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쯔바이핸더 검객이여(1)
"로마년들은 자기들이 함정에 걸렸다고는 생각도 못하겠지. 등신들 같으니."
원형 방패를 등에 멘 게르만 전사들은 매복 준비를 하며, 로마군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지금쯤 걔네들은 우리가 기껏 요새를 세워놓고선 도주나 했다며 낄낄거리고 있겠지?"
두 부족이 연합해 결성한 게르만 연합군의 수는 무려 1892명에 달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남자가 2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들 모두, 강렬한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성별 따위는 무관계했다.
"그 치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자각하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짓나 한 번 보고 싶군 그래."
전투는 훤히 꿰고 있는 지형에서 펼쳐질 것이고, 로마군은 방심할 것이며, 병력도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심지어 병력이 작전 장소에 모두 운집하자마자 뇌신 토르께서 천둥과 번개를 내려 승리를 예견해주시기까지 하였다.
"어디 한 번 와 보라지. 웃음을 짓는 편이 누가 되는지 한번 보자고."
이 상황에선 자신만만해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궂은 날씨 속에서도 열기를 내뿜으며 전투 준비를 하던 와중에, 한 마르코반니 부족의 병사가 입을 열었다.
"그, 족장님? 저기 뭔가 있는뎁쇼?"
이에 곰가죽을 뒤집어 쓴 마르코반니의 족장은 병사의 눈동자가 향한 곳을 주시했다.
빗방울 속에서, 뭔가 빛나고 있었다.
마치 금속의 반사광과도 같은 무언가가.
그 빛은 점점 커져, 갑주를 두른 사람과 삼지창, 그리고 검의 형태를 이루었다.
붉은 칠의 타원형 방패와 거기 새겨진 특유의 문양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충격에 휩싸인 족장은 발작하듯 소리를 질러, 모두에게 상황을 알렸다.
"적스으으읍!! 로마놈들의 적습이다아아아아!!"
***
저들의 당황한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어떤 이는 등에 멘 라운드 쉴드를 꺼내려다 바닥에 떨구기도 했고, 누구는 물기 때문에 검을 놓지기도 했다.
저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일그러지는 광경이 똑똑히 보였다. 마치 슬로모션을 건 것처럼.
저기에 깃든 감정이 공포인지, 분노인지는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고, 중요한 사항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저들은 죽는다는 것이다.
-마르스께서 함께하시길!!
-놈들을 전부 죽여어어어라!!
-URRRRGHHHHH!!!
사방에서 요란한 전투함성이 들려오는 가운데, 난 우측 폼탁(Vom Tag)을 좌측 옥스(Ochs)로 전환했다. 쉴하우였다.
그 상태에서 돌격하며, 곰가죽을 뒤집어쓴 여전사의 목을 노리고 찔러들어간다.
-푹
큰 소리는 나지 않는다.
칼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미세한 진동과, 플랑베르주 칼날이 목뼈를 스치는 감각이 건틀렛을 넘어 내 손에 전달될 뿐이다.
이윽고 피가 솟구쳤고,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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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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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긴 반투명의 누런 창이 떠올라 내게 축복이 발현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딱히 시야에 방해를 주지는 않는다.
역시, 저들도 죄인으로 치는구나. 내 예상이 맞았다.
-촤아아악!
검을 거칠게 뽑아내자, 시체의 목에서 요란하게 피가 솟구쳐 온 사방을 적셨다.
그리고 쯔바이핸더는 검신에 묻은 피를 흡수해 빨아들였다. 그 모습이 꼭 스펀지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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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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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보니까 축복의 지속시간이 고작 3초에 불과한 모양이다.
젠장맞을, 이게 말이나 돼?!
아니, 불평할 시간이 없다.
최대한 많은 적을 베어야만 한다. 축복이 끝나버리기 전에.
속으로 그리 되뇌이며, 좌측 플루크(Pflug)를 우측 옥스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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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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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은 검과 방패를 꺼내 날 겨냥했다.
