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쯔바이핸더 검객이여(2)
게르만 연합군은 충격에 빠졌다.
일전에 검투사 부대와 상대해본 적이 꽤나 있는 콰디 부족은 그 정도가 덜했으나, 안타깝게도 병력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건 마르코반니 부족이었다.
상대는 고작 300명에 불과했으나 상대하기는 어렵기 그지없었다.
일단 좌우익의 선봉을 서는 중무장 검투사, 크루펠라리우스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견고한 철제 판갑을 둘러, 게르만들의 검이나 단창으로는 도저히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도끼, 도끼를 꺼내라! 저들의 투구도 도끼를 막지는 못한다!!
이 상황에 능숙한 콰디족들은 재빨리 도끼를 꺼내들고 머리를 노리며 돌격했다.
도끼는 본디 머리 부분에 무게중심이 집중된 무기이기에 투구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콰디족의 병사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쉽게 저지당했다.
크루펠라리우스들 뒤에서 계속해서 견제를 넣는, 삼지창을 든 검투사 레티아리우스들 때문이었다.
날카롭고 긴 세 개의 창날은 게르만족의 사슬 갑옷을 손쉽게 관통해 내부 장기에 큰 피해를 입혔다.
삼지창에 비하면 사정거리가 절반 정도인 한손 도끼를 써서는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젠장할... 후퇴해서 대열을 가다듬고, 방패벽을 형성해라!!
원형 방패로 몸을 가리고 방패벽을 만들어 전진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삼지창을 막아내는 것을 본 레티아리우스들이 그물을 던져 대형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어부가 쓰는 단순한 그물이 아닌, 유리 조각과 금속 쪼가리 같은 무거운 물체를 붙여놓은 그물이었기에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레티아리우스들은 그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야만인들을 손쉽게 사냥했다.
마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처럼.
좌우익의 상태가 이리도 절망적이었기에,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대다수의 게르만 병사들은 적진의 중앙을 공략하려 했다.
그러나 세상 만사가 그렇듯,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는 법이다.
한때 다키아인들의 손에 들려 로마군의 방패를 찢어내던 팔크스는, 이제 로마인의 손에 들려 게르만 연합군의 방패를 박살내고 있었다.
2개의 곡도로 무장한 쌍검사 디마카에리들은 전진하며 갈갈이 찢겨나간 방패의 조각들 사이에서 적들의 목을 쳤고, 왼손에 갈고리를 낀 시소르들은 검과 도끼를 빼앗으며 스파타를 찔러넣었다.
온갖 애를 써서 쌍검사들의 뒤로 침투한 자들도 분명 존재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머지않아 사라지게 되었다.
물고기 투구를 쓴 무스밀로와 방패병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들 중에는 특이한 형태의 곡도를 들고 있는 여전사도 있었는데, 베는 힘은 상당히 강력해 게르만들의 투구를 반으로 쪼개버리는 데에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무스밀로의 글라디우스가 짐승 가죽과 어깨죽지를 함께 베어냈고, 켈트인 알몸전사의 창은 두개골을 관통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청동 방패를 든 스파르타인이 용맹히 싸우고 있었다.
그리스 알파벳으로 '람다'가 새겨진 청동 방패의 테두리는 철제의 날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날카로움은 야만인들의 목을 따기 충분한 정도였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거인이다!! 거인이 나타났다아아!!!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명의 사람.
-저, 저게 대체 뭐야?!!
게르만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런 괴이한 존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어째서 저런 형태의 무기가 세상에 존재할 수가 있는지.
발할라에 대한 믿음도 '저것'에 대한 공포를 없어주진 못하였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모를, 강철로 된 얼굴은 피와 뇌수로 얼룩진 채 빗물을 맞고 있었고 큼직한 몸통은 온통 새카만 색이었다.
어깨에는 비에 젖어 거의 넝마 꼴이 된 망토가 묶여져 있었는데, 그 꼴이 마치 나스트론드의 망자와도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대검이 들려있었다.
웬만한 사람의 키에 필적하는 길이의 검이었다.
그것을 맞은 자의 육신은 붉은 섬광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 육편으로 변했다.
마치 그 흉물의 정체가 저주받은 악신의 무기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용도인지, 검신의 날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게르만인들은 두려움에 빠져 흙탕물 위를 나뒹굴었고, 천둥과 함께 울려퍼지는 '저것'의 끔찍한 포효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았다.
