노예들은 조카들중 한명에

게 단속을 부탁하고 상도를 떠났다.

따로 기별을 전한것도 아닌데 영지내로 들어가자  길 양편으로 백성들이 나와 엎드려  있고 

작두와 관리인 그리고 영지의 관원들이 그를 마중하러 기다리고  있었다. 비단옷을 입고 살

이 찐 관리들, 작두들과 달리  주민들은 모두 남루한 옷차림에 안색이  좋지 않았으며 비쩍 

말라 있었다. 낙랑 어딜 가나 볼수 있는 모습이다.

관리인들이 안내한 곳은 관리우두머리의 집이었는데 상도의 귀족 저택못지 않게 으리으리했

으며 저택안 내실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차려진 연회상이 있고 여러곳에서 불러모은  기

녀들이 요염하게 앉아 자명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내 불쾌한 안색으로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두중 한명이 그런 그를 보고 어디 편찮으신가를 물었지만 그는 아무 대

답도 하지 않았다. 

자명고가 연회석의 상좌에 앉자 주변에 앉은 자들이 이런저런 낯간지러운 아첨하는 말을 해

댔다. 그리고 중앙의 빈공간에 화려하게 치장한 기녀들이 나와  악단이 연주하는 음율에 맞

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명고는 잠시 지켜보다가 중단시켰다. 음식은 손도 대지 않았다. 

한참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그는  기녀들만따로 후원으로 모이게  했다. 무표정한 표정으

로 잠시 기녀들을 바라보는 그는 진지한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모두 돈을 받았겠지?"

"네에"

기녀들중  한여인이 대표로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음악이나 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너희들을 데려온 모양인데 

그것들을 싫어하니 어떻하면 좋겠느냐.."

눈가에 주름이 이쁘게 잡힌 늙은 기녀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 장군님"

"그렇지만 너희들은 돈을 받았으니 춤과 노래대신 그에 합당한 일을 해야한다. 아니면 돈을 

도로 내놓던가"

"네에?? 무슨일을 말씀하시는건지 소녀는 잘 모르겠어요.."

"농촌의 젊은 아녀자들은 대부분 귀족들이 첩으로 삼아 데려갔거나 도시의 기방으로 팔려나

가 시골에는 젊은 여자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너희들도 다  아는 일 아니

냐?. 그러니 장가는커녕 여자냄새한번 못맏은 총각들이 수두룩 하지. 어떠냐 너희들. 불쌍한 

그 친구들을 위해 오늘 몸보시 한번 하는 것이"

기녀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자명고와 얘기하던 여자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

다. 

"저희는 창기가 아니예요. 장군님. 춤과 노래는 팔아도  몸은 아무에게나 팔지 않아요. 아무

리 장군님말씀이라도 그런짓은 절대 못해요!!"

여자는 강한 표정으로 거부했다.

"그러면 돈을 내놓아라. 아무일도 않하고 대가를 받을수야 없지 않는냐?"

돈을 내놓라는 말과 상대가 지위높은 장군이라는  사실 때문에 기녀들은 망설이는 것  같았

다. 강제로 시키면 안될것도 없지만 거부하더라도 손해보는 일은 없다고 자명고는 생각했다

(그돈을 돌려받은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되므로) 그때 후원으로 한 여자가 들어왔다. 기

녀들이 그녀에게 길을 터주는 것으로 봐서 기방에서 지위가 높은 여자 같았다. 중키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똑똑한 인상이다. 그녀는  여자들에게 자초지정을 듣고는 자명

고에게 다가와 우아하게 예를 취한다.

"저는 상도 화루(花樓)의 주인인 상아(象牙)라고 하옵니다. 재밌는 제안을 하셨더군요.. 장군

님"

화루라면 수도에서 중간수준은 되는 기루(妓樓)다 .상도에서 여기까지 기녀들을 데려온 모양

이다. 비용이 엄청나게 들었을 것이다. 

"재밌는 제안? 허허. 하지만 내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느냐?"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이치는 맞는 말씀이에요. 그럼 지금 아이들을 준비시킬까요?"

"그럼 육(肉)보시에 동의하는것이냐?"

"네.어차피 장군님을 위해 품삯을 받고 여기까지 왔으니 장군님 뜻대로 하는게 도리겠지요"

"허허 .."

상아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자명고를 응시한다. 그 옛날 그가  알았던 한 여인과 

비슷한 미소였다. 삷을 아주 너그럽게 받아드린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미소일 것이다. 