이론상, 지금 하려는 동작으로 방패를 부술 수가 없다.
애초에 방패 자체가 잘 안 부숴지는 물건이기도 하고.
그러나 공격 방식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 최대한 힘을 싣고 공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3.6kg의 중량을 지닌 대검. 그것을 최대한의 속도로 휘두르며, 낮은 츠버크하우를 행한다.
쯔바이핸더의 검신은 빗물을 튕겨대며 크게 호를 그렸다.
그리고 마침내 검이 방패와 충돌했을 때,
-콰드드드득!!
쯔바이핸더는 붉은 섬광을 방출했다.
강한 타격은 방패를 붕괴시켰으며 상대의 팔을 절단했다.
그러나 검은 멈추지 않고 검로를 따라, 상대의 머리를 가격했다.
-깡!!
그것은 베기보단 폭발에 가까웠다.
섬광탄을 방불케 하는 빛의 향연과 함께 머리의 육편은 사방으로 비산했고, 온 사방에 그 내용물이 흘러넘쳐 빗물과 섞여 흘렀다.
쯔바이핸더가 본래 지니고 있던 3.6kg의 중량과, 물리력 75% 강화 버프를 주는 축복이 합쳐져 이루어낸 쾌거였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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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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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다시 시간이 채워졌다.
하지만 안심할 틈은 없다.
본디 쯔바이핸더를 쓸 때는, 절대 검을 멈춰서는 안되는 법이니까.
최소한 전투 중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검을 멈춰서는 안된다.
검을 멈추면, 관성에 반발하는 순간 죽는다.
분노한 다수의 적에게 짓밟혀서, 비참한 몰골의 시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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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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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보이는 상대는 둘.
모두 도끼를 들었고 갑옷은 로마군에게서 빼앗은 것인지 로리카 하마타를 입고 있다.
하지만 상관 없다.
축복 따위 없어도 사슬갑옷만 입었다면 갈비뼈 따위는 우습게 부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기왕이면 목을 노리는 것이 좋겠지.
반동을 이용해, 이번에는 좌에서 우로 진행되는 낮은 츠버크하우를 내지른다.
-콰드득!!
두 명의 머리가 동시에 날아갔다.
붉은 섬광이 일고 피가 흩날렸다.
목 근방은 분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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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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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되는 축복의 지속 시간을 확인하며,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크게 내려베었다. 존하우였다.
곰 가죽을 입은 게르만 병사는 자신의 방패와 함께 두 동강이 났고, 어깨뼈부터 골반까지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와 함께, 붉은 섬광은 거세게 내리는 비 속에서 번개처럼 밝게 일었다.
비에 적셔진 흙 위로 야만인의 내장이 쏟아졌고 쯔바이핸더는 피를 머금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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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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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검의 위치는 알버(Alber), 약간 좌측으로 치우쳤다.
재빨리 다음 적의 상태를 확인한다.
팔크스와 롬파이아에 의해서 방패가 찢겨나가고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게르만 병사들 사이로, 스파타와 비슷한 장검을 든 여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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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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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RRRHH!!!
표효와 함께 찔러들어오는 여전사. 내 방어가 비었다 생각했겠지.
흔히 범하는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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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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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아아아아!!"
알버 상태에서 검 끝을 위로 올려, 기습적으로 이어지는 찌르기, 공격의 속도는 빠르다. 검도의 찌름과 근본적으로 같은 기술.
눈으로 보고 피할 순 없다. 내가 구사하는 다른 모든 공격들과 마찬가지로.
-콰자자작!!
칼날은 투구 밑, 미간에 꽂혀 격렬한 소리를 내며 적색으로 크게 발광했다.
예상컨데 두개골을 부순 것이리라.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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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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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사의 검은 검신의 패링 훅에 닿지도 못한 채 바닥으로 떨어졌고, 얼굴에 꽂아넣은 쯔바이핸더를 뽑자 검의 주인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마치 미간 사이에 총을 맞은 듯한 험악한 몰골.
