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0 축복과 마법(2)
봄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시청에서부터 거의 30분을 걸었다.
둘러보면서 느낀 것인데, 이 도시는 확실히 신전이 많다. 카피톨리노 언덕은 아예 신전으로 가득 차있는 것 같고 말이지.
중턱에 수목이 즐비하고, 꼭대기에는 황동판 지붕의 대리석 신전들이 밀집되어 있어 느낌이 꼭 신화 속 올림포스를 보는 듯 했다.
물론 높이는 산맥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한낱 언덕에 불과하지만, 조경과 건물의 조화로운 배치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웅장함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시스 신전은 카피톨리노 언덕에 위치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마르스의 들판, 테베레 강에 근접한 도시의 북서쪽 지역에 있다.
코페시의 말에 따르면 이 근처에 시간을 때울 장소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목욕탕과 연극장은 각각 2개씩 있고, 전차 경기장도 꽤나 큰 게 세워져 있다고.
그렇기에 이 근처의 신전은 항상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했다.
그나마 지금은 점심 먹고 다들 목욕탕에서 빈둥거릴 시간이라 한산한 편이라고, 코페시는 그리 말했다.
그리하여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개선문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아치형 문.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이는 분수대와 또다른 대문이었다.
이 신전은 입구가 2개인 모양이다.
“그래서 여기가 그 이시스 신전인 건가?”
“정확히 말하자면 이시스 신전으로 가는 광장 입구지.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이시스 신전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세라피스 신전이 나와.”
내 질문에 코페시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신의 이름이 하나 있었다.
“세라피스?”
“이시스님과 부부의 연을 맺은 신. 시적으로는 두아트의 왕이라고도 하는데, 몰라?”
내가 알기로 이시스랑 결혼했다는 신은 오시리스였을 텐데 말이지. 그 토막살인 당했다가 마법으로 부활해서 푸르딩딩해진 저승세계의 신 말이다.
“그건 오시리스 아니었어?”
“둘 다 같은 신의 호칭이야. 사제님들 말로는 기도하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쓴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름만 다르고 같은 존재인 모양이다. 별칭 같은 느낌인 건가.
지식이 늘었다. 쓸 데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광장은 내 생각보다는 한산한 편이었다. 물론 공간 자체가 넓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절대적인 사람의 수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에게 치이며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니, 여러모로 다행인 일이다. 인파를 신경쓰지 않고서 여유롭게 신전을 둘러볼 기회가 될 테니까.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대문을 지나자 보인 건 분수대였다.
하늘 높이 물줄기를 뿜어내는 그 기다란 나무 같은 건, 사실 거대한 청동 솔방울이었다. 왜 솔방울이 이시스 신전 앞 광장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솔방울에 어떤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건가?
분수대 기준 양 옆에는 각 신전의 입구를 장식하는 두 쌍의 붉은 오벨리스크가 있었다. 색상이나 광택 등으로 추측하건데 아마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
뾰족한 끝은 금빛으로 빛났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사각기둥꼴의 몸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세라피스 신전과 이시스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건물의 형태가 완전히 달랐다.
왼쪽의 입구, 즉 세라피스 신전으로 향하는 입구 건물은 기둥으로 지탱되는 붉은 지붕의 기다란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삼각지붕을 얹은 아치형 입구 위쪽에는 TEMPLVM AD SERAPIS, 즉 세라피스 신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반면 이시스 신전의 입구는 마치 성벽을 뜯어다 붙어놓은 듯 크고 웅장했다.
대리석 벽돌로 쌓아올린 입구 부근의 벽은 유난히 두껍고 높아서 마치 두 개의 넓적한 탑이 붙어있는 모양새였다. 다만 그저 무식한 생김새는 아니었고, 살아움직이는 듯 현실적인 조각들이 양각으로 여럿 새겨져 있었다.
반면 TEMPLVM AD ISIS, 즉 이시스 신전이라는 문구가 위에 새겨진 아치형의 입구는 전형적인 그리스식 기둥으로 장식되었는데, 그 기둥머리에도 타 신전과 마찬가지로 식물과 꽃의 조각이 새겨져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존나게 멋졌다.
이거 짓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슬슬 궁금해졌다. 노후화에 따른 보수도 간간히 해줘야 할텐데, 이게 유지가 되나?
“…신전이 돈이 많나 보네?”
약간은 얼빠진 투의 내 질문에, 코페시는 미약한 코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엄청나게 많지. 이시스 믿는 사람들 중에는 에퀴테스나 귀족 같은 고위층들도 꽤 많이 있으니 후원 받기는 어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같이 알게 모르게 재정 확충에 기여하는 사람도 있고.”
“네가?”
코페시가 이 신전 재정에 기여한다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그 많은 돈으로 가끔씩 기부 같은 거라도 하는 건가?
“내가 이래봬도 은근히 인기가 많았었단 말이지? 몇 년 전에 여기 아침 예배 참석한다고 소문 퍼지니까 오는 사람이 거의 두 배로 불어나더라. 물론 제대로 된 신앙의 자세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 중에 이시스님의 말씀에 진정으로 감화된 사람도 한둘은 있지 않겠어?”
