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9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3)
포로 로마노.
그 유명한, 로마인의 광장.
비록 내가 로마 시내 지리에 대해선 아는 게 개뿔도 없긴 하지만, 이 마차가 정차한 이곳이 포로 로마노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선식의 종착점이 포로 로마노라는 걸 이미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딱 봐도 광장이라 할 만큼 넓기도 했고.
주위에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그리스식 기둥과 아치로 장식된 백색의 거대한 건물들이 즐비했다. 저것들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아주 멋져 보인다는 것 하나 만은 확실했다.
광장 또한 그저 너른 대리석 바닥으로만 된 것은 아니라, 여러가지 볼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먼저 내 시선을 기준으로 12시 방향에는 쌍둥이 신전과 높은 계단의 신전이 있었다.
그 쌍둥이 신전은 각각 2개의 삼각지붕을 가지고 있었지만, 건물이 서로 붙어있는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신전을 이루는 기둥들의 위쪽에는 꽃과 덩굴들이 새겨져 채색되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진짜 식물들이 저 위에 자라고 있다고 착각할 수준으로 사실적인 조각이었다.
이 쌍둥이 신전에 이르는 계단 앞에는 벽돌로 된 연단이 있었다.
그 위에 세워진 5개의 화강암 기둥 중 양 옆의 4개에는 황동으로 된 여인상이, 가운데 하나에는 황금 독수리의 우상이 위풍당당하게 날개를 편 채로 각각의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10시 방향, 즉 우리가 이미 지나온 곳에는 개선문이 있었다.
거인이라도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그 장대한 문의 안쪽에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부조가 새겨져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로마군이 거대한 촛대를 들고 옮기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었다.
내가 순간 삼지창을 잘못 봤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창문 밖으로 머리까지 내밀면서 확인한 결과, 그건 분명한 촛대였다.
한편 4시 방향에는 요상한 정육면체 건물이 있었다.
정육면체 건물에는 광장 안쪽과 바깥쪽으로 문이 2개가 나 있었는데, 그 두 개가 다 열려있었다. 다만 미스테리하게도,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여튼, 여러모로 신기한 것들이 많다.
과연 저기는 뭐하는 곳일까. 나중에 물어보던가 해야겠다.
이제 광장의 9시 방향에 대해 말하자면, 이곳에는 열주가 있다.
열주를 구성하는 거대한 흰 대리석 기둥 7개의 꼭대기에는 각자만의 자세를 취한, 황동색의 여인상들이 있었다.
내 추측으로는 이전 황제들이나 옛 명장들을 새긴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모든 거대한 기둥들에는, 붉은 색의 국기가 걸려있었다.
S.P.Q.R이라는 황색의 글씨와 월계관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저 약자의 뜻은 나도 안다.
로마 시민과 원로원(Senatus Poplulusque Romanus)이라는 뜻이지.
오후의 봄바람을 맞아 펄럭이는 깃발 옆에서, 병사들은 멋들어지게 대형을 맞춰어 도열했다.
붉은 망토를 두른 군단병이 연단에 가장 가까이 섰고, 검투사들은 그 다음으로 가까웠다.
나를 포함한 부상병들의 마차는 말 탄 군의관들과 함께 연단에서 가장 먼 곳에 정차했다.
우리 뒤에 있는 거라고는, 꿇어앉은 채 병사들의 감시와 시민들의 야유를 받는 노예들 밖에 없다.
그리고 연단 위에, 자주색 망토의 여인이 있다.
그녀가 입은 검은 가죽 갑옷, 로리카 무스쿨라타는 금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갈색 머리칼 위에는 황금으로 된 월계관이 씌워져 있었다.
새로운 황제, 루킬라.
승리한 아우구스타는 입을 열었다.
“시민과 의원들, 장군과 군단병들, 군의관과 의무병들, 그리고 검투사들이여!”
카랑카랑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는 시민들의 호응과 섞여, 대리석의 광장 곳곳을 가득 채우며 울려퍼졌다.
“우리의 승리로다!!”
그 강렬한 한 마디에 광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저 배경처럼 깔린, 연단 위 기둥들이 무너져 황제를 덮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질 정도로.
하지만 다행히도 환호성은 금세 잦아들었고, 황제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로마의 딸들이여, 로마의 군사들이여! 그대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그대들의 인내와 열정, 애국심과 용맹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었으니! 고결하신 임페라토르이자, 짐의 어머니인 카이세리스 마르키아 아우렐리아 안토니나 아우구스타께서 시작하신 전쟁을, 우리가 승리로 마무리지었도다! 이것이 다 그대들의 덕이다!”
그러자 군단병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찬, 환희의 외침이었다.
“군단의 의사들이여, 그동안 고생이 많았음을 안다. 그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병과 부상, 출혈과 감염과 싸우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수고를 해주었다. 그대들의 뛰어난 기술이, 하데스의 경계에 있던 우리의 군사들을 세상으로 돌려내 바로 이곳, 이 광장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이니라! 그러니, 짐이 그대들을 언급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대들 또한 이 승리의 주역이니라!”
또 한 번 함성이 일었지만, 군의관들의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이 환호성을 내지를 때, 그들은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리고, 검투사들이여.”
