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6 나른한 오후(2)
그렇게 엎드린 채, 등을 보인지 대략 10분 정도 지났을까.
근육을 주무르기를 멈춘 노예가 입을 열었다.
“혹시 더 주물러 드릴 데가 있을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이제 모래 발라서 올리브 기름 닦아드리겠습니다.”
노예는 내 등에 흰 모래 같은 걸 잔뜩 끼얹고는 구석구석 펴발랐다.
그러고는 무언가 호미 비슷한 도구를 꺼내 모래와 함께 올리브 오일을 쓸어내렸다.
사각사각거리며 부드럽게 살을 훑는 그 소리가, 이유는 몰라도 정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듯 했다.
2세기의 ASMR이라 평해도 충분할 정도였다.
아무튼 이후 한 번 더 몸을 뒤집어 같은 행위를 반복하자, 온 몸의 오일과 모래는 아예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그 흰 모래가 일종의 수건 역할을 해서 기름을 흡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끝났습니다! 마사지 받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손님.”
대리석 테이블에서 주춤거리며 일어나, 허리춤에 수건을 둘렀다. 피부에 닿는 천의 촉감이 유난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난생 처음으로 오일 마사지를 받아봐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깨끗하고 상쾌해진 느낌이 들어 여러모로 기분이 들뜨는 듯 하였다.
역시 코페시가 그렇게 영업질을 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정도 서비스면 영업질을 해볼만 하지.
“그럼 즐거운 오후되세요!”
마사지실을 나서자 노예의 인사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어째서인지 21세기 서비스직 특유의 말투와 겹쳐져 들리는 듯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
온탕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황동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이, 욕탕 안의 사람들을 덥히며 공기 중으로 김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수도꼭지의 형태는 놀랍게도 현대의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당장 저걸 떼어다가 21세기 목욕탕에 갖다놓아도 위화감을 느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근대의 산물이라 여겨지는 많은 것들은, 이미 이 고대 사회에 기초적인 형태로나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군의관들은 배를 관통한 상처를 치료할 능력이 있으며, 목욕탕에서는 온수와 냉수가 뿜어져 나오고, 대로와 건물은 견고한 콘크리트로 지어져 그 위용을 뽐낸다.
하지만 이 위대한 제국은 300년 뒤에 파멸할 운명이다.
이런 영광을 되찾는 데에는 천 년 가량의 시간이 걸릴 테고.
로마가 그리 폭삭 망해버리지 않았다면, 그 천 년의 시간을 문명의 수복에 쓸 필요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21세기의 인류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까.
“아니, 그 사이에 좆 꼴리는 걸 못참고 또 뺐어?”
하지만 온수에 잠긴 채 평온히 진행되는 사색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훼방을 놓은 탓이다.
“뭔데? 마사지 노예한테 대딸이라도 받은 거야?”
물밑에서 내 자지를 만지작거리던 코페시가 날 추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무를 시도해 보아도 발기가 될 기색이 없으니 이러는 것이겠지.
문제는 그 추궁이 심히 정확해 뭐라 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딸을 받아버린 건 명백한 사실이었으니.
“그냥 좀 참았으면 안됐어? 응?”
어떻게 바로 맞춰버린 거지.
이런 일이 꽤나 자주 일어나는 편인가? 마사지 받다가 갑자기 꼴려서 대딸까지 가버리는 게?
하긴, 여긴 로마니까. 충분히 가능해보이긴 한다.
이런 씨발.
약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해서, 욕탕의 바닥을 보며 멍을 때렸다.
큼직한 모자이크 조각들로 이루어진 푸른 바닥을 보면서.
탈의실 바닥과는 달리 제대로 된 그림을 묘사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나름 멋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온탕 바닥의 정중앙에는 황동제 프레임으로 고정된 자그마한 수정이 박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신 좀 차리고, 들어봐. 내 얼굴 보면서.”
코페시는 양 손으로 내 뺨을 압박하듯 붙잡아 서로 얼굴을 마주보게 돌려놓았다.
“정액 좀 뺐다고 뭐라 하는 게 아니잖아. 노예로 성욕 푸는 거 가지고 깐깐하게 뭐라 할 생각은 없어.”
그러고는 매우 진지하며, 한없이 가라앉은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해줘. 내가 부담스러운 거야? 나랑 떡칠 때 아픈 데가 있어? 아니면-“
코페시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성행위를 기피한다고 여기고 괜스레 불안해했을 뿐.
하지만 이건 심각한 오해다.
난 그냥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딸을 요청해버렸을 뿐이라고.
“그런 게 아니고, 그냥 갑자기 꼴려서 그랬다고. 제모할 때 발기를 시키는데 그것 때문에 좀 그랬나 봐. 마사지 오일이 좀 질척거리기도 하고, 아무튼 그랬어. 뭐 문제있는 거 아니야.”
이 상황은 흡사 마시멜로 실험.
