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7 오랜 친구
처형식을 끝내고 철창문을 지나 다시 대기실로 내려오니, 천장 위에서 야수가 으르렁대는 소리가 났다.
다음 처형식에서는 그 유명한 사자에 의한 식형을 집행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호랑이에 의한 식형일 수도 있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대충 그르릉거리는 고양잇과 맹수 특유의 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봤지만, 그거 가지고 짐승의 종류를 판단하기엔 내 지식이 너무나도 얕았다.
그나저나 승강기 위에 있는 다락문이 느닷없이 박살나는 건 아니겠지. 아니길 바란다.
난 사람은 족쳐본 적이 있지만 짐승은 잡아본 적이 없으니까.
쯔바이핸더가 제아무리 강력하다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그걸 든 사람이 충분히 강할 때의 이야기다.
내 그릇은 쯔바이핸더의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가 않다. 난 아직 쯔바이핸더로는 프리-스콜라의 자격도 따지 못한 검술 뉴비란 말이다.
미쳐날뛰는 사자를 상대할 자신은 없다.
-사자가!! 물어뜯었습니다!! 다리가 뜯겨나갔습니다아아!!
살점과 뼈가 찢기며 박살나는 소음과 함께, 사회자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짐승의 정체는 사자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 위에서 죽어나가는 사형수들의 몰골은 어떨까.
분명 육신이 짓이겨지고 뭉게져서, 참혹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겠지.
근데 사실 이게 맞기는 하다.
내가 지나치게 착하고 효율만 중시하는 성격이라, 좆 같은 야만인 새끼들이나 사형수들도 자비로운 방식으로 죽여대서 잊고 있었을 뿐이지.
원래 고통없는 즉사형은 고위층이나 비교적 죄가 적은 사형수에게나 허용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죽는 걸로는 충분한 형벌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저 사형수라 해서 다 같은 사형수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흉악범들에게도 큰 고통을 주지 않고 빠르게 보내주지 않는가. 나한테 창을 꽂았던 야만인 일족도 상황은 비슷했었고.
그런데도 그 망할 게르만 족장은 나보고 온갖 쌍욕은 다 박아넣었단 말이다.
근데 씨발, 대체 내가 뭘 했는데?
머리를 잘라서 발로 차며 놀지도 않았고, 시체의 옷을 벗기거나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다. 코나 귀를 베어간 것도 아니고 눈알을 파내지도 않았다. 심지어 시체에다 좆을 박지도 않았고 시체들을 끌고 가서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친 것도 아니다.
수레바퀴보다 큰 사람을 죄다 죽이라 한 적도 없고,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불을 지르거나 팔다리를 잘라가거나 금품을 탈취하거나 식량을 약탈한 적도 없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군인과 군마를 조금 죽인 것 밖에 없다.
이렇게 도덕적인 전사는 세상에 얼마 되지 않는다.
“약속된 보수입니다. 10데나리우스와 20세스테르티우스, 다 합쳐 60세스테르티우스입니다.”
그리 대기실 탁자에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으니, 노예가 내 앞에 동전들을 내밀었다.
5개짜리 은화탑 2개와 5개짜리 황동화탑 4개가 내 앞에 놓였다.
혹시 그 상태에 이상이 있을까 싶어 동전탑을 분리해 하나하나 직접 살펴보았다.
두 동전 모두, 앞면에는 위엄에 찬 황제의 초상이, 뒷면에는 방사형의 왕관을 쓴 남자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황제의 얼굴은 루킬라와는 그리 닮지 않았으니 아마 마르키아 아우렐리아의 얼굴이겠지.
뒷면의 사내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헬리오스로 추정된다. 방사형 왕관을 쓴 얼굴이 마치 빛나는 태양의 형체를 연상케 했으니까.
그리고 잘려있거나 긁혀나간 주화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주화의 총합은 15데나리우스, 계약서에 적혀있던 금액과 정확히 같았다.
시장이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사악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도의는 지킨 모양이다. 이건 분명 시장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겠지.
내 검에 이어 돈마저 떼먹었다면 칼부림을 일으켰을 테니까.
잡아죽이진 못해도 최소한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패기는 했을 것이다. 아니면 오체불만족으로 신체를 개조하거나.
“예, 정확하네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내 마음은 평온하고 행복했다.
안정된 마음으로 동전들을 가죽 돈주머니로 쓸어담았다. 은화는 좀 작은 주머니에, 황동화는 비교적 큰 주머니에 담고는 끈으로 강하게 매듭을 지어 묶어놓았다.
가죽 주머니를 흔들 때마다 들리는, 짤랑거리는 돈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남은 죄수는 단 세 명!! 단 세 명입니다!! 과연 누구를 먼저 물어뜯을까, 사자 두 마리가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 사회자, 내가 처형식 할 때는 별 말 안했던 것 같은데 이유가 뭘까. 사회자도 정신줄을 놓고 멍하니 관람하느라 자신의 직무를 유기해버린 건가?
