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 죽음의 일격(2)
방패가 깨어져나갔다.
목재의 원형방패를 두른 철제 프레임이, 마치 썩은 나무라도 된 것마냥 터져나간 것이다.
동굴에 숨은 모든 게르만인들 또한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타격을 받은 부분은 그대로 사라져버렸고, 방패에는 부채꼴 모양의 구멍이 생겼다.
투르바레는 그 찰나의 순간에 실로 큰 공포를 느꼈다.
그녀가 든 방패는 일반적인 방패가 아니었다.
최고의 목수들이 나무를 다듬고, 게르만 부족들의 최고의 장인들이 힘을 합쳐 프레임을 만든 정성어린 방패다.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제작해, 최강의 전사에게 바쳐진 선물.
어찌 보면 게르만 연합군의 모든 기술력이 총집합된 물건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이런 대단한 물건을, 저 거인은 일격에 깨부순 것이었다.
허나 가장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대개 방패에 검이나 도끼가 찍히면, 그 일격에 담긴 힘은 상쇄되어 사라진다.
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즉, 대검은 멈추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악!!!"
투르바레의 왼쪽 어깨는 그대로 관통당했다.
대검의 크로스가드는 곰의 가죽을 뚫고, 두 겹의 사슬 갑옷을 으깨버리고는 살을 찢어발겼다.
어깨뼈마저, 으스러졌다.
"아으...으아아..."
산산조각난 뼛조각은 힘줄을 끊으며 근육 속으로 파고들었고, 투르바레는 고통 속에서 신음을 내뱉었다.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인의 힘이 빠져가는 듯한 모습을 보고, 공격이 먹히는 듯한 모습을 보고서 그리 여겼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투지를 불태웠었다.
동료와 부족의 복수를 하고, 항전의 뜻을 밝힌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했다.
하지만 그 끝은, 이리도 비참했다.
"커허...윽..."
분노한 짐승과도 같이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며, 거인은 크로스가드를 더 깊숙히 박아넣었다.
투르바레는 힘에 짓눌려 무릎을 꿇었다.
혈관은 헤집어졌고, 상처에선 피가 꿀렁거리며 새어나왔다.
그리고 게르마니아의 찬 공기로 냉각된 크로스가드는, 그 빈자리를 한기로 채웠다.
투르바레는 이 한기를 자신이 죽어가는 감각이라 인지하였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음 공격은 머리를 향해 날라올 것이 뻔했으니까.
방패와 짐승 가죽과 두 겹의 사슬 갑옷을 박살내고서도 살과 뼈와 근육을 만신창이로 만든 이 일격을, 한낱 한 겹의 투구 따위가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두개골엔 구멍이 나고 뇌는 으깨지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기적이 일어나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분명 남은 평생 동안 왼팔은 제대로 쓰기 어려울 것이다.
방패 없는 전사는 죽은 전사와 매한가지이니, 그녀는 이미 전사로서는 죽게 된 것이다.
투르바레는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그 불길한 직감이 틀렸길, 그리고 제발 발할라에서 멀쩡한 상태로 살아가는 동료들의 영혼을 볼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빌었다.
'뭐, 뭔... 오딘이시여...?'
하지만 신께 기도를 올린 건 투르바레 뿐만이 아니었다.
동굴 속에서 활이나 창대를 잡고 거인과 전사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 그들 또한 무의식적으로 신을 찾게 되었다.
1초 가량의, 실로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이로 인한 충격은 평생의 모든 충격을 합한 것보다 더 컸다.
저렇게 강하고도 파괴적인 일격은 전혀 본 적이 없었으니 그러했다.
진정,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격이었다.
-이야아아아아아!!!
거인은 투르바레의 배를 발로 짓밟았고, 포효와 함께 검을 뽑아내었다.
그러자 여전사의 어깨에서는 많은 양의 피가 튀겨 흙을 검게 적셨다.
거인은 씩씩거리며, 검을 밑으로 내린 채 동굴 안의 궁수들을 노려보았다.
검붉은 흔적들로 얼룩진 철가면 밑에선 검은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불탔다.
이 참혹한 광경 앞에서, 거의 모든 게르만 전사는 얼어붙었다.
그러나 단 한 명,
단 한 명의 겁먹지 않은 자가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개 호위병이었던 전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이었다.
마르코반니의 족장이 되어버린 용맹한 전사는, 단창을 굳세게 쥐고 동굴 바깥을 향해 달렸다.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창을 들고서.
큰 보폭으로 사슴이 뛰듯 달리던 그녀는, 창을 잠시 공중에 띄웠다 역수로 잡았다.
팔은 길게 뻗어졌고 검지와 중지는 목표물을 겨냥했다.
족장의 두 손가락은 투르바레가 완전히 쓰러지고, 거인이 다시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면 나타날 지점을 향하였다.
