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로마와 쯔바이핸더 검객-56화 (57/67)

EP.56 콜로세움(3)

오랜만에 쯔바이핸더를 잡아 흥분한 탓이었을까.

제대로 정신을 차려보니, 난 반쯤 무의식적인 상태로 검을 휘두르며 소드마스터 피게레디오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리고 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참수당한 시체로 변해있었고.

따라서 기존의 8명 중 남은 죄수는 4명.

하지만 내게 적극적으로 덤비는 죄수는 아무도 없고, 다들 경기장 구석에서 단검을 겨우 들고 선 채 바들바들 떨어대고 있을 뿐이다.

“흐으음…”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

이런 상황은 그리 좋지가 않다.

물론 여기가 전쟁터였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이건 처형식이란 말이다. 뭔가 굉장히 박진감 넘치고 스릴 있는 상황이 연출되어야 하는데, 이러면 안된다고.

원래 구상대로라면 살아남겠다고 발악하던 죄수들이 내게 온 힘을 다해서 달려들고, 난 그걸 하나하나 처리해나가며 전진하는 그림이 나왔어야 했다. 이런 미친 대학살극이 아니라.

물론,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방패는 다들 하나씩 들고 있었던 야만인들과는 달리, 이 죄수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갑옷도 없어서 그냥 아무데나 때려도 썰려 죽으니까.

거기에 근본적인 무력의 차이도 있다.

게르만들은 이 정도로 키가 작지는 않았을 뿐더러, 그래도 전사라는 이름값을 하는 수준의 근력은 가지고 있었다. 근데 이 죄수새끼들은 키도 쬐만해서는 약자들이나 털어먹는 잡범이란 말이다.

힘의 차이가 너무나 압도적이니 긴장감이 생길래도 생길 수가 없다.

그러니 이렇게 된 이상 전략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내가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는 상황이라면, 평소 쓰지 못하는 기술을 연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후우웅!

검을 거꾸로 뒤집어, 구불거리는 칼날을 양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모르드하우.

칼날이 아니라 폼멜이나 크로스가드로 상대를 찍어 죽이는 기술의 준비자세다.

성공만 한다면 상대는 거의 죽는다고 보면 된다. 특히 쯔바이핸더로 모르드하우를 쓸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저번에 딱 한 번 사람 상대로 써서 반병신을 만들기도 했었고.

다만 그땐 조준이 미숙한 감이 없잖아 있어서, 머리가 아닌 어깨를 노려 빈틈이 생긴 탓에 배에 투창을 맞고 거의 죽어버릴 뻔 했지만.

이게 다 연습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리고 본디 연습은 실전처럼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에게 모르드하우를 먹이면서 연습을 해본다면, 내 실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대련할 때에는 모르드하우를 못 쓰니까.

이 기술을 써서 맞추면 상대가 죽거나 불구가 되는데, 그러면 난 망할 범죄자가 된다고. 기술 연습해보겠다고 인생을 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죽여도 된다.

“후우우…”

검이 허리 오른편에 오게 자세를 잡았다. 우측 가드의 자세였다.

그러며 마치 지친 것처럼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약간 떨구고 나른한 채를 했다.

죄수들이 방심하고 희망을 품도록. 그리고 관객들로 하여금 앞으로 일어날 일에 기대감을 품게 만들도록.

그리 주춤거리며 모여든 죄수들이, 날 향해 적당한 거리 안으로 진입했을 때,

-부웅!

좌측 상단을 향해 검을 거세게 휘둘렀다.

허나 이는 베기 위함이 아니다.

베기의 준비 자세, 탁(Tag)의 형세를 취하기 위함이었을 뿐.

눈알이 휘둥그레지며 물러난 죄수와 군중의 환호성이 느리게 들리고 보였다.

그 조용해진 시공간 속에서, 검의 중량을 느낀다.

그 압도적인 힘을.

“이야-아아아아!!”

-콰아앙!!

내리찍었다.

그러자 죄수는 머리의 절반을 잃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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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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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음과 군중의 환호가 뒤섞이며 정신을 뒤흔드는 가운데, 한때 흉악범이었던 것의 형상이 두 눈에 들어왔다.

모래밭 위에 그득한, 터져나간 두개골 조각과 흩뿌려진 뇌의 파편들. 그리고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 뇌수를 흘리는 시체. 피를 머금은 투명한 젤리 같은 것들이 사방에 즐비했다.

다시 한번,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죄수들이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저딴 비열한 개새끼들이 있나!!

-저 새끼들 죽여!! 싸그리 족쳐!!

그러자 시민들은 살해를 촉구하며 온갖 쌍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뭐,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지.

-띵!

축복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으나,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축복 없이도 모르드하우만으로 다 한 번에 죽일 수 있으니까.

알버 상태의 검을 우측 어깨 위로 올려, 폼탁을 취했다.

그 상태로 팔을 휘저으며 도주하던 죄인을 향해 바짝 따라붙었다.

이번 목표는 머리가 아니다.