실험자들은 아이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주고서, 그걸 5분 동안 먹지 않는다면 두 개를 준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이후 그 애들의 인생을 추적해본 결과, 실험자들은 욕망을 제어한 아이는 성공했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성욕을 참고 코페시와 목욕을 한 뒤 격렬하게 떡을 쳤다면, 이런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겠지. 내 욕구도 나름 해소가 되고 말이다.
하지만 마시멜로 실험은 유사실험이었다. 가족의 재산이라는 변인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엉터리 실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시멜로의 효용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5분 전 마시멜로 하나를 먹어 생긴 효용이 공기에 닿아 눅눅해진 마시멜로 2개를 먹어 생긴 효용보다 더 많았을지 누가 아냐고.
이 상황도 마찬가지다.
휴식의 측면에 있어서는 대딸이 떡보다 낫다.
“…정말?”
하지만 코페시는 내 진실된 증언에도 믿는 기색을 보이질 않았다.
여전히 약간 불안한 눈길로, 날 바라보고 있을 뿐.
“아니, 마음이 식은 게 아니라고. 그냥… 에라이.”
내 수치심과 코페시의 관계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질문 자체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니.
“노예랑 그런 걸 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마사지 대딸 같은 거!”
그제서야, 코페시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뭐, 취향이 그렇다면야.”
솔직히 쪽팔리긴 했지만 후회는 없다.
이런 사소한 오해가 쌓여서 큰 불화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미리미리 싹을 잘라놓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는 거다.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 없이.
“그럼 이제 뭐하고 싶어? 마사지 대딸 말고.”
“글쎄… 낮잠?”
내 답변에 코페시는 끅끅거리며 웃었다.
잠시동안 그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 집 가면 낮잠 푹 자자.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서로 껴앉고 자다가, 여유롭게 일어나서 저녁을 먹는 거야.”
코페시의 말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일 모레에는 전차경기장에도 데려다 줄게. 그때가 메가레시아 마지막 날이거든. 전차경주도 재밌지만, 춤추는 남사제들의 행렬도 나름 볼 거리니까. 물론 인파를 피하려면 조금 일찍 나가서 자리를 잡아야 할 테니, 전날에는 조금 일찍 자는 게 좋겠지.”
그녀의 말투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탓에, 약간 들뜬 듯 느껴졌다.
여기 사람들에게 있어 축제에 가는 건 일종의 데이트 코스로도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근데 이건 21세기에도 어느 정도는 그런 편이었으니.
“원한다면, 우리 집에 마사지용 테이블 같은 것도 들여놓을 수 있어. 잡일 노예들 중에 안마 잘하는 애가 하나 있거든. 걔한테 마사지 받으면서 나한테 대딸 받을 수도 있다고.”
뭔가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버린 것 같다.
이건 너무 부담스러운데.
코페시가 유명 검투사고, 돈을 많이 벌어놓았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그, 고맙긴 한데, 너무 많은 걸 해주는 거 아냐? 나한테 이 정도까지-”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코페시는 내게 가까이 다가온 채,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해줄 수 있지. 난 돈도 많고, 시간도 많으니까.”
그녀의 손등이 내 목덜미를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그 미묘한 쾌감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널 사랑하니까.”
순간 시간이 느려진 듯 했고, 한 번의 숨결조차 민감하게 느껴졌다.
이 맞닿은 살결에 주의를 빼앗긴 탓일까.
코페시와 나 사이의 공기에 무언가가 흐르는 듯 하였다.
그저 온탕의 증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너는 어때?”
청록색 눈의 미녀는 입술을 움직였다.
“날 사랑해?”
***
목욕탕에서 돌아온 그날은, 약속한 대로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그래서인지 저녁은 조금밖에 못 먹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지중해 햇살 아래에서 누리는 여유로움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 날도 대략 비슷하게 흘러갔다.
한 침대에서 몸을 섞어대다가 어느새 곯아떨어지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서는 일찍 목욕탕에서 씻으며
물론 그때는 처형식에 안 나갔으니, 조금 더 관광을 하듯 목욕탕 곳곳을 돌아다닌 편이었지만.
꽤나 큰 규모의 정원 같은 것도 있었고, 모래가 깔린 반원형의 거대한 운동장과 도서관도 있었다.
목욕탕 안에 욕탕만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한 행위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느긋하게 걸어다니며 산책했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애인과 꽁냥거리는 게 재미가 없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게으르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하루를 더 보냈다.
그리하여 지금은 4월 10일.
메가레시아 마지막 날의 새벽이 밝은 것이다.
“주, 주인님? 아무래도 일어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심히 곤란한 투로 우릴 깨우는 노예의 말과 함께.
“흐아....”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아직 해가 제대로 뜨지도 않아 남색으로 물들어있는 하늘이 보였다.
이런 꼭두새벽에 대체 왜 우릴 깨운 거지?
좀 일찍 나가겠다고는 일러 놓았지만, 이런 새벽에 깨우라 한 적은 없었는데?
“우으… 5분만 더…”
코페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일어나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 주인님.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예는 당황해 하면서도, 코페시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리도 단호하게 나서는 이유가 슬슬 궁금해질려던 찰나,
“키벨레의 남사제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노예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