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로마와 쯔바이핸더 검객-35화 (36/67)

EP.35 새벽녘(2)

긴 꿈을 꾸었다.

홀로 은빛의 사막을 헤메이는 꿈을.

그 황량한 하늘에는 태양도 달도 없었다.

오직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별들만이, 새카만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의 정체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갈증이 날 현실로 이끌어냈다.

계속 잠들어 있기에는 너무나 목이 말랐다.

“…허억.”

현실이라 착각할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저 개꿈이었을 거다.

당장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나무로 된 평평한 천장.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어디 뭐 마차에라도 있는 건가?

“…악.”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비틀자, 엄청난 세기의 격통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살면서 느껴보았던 그 어떤 근육통보다도 강렬한 통증이었다.

그야말로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하, 씨발.”

절로 한숨 섞인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 상태로 움직이기는 어렵겠지.

문제는 내가 지금 당장 물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것도 존나 간절히.

혹시 근처에 누구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일단 한 번 소리를 내보았다.

“물.”

그 누구의 대답도 들려오질 않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젠장할.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원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다.

-우득, 우드득.

근데 어째 직접 나서지 말았어야 했을 것 같은데.

움직이기 시작한 건 절대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으익, 악, 으어헉…”

그래도 어찌저찌 앉는 데까지는 성공을 했다. 나름의 성과라고도 볼 수가 있겠지.

하지만 내 기분은 전혀 좋지가 않다.

뼈와 근육과 관절이 서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에,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저릿저릿하며 쥐가 난 듯한 감각.

게다가 뱃가죽은 몇 대 처맞은 것마냥 욱씬거리기까지 한다.

이건 거의 시체와 다를 바가 없구만. 대체 뭔 지랄이 났길래 몸 상태가 이 지경이 된 거지?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않은 정신을 헤집으며,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았다.

아, 그래. 온갖 무기들에게 골고루 처맞은 상태에서 배에 투창을 맞고 기절했었지.

죽도록 싸운 데에다가 투창까지 처맞았으면 이 꼬라지가 날 법도 하다.

평균적인 투창은 대개 그 무게가 최소 2kg은 넘는다.

그 무거운 물체를 전속력으로 던지는 걸 직격으로 맞고 살아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정도로 끝난 거라면 기적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겠지.

어쩌면, 아주 어쩌면, 유스티티아가 어딘가에서 내게 마법적인 보호주문 같은 걸 걸어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그냥 내가 운이 좋은 거겠지.

근데 솔직히 후자일 확률이 더 높은 것 같다. 난 어릴 때부터 운은 좋았으니까.

-짤랑.

그때, 내 목에서 무엇인가가 금속성의 소리를 내었다.

내려다보니 내 목 주변에서 황색의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난 분명 한평생 동안 목걸이를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누가 걸어주기라도 한 건가?

-짤랑.

목걸이를 벗어서 확인해보니, 그 생김새가 꽤나 특이했다.

은빛의 가느다란 사슬로 만든 목걸이에는 구릿빛의 기다란 물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길고 휘어진 막대기의 끝부분은 두꺼웠고 중간에 눈금이 그어져 있었으며, 윗부분에는 2개의 구체 같은 게 달려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좆과 같았다.

…좆?

그렇다. 좆이다. 그것도 잔뜩 발기해 빳빳하게 선 좆.

목걸이에는 자그마한 구리좆이 걸려 덜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존나 미친 소리 같지만 진짜다.

혹시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똑바로 관찰했지만, 목걸이의 형상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이건 분명한 현실이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오만 가지 상상이 머리 속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여전사로 가득한 야만인들의 군대.

그들의 눈앞에서 맥없이 쓰러진 거근의 남성.

그리고 그에게 걸려지는 좆 모양 목걸이.

“씨, 씨발,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다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마차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다.

순간 기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뭔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진 것이다.

내 고간에, 바람이 느껴졌다.

상반신을 내려다보자, 흰색의 튜닉이 눈에 들어왔다.

튜닉 안에는 속옷이 없었다.

“히이이이익!!”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탈출해야만 해.

이렇게 한가로이 사색에 잠겨있을 때가 아니다.

난 저 망할 놈의 야만인들에게 성노예로 붙잡힌 거다.

납치당한 거다.

납치당한 거라고!!

-콰당!

침대에서 다급히 기어나가다 바닥에 부딪혀버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다리가 내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를 않아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이대로 노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

구석진 모서리까지 기어가, 튀어나온 곳을 잡으며 이족보행을 하려 애썼다. 다리에 힘을 주고, 제대로 서고자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발은 계속, 계속해서 미끄러질 뿐이었다.

