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5 콜로세움(2)
“시민 여러부우운!!”
코르푸의 포효에 이어, 사회자가 특유의 강인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메가레시아, 이 아름다운 축제도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순간을 더더욱 빛나게 즐겨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 모두 아시리라 믿겠습니다!”
시민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메우며 울려퍼졌다. 콜로세움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분명 고막이 터져버리는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큰 소음이었다.
하지만 이 장소에 익숙한 로마인들은 안다.
지금의 콜로세움은, 소음이라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조용한 편에 속하는 상태라는 것을.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는 사실 또한 아실 겁니다!!”
숨을 잔뜩 들이마신 사회자는, 고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먼저 이 즐거운 제전을 선물해주신 여신께 감사를 표하도록 합시다, 프리기아 산맥의 영광된 대모신께 경애를!!”
그러자 의원들은 의례적인 박수로 화답했고, 갈리와 시민들은 진심이 담아 환호성을 질러대었다. 국가사제들은 환호성을 내지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위대한 이다 신들의 어머니를 향해 손이 아플 정도의 박수를 보내주기는 하였다.
그러나 율리아 클리우디아 페르피나에게는, 첫 열에서 보이는 이 상반된 반응이 영 아니꼽게 보였다.
이토록 상반된 반응의 원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대개의 입문식을 요구하는 밀교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키벨레 신앙의 존재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다.
오랜 원로원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핑계는 언제나 같았다.
시민들이 이국 신에 빠져서 전통적인 로마의 신들을 등한시한다면, 결국 국가 질서와 안보를 무너뜨리고야 말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카피톨리노의 세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지 않네 뭐네 하며 여러모로 돌려 말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국가보안에 대한 음모론으로 빠지는 것이다.
“위대한 이다 신들의 어머니에게 만세를!!”
박수와 함께 경기장 전체를 울리는 장대한 연설을 들으며 페르피나는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 모든 음모론적 선동에도 불구하고, 마그나 마르타의 신앙이 단 한 번도 타격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강대한 대모신의 권능과, 갈리의 뛰어난 예언 능력에 대해서.
카르타고와의 두 번째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다급해진 국가사제들은 패배를 피하기 위해 원로원에게 신들의 어머니를 로마로 데려올 것을 명했다. 여신을 섬기는 남사제들과 함께 말이다.
의원들이 마지못해 따랐던 그 명령은 효과가 있었다.
새로운 신앙은 로마인들을 하나로 묶었고, 사제들의 예지는 불투명한 전장에서의 판단에 중대한 도움을 주었다.
그랬기에 키벨레의 신상은 정확히 384년 전 4월 10일에 승리의 신전에 안치되었다.
그것은 또한 이 제전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그나 마르타-키벨레에게 경배를!!”
강대한 대모신이 이다 산을 떠나 팔라티노 언덕에 도착하기까지 정확히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기에 일주일 간 축제가 지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여신의 축일을 더럽히는, 추악한 범죄자들에게 죽음을!!”
페르피나의 눈에 주춤거리며 반쯤 기어나오는 죄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온 몸이 멍투성이에, 때가 탄 그들은 너저분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유일한 무장이라곤 볼폼없는 단검 하나 뿐이다.
희생양이 나왔으니, 이제 처형인이 나와야 할 차례겠지.
페르피나는 그리 생각하며 경기장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 남전사의 자태는 과연 어떨까.
전단지에 나온 것처럼 야만적일까? 아니면 시리아와 아시아의 미인들처럼 짙은 눈을 빛내는 매력적인 사내일까?
그녀의 심장이 실로 오랜만에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이국의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만큼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는 법이다.
“허나 기뻐하십시오, 시민 여러분!! 그런 자들의 피를, 여신께서 정화하시리라! 압도적인 정의의 힘으로!!”
순간, 경기장 바닥의 모래 일부가 밑으로 꺼지며 사라졌다. 바닥에 설치되어 있던 다락문이 열린 탓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로마의 시민들이여! 오늘의 첫 번째 처형인을 소개해드리지요!!”
지하실에서부터, 무거운 물체가 둔중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람을 실은 나무 판자였다.
네 명의 노예는 박자에 맞추어 도르래의 줄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방에서 온 남전사, 사람보다 큰 검을 다루는 이국의 검사가 이곳에 와 있습니다!! 게르마니아 최전선에서 야만인들을 베어 넘겼듯, 죄인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은빛의 가면이 붙어있는 원뿔형의 투구.
왼쪽에 치우치게 두른,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망토.
“부디, 환호성과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새카만 장갑과 내의, 그 위에 걸친 로리카 하마타.
처형인의 손에 들린 무기는 아주 길고 거대했다.
검이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글라-폴-레-스입니다아아!!”
-쿠궁.