그 뒤로는 두개골의 보호 대상이 부채꼴 모양으로 배열되어,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이야아아아아아아!!"
표효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빗물과 섞인 끈적한 뭔가가 안면갑에서 흘러내리는 모습이 안면갑의 눈구멍 사이로 보인다.
뭐지. 살인을 했는데 딱히 찝찝함도 없고 흥분되기만 한다.
오히려 생각도 빨라지고 기본적인 근력도 더 강해진 것 같다.
이게 아드레날린의 힘인 건가? 아니면 유스티티아가 준 축복이 내 멘탈도 보호하고 있나?
내가 저들의 전사들을 썰어재끼는 동안, 게르만 놈들은 날 보며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러대었다.
"...RisArnir, RómvErjar Eru Hér MEò Risunuuuum!!"
도망치는 이도 몇몇 있었다.
"Hlauptu Í Burtu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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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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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쁘다.
지네들이 우리 로마를 침공해놓고서, 내가 정의를 집행하니까 날 손가락질하다니.
저들은 마마이트다.
문명에 대한 끝없는 모독이자,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유없는 위협, 고통, 그리고 역겨움의 총체.
마마이트는 그저 맛없는 잼이 아니며, 20세기 초에 개발된 신제품도 아니다.
그것은 오랜 개념이다.
인류 문명에 대한 무차별적인 반달리즘과 혐오를 상징하는, 오래된 개념.
그러니 수많은 국가들을 짓밟고 붕괴시키며 끝없는 해악과 환경오염을 퍼트린 영국에서 마마이트의 물리적 형상이 구현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어째서 마마이트가 검은 빛깔을 띄고 있겠는가. 만약 그것이 피식민자들의 말라붙은 고혈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마마이트, 심연의 부산물 마마이트가 저 좆 같은 야만인 새끼들의 영혼 속을 흐르고 있다.
로마는 분명 저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로마는 저들에게 문명 속에서 살 기회를 주었지만 그걸 거절했다.
귀화한다면 얻을 수 있는 찬란한 도시 문명과 법치주의를 거부하고, 사람 죽여다가 돈이나 뺐으려는 야만인들.
그리고 지금, 저딴 유사인간들이 내게 죄책감을 주려 하는 것이다.
저들을 살려둬서는 안된다.
해악은 죽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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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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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를 낮추고, 쯔바이핸더를 머리 위에서 채찍처럼 빙빙 돌리며 야만인의 무리 속으로 돌격한다.
저들은 방패 뒤에서, 그리고 갑옷 안에서 안전하다 믿겠지만 그건 거짓이다.
그 무엇도, 쯔바이핸더를 막을 순 없다.
관성과 축복을 품은 쯔바이핸더는, 순수한 힘 그 자체이기에.
또한 충분히 강대한 물리력은, 결코 마법과 구분할 수 없기에.
-깡!!
상대가 부서질 때마다 요란하게 알림이 울리며, 축복의 지속시간이 갱신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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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거래》발동, 해제까지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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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이 살에 닿을 때마다 붉은 섬광이 일었다.
목이 잘려나가고, 피분수와 내장 찌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끔찍한 광경이다.
하지만 끔찍하지 않았다.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아주 올바른 광경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열기가 솟구쳤다. 주체할 수 없는 통쾌함이.
빗방울에 반사되어 튕기며 발광하는, 찬란한 핏빛 섬광 속에서 찬송을 부르짖는다.
"VUUUUUUUULT!!"
더 크게, 더 명확하게 외쳤다.
"DEA, DEAAAAAA VUUUUUUUULT!!!"
아아, 힘이여.
마마이트를 찢고 깨트리고 터트리는, 여신의 힘이여.
힘의 축복을 내린 유스티티아에게 영광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