한 번 처형식 뛰자마자 별칭을 얻어버린 것도 그렇고, 이 동네 인간들은 확실히 쯔바이핸더 검술에 약하다.
마치 처음 쯔바이핸더 검술을 배울 때의 나와 같이, 그 매혹적인 동작 하나 하나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그럼 전 이제 가보도록 하죠.”
아무튼 그건 그렇고, 난 여기서 더 이상 볼 일이 없다. 남은 것이라고는 내 소지품을 잘 챙겼나 확인하는 작업 뿐.
돈주머니는 갬비슨을 고정하는 허리띠에 잘 묶여 있었고, 처형식 때 입었던 갑옷은 제대로 벗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천으로 잘 닦인 쯔바이핸더가 든 검가방을 들쳐메어 나갈 준비를 했다.
“글라폴레스님?”
그때, 노예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불길하고 음험한 데에다가 왠지 모를 사악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직 반납하실 것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녀의 말이 내 손발에서 식은땀이 흐르게 했다.
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검을, 돌려주셔야 합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로 부정하고픈 진실을.
내 오랜 친구와 진정으로 함께할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제 검은…”
검가방을 풀러 내려놓자 그만 시야가 먹먹해지고야 말았다.
목소리도 잘 나오질 않았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성대가 가득 차, 침착한 어투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난 부상 하나 입지 않았고, 피를 흘리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내 뺨을 타고 흐르는 이 액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제 검은, 잘 관리되고 있는 겁니까? 안전한 장소에 보관되고 있고요?”
나가려다 말고 그대로 멈추어 선 채로, 노예에게 등을 보인 상태로 물었다.
그러자 노예는 답하였다.
“그야 물론이죠. 시장님께서 매우 안전한 장소에 보관 중입니다. 서늘한 곳에 보관할 뿐더러 상태도 나흘마다 점검해서, 녹도 슬지 않고 있고요.”
“그러면, 그러면 안됩니다. 최소한 이틀마다 점검해야 한다고요.”
침을 여러 번 삼키며 애를 쓴 뒤에야, 간신히 말을 내뱉을 수가 있었다.
“나흘에 한 번만 점검한다는 건, 너무나... 비인간적인 행위가 아닙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와는 어떠한 사적인 연도 없는 공공기관의 노예일 뿐이지만, 마치 공감하는 듯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고 있었다.
아마 그녀 또한 인류 보편의 감정은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겠지.
“검은, 시장님께서 잘 보관해드릴 겁니다.”
이별에 의한 슬픔을.
“그러니 안심하시죠.”
노예는 조곤조곤하지만 분명한 발음으로 그리 말하였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
“…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검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챙겨드는 소리가 들리자, 앞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나갔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그러며 생각한다.
짧은 만남 끝에는 긴 이별이 있겠지. 아마 한동안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헤어져 있는 동안에는, 검을 제외한 무수한 아름다움이 내 정신을 헤집어 놓을 것이고.
검투사 눈나들의 탄탄한 허벅지와 가슴, 매끈한 피부라던가, 장대하고 웅장한 로마식 건축물 같은 것들이 그리할 것이다.
그런 멋지고 환상적인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다 보면, 보이지도 않는 옛 추억은 금세 망각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리기 마련이다.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떨어져 버린다고들 하니까.
그리 수많은 군인들이 군대에서 NTR을 경험하며 고통받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허나 난 그리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아름다움을 즐기면서도 잊지 않는다. 기억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든, 되찾아내고야 말겠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쯔바이핸더에 대한 나의 정당한 소유권은 마치 숙명과도 같아서, 한낱 물질 세계의 간섭으로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에.
물론 당분간은 이전처럼 심각하게 고통스럽진 않을 것이다.
비록 한정된 때이지만, 그래도 나의 검과 분명히 만날 수 있는 날이 존재함을 알기에. 나의 정신은 아주 온전하지는 않아도 이전보다는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성으로 공허를 잠시 억누를 수는 있어도 아예 없애버릴 수는 없으니까.
쯔바이핸더와 내 정신이 물리적으로 해리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버티지 못한 정신은 그만 무너져 버리고야 말 것이다.
닿을 수 없는 희망은 가장 크나큰 절망으로 변하는 법이기에.
그러니, 소드마스터들이여.
오오, 위대한 소드마스터들이여.
내게, 당신들의 제자에게 이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소서.
비록 안면을 통해 그들을 만나진 않았지만, 고서의 구절과 삽화의 숨은 뜻을 통해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니 나 또한 그들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검술의 대가들을 떠올리며, 내 새롭게 얻은 이름을 걸고 맹세하며 다짐했다.
부당하게 잃어버린 것을 반드시 되찾겠노라고.
'나의 쯔바이핸더, 오랜 친구여.'
언젠가 함께 돌아가자.
구속되지 않은 자유의 상태로.
신도 권력도 함부로 간섭하지 못하는, 자유로운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