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2)
이 세상엔 결코 정상적인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기행들을 일삼고, 차마 보편적이라 부를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 그들은 이 세상에 적지 않은 수로 존재한다.
근데, 시발. 그냥 지식으로 아는 것과 온 몸으로 존재를 체험하는 건 전혀 다른 거라고.
대체 왜 저런… 이상성욕을 지닌 자가, 용납될 수 없는 개지랄을 읊는 미친년이, 대체 왜 내 눈앞에 존재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것도 망할 군대 한복판에서?
외형은 분명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아니, 멀쩡한 것 이상이라 해야 맞을 거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푸른 눈동자와 말 그대로 새하얀 피부, 큰 키와 적당한 가슴, 그리고 골반까지. 웬만한 모델도 이 정도의 외모를 가진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 신체 너머에 숨겨진 정신은, 아무래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 잠깐만, 수간이요?"
"로마 가면 한번 봐봐. 엄청... 야해."
이페이아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발정기 온 늑대랑 최음제 먹은 여자가 미친듯이 떡치다가, 온 사방에 정액을 받고 일어서면 보지에서 오줌처럼 좆물이 줄줄 흐르지. 그 상태로 발기한 개좆을 정성스럽게 빠는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고. 몸 전체에서 음탕함이 뿜어져 나온다니까?"
씨발, 정신 나갈 것 같애.
이 미친 인간을 빨리 진정시켜야만 한다.
"자, 잠깐만-"
"소랑 교미하는 것도 볼만하더라. 미노타우르스 탄생의 재현이라던데 소 정액이 꿀렁거리면서 역류하더라고. 엄청나게 싸더라 진짜."
"거 그만 좀 하시죠?"
마침내 내가 뭐라 한 마디 하자 이페이아는 날 빤히 쳐다보았다.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투의 표정이었다.
"뭐야, 남자들도 야한 얘기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어, 그게 맞기는 한데..."
"맞기는 한데 뭐."
그런 말이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거나 들어버린 사람은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놔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돌아버린,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사람은 미쳐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근데 어째서인지, 지금 내 정신이 그 위험한 선에 살짝 걸쳐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좋지 않아.
그렇게 내면의 고뇌에 3초 정도 사로잡혀 있었을까, 이페이아의 불량스러운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내숭 떨지 마, 새꺄."
"…예?"
이건 또 뭔 개소리일까.
내숭? 대체 뭐가 내숭인데?
"안 꼴렸다고 하기엔 빳빳히 선 거 아냐?"
…잠깐.
난 황급히 내 하반신을 내려다보았고, 그곳에서 이페이아의 하얀 손을 보았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이페이아는, 어느새 갬비슨 자락을 들추고 바지 너머로 드러나는 내 물건의 발기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 얘기를 듣고 선 게 아니라면..."
단발머리의 켈트인은 두 손으로 기어서 내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무엇을 봤길래, 이리도 단단히 서있을까?"
극히 혼란한 상황이지만 할 말은 하고 죽으련다.
난 그 좆같은 수간썰을 듣고 꼴린 것이 아니다. 결코, 절대로 아니다.
비록 주변인들에게서 간간히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다고 평가되긴 하지만, 결코 염병할 놈의 퍼리는 아니란 말이다. 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넘지 않았다.
이번 발기는 그저 이 미친년의 아름다운 외형을 인식함에 따라 일어난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
"검도 크고 덩치도 크고 자지도 크고. 아주 그냥 짐승이 따로 없다, 그치?"
이페이아의 손길이 면바지를 넘어 내 0.1 쯔바이핸더에 전달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해서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고들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공포를 느끼고 있다.
존나게 큰 공포를.
용수철이 튕기듯 재빨리 일어나며, 4피트의 최소 안전 거리를 확보한다. 그러곤 간절히 외친다.
"자, 잠, 잠깐만요!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번만 들어주십시오!!"
어떻게든 음심을 품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이상한 기류가 지속되다간, 아무래도 영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어두운 복도 앞에 놓인 인간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려는 것처럼, 내 무의식 또한 이 해괴한 상황을 회피하려 드는 것이다.
그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우 강력한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내 감은 결코 나쁜 편이 아니다.