루킬라는 진중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무겁게 깔린 진중한 분위기는 군중을 침묵시키고, 집중을 유도하기 부족하지 않았다.
과연 황제는 황제인 것일까.
꽤나 웅변이라 할 만하다.
“그대들이 지난 3년 간 한 활약,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전투에서 한 활약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서 적진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가, 매복을 준비하는 현장을 급습했었다지, 단 300명의 병력으로 말이다!”
가히 영웅담에 필적하는 황제의 언급에, 분위기는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 기상은 옛 스파르타인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며, 오히려 그보다 더 나은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패배하였으나, 우리는 위협을 꺾고서 결연히 승리를 얻어내었으니!”
벅차오르는 감동은 점점 더 커져서,
“그러니 그대들은 자부심을 가져라. 로마를 위해 싸워준 그 대가를, 짐은 결코 잊지 않고 있으니! 그대들에게 영원한 영광과 명예가 함께하기를 빌겠노라!”
마침내 정점을 찍었다.
-ROMAAAA INVICTAAA!!
-ROMAAAA INVICTAAAAAA!!
-ROMAAAA INVICTAAAA!!
황제의 축복에 검투사들의 무수한 찬양이 잇따랐다.
루킬라는 이제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채로 말하였다.
“이제 짐은 위대한 신들께도 이 승리를 전하러 갈 것이다. 카피톨리노의 가장 위대한 유피테르 신전에서 제사를 거행한다면, 신들께서도 기쁜 웃음을 터트리실 테지! 그러니 시민들이여,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기고 웃으시오! 그리고 먹고 마시시오! 신들께서도 응당 그러하실 터이니!”
황제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서, 귀가 먹먹해지는 환호성 속에서 사두전차에 올랐다.
그러고는 우리가 들어왔던 개선문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군단병들과 대다수의 호송마차들, 그리고 노예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보아하니 대략 저 멀리 보이는, 황금색 지붕의 거대한 신전이 그 ‘카피톨리노의 가장 위대한 유피테르 신전’인 모양이다. 진짜 황금 지붕일리는 없고, 아마 황동이 아닐까 싶다.
진짜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노예들도 같이 끌고가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유피테르에게 승리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용도가 아닐까 싶다.
검투사들과 나의 것을 포함한 일부 호송마차들은 180도 돌아서, 저 멀리 보이는 오르막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신전에 제사 지내러 가는 대신 다른 뭔가를 하러 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여러가지 잡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니, 오른편에 뭔가 특이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자세히 관찰해보니, 독특하게도 원통 모양을 띈 신전이었다.
물론 신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기둥머리가 특유의 화려한 꽃과 식물 조각으로 장식된 것을 보면 신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모양 이외에 특이한 점이라면, 신전의 기둥과 기둥 사이가 비어있지 않고 격자무늬의 창살로 막혀 있다는 것. 심지어 그 창문에 쓰인 유리 또한 불투명해서 안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또한 문은 굳게 닫혀있었으나, 신전의 붉은 지붕 꼭대기에서는 계속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긴 대체 뭐하는 건물이지?
그리 생각하며, 잠시 멍을 때리고 있으니 원심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차는 오른편으로 돌아, 더 급한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창밖 너머의 도시는 약간 기울어져 보였다.
높은 언덕을 오르고 있는 모양이지. 어쩌면 그 유명한 일곱 언덕 중 하나를 오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언덕의 무슨 건물로 향하는 것일까.
추측해본다면 일단 시민권을 준다고 했으니, 그 관련 부서 건물로 향하는 게 아닐까 싶다.
-히이힝!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완전히 멈춰섰다.
그와 함께,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나오시죠, 짐은 저희한테 맡기시고요. 혹시 부축이 필요하신가요?
말하는 것을 보니 시중드는 노예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짐이라.
이 마차에 실린 짐이라 한다면 반쯤 누더기가 된 갬비슨과, 보행용 지팡이, 검가방에 든 쯔바이핸더, 그리고 완전히 사용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21세기식 옷들 정도가 있겠지.
갬비슨이야 노예들이 대략적으로 꿰메놓았다지만, 나머지 옷들은 진짜 처참할 정도로 찢어지고 뜯어져서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고야 말았다.
하지만 일단 조금 더 갖고 있을 생각이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미련이라는 게 남는 법이니까.
그렇게 잘 개진 옷들과 지팡이를 안고, 등에는 쯔바이핸더를 맨 채 문을 열고 걸어나왔다.
그러자 실로 웅대하다고 밖에는 말할 방도가 없는,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올려야 전체가 보이는, 기둥과 아치가 조합된 장대한 삼각지붕의 대리석 건물이었다.
21세기 현대에서야 지을 법한, 유럽 국가의 국회의사당에 필적하는 건물이라고 평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저런 것이 정녕 한 부서의 건물에 불과하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여기가 대체 어딥니까?”
당혹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흰색의 고급스러운 튜닉을 입은 여인에게 물었다.
여인은 내 성별을 확인하자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평온한 표정을 되찾았다.
“어서 오시죠, 용맹하신 검투사님.”
그러고는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띄며, 입을 열었다.
“이곳은 팔라티노 언덕, 황제 폐하께서 기거하시는 황궁이랍니다. 그 짐은 제게 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