자명고는 작두 한명을 불러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주민 전부를 모이게 하고 연회석에 있던 

음식과 부엌에 산더미 처럼 쌓여있던 산해진미들을 그들에게 전부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개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얼마나 굷었는지 묻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관리들과 작두들은  옆

에서 그 모습을 멍청히 바라보다가 명고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인자하신 대인(大人)

이라고 그에게 아부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표정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민들이 음식을 전부 먹어 치우자 명고는 홀애비와 16살이 넘는 사내들을 따로 모이게 했

다. 상아는 그사이 기녀들에게 방을  하나씩 배분하여 즉석에서 관리의  저택을 창기촌으로 

만들어 버렸다. 모인 사내들은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하며  차례차례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

다. 

그리고 그날 낮부터 다음날까지 화루의 기녀들은 지난 몇 년간 같이 잔 남자들수보다 더많

은 남자들과 성교를 벌여 야 했다. 그리고  방으로 길게  늘어선 대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명고에게 상아가 얼굴을 붉히며 찾아와 이런말을 하였다. 자기도 돈을 받고 여기 왔으

니 뭔가 하고 싶다며 오늘밤 장군님 밤시중을 들고 싶다고 한다. 

"이보게 . 자네 마음은 고마우나  ..."

발기해본지가 언제인가.. 옥정과 연희를 떠나보낸후 한동안 색정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돈

이 없어 1년에 한두번이었지만.. 하지만 그것도 명고가 40대에 접어들자 발기가 안돼는 것으

로 끝이 났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상아는 그가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

는지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어쩌튼 오늘 자네가 크게 마음을 써줘서 저 사내녀석들이 호강하는구만.. 나도 기분이 유쾌

해. 상아 자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

"호호.. 진정으로 제게 고마우세요? 장군님"

"그럼"

"그럼 한가지 약속해주세요.."

"얘기해보게 . 내가 가능한것이라면 꼭 들어주겠네"

"나중에 한번 제가 장군님을 모실 영광을 주세요.  전쟁하시는 것만큼 잠자리에서도 용감하

신지 보고 싶군요. .호호호호"

그녀는 눈자위를 빛내며 그를 바라본다. 그 모습이 은근히 요염하다. 자명고도 그녀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나서 상아도  사내들이 기다리던 방으로 들어갔다. 평범한 기방의 주인이라

면 꿈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도 그날 밥값을 하기 위해 10명이  넘는 사내들과 몸을 

섞었다.

다음날 자명고는 영지의 소작료를  3할로 줄인다고 작두들에게 선언했다.  아예 자작농으로 

만들 생각도 하였으나 저택이나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함부로 땅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

리고 전체 영지 관리를 자기 조카 한 명이 나중에 와서 할 테니 모든 일에 그의 결재를  맡

으라고 말했다. 영지에서 나오는 소출의  2할을 조정에 세로 내야했으므로  나머지 1할만이 

자명고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작두들이 얼마간  가져가므로 그의 수입은 거의 

없는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소작료가 높을수록 중간에 작두들의 수입도 많았지므로 그

들은 울상이 됐지만 무슨 속셈이 있는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날 백성들, 작두들, 관리들, 기녀들이 모두 나와 그를 배웅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자명고 눈에는 오직 한사람만이 들어왔다. 상아였다. 

자명고는 그녀와 한 약속을  후회했다. 

상도에 그가 귀환했을 때 임지가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구려와의  최전선 지역인 

북부지역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는 떠나기 전 저택과  영지의 관리를 맏은 조카

들을 불러 성실하게 일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조카들이 전적으로 믿을  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숙부보다 어릴 적 죽은 형들의 성품을 더 많이  닮아 탐욕스러운 면도 없지 않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외 딱히 맏길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사이 고구려(高句麗) 

낙랑원정은 대패로 끝났지만 고구려 조야에서는 실의에 빠지기 보단 복수를 해야한다는  기

운이 지배적이었다. 재수가 없어  진걸로 치는 여론이 많았으며 상대가 별볼일 없다던 낙랑

이어서 패전의 두려움도 거의 없었다. .  거란이나 부여에 패했다면 공포감이 고구려 전토를 

떨게 만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2차원정 준비가 시작됐다. 

그러나 호동의 아버지이자 고구려의 왕, 그 한사람만은 몹시 불안했다. 

패배는 대수롭지 않은것이었다. 병력도 2만정도가 손실됬을뿐이다. 총5만이 출정했으나  부

실한 낙랑군의 뒷처리 때문에  살아 돌아온 수가 3만이  넘었다.(자명고가 고구려군 본진을 

격파한후 북부성들에게 도주하는 잔병(殘兵)을 막으라는 연락을  보냈지만 일부만이 그대로 

했음)  지헤로운 자들은 충실한 국력의 고구려에서 그 정도 손실은 크지 않으며  쉽게 회복

될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냐도 크게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왕은 그렇지 못했

다. 모든 게 자기책임 같았다. 봉정산에 진입하기 직전 최후의 작전회의에서 낙랑왕을  추격

하자고  권한 것은 목파외에 모든 고구려장군들이었음에도 왕은 오로지 자신이 목파의 의견

을 무시했다는 사실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즉위 후부터 왕은 자신의 왕위계승에 반대했던자