육중한 소리를 내며 승강기는 정지했다.
처형인은 단 한 명의 사내였고, 여덟 명의 죄수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악인들이었다.
그러나 죄수들 중 공포에 떨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어떤 죄수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처형인이 남자라는 말을 전해들은 그들은 반쯤 비웃으며 죽기 전에 신나게 두들겨 팰 생각이나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들이 아는 그 어떤 남자도 이렇진 않았다.
비웃음과 경멸이 섞인 듯한 표정의 안면갑을 뒤집어 쓴 채, 자신보다 긴 검을 자유롭게 다루는 사내라니.
남자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웬만한 전사에 버금갈 만큼 키가 크며, 매서운 기세를 풍기고 있단 말인가?
-티잉!
처형인은 땅에 가볍게 짚어놓았던 검을 발로 차올려, 어깨 위에서 양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뚜벅뚜벅 걸으며 말했다.
“아니다, 이 악마야.”
“뭐,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죄수들은 단검을 꽉 잡은 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들어왔던 철창은 이미 굳게 닫혀있음을 앎에도, 그렇기에 결코 도망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러했다.
“내 앞에서 사라지지.”
“저리 꺼져!! 꺼지라고!!”
이곳에 선 죄수들은, 한때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타인을 죽이고 더럽혔던 자들이었다.
남들이 두려워 떠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금품을 빼앗던 자들이자,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의 무력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던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두려워 떠는 입장이 되었다.
“누가 사악한 마마이트를 숭배하는지 한 번 볼까.”
평소 천시하고 업신여겼던, 남자라는 존재에 의해서 그리 되었다..
-후우웅!
처형인, 글라폴레스는 검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후우웅, 후웅, 훙, 훙!
마치 폭풍을 부르는 마법이라도 쓴 것마냥, 공기가 회오리치며 바람이 일었다.
그러며 글라폴레스는, 죄인을 향해 달려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겁없게도 하찮은 단검을 들고서 빈틈을 노리는 자가 목표였다.
“피게-레-디오!!”
영혼의 스승을 연호하며 처형인은 검을 내질렀다.
-써컹!
“으아아아아!!”
단검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을 쥔 손과 함께.
양손이 잘려나간 죄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내질렀다.
-콰드득!!
그러고는 연이어 횡으로 내질러지는 칼날에 의해 참수당했다.
그녀의 입은 여전히 벌려진 채,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칼날은 핏빛으로 빛나며 살아있는 무언가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려는 것처럼, 광채를 꿈틀거리며 움틀거렸다.
-참수다!! 참수다아아아아!!!
-죽여!! 싸그리 죽여라!! 저 개새끼들!!
열기와 환호성, 광기에 가까운 감정들이 콜로세움을 뒤흔들었다.
“피게-레-디오오오!!”
처형인은 알 수 없는 주문을 포효하며 검을 연신 붕붕 돌려대었다.
그러며 자신의 몸 또한 회전시키며, 죄수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사막의 모래 폭풍과도 같이, 맹렬한 속도였다.
온 사방으로 내뺀 죄인들도 그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었다.
“피게-레-디오오오오오!!!”
글라폴레스는 먼 과거이자 미래의 쯔바이핸더 검객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육신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으로 도망치던 죄인의 목을 내리쳤다.
-콰드드득!!
목뼈가 으스러지며,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다만 이번에는 두 개였다.
열을 잘 맞추어 벤 탓에, 한 번에 두 명을 죽인 것이다.
-이중 참수다!! 이중 참수를 했어!!
-우으와아아아아아!!!
신묘한 묘기에 군중은 열광했고, 의원들과 사제들 또한 감탄했다. 저 빛나는 칼날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려서 만들어 낸 것인지, 그들은 결코 알 수가 없었다.
-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죄수들은 피범벅이 된 바닥과, 시체를 바라보며 절규했다.
머리는 잘려나가 모래 위를 뒹굴었고, 칼날은 기묘한 핏빛의 광채로 웅웅거리며 빛났다.
공포가 부른 망상에 휩싸인 죄수들은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현실에서 도피하려 애썼다.
저 검은 일반적이지 않다. 사람이 저런 것을 만들 수 있을 리가, 들고 있을 리가 없다. 검은 창처럼 길지도, 빛나지도 않으니까.
악령이다. 신들이 악령을 내려보낸 것이다.
영혼을 빼앗가려고 저주받은 흉물을 내려보낸 것이 분명했다.
죄인들은 그리 믿으며 절망하고 비명을 질렀다.
터져나간 육편과 뿜어져 나온 피에 범벅이 되어가면서.
“피게-레-디오오오오오오!!!”
처형인이 주문을 소리쳐 외칠 때마다 시체가 하나씩 쌓였다.
그리고 물결치는 칼날의 대검은, 여전히 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