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로마와 쯔바이핸더 검객-60화 (61/67)

EP.60 목욕탕(3)

목욕탕의 규모에 걸맞게 탈의실 역시 거대했다.

거의 웬만한 연회장 정도의 크기에, 동심원 모양으로 배열된 목재 선반이 그 공간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선반에 문이 달려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여자 노예들이 각 열마다 서서 그걸 일일히 감시한다는 것이었다.

동화 한 닢짜리 서비스니까 뭐라 할 수야 없겠지만, 아무래도 신뢰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저래도 괜찮을까.

그래도 코페시가 따로 주의를 주지는 않았으니 별 일이 생기진 않겠지. 일단은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다.

그리 생각하며 옷을 벗어, 선반에 잘 개어놓았다. 속옷까지 싹 다 벗어서.

혹시 여긴 속옷을 입고 목욕하는 게 관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하나 잠시 관찰을 해보았는데, 거의 모두가 완전한 알몸으로 탈의실을 나가는 것을 보면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수한 여자들 앞에서 알몸을 노출해야 한다니. 이런 건 좀 많이 부담스러운데.

당장 저 옷 지키는 여자 노예의 존재만으로도 내 정신은 심히 혼란해진 상태다. 어째서인지 날 바라보는 것 같다고.

그런데 잠깐만, 시선이 하나가 아닌 것 같은데.

“…뭔?”

뭔가 느낌이 이상해 뒤를 돌아보자, 수상한 눈빛으로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 보추새끼들이 보였다.

역시 다 나보다 키가 작았다. 그러면서도 얼굴이 전반적으로 어리게 보이는 편이었기에, 다들 청소년 상태에서 성장이 멈추어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하반신도 마찬가지였다.

“…뭘 봐?”

약간 강하게 쏘아붙이니 다들 알아서 시선을 돌렸다.

소추새끼들 같으니. 어디서 뭘 훔쳐보고 있어.

그나저나 늙은 사람이 보이질 않는 걸 보면, 이 세상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전반적으로 바닥을 치는 모양이다.

역시 고대는 고대인 것일까.

아무튼 그 상태로 다시 출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노예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애쓰면서, 즉 바닥을 쳐다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바닥이 꽤나 멋졌다.

거대한 원형의 모자이크로 장식된 바닥은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았으니까.

목욕탕에 걸맞게 물을 주제로 삼아 그린 것인지, 모자이크화에는 둥근 중심의 하늘을 중심으로 바다를 누비는 여러 인간들이 그려져 있었다.

대략 다섯 척의 배들 중에는, 황금 월계관을 쓴 군주인지 공주인지 모를 사람이 타고 있는 것도 있었다. 회오리바람과 거친 파도를 정면으로 맞으며, 물보라를 막기 위해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반면 배 위에 그려진 또다른 여인은, 선두에서 반지 낀 손가락을 뻗어 앞을 가리키고 있었다. 후드가 달린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여인이었다.

마치 폭풍우를 뚫고 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듯, 결연한 자세였다.

다른 선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너무 사실적으로 그렸다간 정신이 없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그걸 피하기 위해 생략한 것이겠지. 배에 비해서 인물들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게 그려져 있기도 하고.

뭘 표현한 것일까. 신화 속 한 장면?

내가 아는 신화 중에 이런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내용은 모르겠지만, 모자이크화의 퀄리티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다.

그랬기에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정도는 되었다.

시선을 왼편으로 옮기자 뾰족한 선두를 지닌 또다른 배와 인어가 보였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인어가 흰 피부의 남자였다는 것이고, 또한 선체 밖으로 몸을 내민 선원들이 그을린 피부의 여자였다는 것이다.

남자 인어를 따로 뭐라 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트리… 트리톤이라 하던가?

아마 맞을 것이다. 세부적인 차이점이야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물고기 하반신 달린 사람이란 점은 분명하니까. 하반신이 물고기면 그게 당연히 인어지.

어쨌든, 이 세상은 여자가 주로 선원일도 맡기 때문인지 인어의 대표적인 이미지도 남자로 바뀐 모양이다.

원래 인어의 역할은 선원들을 유혹하는 거니까, 나름 합당한 현상이긴 하지.

노래로 여자들을 유혹해서 심해로 끌고 들어간 다음 인육을 뜯어먹는 보추인어들이라.

내가 아는 인어는 이렇지 않아!

하여간 아마존과 가르가레이의 관계도 그렇고, 성별 하나만 바꿔도 매력적인 신화 속 존재가 무슨 광기에 찌든 크툴루적 무언가로 변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은 것 같다.

이런 게 현실에 없길 바랄 뿐이지.

