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로마와 쯔바이핸더 검객-13화 (14/67)

EP.13 조금 많이 돌아버린 초인(2)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페이아의 머리 속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본래 광인은 자신을 광인이라 여기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광인도 나름의 행동 근거와 규칙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정상인이 광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빵과 빵 사이에 빵을 끼워서 먹는 음식이 실존하며 누군가는 그걸 샌드위치라 부른다는 소리를 들으면 본능의 수준에서 부정을 하고야 말듯이, 정상인이라면 도저히 광인의 사고체계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존재의 실존을 이해하는 순간, 인간의 연약한 정신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오염되어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은 무저갱의 심연, 그리고 마치 전통 영국 요리를 파는 영국인과도 같은 것이다. 전통 영국 요리라니? 전통적인 영국의 음식은 결코 요리라는 명칭으로 불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국 요리가 요리에 대한 모욕이 되듯, 광인의 이성은 이성에 대한 모욕이 되는 것이기에.

어쨌든 간에, 이 논리는 이페이아에게도 통용이 될 것이다.

즉, 저 미친년에게도 나름의 제대로 된 사고관이 있다는 소리. 하지만 역시, 두렵다.

아무래도 내 정신은 빵 샌드위치를 뛰어넘는 충격을 견뎌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내 정신은 아직 젖은 샌드위치에 필적하는 광기를 견뎌낼 준비가 되지 않았어.

아니, 아니지. 젖은 샌드위치? 그딴 끔찍하고 역겨운 게 이 현실에 존재할 리가 없잖아?

"휴, 무거워라. 좀 쉬었다 가자."

한참 날 앞서가던 이페이아가 잠시 멈춰, 숨을 들이쉬며 그리 외쳤다.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거 보면 엄살은 아닌 것 같다.

"후우우."

멧돼지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놓였고, 이페이아는 흙 위에 드러누워서 거세게 숨을 들이쉬었다.

솔직히 저게 작은 편은 절대 아니지. 여자보고 저런 거 들라하는 데서 약간 죄책감이 느껴지긴 한다. 근데 초인이라면 저 정도는 들어줘야 하는 게, 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망할, 정액만 제대로 자궁에 담아왔어도 이 꼴은 아니었을 텐데. 이씨, 짜증나!"

이페이아는 분하다는 듯 누운 채로 쾅쾅 발을 굴렀다. 그녀의 한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진짜, 그때 마개를 빨리 끼워놨었어야 하는데! 다 새서 이 꼬라지야! 염병!"

...그래, 문화 차이. 문화 차이다. 뭔가 되게 이상한 방식으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 것 같지만, 이 세상에서는 저게 맞는 말일 수도 있지.

광인의 이성은 결코 이해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그냥 그런 게 존재하는 구나, 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만이 상책인 것이다.

하지만 그 광인이, 나랑 한 판 질펀하게 떡친 여자라면 약간 얘기가 다르긴 하다.

애초에 사람이 잔뜩 빡쳐 있는 건 영 보기에 안 좋기도 하고.

좀 격정을 진정시켜줄 필요성이 있다.

"뭐, 내가 대신 들어줘?"

"됐어 임마. 내가 남자한테 그런 거 시킬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지. 그리고, 정액 없다고 갑자기 약골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쉬고, 닦고 다시 출발하면 돼."

호흡을 고르며 팔을 대자로 펴는 이페이아.

흙이 너무 많이 묻는 거 아닌가.

저렇게 쓰러져 있는 걸 보면 초인치고는 약한 게 아니냐 물을 수도 있는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휴우우..."

왜냐하면 30분간 숲 속을 쭉 걷는 건 나에게 있어서도 꽤나 기력을 요구하는 일이니까. 물론 나야 사슬 갑옷 구보 연습을 한답시고 갑옷을 풀로 빼입고 온 상태이니, 이페이아는 이것보단 낫긴 할 거다.

그나저나 난 대체 왜 숲 속을 갑옷 입고 ‘연습 삼아’ 걸어가볼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걸까. 그건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어쩌면 급변한 주변 환경 탓에 판단력이 상실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침묵 속에서, 풍광을 둘러본다.