하지만 코페시의 대답은 내 추측과는 조금 달랐다.
비유하자면 연예인이 자주 가는 국밥집에 사람이 불어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신전을 국밥집에 비유하는 게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장벽에 버금가는 문 너머엔 기다란 정원과, 저 멀리 보이는 삼각지붕의 신전이 있었다. 저 신전이 아마 이시스를 모신 본당이겠지.
한편 문에서부터 신전까지 이어지는 돌길의 양 옆에는 화강암으로 된 스핑크스 조각들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서도 스핑크스는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원의 가장 바깥쪽 부분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정갈하게 심겨져 있었고, 열주로 된 회랑이 그 주위를 감싸며 외벽을 이루고 있었다.
“아앗, 자매님!”
그때, 여유롭게 정원을 거닐던 한 여인이 우리를 보고서는 황급히 뛰어나왔다.
삭발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자른 머리 위에 황동으로 된 머리띠를 두른, 수수한 튜닉을 입은 젊은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코페시를 부르는 듯 했다.
“자매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던가요? 크게 다치진 않으셨죠?”
“오랜만입니다, 사제님. 그리고 목걸이는 잘 받았습니다.”
여인의 격렬한 인사에, 코페시는 악수를 하며 공손한 투로 답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저 삭발한 여인은 이시스를 섬기는 사제들 중 하나인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고대 이집트인들이 머리를 죄다 밀고 가발을 쓰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로마인들 중에 삭발인 사람은 보질 못했으니, 아마 이시스의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 머리를 밀어야 하는 것 같다.
왜 종교인이 되기 위해선 삭발을 해야 하는 종교가 이리도 많은 것일까. 진짜 머리카락에 음욕을 불러일으키는 뭐라도 있나?
“그건 제게 감사해 할 게 아니라 대사제님께 감사해 해야 할 사항이죠. 그분의 요청으로 부적을 보낸 것이니까요.”
여사제는 겸손한 어투로 그리 말했다.
그러고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코페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장은 어땠나요? 야만인들은 정말 무모할 정도로 용맹하던가요?”
“그런 야만인들도 꽤나 있었죠. 지금은 제 코페쉬에 머리가 깨진 채 그 음산한 숲바닥을 뒹굴고 있을 겁니다. 이긴 건 우리니까요.”
코페시의 목소리에는 은근히 자부심이 가득했다. 저번에 물어봤을 땐 그냥 참전한 걸 후회하는 기색이 없잖아 있었던 것도 같았는데 말이다.
게르마니아에서의 군생활이 춥고 고되긴 했지만, 그래도 헌신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따랐으니 불평이 없는 것이겠지. 무려 황제가 직접 치하해 주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나저나 이 분은?”
그리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여사제는 어느새 날 가리키며 코페시에게 정체를 묻고 있었다.
“전장에서 함께 싸웠던 친구이자… 절친입니다.”
마지막 말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아마 연인이라 할까 생각하다가 뭉겐 것이겠지.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아직은 관계를 엄밀히 정의하기엔 좀 애매한 감이 없잖아 있으니까.
“글라폴레스입니다.”
여사제를 향해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며, 내 소개를 했다. 지나칠 정도로 간결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사제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쳐다보며 살펴보더니 신기하다는 투로 말을 건넸다.
“남전사라니, 그런 존재를 현실에서 보는 건 처음이네요. 혹시 당신은 가르가레이에서 오신 건가요?”
가르가레이가 정확히 어디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반도보다는 서쪽에 있을 것이다. 한반도보다 동쪽에 있는 건 일본과 태평양 밖에 없으니가.
“그것보다 훨씬 동쪽에서 왔습니다.”
그러자 여사제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채 입을 열었다.
“극동에서 오신 글라폴레스여, 머나먼 이국의 사내가 세라피스님과 이시스님의 축복이 깃든 이 성소에 찾아오시다니 이토록 기쁠 수가 없군요. 이집트의 위대하신 신들께서 그대에게 축복과 지혜를 내려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뭐지 이거.
나 지금 영업당하는 건가.
고대 이집트 종교의 사제에게 영업을 당한다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서 말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
“그리고 만약 이 두 분에 대한 신앙에 일반적인 신도들보다 조금 더 깊게 귀의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저나 다른 사제들에게 말씀해주시지요. 다들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을 도울 거랍니다.”
여튼 싱글벙글 웃으며 그리 말한 여사제는, 이후 잠시 코페시와 잡담을 나누다 정원 바깥의 회랑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환대는 좋지만, 이건 좀 당황스러운데.
“…여기 원래 이런 분위기야?”
“뭐, 원래 저 사제님이 좀 과하게 친절하시기는 해. 나도 옛날엔 좀 부담스러웠어.”
코페시는 그리 말하고는, 날 안심시키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시스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밀교에 참여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편하게 생각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