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가 처음 국내성에 들어왔을 때  주눅들며 

느껴야 했던 열등감이 그후 왕이 돼서도 여전히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불안했다.  귀

족들이 다시 전처럼 자신을 촌놈이라고 무시할 것만 같았다. 게다가 둘째 왕자 호무의 죽음

은 말로 할 수 없는 상처를 그에게  안겨주었다.(푸른 초원님이 보내주신 자료에 의하면 호

동은 실제로 장남이었다고 합니다. 그치만 장남이면 얘기가 안돼기 때문에 ..흠..)

2차원정준비는 그야말로 거국적인 지원 하에 진행됐다. . 백제와 인접한 지역을 제외한 고구

려 전 토에서 불러들인 우수한 부대들이 속속 남부전선에 집결하기 시작했으며 무기와 갑주

는 전부 신형철제장비로 교체됐다. 특히  공성전에 대비한 다양한 기계들이 새로  제작됐다. 

군량과 보급품도  꼭 필요한 분량을 빼고는 우선적으로 원정군에게 지급됐다. 

호동도 2차원정에 참여하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국내성으로 돌아왔다. 왕은  울적한 기분을 

귀여운 막내아들인 호동을 보면서 달래고 싶었다. 그는 격식을 어기면서까지 왕자를 성문에

서 직접 환영했다. 

그러나 호동은 변해있었다. 창백한 얼굴색에  주위에 무관심한 것 같은  태도였고 전신에서 

냉소적인 기운이 뻗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리며 아비의 슬하에 있

음을 안주(安住)하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신하들은 호동을 보고 의젓해지고 관록이 붙었

다고 칭찬했다.  흑수의 참혹한 사건이후 내적으로 복잡한 상태에  있던 호동인지라 전같이 

해맑은 웃음도 없었고 부친을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 왕은 오랜만에 막내아들을 보는 반가

운 마음에 호동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도 호동의 반응은 그저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왕은 자기 멋대로 해석해버렸다. 

-이놈이 나를 무시하는가? 내가 낙랑에 패했다고? 귀족들처럼? 애비는  근본이 촌놈이지만 

제놈은 국내성에서 컸다 이건가? 네놈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수 있지?-

서서히 고개를 처든 자기불신(自己不信)은 혈육마저 믿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몰라보

게 장성한 아들들에게 노쇄해가는 아비가 느끼는 묘한 질투심과 경쟁심도 그것을 더하게 만

들었다. 

그날 오후에 호동은   모후(母后)를 문안인사겸 해서 방문했다.  근 1년만에 만나는 왕비는 

호동을 보고 눈물을 짔고는 자기품에 안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호동은 여전히 무표정하

고 냉소적인 태도였으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그런 그의 태도에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우리 호동이 북쪽 차가운 땅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

모후는 젖먹이를 안 듯이 그를 가슴깊이  껴안고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호동은  모후의 품

에 안기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뭔가 말할수  없는 울컥한 기운이 가슴속에서 치밀

어 올랐다.  밖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아이가 어머니에게 그것을 실토한후 위로를 받았을의 

심정같은 것을 호동은 그때 느끼고 있었다.  어린시절 모후의 지나친 과보호에 진력이 났었

던 호동도 그날만은 어머니가 너무나 고마왔다.  

호동은 소년처럼 어머니의 품속에 깊이 안겨들었다.

"그래그래 왕자. 이젠 어미 품을 떠나지 말고  나와 함께 있자구나. 이 어린 것을  싸움터에 

보내고 내가 하루 한시도  맘이 편해지 못했는데...호무는  죽고 태자(호적-호동의 큰형-)는 

전하밖에 모르니 나에게 오직 너뿐이단다. 호동아.. "

"어마마마.."

흑수를 떠난후 자신의 본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시도 편하지 못 했던 그는 그날 밤 오랜만

에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정전(正殿)에서 호동을 대가(大加. 장군)로  임명하는 의식이 행해졌다. 17세의 왕자

에게 대가직이 내려지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하지만 이론은 없었다. 호동은 그만큼 왕자

들중에서도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었고 장군들도 인정하는 바였다. 남쪽으로 대부분의 신

하들이 내려가 있어서 참석한 사람은 적었지만 의식은 엄숙한 분위기하에 진행됐다. 호동은 

새로운 관을 쓰고 국왕앞에 무릎끊고 앉아 대가의 상징인 큰 거울과 금으로 치장된 손잡이

를 가진 신성한 검을 받기 위해 양손을 뻗고 있었다. 그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

어났다. 왕비가 정전에 나타난 것이다. 내관(內官)과 궁녀가 옆에서 쩔쩔매며 진땀을 흘리는 

것으로 봐서 말리다가 실패한 모양이다. 정전에 여자가 그것도  왕비가 나타나는 일은 지나

나 낙랑이라면 몰라도 예와 맥족  계열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신하들은 황당한 

표정을 짓었고 왕은 눈을 크게 뜨고 왕비를 꾸짓었다.

