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9)

4부 왕(王)(1)

고구려(高句麗)의 현왕(現王)은

즉위하자마자 거병(擧兵)하여 개국(開國)이래 숙적 부여(夫餘)의 대소 30성을

탈취하여 멸망직전까지 몰아갔다.  부여는 수치스럽게도 후연(後燕)에 머리를 

조아리며 원조를 구하여 멸망은 모면했으나 이미 위신(威信)과 국세(國勢)는

땅에 떨어져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또한 고구려가 내심 가장 두려워 하던 강국 백제(百濟)의 북진을 한수 이북의

싸움에서 격파(擊破)하여 좌절시켰다.

그리고 거란과 동예(東濊) ,옥저(沃沮)도 단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크고 작은 전투에서 타격을 입히고 상당수의 성들과 마을들을 빼앗았다..

백성들과 신하들은 왕을 동명성왕(東明聖王)의 현신이자 무신 치우(蚩尤)의 

아들이라고 칭송했다. 

왕은 이러한 자신의 업적에 스스로 강한 자부심에 가졌다 .태자로 책봉될 때

한미한 지방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왕계로부터 핏줄이 멀다는 이유로 귀족들과 

왕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경험한 그였기에 그 자랑스러움은 더 크고 깊은 것이었다.

그리고 말갈.. 항상 이동하는 유목민족의 특성상  중심지가 없는 족속이라

복속시키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그들을 자신의 힘으로 절반이상 굴복

시켰다. 그때 왕의 성망(盛望)은 절정에 달했다.  백성들은 우리의 대왕은 이 세상

끝까지 모든 땅을 우리고구려의 것으로 만들어 주실분 이라고 흠모했다.. 

시골촌놈이라고 은근히 자신을 멸시하던 5부의 귀족들도 자신의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고 자신을 두려워 했다.. 개국이래 왕의 권력을 

제한해오던 귀족회의도 힘을 잃어갔다. 

낙랑국. 환국(桓國)의 원수. 환국의 적자 조선(朝鮮)을 망하게 한 이민족의 국가.

속해있던 국가야 어떻튼 환인(桓因)천제(天帝)를 믿는 예(濊)와 맥(貊)족 

계열사람들이 가장  증오하던 나라였다. 

고구려가 국경을 가장 넓게  접하고 있고 또 수도 국내성에서

가장 거리가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적국이면서도  이 나라와 오랫동안 

큰 분쟁 없이 지낸 것은 국가의 태생적 한계(식민국가)때문에 내부 분란이 잦고 

국세가 약해서 그냥 놔둬도 고구려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낙랑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의 강적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중 하나였다.

이제 고구려 주변에 이렇다할 강국은 전부 약화됬다.. 왕은 지금이야말로 

낙랑을 멸망 시킬 때라고 생각했다. 낙랑을 없애고 요동남부의 

풍요로운 평야지대를 손에 넣은 다음 거란과 부여를 완전히 정복(征服)할 

생각이었다. 또한 백성들에게 환인의 원수라고 하여 증오의 대상인 국가를

멸망시킴으로써 환심을 살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었다. 물론 지배층

은 환인이나 조선에 대해 아무런 애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왕은 정예병력을 이끌고 낙랑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생존을 건 전쟁 

의 의미보다 마치 전리품을 위한 약탈의 성격이 짙었다.  누구도 고구려의 

승리와 낙랑의 멸망을 의심하지 않았다.

압수를 따라서 남하하여 진군한지 얼마 안돼 낙랑국은 7만오천의 병력으로 

야지(野地)에서 고구려군에 도전해 왔다.. 보기에도 엉성한 대열을 갖춘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아녀자들 무리같은 낙랑군은 5만의 고구려군에게 한나절만에 완전히 

격파됬다. 싸우다 패해 도망간자는 드물었고 전투가 개시되기도 전에 도망간 

자가 훨씬 많았다. 낙랑 군 7만 오천 을 무찔렀는데도 얻은 적의 머리수는  1만 

이하에 불과 했다..

낙랑은 압수중류의 고구려와의 국경지방에 잘  정비된 거성이 많았다. 이  때문에 낙랑군이 

이 성들을 거점(據點)으로 지연전으로 나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것이라고   걱정했던 왕은  어리석게 야지(野地)에서 고구려 군에 도전한 

낙랑군을 보고  실소를 터트렸다. 낙랑군의 전투방식을 보니 고구려군의 

소년전사들 집단 보다 못해보였다. 수많은 야수(野獸)같은 적들에게 단련된 

고구려군 에게 비할바 아니었다.  이따위 군대가 아무리 큰 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큰 위협은 될 것 같지 않았다. 왕은 중간의 적의 성들은 

무시하고 바로 전군을 이끌고 수도로 쳐들어갔다. 예상대로 뒤에 남겨진 

낙랑의 성들은 보급선을 공격할 생각도 하지 않고 성에 틀여 박혀 아무런 전투 

행동도하지 않았다.

고구려군이 수도에 접근하자 낙랑왕이 근위대와 몇몇 신하들을 이끌고 

도망쳤다는 정찰대의 첩보가 전해졌다. 왕은 2천에서 3천명정도의 4개 

별동대(別動隊)를 구성해서 낙랑왕이 도주할것으로 예측되는 지점으로 파견했다. 