근데 아마 없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흉악한 게 허구한 날 돌아다니는 바다라면 해상 무역은 심각하게 정체되었을 것이고, 이탈리아 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중해 건너편 지역에 대한 지배력은 금방 상실되었을 테니까.

당장 눈앞에 식인인어가 돌아다니는데 바다 건너 정복하러 간다 하면, 백이면 백 병사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순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는 지중해 주위를 다 처먹지도 못했을 것이고 부유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 하다못해 탈의실조차 이렇게 호화롭게 설계하는 돈지랄을 해댈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나라니까, 멀쩡히 굴러가는 것 이상으로 잘 굴러간다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니 바다괴물은 이 세상에서도 그저 미신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그런 애들 때려잡는 결전병기라도 가지고 있거나 뭐 그러겠지. 발리스타 몇 방 쏴대면 인어고 크라켄이고 때려잡을 수는 있을 테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커튼으로 덮인 탈의실 출입구 앞에 섰다.

이 앞으로 나가면 아마 코페시와 이페이아, 테스티아가 알몸을 드러낸 채 날 기다리고 있겠지. 그 탄탄한 허벅지와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채로.

그걸 본다면 난 분명 발기해 버리고야 말 것이다.

그것도 염병할 공공장소에서.

…이게 맞나?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좋다 해서 온 목욕탕이다.

그저 민망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제 와서 무르는 것은 민폐와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세 명의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 될 테니까.

그리고 난 그런 헛짓을 일삼을 정도로 양심없는 인간이 아니다.

-휙.

커튼을 지나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코페시는 기둥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서 있었다.

청록색의 눈동자를 가늘게 뜬 채, 하품을 하면서.

매끄러운 갈색 피부는 오후의 따스한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물방울 모양의 탄탄한 가슴과 분홍빛 유두, 11자의 복근이 마치 대리석상의 그것마냥 빛나고 있었다.

실로 여유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오.”

날 기다리던 그녀가, 감탄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어째 시선이 하반신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지만 아마 기분탓이겠지.

“독보적이네?”

기분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자를 다루는 것에 능숙한 소위 ‘인싸’들이었다면 분명 능숙한 섹드립으로 받아쳤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여자를 다루는 것보다는, 검을 여자처럼 소중히 다루는 것에 더 익숙한 사람이었기에.

따라서 난 대신 코페시의 주의를 돌렸다.

“근데 왜 너만 있어?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안쪽 뜰로 운동하러 갔어. 단순히 운동만 하고 올 지는 잘 모르겠지만.”

테스티아와 이페이아가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근손실을 막으러 갔구만. 역시 강인한 스파르타인과 켈트인이다 이건가.

2세기에도 존재하는 헬창 문화라니. 놀랍다.

그나저나 대체 왜 목욕탕 안에 운동장도 있는 거지. 운동해서 땀 흘린 다음에 목욕을 하면 2배로 기분이 좋으니 그걸 노린 건가?

“근데 우리도 그냥 목욕만 할 것 같지는 않잖아, 안 그래?”

그런데 내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페시의 음담패설이 도저히 멈추지를 않았다.

이페이아와는 느낌이 달랐다. 대놓고 직설적이진 않았지만, 중의적인 단어의 사용으로 내 뇌의 음란함을 의도적으로 자극시키는 것이 참으로 대응하기가 애매했다.

정신이 반자동적으로 여러 불건전한 상상을 가동시키게 된다고도 할 수가 있겠지.

이건 좋지가 않다.

이렇게 가다간…

“섰네?”

발기를 해버리고야 말 테니까.

“…응.”

이건 원래 대답하는 질문은 아닌 듯 했지만 그런 걸 생각하기엔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다.

여자 앞에서 자연스레 알몸으로 있는 법도 아직 터득을 못했는데, 이 미친 자지는 풀발을 해서 아예 귀두를 드러내버리고 말았으니까.

이건 차라리 악몽에 가깝다.

“이리로 와봐.”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잠자코 바라보던 코페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상태로 우두커니 서있는 건 영 아닌 것 같다.

물론 목욕탕에서 발기 상태로 있는 것이 로마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행동일 수도 있다. 상식이란 건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 기분이 거지 같아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역시, 뜨겁네…”

복도에서 재빨리 움직여 코페시에게 가까이 가니, 그녀가 그리 말했다.

좆대를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옷 갈아입으면서 나 생각했던 거야?”

처음에는 마치 간지럽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두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위아래로 왕복시키며 은근히 애무하기 시작했다.

분위기와 어우러진 자극에 자연히 쿠퍼액이 흘러나와 귀두를, 더 나아가 코페시의 손가락을 적셨다.

그녀는 흥분되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하고 싶어?”

그러며, 말을 이었다.

“떡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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