"왕비 이게 무슨 짓이요. 지금 제정신이요? 여기가 어디라고 ."

"전하 . 아니되옵니다.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왕자를 또 전쟁터로 데려 가실  생각이신지요. 

이제 스물도 안된 어린 것을. 도대체 전하는 왕자를 모두 죽일생각인가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왕비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얼굴에는 자신이 지금 하는일이 얼마

나 불경한 짓인가를 알면서 참는 듯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호동을 다시 싸움터로 데려가실 바에야 소첩을 이 자리에서 죽여주소서"

왕비는 호동에게 다가와 검과 거울을 빼앗아 바닥에 던지고 관모를 벗기려고 하였다.

"여봐라 저 미친 것을 당장 이 자리에서 쫓아 내라"

왕은 크게 화를 내며 주위를 둘러보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누구하나 나서는 이 없이 서

로 눈치만 보고 있다.  왕비가 누군가? 부족연합체인 고구려에서  가장 막강한 계루부(桂婁

部)의 적손녀였다.  한때는 왕보다 더 위세를 떨친적도 있을 정도 였다. 그리고 왕과 왕비의 

불화에 끼어 들었다가 목이 날아간 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사람은 다 알고 있는 형편이라 누

구하나 이 오만한 왕비의 행동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호동은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모

후의 행위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런 표정이 없다.

왕은 눈에 불꽃이 튈정도로 화가 났다. 자신이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때는 왕비 역시 고분

고분해지더니 낙랑에서 패배하고 돌아오자 다시 옛날처럼 자신을 능멸하는 것 같았다. 

왕은 어도(御刀)를 직접 꺼내들고 왕비에게 다가갔다.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명

분은 충분했다. 왕비가 정전에 그것도  신성한 의식이 행해지는 자리에  자기멋대로 나타나 

관직을 받는자의 징표와 의복을 흐트러 트리는 행위는 죽어  마땅한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

고 생각했다. 그 동안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며 귀족들을 등에 엎고 사사건건 국정(國政)에 

얼마나 간섭했던가. 이 자리에서 죽여 후환을 없애버려야겠다. 검을 들고 왕이 어좌에서  내

려오자 왕비는 두려워 하는 기색도 없이 붉은 양탄자가 깔린 바닥에 앉아 호동을 껴앉고 증

오심을 가득담은 표정으로 왕을 노려본다.

-이 촌놈에게 내 소중한 왕자를 다시 넘겨줄수 없어. 이  싸움밖에 모르는 무지렁뱅이 놈에

게 시집와서 그동안 겪은 고통이 얼마인데 소중한 내 아들. 하나남은 내아들까지 넘겨줘? . 

그럴바에야 왕자와 함께 죽어버리겠어. 제놈도 죽을 때 까지  고통으로 한시도 편안하지 않

을거야.-

"전하 진정을.. 아니되옵니다. 전하"

그제서야 신하들이 왕에게 다가와 말린다. 길길이 날뛰던 왕은 한참동안을 신하들과 실랑이

를 벌이다가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용상으로 돌아가 풀썩 앉았다. 그는  호동에게도 화가 

났다. 아무리 모후라지만 신성한 의식이 거행되는 자리에 나타난 왕비에게 뭔가 한마디라도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동은 무표정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있다. 그모습은 묵시

(默示)적으로 왕비의 말에 동의 하는 것으로 왕에게 비추어 졌다. 그는 호동을 바라보며 말

했다.

"왕자! 왕비를 쫓아내고 관모와 성물을 다시 손에 들도록 하라. 중요한 전쟁을 눈앞에 두고 

이 무슨 해괴한 짓이란 말인가 . 동명성왕께서 통탄할  일이로다.. .."

호동은 왕의 말을 듣자 모후를 일으켜 세운다음 모친의 목과 무릎밑에 양팔을 넣어 번쩍 들

고서 정전밖으로 나갔다. 관모와 성물(聖物)은  그대로 바닥에 팽개쳐져 있었다.   신하들은 

어색한 자리에서 왕자가 옳게 처신한것이라고 생각했다. 관모와 관물을 손에 먼저 들었다면 

왕비가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자리를 피한후 다시 써도 하등 문제 될것이 없기 때

문이다. 그러나 왕은 달랐다. 관모와  성물이 우선이어야 했다. 그것을  팽개쳐 둔체 모후를 

안고 나가는 모습은 그를 몹시도 불쾌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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