적지에 들어와서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병법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왕이나 고구려군은 자신이 있었다. 수도에 접근하는 동안 고구려군에

정면대전은 아니더라도 교란작전을 펴는 낙랑군 부대는 전혀 찾아 볼수 없었다. 

낙랑의 알려진 강력한 군단은 이제 압수이남의 대백제 전선에 있는 군단과 

요하 하류의 거란의 침략에 대비해 주둔하고 있던 군단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도로부터 너무 멀었다 아무리 빨라도 7일은 걸려야 했으므로 

고구려군은 그사이 낙랑왕을 잡아 죽이거나 수도를 함락시켜 전쟁을 종결

시키고자 했다. 낙랑왕의 위치가 확인되면 전군을 이끌고 추격할 생각으로 

고구려군은 상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별동대의 보고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수도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길목의 조그만 산성에서 낙랑왕을 

포착했다는 별동대의 보고가 들어왔다. 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3만오천(원래 원정군 총병력은 5만이나 4개지역으로 출동한 별동대 

병력을 뺀 전부)의 본대병력중 2만오천을 이끌고 산성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별동대의 보고에 의하면 낙랑왕을 호위하는 근위대와

산성의 수비병은 합해야 5천 내외라고 했다. 2만오천이면 충분히 격파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1만은 수도를 포위하고 서쪽에서오는 

낙랑군을 견제하기 위해 남겨두었다.

자명고는 부대를 포진시키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고구려군은 

쳐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자명고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정찰대 

보고에 의하면 이지역에서 하루거리에 있는 지역에 고구려군 본대가 

있다고 한다. 그들이 지금 산성을 포위하고 있는 별동대와 합류하면 아무리

대궁이 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도저히 승리는 바랄수 없었다. 어떻해서든지

별동대를 본대(本隊)가 도착하기 전에 쳐부 수 어야 만했다. 고구려 군이 

자신의 부대를 우습게 보기를 바랬지만 불행히도 고구려군 별동대 

지휘관은 유능한 장교(將校)인 것 같았다. 이미 다 이겨놓은 전쟁에서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 것 같았다.

자명고가 연구한 창병과 궁수의 연합에 의한 전술은 본질이 방어전술이었다. 

아무리 위력이 강하다고해도 창병과 궁병으로 진지에 대기하고있는 

기마병을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침에 포진하기 시작하여 이미 태양이 

중천에 뜬 한낮이었다 .병사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자명고는 고구려군의 공격을 유도(誘導) 하기 위해 진을 서서히

앞으로 전진 시키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동중에 공격받을 경우 파멸적인

결과가 나올수도 있었지만 진을 조금씩 움직인다면 큰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자명고는 창병(槍兵)을 백보정도 앞으로 진군시키고 좌우언덕에 있던 궁수대를

중앙으로 내려오게 해서 창병 바로 뒤에 붙여서 포진 시켰다.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창병을 100보 전진 시키고 궁병이 그뒤를 따라 포진하게

만들었다. 그런식으로 서서히 진형을 고구려군 참호선을 향해 접근시켜갔다. 

자명고는 자신이 탓던 흑마를 눈에 띠는 백마로 바꿔타고 창병의 선두에 서서

나아갈 때 도 맨먼저 정지상태일때도 창병대열앞에 서서 병사들에게 등을 

보이고 섰다. 그는 낙랑군 중에 유일하게 말탄 사람이었다. 

뒤에 산성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대신들과 왕은 자명고를 정신 

나간 놈이라고 욕을 했다..고구려군의 막강한 철기대진지를 향해 기껏해야 

창병 500과 그리고 더 이해할수 없는 것은 우수꽝스럽게 크기만 큰 활을 

든 궁병을 1500명이나 데리고 접근해가는것이었다. 야전에서 기병과 그런대로

대등하게 싸울수 있는 보병은 창병이라는게 이시대 전술의 기본이었다.. 

창병보다 세배나 궁병이 많은 자명고의 진형은 상식을 벗어난 것

처럼 보였다.. 그것은 고구려군에게도 마찬가지 였다. 자명고의 부대가 

언덕에서 내려와 서서히 평지에 들어서자 고구려군의 진지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놈들. 불쌍한 놈들이라고....

자명고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진형을 서서히 전진시켰다. 그의 병사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었지만 

그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된 훈련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정연한 진형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자신들을 귀찮게 하던 짜증나는 지휘관인 자명고도 

막상 두려운 전장터에 들어서자 믿음직해 보였다. 그만큼 그 동안의 

훈련이나 생활이 모범적이었던 탓이었다. 

고구려군 지휘관은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언덕 위에서 자명고의 부대가

대기하고 있었을때는 낙랑군의 전모가 불명확하여 안심이 되지 않는점이 

있었지만 낙랑군이 평지로 나오자 기껏 궁병과 창병 2천정도인 것을 보고

한번에 쳐부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전하가 오기전에 적군의 반수를 쳐부순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일인가. 혹시 모른다. 자신의 부대가 낙랑군을 신나게 

쳐부수는 장면을 왕이 도중에 도착하여 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군 철기대가 돌진하면 갑주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궁병과 창병정도는 

아이팔을 비틀 듯 쉽게 쳐부술수 있을 것이다.