그래, 딱 한 번만 선을 넘자. 딱 한 번만 수간썰을 듣고 자지가 꼴렸다고 구라를 치는 거야. 혹시 모를 위험을 굳이 마주할 필요는 없어.
"그, 예. 꼴렸습니다! 그 수, 수간을 했다, 아니 봤다는 이야기가 말입니다! 그래서 발기를 했습니다!"
어째 입에서 나온 건 말이 아니라 그냥 단어를 나열한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듯 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이페이아의 말투는 냉랭했다.
"너 왜 거짓말하냐."
"아, 아닙니다! 전 절대-"
"너, 날 봤을 때부터 발기해 있었잖아. 숲 속을 뛰어다닐 때도 서 있었고."
어, 음.
2세기 켈트인 검투사라고는 해도, 인간의 동체시력이 이렇게 뛰어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 잠깐동안 나풀거리는 갬비슨의 틈 사이로 바지의 윤곽을 관찰해서 자지가 서 있는 걸 봤다고? 그딴 게 사람이냐?
심장이 벌렁거리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신속해야만 한다.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과 오해를 샀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 그러나 일부분의 진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통해 마음을 풀어야만 한다.
생각해라, 글라폴레스. 좆빠지게 멋진 이름도 얻었는데 제대로 살아야 할 것 아니냐.
"그, 그게..."
천 년과도 같은 1초가 지나고, 논리회로가 정리되었다.
좋다. 완벽한 문장이 준비되었다. 이제 말만 하면 돼.
굳건한 기세로, 입을 연다.
"씨발련아!!"
"…뭐?"
"남 쥬지는 왜 처보고 지랄이야?! 꼬우면 옷을 좀 처입고 다니던가!! 느그 알몸을 처보고서 발기가 안 되는 건 고자새끼들 밖에 없어!!"
아, 이런.
망할.
급발진을 해버리고야 말았다. 중간에는 멈췄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스트레스로 과부화된 뇌가 큰 실책을 저질러버린 모양이다.
이페이아는 내 말을 듣자 잠시 사고가 정지된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래, 혼란스럽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난 곧 있으면 영창으로 끌려가버리고야 말 테니까.
어쩌면 교수대로 끌려가게 될 지도.
아아, 그리운 나의 집이여, 나의 통장이여.
이제는 아무래도 볼 일이 없겠지. 아무리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품고 있었는데.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하며, 가까웠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 앞을 스치는 듯 했다.
누나, 엄마, 아빠.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의 얼굴은 결코 또렷하지가 않았다. 마치 안개에 쌓인 듯 흐릿해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
너무 오래 전에 갈라서고 헤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얼굴 못 본 지도 나름 오래됐으니까. 대략 4, 5년 정도 되었지.
이런 게 주마등인 걸까.
...내가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이, 새끼-"
이페이아의 목소리가 내 정신을 깨워, 다시 현실 세계로 되돌려 놓았다.
보아하니 슬슬 그녀의 두뇌가 상황을 분석해 나가는 듯 하다.
근데 생각해보니 너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 일단-“
"푸흐, 푸흐하하하핫!"
뭐야, 웃어? 어째서?
내 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심스러웠으나, 이페이아의 표정은 명확한 웃음의 증거였다.
"그러니까, 내 몸매가 존나게 꼴린다는 거지? 누구나 보면 다 자지 세우고 달려들 정도로?"
이페이아는 그리 말하며 쾌활하게 일어섰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내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좋네, 기분 째져. 굳이 꼬실 필요도 없겠네."
입술을 싹 핥으며, 그리 말하는 이페이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곧 내 하반신이 더욱 더 뻐근해질 것이라는 것. 그것 하나 밖에는 없다.
사실 이미 존나게 아프긴 하지만.
"옷 제대로 입고 다니라고?"
나로부터 두 세 발짝 떨어진 이페이아는 혁대를 벗어 바닥에 두고 유일하게 걸친 옷가지를 풀어헤쳤다.
"네 아랫도리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가슴팍만 가린 긴 흰색의 천, 그것이 벗겨지자 그녀의 알몸이 드러났다.
"얌전한 척 때려치우고, 좆이나 제대로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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