-쾅!

결국 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다시 바닥에 처박히고야 말았다.

-자, 잠깐만, 거기 뭐야?!

그것도 모자라, 마차 바깥에서 정체모를 여인의 목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문고리에서 철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기, 무기가 어디 있지? 무기를 쓸 만한 것, 촛대라던가 막대기라던가 빗자루라던가!

하지만 이 마차 안에 무기를 쓸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철컥.

문이 열리고야 말았다.

젠장할.

살아남은 줄 알았는데, 멀쩡히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최후를 맞게 된다니.

그 많은 고생과 고난이, 그저 이런 비참함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칼과 도끼와 투창에 처맞고 찔리고 긁히면서도 발악하며 싸웠던 것이, 그저 이런 허무한 결말을 위한 것이었다고?

이 염병할 인생이 또다시 내게 마마이트를 투척한 모양이다.

하지만 결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잠자코 노예로 살지는 않겠다.

최소한 한 명은 족쳐버리고야 말 거다. 맨주먹으로 패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끼릭…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역광으로 인해 새카맣게 보이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맹렬한 속도로, 기어간다.

-쿵,쿵,쿵,쿵,쿵!

“아니, 대체 어디로 간- 어어?!”

“이야아아아악!!”

그러고는 다리를 덮쳐 넘어뜨린다!

-쾅!

재빨리 주먹을 들어올려, 상대를 후려팰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를 않았다.

“이이익… 이이이익!!”

그랬기에 결국, 내 팔은 염병할 주유소 풍선인형마냥 이리저리 정신없게 휘날리며 허공을 헤집을 뿐이었다.

난 분명 상대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데, 어째 제대로 된 피해가 들어가는 것 같지가 않다.

어쩌다 상대에게 맞아도, 그저 요란한 토닥거림을 계속하는 느낌일 뿐.

좆같다.

“내 파아아알!! 내 팔이!! 조종이 안돼, 이 씨발! 씻팔!! 안된다고!!”

“지,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환자분!! 진정!!”

그렇게 한창 한심한 투닥거림을 이어나가던 찰나, 양팔로 내 무의미한 공격을 방어하던 정체불명의 여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라틴어였다. 그것도 매우 유창한 발음의 라틴어.

그 게르만 미친년이 쓰던 딱딱한 억양의 어색한 라틴어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게르만족이 이런 자연스러운 억양의 라틴어를 구사할 리가 없는데. 그리고 환자분이라니.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이 목걸이는 또 뭐고, 여긴 또 어디야?

내 옷은 어디로 갔고?

모든 것이 도통 하나로 맞물리지를 못했다. 아프다. 목이 마르다.

사고를 지속할 수가 없다.

“…환자분?”

바닥에 주저앉아 멍이나 때리고 있는 내게, 정체불명의 여인이 되물었다.

오른손에 들린 기괴한 형상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답한다.

“…노예가 아니고?”

“아, 아니, 저희가 대체 왜 아군을 노예로 잡겠어요?”

여인은 실로 황당하다는 어투로 내게 되물었다.

아군이라면, 분명 로마군일텐데.

그렇다면 저 여자는 군의관인가? 그럼 이 목걸이는 대체 정체가 뭐야?

“그나저나 아까 전에는 대체 뭣 때문에-“

“아니, 그럼 대체 이 망할 목걸이는 뭔데?”

“목걸이…? 아, 그건 부적이에요.”

의문의 여성은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마치 영국 요리를 한 입 맛보고서, 나는 방금 아주 역겨운 맛의 음식물 쓰레기를 먹었다 논평하는 샤를 드 골과 같이 확고한 태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영국 요리가 아니다.

이것은 좆이다.

근데 부적이라고?

“이건 좆이잖아! 염병할 좆이라고!! 이게 어떻게 부적일 수가 있는데?!”

“그러니까 당연히 부적이 되죠! 아무리 동방의 이국에서 오신 분이라 해도 그렇지, 남성기를 부적으로 쓰는 건 상식이 아니던가요?!”

여인은 거의 분통을 터트리는 듯한 말투로 그리 답하였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답변이었다.

“…뭐?”

이 세상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다.

지금 내 머리가 아픈 이유도 이 미친 세상과 관련이 있는 게 틀림이 없다.

아무래도 조금 더 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모든 게 더 괜찮아질 거다.

한 1900년 정도만 더 자면 따스하고 안온한 현대가 올 거다. 그때까지만 자면 돼.

“화, 환자분? 환자분? 정신차리세요, 환자분!!”

조금만, 더…

“화, 환자부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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