달려나가며, 힘차게 도약함과 동시에 강한 힘으로 검을 사선으로 내리쳤다.

-깡!!

정강이뼈가 직격당하자, 사형수의 다리는 직각으로 꺾이며 그대로 쓰러졌다.

살이 찢겨나가며 날카롭게 부러진 뼈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아아아아악!!”

분명 고통스럽겠지.

그러니 잠시 동안은 안식을 줄 필요성이 있다.

-깡!!

머리를 내려치자, 크로스가드가 미간을 관통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알림음이 귓가를 울리며, 검은 핏빛의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죄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도덕적 딜레마의 줄타기를 하던 인간들도 아니고, 그냥 순수한 인간 말종들이니까.

하지만 그런 자들이 또 죽기는 싫은 모양이다.

“오, 오지 마.”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사형수들.

그들은 단말마와 같은 애원을 내뱉었다.

한심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쾅!!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으깨어 죽였다. 수습하기도 곤란해질 정도로, 두개골은 산산조각이 났다.

-띠링!

본디 남을 죽이려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검술이란 그런 것이다.

전쟁터에서의 경험이 그것을 증명한다.

“살려-“

그들이 외치는 단말마는 분명 그들의 희생자들도 외쳤을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애원을 들으며 자신의 잘못을 느끼지 못했기에, 저들은 이곳에서 죽게 되는 것이다.

자신은 타인을 신경쓰지 않지만 타인은 자신을 신경쓰기 바란다니.

저런 새끼들을 위한 자비도, 동정심도 없다.

오직 참격만이 있을 뿐.

-쾅!!

마지막 죄수 역시 죽이자, 또다시 알림음이 들렸다.

8명의 죄인들을 모두 처형하고서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는 상쾌한 편이었다. 혈향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나저나 축복이 강화된 탓인지 아니면 그냥 오랜만에 사람을 썰어봐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손맛이 더 시원시원해진 느낌이다.

모르드하우를 내려칠 때에도, 머리가 깨진다기보다는 터져나가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을 보면 말이지.

그렇다면 다음 단계의 축복은 어떨까.

얼마나 더 강력해질까?

그리 생각하며 관객석을 빙 둘러보았다. 테스티아를 찾아볼려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개개인을 구분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일단은 그냥 온 사방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렇게 하면 테스티아가 어디에 있든 간에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이기야 할 테니까.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테스티아 특유의 호박색 눈동자를 찾아헤멜 무렵,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진 처형식이였습니다! 가히, 환상적인 검술의-“

그때, 누군가 말을 끊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춤추는 검!!

일단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코페시, 테스티아, 이페이아의 목소리와는 다른 고음의 여자 목소리였다.

-춤추는 검이다!!

그 이름모를 관객은 계속해서 외치더니,

-춤추는 검이다아아아!!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러자 잠시 조용해진 관객들은, 곧 그 목소리를 따라서 환호성을 부르짖었다.

-춤추는 검 만세!!

-피레게디오! 피레게디오! 피레게디오!!

-키벨레께 영광 있으라아아!!

-춤추는 검! 춤추는 검!! 춤추는 검!!

누군가는 내 말을 들은 것인지 피레게디오의 이름을 연호했으나, 대다수는 그 ‘춤추는 검’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소리쳤다.

정황을 보았을 때, 내 별칭이 방금 만들어진 것 같은데 말이지.

…보통 별칭이 이렇게 빨리 만들어지나?

그리 생각하며 당황하고 있을 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소 창백한 피부와 퇴폐적인 짙은 눈화장. 그리고 강렬한 눈빛.

첫 번째 열에서 특별히 높게 솟은 관람석, 자주색의 천막 안에 앉아있던 루킬라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심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루킬라가 단순히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일어서서 큰 소리로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나섰다.

황제의 특이한 행동을 감지한 탓일까. 소란스럽던 군중은 어느새 다시 조용해졌다.

콜로세움이 온통 고요해진 가운데, 주위를 둘러본 루킬라가 입을 열었다.

“아주 멋진 검술이었다, 처형인이여. 위대한 이다 신들의 어머니께서도, 그대가 춤추듯 검을 다루며 죄인들을 벌하는 것을 보시면서 분명 감탄을 표하셨을 것이다.”

그러고는 일전 그러했듯, 카랑카랑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크게 외치었다.

“춤추는 검에게 박수를! 그리고 마그나 마르타께 영광 있으라!!”

그러자 시민들은 화답하였다.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로.

-춤추는 검!! 춤추는 검이다아아아!!

-마그나 마르타께 영광 있으라아아!!

-마그나 마르타, 키벨레 여신께 만세!!

시민들은 환호하고 있고, 황제는 직접 칭찬을 건넸다.

게다가 나름 괜찮은 별칭도 얻었다.

춤추는 검이라.

내 검술을 보고서 붙인 모양이다. 춤추는 것과 닮았다 볼 수도 있을 테니까.

좋은 시작이다.

아주, 좋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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