심장이 위치한 가슴팍을 향하였다.
'여기서 넌 끝이다.'
거의 3초 안에 투창의 준비가 끝났고, 동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까스로 방패벽을 뚫고 나온 한 스파르타인이 보았다.
두 개의 방패를 든 검투사, 테스티아였다.
의식이 생기고, 기억이 연속되는 시점부터 끊임없이 군사 교육을 받아온 그녀다.
그런 숙련된 전사로서, 저 게르만인이 어떤 짓을 하려는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투창의 개념과 기술은 게르만의 전유물이 아니었기에.
그러했기에,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막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안돼."
하지만 테스티아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야만인들의 방패벽을 뚫고, 하늘로 도약하듯 움직였다.
허벅지의 근육은 크게 수축하고 이완하며 그 단련된 위력을 발하였다.
테스티아는 크게 한 걸음 뛰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음에도, 테스티아의 사고는 미친듯이 재빠르게 돌아갔다.
아니, 어쩌면 급박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질문들이 그녀의 신경을 에워쌌다.
테스티아는 자기 자신을 향해 물었다.
어째서, 대체 어째서 만난 지 고작 일주일 밖에 안된 신병에게 이리도 감정적인 애착을 가진단 말인가?
글라폴레스가 남자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느낌은 아니다. 이성에 대한 감정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테스티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가?'
두 번째 걸음이 이어졌다.
단 두 번 땅을 디뎠음에도, 테스티아는 이미 그 야만인에게 꽤나 가까워져 있었다.
이 경이로운 속도가 어린 시절 혹독한 훈련의 덕택인지, 아니면 강인한 의지의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지.'
스파르타인은 생각했다.
무장을 갖추고 희망에 부푼 채, 잘 살아보겠다 하는 이들을 보는 것.
그것은 결코 처음이 아니었다.
한때 그들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의 여정이 끝나는 것을 보았다.
들뜬 심장이 품은 희망. 그것이 맥없이 새어나와, 땅 속으로 스며들어 묻히는 광경을.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안돼.'
글라폴레스는 머리 위로 검을 들어올려, 다시 한 번 내려찍을 준비를 했다.
크로스가드에 묻은 검붉은 핏방울 몇 개가 흘러내려, 가면 위에 떨어졌다.
테스티아는 허리춤에서 작은 방패를 집어들었다.
그러며 양 옆이 움푹 들어간, 테두리가 날카롭게 갈린 작은 방패-호플론을.
야만인은 단창을 던졌다.
스파르타인 또한 전력으로 방패를 던졌다. 마치 원반을 던지는 듯한 자세로, 날아가는 투창을 겨냥하여.
-캉!
호플론은 창의 자루 가장 밑부분을 맞추었다.
나뭇조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창끝이 기묘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쉐에엑!
투창의 표적을 바꾸지는 못하였다.
테스티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채, 단창의 목적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녀의 눈은 글라폴레스를 향했다.
-콱!
투창은 단숨에 쯔바이핸더 검객의 갑옷을 꿰뚫었다.
사슬 갑옷과 갬비슨을 모두 관통하고서, 표적의 살갗 너머까지 창날이 도달한 것이다.
"으, 커헉, 윽..."
글라폴레스는 무릎을 꿇었다.
동굴 안에선 두 명의 병사가 튀어나와, 투르바레를 부축하며 재빨리 그녀를 피신시켰다.
가장 강대한 콰디족인 그녀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고통에 짓눌린 채, 반쯤 정신을 잃고서 이끌려 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사히 피신하자, 방패벽의 용도 또한 사라졌다.
더 이상 몰려오는 로마군의 압박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저 개자식들을 잡아라!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
구멍이 난 방패벽 진형은 붕괴되었고, 용맹하기를 맹세한 전사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그들은 모두 동굴을 향해 달려나갔다. 등 뒤에 가득한 붉은 방패의 행렬과 황금빛 독수리의 힘을 피해서.
장교의 명령에 따라 군단병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게르만 연합군은 천장에 연결된 밧줄을 끊었다.
그러자 굵은 밧줄로 보강한 나무벽이 내려와, 큰 소리를 내며 입구를 막았다.
글라디우스도, 스파타도, 코페쉬도, 그 어떤 무기도 그 벽을 뚫지는 못했다.
-이, 젠장할, 빌어먹을, 개 같은 야만인들 같으니!!
-비열한 새끼들아아아!!
군단병들의 고성이 숲 전체에 울려퍼졌다.
쯔바이핸더는 무릎 꿇은 주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무력히 흔들리며, 피를 흘리는 주인에게서.
테스티아는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았다.
글라폴레스는, 쓰러졌다.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누군가의 얼굴에는 여전히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