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축복과 마법(3)
“밀교?”
“그게 왜?”
“밀…교라 하면 좀 그런 거 아니야?”
난 딱히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에 밀교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내 인식에 따르면, 보통 이런 단어는 대개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음습한 항구 같은 곳에 거주하는 수상할 정도로 미간이 넓은 주민들이 ‘이야 이야 크툴루 파탄’ 같은 괴상한 주문을 외우는 그런 상황 말이다.
“불건전하거나, 위험하거나…”
심지어 여기는 남근 조각을 부적으로 쓰는 이상한 동네다.
그러니 ‘이시스 밀교’라는 단어에서 알게 모르게 성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는 건 나름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미지에 대한 두려움 절반과 발기찬 기분 절반이 기묘하게 혼합된 상태에서, 난 코페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딱히 불건전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데. 이거 다 사제님들 지도에 따라서 하는 거라고.”
설명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영 찜찜했다.
“사제님들 지도에 따라서 뭘 하는데?”
그리 의심에 휩싸인 채 청록색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코페시는 웬 미친놈 보는 듯한 눈길과 함께 입을 열었다.
“대체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건 당연히 아니고, 이시스님의 인도를 따라서 일반적인 인지를 초월한 장소를 잠깐 보고 오는 그런 게 있어. 정확히 무슨 의식이나 무슨 물품을 써서 그렇게 하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예를 들면?”
“두아트라던가, 그런 곳 있잖아.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장소들.”
뭐지, 진짜 영적인 활동만 하는 건가.
내 생각보다는 건전한 모임인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 두아트는 이집트식 사후세계의 이름일 거다. 그러니 오시리스가 두아트의 왕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리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신도 있고 축복도 있는데, 그렇다면 사후세계 또한 진짜로 있는 건가?
그럼 나같이 불신자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소멸하는 건가.
아니면 게으름 피우고 싶은 다른 세상의 신들에게 납치되어서 나처럼 노예로 구르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젠장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종교 아무거나 하나 믿고 사는 거였는데.
“그럼 너도 밀교 의식을 해본 건가?”
“아니, 난 그냥 평신도야. 보통 밀교 의식 치르면 공부해서 사제가 되는 게 일반적인데, 난 진득하게 공부하는 건 영 적성에 안 맞아서.”
밀교 의식이라는 게 일종의 심화 이시스 신앙 과정의 입문식 같은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그거 한다고 딱히 추가로 버프를 받거나 하는 건 없는 건가.
“근데 네가 저번에 사제는 귀족이여야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국가사제(Flaminica)들 얘기고, 사실 교단마다 방침이 조금씩 다르긴 할 거야. 최소한 여기는 사제 되는 데에 신분의 제한은 없어. 성별의 제한도 없고.”
이시스의 사제가 되는 데에는 신분과 성별의 제한이 없다라.
오늘 아침 테스티아가 말해준 바에 따르면, 사제가 되어 검을 종교행사용 물품으로 정식 등록을 받으면 별 문제 없이 소지할 수가 있다고 했다.
이거 잘만 하면 사제 쪽으로 빠져서 내 검을 되찾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내 검을 종교적 물품으로 규정하는 걸 허락해주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가능은 한 것이니까.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아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물론 처형인으로 인기를 원기옥마냥 모아서 검을 얻는 게 현실성은 더 높을 것 같지만,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계획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여기서 밀교 의식을 치르든 어쩌든 해서라도 방법을 찾아봐야지.
다만 이런 경우에는 유스티티아가 다른 신 섬긴다고 개지랄를 해버릴 가능성이 있기야 하다.
근데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유스티티아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건데, 솔직히 말해서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하청업체를 허구한 날 감시하는 대기업 사장이 어디 있냐고. 지 일도 하기 싫어하는 여신이 매일매일 내 신앙심을 체크하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무튼 난 기도하고 있을 거니까, 다 둘러보면 본당으로 와. 거기에 없으면 사제님들하고 잡담하고 있는 거니까 바깥쪽 회랑으로 오고.”
아무튼 한창 미래에 대비해서 대책을 세우고 있으니, 코페시가 그리 말을 건넸다.
“뭐, 그래. 좀 있다가 보자.”
내 대답을 들은 갈색 피부의 미녀는 가벼운 걸음으로 돌길을 걸어갔다.
특이하게도 여기 여자들의 튜닉 길이는 남자들 것보다 짧은 편이다. 남자들 옷이 무릎까지 온다면 여성용 튜닉은 허벅지 중간에서 끝나니까.
그래서인지 골반과 허벅지가 돋보이는 느낌이 있다.
개꼴린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발기가 좀 심각할 정도로 잘된다.
하지만 신전에서 떡치는 건 아무래도 좀 거부감이 느껴지는 행동이다. 칠 수 있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것 같고 말이지.
그래,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평화로운 생각을 해보는 거다.
"쓰으으읍..."
정원의 제비꽃 향기를 들이마시며 정신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진정된 정신으로 있다보니, 상태창의 존재가 생각났다.