-VUUUUUUUULT!!!!
그러다 가끔씩 울려퍼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음성에, 전의를 상실하고는 했다.
-DEAAAAAA-VUUUUUULT!!!
적진의 중앙에서 미친 사람처럼 빙빙 돌며 그 끔찍한 물건을 휘두르고 괴성을 내지르는 거인을 두 눈으로 목도한 자는, 어느새 자신의 머리가 터져나가는 감각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도저히 대적할 길이 없었다.
방패는 깨져나갔고 갑옷은 으스러졌다.
가까스로 공격을 시도해도, 저 흉악한 대검은 거인에게 무기가 닿기도 전에 게르만인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 절망적인 광경을 지켜보며 게르만의 병사들은 어렸을 적 들은 옛 이야기를 회상했다.
세계수의 몰락을 고대하며, 대지 밑의 저승에서 꿈꾸며 기다리는 반쪽짜리 여신과, 그 수하의 타락한 망자들에 대한 옛 이야기를.
그들의 존재는 더 이상 단순한 전설이 아니었다.
붉은 섬광이 비추는, 철로 된 얼굴과 불꽃을 형상화한 검신. 구속된 짐승을 연상시키는 숨소리와 표효음.
영락없는 망령의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게르만인들은 전투가 시작할 때 있었던 천둥과 번개의 참뜻을 알았다.
뇌신 토르께선 가호를 내리신 것이 아닌, 경고의 뜻을 전한 것이었다.
끔찍한 형상의 괴물이 찾아온다는 경고 말이다.
신과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마르코반니와 콰디의 병사들은 죽어갔다.
번개와 봄비가 내리는 동안, 게르마니아의 숲에서는 학살이 한창이었다.
***
"이-야-아-아-아-악!!"
내가 지금 몇 명을 죽였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10명은 넘겼다. 아까 전에 강화 수치가 75%에서 100%로 늘어났다는 알림이 뜬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세지도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고,
-띠링! 띠링! 띠링!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터지는 붉은 섬광과 알림음이 내 공세가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적들의 중심을 뚫으며 검을 계속 돌린다.
흔히 휠윈드라 부르는, 검을 끊임없이 회전시키며 빙빙 도는 동작이다.
일반적인 롱소드나 아밍 소드였다면 바로 등에 칼맞기 좋은 기술이지만 쯔바이핸더의 경우는 다르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한 번 관성이 붙은 쯔바이핸더는 매우 빠르고, 웬만해선 멈추지 않기에 단순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큰 위협이 된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땐 이만한 기술이 없다.
그렇게 한창 적들을 베어나가며, 사방에서 들려오는 알림음이 익숙해져갈 무렵,
“글라폴레에에에스!!”
기존의 것과는 뭔가 다른 소음이 내 청각을 자극했다.
그 소음은 영혼을 무의식에서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환희의 순간으로부터 날 유리시켰다.
"글라폴레스!! 대형에서 지나치게 이탈하지 말아라! 포위되었을 때 지원이 어렵다!!"
테스티아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아무래도 감정에 이끌려 너무 멀리 나간 모양이다.
아군과 같이 갈려면 동작의 크기를 좀 줄이는 게 좋겠지.
휠윈드 동작에서 잠시 탁(Tag)으로 전환한 뒤, 그대로 적을 내려베었다.
-띠링!
적의 몸은 방패와 함께 두동강이 났다. 언제나와 같이 붉게 발광하는 검신이 썩 만족스러웠다.
좌측 옥스를 유지한 채 세 걸음을 걸어, 다음 적의 얼굴을 찔러들어간다.
-콰자작!
적은 방패를 내밀어 얼굴을 가리려 했으나, 쯔바이핸더는 방패를 관통해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의 머리를 꿰뚫었다.
붉은 빛은 두개골 안에서도 발원하여, 순간 죽은 여전사의 머리가 사람 가죽을 씌운 전등으로 보였다.
발로 시체를 차내 쯔바이핸더를 뽑자, 피가 잔뜩 묻은 검신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가만, 뭔가 이상하다.
분명 죽인 것 같은데 왜 알림음이 안 울렸지?
-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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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피비린내 나는 거래》가 해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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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