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로마와 쯔바이핸더 검객-42화 (43/67)

EP.42 계란부터 사과까지(2)

“아펜니노의 얼음 위에 올린 신선한 굴과, 철갑상어 알로 속을 채우고 소금과 레몬을 곁들인 바닷가재 찜입니다. 음료로는 카우치니아 와인 올려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로 나온 요리는 간단히 말해 고급 해산물의 총집합이었다.

서로 머리를 맞댄 붉은 랍스터 세 마리는 곱게 썰린 얼음 위에 배를 깐 채로 놓여져 있었고, 그 안에는 흰색 속살과 함께 검은 빛깔의 캐비어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랍스터 주위에는 신선한 생굴이 잔뜩 놓여있어 큼직한 두 개의 원형 고리를 만드는 모양새였다.

그나저나 얼음이라니.

아펜니노라면 내가 로마로 올 때 가로질렀던 그 산맥 이름일텐데, 설마 거기 만년설에서 요리에 쓸 얼음을 긁어왔다는 소리일까.

내 마음 속에서 2세기 문명 수준에 대한 평가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이게 바로 로마의 저력?

“어, 얼음…?!”

“4월에 얼음이라니,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지?”

한편 검투사들은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 랍스터 밑에 깔린 게 진짜 얼음이 맞나 이런저런 방법으로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최소한 일반인들에게는 4월에 얼음을 식탁에서 보는 게 그다지 보편적인 사건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그래야 말이 되지.

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얼음은 어디까지나 미적인 용도와 신선함 유지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2세기의 해산물 맛은 어떨까.

그리 생각하며 굴을 껍질 채로 든 채, 들이마셨다.

-후루룩

가볍게 씹자 굴 특유의 얇은 막이 터지며, 그 안의 즙이 흘러나와 입 속을 맴돌았다.

이상한 향이나 상한 듯한 식감, 염장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21세기의 고급 식당에서 먹는 굴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즉, 존나게 맛있었다.

그래서 몇 번 더 가져가 껍질 채로 후루룩 흡입했더니, 테스티아를 제외한 7명의 검투사들이 갑자기 날 매우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뭔가 암묵적인 식사 예절을 위반하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난 딱히 특이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다른 테이블을 봐도, 다들 손에 들고 굴을 마시듯 먹어대고 있다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지나치게 많이 먹은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굴이 그리 적지 않게 쌓여있기도 하고, 내가 먹은 건 1인분 정도였으니까.

“아니, 그… 왜 그런 눈빛으로 절…?”

“아, 아니, 뭐 아무것도 아냐! 맛있게 먹으면, 뭐 좋은 거지.”

내 질문에 코페시가 황급히 답했다.

마치 뭔가 음슴한 것을 숨기려는 듯 다급한 말투였다.

“진짜라고! 아무것도 아냐!”

그래서 잠시 말없이 응시했더니, 손을 휘휘 내저으며 발뺌을 했다.

또한 날 빤히 쳐다보던 검투사들의 주의 또한 분산되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식사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이페이아가 간간히 날 흘깃 쳐다보며 피식 웃기는 했지만, 그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방금 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굉장히 불온한 느낌을 받은 것 같았는데, 그냥 기분탓이었던 건가? 모르겠다.

잡생각도 떨쳐낼 겸, 새로운 잔에 담긴 새로운 와인을 들이켰다.

카우치니아 와인 또한 팔레르노 와인과 같은 백포도주였지만, 상대적으로 더 백색에 가까웠으며 단 맛 또한 적었다. 그리고 도수도 조금 더 높은 것 같았다.

하지만 도수가 강한 만큼, 굴 특유의 미약한 비린내는 확실히 지워졌다. 상쾌한 맛이 강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살짝 입가심을 하고서 이번에는 바닷가재에 손을 댔다.

집어보니 가재 속살이 캐비어를 떠받히는 작은 그릇처럼 넓게 썰려있어서, 마치 쌈을 싸먹듯 간편히 입 속으로 집어넣을 수가 있었다.

톡, 토독하며 터지는 철갑상어 알과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게 씹히는 바닷가재 속살이 코 끝을 맴도는 강한 레몬향과 더불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졌다.

근데 로마에서 즐기는 첫 식사로 지나친 호화를 누리는 것 같은데. 이거 역치가 너무 높아져버린 게 아닐까 살짝 의심스럽다.

“벌꿀에 졸여 구운 겨울잠쥐 경단입니다. 음료는 식사용 알바노 와인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어느새 랍스터와 굴 껍질은 텅 비어버린 채 사라졌고, 세 번째 요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종류의 와인과 함께 둥글게 배열된 납작한 빵조각, 그리고 꿀 냄새를 풍기는 미트볼들. 아마 저 빵조각으로 미트볼을 싸먹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 미트볼들을 이상한 식재료로 만들어놨다는 것이다.

쥐? 어림도 없지. 단 한 입도 안 먹는다.

물론 황제가 먹는 것이니 분명 따로 사육된 식용 품종을 먹는 것이기야 하겠지만, 생소함에서 나오는 거부감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뭐야, 너 이거 안 먹어?