그는 유혹에 졌다. 고구려군 지휘관은 부대에 공격대기 명령을 내렸다. 

전사들은 말을 타고 소속부대별로 돌격예비대열을 이루기 위해 진지를 빠져

나갔다.

고구려군 진형이 갑자기 부산해지면서 기병들이 진지앞으로 나와 대열을 

이루는 모습이 자명고와 낙랑군의 눈에도 보였다. 낙랑병사들은 불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무서운 흑색갑옷으로 온몸과 말까지 감싼 철기대가 대열을

갖추면서 자신들을 노려보는 모습은 공포스럽기 그지 없었다. 자신들이 

가진것이라곤 무명천의 군복한벌과 창한자루 활하나 뿐이었다.

자명고는 진형을 정지시키고 말을 몰아 진형을 돌아다니면서 사기를 

높히기 위해 큰소리로 떠들었다. 훈련대로만 하라. 나를 믿어라. 우리에게

물러날곳은 없다. 우리가 지면 전하도 무사하지 못하고 전하가 무사하지

못하면 이 나라도 그것으로 멸망하게 될것이라고 . 이나라가 멸망하면.

우리의 아리따운 누이와 사랑하는 어머니들은 적의노리개가 돼고 우리의 

형들과  아버지들은 죽는그날까지 하루 한끼의 죽만 먹으며 소처럼 . 말처럼

적의 자식들을 배불리먹이기 위한 곡식을 키우기 위해 일해야 될것이라고..

그리고 어느날 죽어 그 시체는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들개의

먹이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스스로도 잘한다고

자조하듯이 마음속에서 비웃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말이 병사들에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명고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함성을 질러라.... 함성을..이길수 있다. 우리만큼

더 훈련된 병사들은 이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훈련해온 그 날들을

헤어보라. 밤에 뜬 별보다도 많은 날들이었다. 나를 믿고 너희들 자신을 믿어라

이길수 있다. 함성을 질러라..

.자명고 혼자 고함을 지르자 몇 명이 따라서 고함을 질렀으며 순식간에

부대전체가 천지를 뒤흔들듯한 소리로 함성을 질러댔다..

고구려군은 돌격대열을 갖추었다. 100열 종대로 30열까지 갖추었다. 정확히 

철기대2000 경장기병 1000명이었다. 철기대가 먼저 돌진하고 경기병이 

따라서 돌입할 예정이었다.

자명고는 병사들의 함성소리를 들으며 처음처럼 대열의 맨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곤 양손에 흑기와 백기를 들었다. 흑기는 사격.백기는 화살을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그는 평온했다. 이제 와서 이세상과 이 나라에 미련을 가질만한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조카와 삼촌을 오랫동안 묵묵히 돌봤으며 

군대에서도 성실하게 모든 일을 해왔다. 지금 이순간 마음에도 없는 말을하며 

병사들을 격려 하는 그순간까지도..

이 나라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어린시절 자신의 마을을 약탈한 군대를 

보낸 국가. 문수를 죽인 나라. 그리고...그 여리고 사랑스러웠던 두여인 

연희와 옥정을 노예로 팔아치운 망할놈의 나라. 뇌물과 허위의식이 판치는 

인간들이 가득차 그를 괴롭히고 조롱했던 나라였다. 자신의 섬세한 감성을 견딜수

없었던 그는 스스로 감성을 말살하였고 그를 지탱한 것은 오로지 이성뿐이었다.

이성의 명령에 따라 그는 행동했다. 해야될 일을 했을 뿐이었다. 무엇이 해야될일이고

무엇이 하지 말아야 될일이지 그는 정확한 기준을 세울수 없었지만 그는 해왔다.

이성이 명령하는 바른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그러나 이젠 이성도 감성도 욕망도 통하지 않는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고구려군이 돌진하는 모습을 무표정 하게 바라보며 그는 속으로 외쳤다 .

어서..어서 와서..나를 죽여다오... 어서어서...

고구려 군은 처음 대열을 갖추고 돌진하다가 가속이 붙고 낙랑군 진형에 

가까워 오자 한 덩어리로 뭉쳐서 돌격하기 시작했다. 적이 사정거리내로 

들어오자 자명고는 백기를 들었다. 병사들은 과장된 모습으로 때론 겁에 

질려 떠는 모습으로 화살을 활에 대고 시위를 당겼고 창병은 땅에 닿았던 

창을 어깨 높이까지 들었다. 수도 없이 연습했던일이라 고구려군의 기마대의 

이동속도, 화살의 이동시간 과 떨어지는 지점을 정확히 가늠하여

활을 겨냥했다. 겨냥을 마치자 상당수 병사들은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생각

나지 않았다.

자명고는 백기를 내리고 흑기를 들었고 그의 등뒤로 수많은 화살이 해를 가리며 하늘을

향해 쏟아져 올라갔다.

-4부 왕(1)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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