서서히 피어나는 나뭇잎들과 가지들을 뚫은 오후의 햇빛은 땅을 조용히 비추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실로 평화로웠다.

시원한 바람은 얼굴을 헤치며, 달아오른 체온을 식혀주었다.

-꾸, 꾸구. 꾸, 꾸구.

그리고 이상한 새소리도 나고.

그나저나 쟤네는 정체가 뭘까. 비둘기인지 부엉이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 참에 이페이아한테 궁금했던 거나 물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질문 하나만 하자."

"...뭔 질문?"

"네 문신은 의미가 뭐냐?"

이페이아의 몸에는 큼직한 나무와 자궁문신, 그리고 기하학적인 덩쿨문양들이 그려져 있다.

일단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은근 신성해보이기도 하는데, 정확히 뭔 의미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모른다 해도 별 상관은 없지만, 인간에게는 본디 학문적 호기심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다.

모르는 걸 알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기초적인 욕망 중 하나니까.

"아, 그거?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건 아니고, 대략 3개쯤 있어."

흙바닥 위에 털썩 주저앉아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이페이아는 손으로 자신의 문신을 가리키며 그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단순한 건, 임신하고 애 낳았을 때 뭘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거야. 여기, 아랫배에 자궁 있지? 여기로 씨 받으면 나무 키우듯 임신하면서 배가 커지는데, 그러다 애 낳으면 두 쪽 가슴으로 젖과 사랑을 주면서 키우라는 의미야."

이페이아의 사타구니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흙을 거세게 때리는 소리가 담담한 설명 사이를 파고들어 내 고막에 전달되었다.

그녀가 하는 짓은 매우 더러운 행위인 게 분명했지만, 내 0.1 쯔바이핸더는 또다시 빳빳히 서서 존재감을 표출했다.

근데 보다 보니까 좀 꼴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슬슬 이상성욕에 빠져가는 걸까?

"두 번째 의미는 정체성의 표시야. 이 젖꼭지에 있는 해와 달, 그러니까 사랑과 유쾌함도 중요하지만 이 자궁으로 받아들이는 정액, 즉 남자에게서 이어받는 힘과 본능도 중요하다는 거지. 나무를 제대로 키울려면, 땅도 좋아야 하고 빛도 제대로 들어야 하잖아? 비슷한 맥락이야."

슬슬 물줄기의 세기가 줄어들었고, 보지에 묻은 잔여물을 털어내고자 이페이아는 약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세 번째 의미는 자연에게 내가 적이 아니란 걸 알리는 거지. 우리들도 다른 짐승들처럼 햇빛과 달빛 받으면서 살고, 나무 밑에서 쉬기도 하고, 성교의 기쁨을 알고 애들 키우면서 사는 비슷한 존재라는 걸 몸에 새겨넣는 거지. 자연 앞에서 오만해지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볼 일을 다 본 이페이아가 젖은 흙을 피해서 일어났다. 그녀가 기지개를 쭉 펴자, 탄탄한 11자 복근이 햇빛을 받고 황금색으로 빛났다.

"이제 좀 낫네. 보지랑 얼굴 좀 닦고 슬슬 옷 입어야겠다. 경비병들한테 잔소리 듣고 싶지는 않거든."

그리 말한 이페이아는 터벅터벅 개울가로 건너가 물에 다리를 반쯤 담갔다.

"근데 설마 지금 자위하는 거 아니지?"

"찬물 가지고 딸치는 미친년이 어디 있어?"

약간의 격정을 담아 외친 이페이아는 개울물에 다리를 반쯤 담근 채 몸에 묻은 흙과 사타구니, 보짓구멍 안쪽을 벅벅 닦아냈다.

그것도 내게 전면을 드러낸 상태에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질문이나 더 하는 게 아무래도 더 좋을 것 같다. 하나하나 진지하게 생각하다간 정신이 나가버릴지도 몰라.