그리 생각하며 은잔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을 때, 코페시가 내게 그리 물었다.

그리고 매우 당연하게도 난 괴식을 먹고 싶지는 않았기에, 강렬한 부정의 의사를 표하고자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이 알렉산드리아인은 쯧쯧 혀를 차며 약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얘가, 맛을 잘 모르네. 이거 되게 별미라고. 지금 안 먹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걸? 그리고 혹시 해서 말해주는 건데, 겨울잠쥐 먹는다 해서 무슨 마법 같은 거에 걸리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젠장할, 또 저 얘기다.

저번에 그 ‘진실의 손’에 대해 물어본 뒤로 계속 날 이런 취급을 한다. 뭔 망할 촌놈 취급을 한다고.

코페시의 말에 따르면 사실 그 ‘진실의 손’이라는 건 그냥 한 대대장이 만들어낸 허상이었고, 실제로는 그냥 아무런 능력도 없는 청동 건틀렛이었다고 한다.

그저 야만인들 상대로 공포를 유발해 심문을 쉽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처음 나왔을 땐 대체 어떤 등신이 저런 말도 안되는 거에 속냐며 비웃었었지만, 은근히 효과가 좋자 비웃음은 금세 수그러들었다고.

그때 코페시는 내 반응을 보면서 대체 무슨 멍청이가 그런 거에 속아넘어가냐며 대놓고 낄낄거렸었지.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존나게 수치스럽다.

그래도 나름 교훈을 얻기는 했다.

이 세상에서 마법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보아도 될 정도로 희귀한 것이고, 마법사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99%가 명백한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서 마법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는 한다고 한다. 다만 그런 경우는 보통 예지나 치유력 등 소규모의 간접적인 마법만 쓸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뭐, 정 그렇다면야. 네 선택이니까 나중에 이상한 소리하기 없기다?”

근데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괜히 먹고 싶어지는데.

그냥 딱 한 입만 먹어봐?

…먹어봐야겠다.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어.

“아, 그래,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면 먹어봐야지.”

근데 영국에서도 이 지랄하다가 트라우마를 얻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에라 모르겠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살짝 흔들리는 손길로, 빵에 싼 미트볼을 입으로 가져갔다.

"...오?"

근데 진짜 의외로 맛이 좋았다.

닭고기를 잘게 다져서 민트와 섞어 구운 미트볼을 꿀에 절여 먹는다면 대략 이런 맛을 내지 않을까 싶다.

…이게 대체 왜 맛있지? 혼란스럽다.

설마 내가 영국인이 되어가는 건가?

아니다, 개소리다. 그냥 지금 좀 혼란스러워서 정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일단 포도주를 좀 들면서 진정을 해보자.

알바노 와인은 전형적인 붉은 색의 레드와인이었다. 다만 역시 맛은 21세기의 레드와인과는 차이가 있었다.

모든 와인이 그렇듯, 전반적으로 달고 도수가 낮은 편이다. 아마 주조 기술이 현대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한 탓이겠지.

하지만 이런 와인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좋아.

“올리브유로 요리한 오스티아산 숭어 튀김입니다. 음료로는 카우치니아 와인 올려드리겠습니다.”

테이블에서 은잔과 쟁반을 치워낸 노예들이 벌써 네 번째 요리를 들고 왔다.

이젠 튀김까지 나온다. 고대 문명 주제에 있을 건 다 있구만.

-바삭!

일전에 삶은 계란 샐러드에서 느꼈던 그 짭짤한 액화 앤쵸비 맛이 다시 느껴졌다. 다만 이번에는 소스를 좀 많이 친 모양인지, 살짝 짠 맛이 강했다.

그리고 슬슬 느끼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리 많이 집어먹지는 않았다.

대신 달달한 백포도주로 기름기를 좀 씻어내는 데에 주력했다. 지금까지 요리가 나오는 걸 보니 대략 서양식 코스요리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다음엔 슬슬 고기가 나올 차례였기에 그러했다.

자잘한 거 주워먹다가 메인을 놓치는 건 절대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가룸과 꿀, 그리고 후추를 뿌려 구운 쇠고기 오펠라(Ofella)입니다. 음료로는 파우스티아 와인을 준비해드렸습니다.”

다섯 번째 요리는 향신료 냄새가 짙게 밴, 작은 조각들로 나뉜 스테이크였다. 달달한 꿀냄새와 후추향, 그리고 일전에 느꼈던 액화 앤쵸비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그 액화 앤쵸비맛 소스 이름이 가룸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여러가지가 어우러진 독특한 향기를 들이마시며, 고기를 향해 손을 뻗던 찰나,

-다들 어떠한가, 연회는 만족스러운가?

어째서인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익숙한지는 알지 못했다.

-요리가 입맛에 잘 맞는다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이 정원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이 목소리가 귀에 익어 있었는지에 대해서.

목소리의 주인은 갈색 머리와 퇴폐적인 눈매를 가진, 고급스러운 자줏빛 천을 걸친 미녀였다.

그러나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개선식에서 웅변을 토했던 새로운 황제,

루킬라가 우리 앞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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