원래는 집에 가서 확인해볼려고 했지만 여기서 확인한다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확인하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테니까. 사람이 잘 못보는 구석에서 살펴보면 되겠지.
그런 판단 하에서, 정원의 구석진 곳으로 이동해 마음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도와줘요, 여신님.’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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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한 자들의 요구》-[열람]
《지고한 자들의 축복》-[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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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의 신전이라 해서 발동이 안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전에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태창에서는《지고한 자들의 축복》이라는 항목의 글자가 밝게 빛나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 옆의 [열람] 문구를 누르고 스크롤을 밑으로 쭉 내리자, 빛나며 반짝이는 문구가 또다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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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Viri Sangvinvm Artis)》
특정 조건을 만족했을 때 실현되는 축복. 영혼의 위상을 뒤바꾸는 매개체에 힘이 깃든다. 죄인을 검으로 살해해 영혼을 흘려보냈을 시, 일정 시간 동안 검을 통해 발현되는 물리력이 75% 증가한다.
(다음 단계 해금까지: 37/10)-[강화]
{흉악한 죄인은 정의의 검으로 다스려 그 영혼을 내게로 흘려보내라. 내 친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려줄 터이니. -정의와 공정의 여신 유스티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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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버튼이 새로 생겼다.
죄인들의 영혼을 많이 보내놔서, 그 대가로 다음 단계라는 것으로 이 축복을 강화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그나저나 내가 지금까지 죽인 야만인이 37명이었구만. 첫번째 전투인 것을 감안해본다면 나쁘지 않은 숫자다.
그리 생각하며 반짝이는 [강화] 문구를 누르자,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글자들이 빛나며 재배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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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피비린내 나는 거래(Fortior Viri Sangvinvm Artis)》
특정 조건을 만족했을 때 실현되는 축복. 영혼의 위상을 뒤바꾸는 매개체에 힘이 깃든다. 죄인을 검으로 살해해 영혼을 흘려보냈을 시, 일정 시간 동안 검을 통해 발현되는 물리력이 100% 증가한다. 또한 축복이 활성화되었을 시, 검이 스스로 피해를 원복한다.
(다음 단계 해금까지: 27/30)
{흉악한 죄인은 정의의 검으로 다스려 그 영혼을 내게로 흘려보내라. 내 친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려줄 터이니. -정의와 공정의 여신 유스티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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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일부가 바뀌었고 글자에서 빛나는 효과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별 문제 없이 강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물리력 증가량이 100% 증가하고, 피해 원복 옵션이 추가로 붙었다.
검이 망가져도 그냥 죄인 하나만 썰면 다시 멀쩡해진다는 소리다. 여러모로 간편하겠지.
전장에서 구른 대가가 아예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만 그렇다 해서 검을 막 다룰 생각은 없다. 무릇 검을 소유한 자는 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씨를 가져야 하는 법이니까. 어차피 회복될 거니까 막 써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는 그 무엇도 제대로 베어 죽일 수가 없는 것이다.
검이 날 지켜주는 만큼 나 또한 검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기에. 상호신뢰의 원칙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지.
아무튼 상태창에서 더 이상 볼 것은 없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한다면.
이게 주문으로도 꺼지는지 확인해볼 차례다.
'도와줘요, 여신님.'
-띵!
뭐야, 진짜 꺼지네.
심지어 켜질 때와 꺼질 때 소리가 미묘하게 다르다. 무슨 컴퓨터OS도 아니고.
“그, 혹시 괜찮으신가요?”
"악!!"
그 순간 진짜 느닷없이 들려온 소리에, 난 그만 비명을 내지르고야 말았다.
주저앉은 채 뒤를 돌아보자, 아까 전 보았던 여사제가 잔뜩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게 똑똑히 보였다.
"혼자서 허공을 만지고 있으시길래 괜찮으신가 해서... 혹시 놀라셨나요?"
이런 염병할. 상태창 조작하고 있던 걸 들켜버린 모양이다.
이대로 가다간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하니, 어떻게든 둘러대야만 한다.
“그게 말이죠… 그, 간단한 사색을 하고 있었거든요.”
"아하, 그러셨군요. 괜찮으시다면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다행히도 여사제는 딱히 내 말을 의심하지 않는 듯 했다.
그저 부드럽게 웃을 뿐.
그때, 실로 기발한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쳤다.
이 사제에게서 뭔가 필수적인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나저나, 사제님."
"예?"
이시스는 마법의 여신이라는 지위도 가진다고, 코페시가 그리 말했었다.
그리고 유스티티아가 내 영혼을 납치해서 여기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 또한 마법의 일종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기구한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시스가 진정 마법의 여신이라면, 신이 걸어놓은 마법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 말도 안되는 불공정계약의 내용을 수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방법을 이시스의 사제 또한 알고 있을 가능성이 최소한 0은 아닐테지.
그랬기에 난 기대에 가득 차 입을 열었다.
“혹시 죽은 자를 귀속시켜서 노예로 부려먹는 마법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그러자 여사제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