"등에 있는 문신은?"

"그 덩쿨이랑 깃털 그려져 있는 거?"

이페이아는 그리 말하며 내게 등을 보여주었다.

과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해 신체미를 돋보이게 하는 등근육. 그 위에는 깃털로 덮인 한 쌍의 날개와, 척추가 있을 자리에 그려진 꼬인 밧줄이 그려져 있었다.

"생각은 하늘의 새처럼 자유롭게 풀어두되, 결코 혼자서만은 살 수 없음을 기억하라!"

-촤악!

큰 물소리와 함께 이페이아의 얼굴에 물이 끼얹어졌다. 초인은 세수도 시원시원하게 하는 모양이다.

내가 저 짓을 따라했다간 바로 저체온증 걸려서 인생 하직하겠지.

"이야, 역시 사람은 목욕을 하고 살아야 해. 섹스가 좋긴 한데 몸에 너무 뭐가 많이 묻는 게 문제라니까."

손을 휘저으며 머리에 묻은 물을 털어내는 이페이아. 뒤에서 비치는 빛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이콘의 후광과도 같았다.

무엇보다 존나 아름다운 미모이긴 하다.

화장품 따위는 전혀 바르지 않았음에도 고운 피부와 그와 대비되는 새카만 머리칼, 그리고 광원효과를 덧입힌 듯한 새파란 색깔의 눈.

21세기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야생의 짐승미가 넘치는 고양이과 동물같은 상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장난기 많은 퓨마같은 느낌.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아름다운 입에서 나오는 천박한 단어들이겠지.

"근데 켈트족은 평소에도 그러냐?"

"뭐가?"

"이런... 섹스니 좆이니 보지니 하는 직설적인 그런 거나, 뭐 그런 거."

내 진지한 질문에 이페이아는 코웃음과 함께 답했다.

"뭐, 내가 좀 직설적인 편이긴 해. 그래도 다들 로마애들보다는 훨씬 내숭 떠는 게 적지."

"그러다 잘못하면 싸움나지 않나?"

"싸움이 날 사람이면 싸움이 나겠지. 나랑 싸우기 싫으면 평소에 잘 대해주면 되고. 이 게을러 터진 남부 인간들은 죄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진실성이 없어."

남부 인간들이라면, 이탈리아 본토를 얘기하는 걸까.

이페이아는 농담조로 말했지만, 그 안에는 약간의 냉소가 숨어있었다.

본래 이민을 가서 몇 년씩을 살았다고 해도, 그 나라가 모국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나고 자란 나라에서의 경험은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기에.

나야 이민을 가본 적이 없으니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누나는 그렇다고 했다.

"어디는 안 그러겠냐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

그리 답하곤, 사타구니와 가슴에 천을 두르는 이페이아. 그녀가 말을 잇는다.

“하여튼, 도시는 다 좋은데 사람이 문제야. 더럽게 많은데 질도 떨어진다고.”

저 도시라 함은 아마 로마를 의미하는 것이겠지. 무려 대제국의 수도니까, 분명 인구가 많기는 할 거다. 켈트식 부족 사회의 인구 밀도와는 차원이 다를 테지.

“아무튼, 이제 슬슬 가자고. 여기서 더 꾸물거리다간 해가 져버릴 지도 몰라.”

다시 멧돼지 시체를 짊어진 이페이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은 섬뜩한 생각이 떠오른다.

어쩌면 1900년 가량의 시간 간극은 너무나 커서, 나는 결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사실 시간 간극 말고도 문제가 많기는 하지. 지리적으로는 거의 서울의 지구 반대편으로 떠밀려 온 데에다가, 남녀의 입지도 정반대인 세상이니까.

날 여기로 보낸 그 미친 여신은 나보고 정의를 찾으라 했다. 거의 온 세상의 정반대에서 온 사람을 데려다가, 존나게 어려운 과업을 때려박은 거라고.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광인의 정의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겐 정상인 것도, 다른 누군가에겐 광기로 비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광인이 되고 싶지 않다.

결코,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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