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검투사 부대(2)
결투라니.
이건 아니잖아 싯팔.
내가 나름 대련을 해봤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상대로 했던 거라고.
전문적인 전사 집단 상대로 했던 게 아니란 말이다.
"자, 신입? 그다지 걱정하지는 마. 봐주면서 한다니까? 크게 다치진 않을 거야."
그 단발 머리의 여자가 담담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방패만 쓰는 기괴한 취향의 타격대장, 테스티아가 날 이 병영에 방치해놓고 사라지자마자 주위 여자들이 멋대로 결투판을 만들어 버렸다.
-난 저 신입이 진다에 한 표 건다.
-나도 동의!
저 망할 선임들은 여유롭게 불가에 모여앉아 보리죽을 퍼먹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여유로워서 좋겠다, 이것들아.
느낌이 영 좋지가 않다. 여기서 지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후우우..."
하지만 지금은 그딴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결투의 때니까. 잡생각에 휘말리면 질 확률이 높아진다.
눈앞의 상황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자세가 꽤나 각이 잡혀있네? 대검을 폼으로 들고 다니는 건 아닌가 봐."
일단 난 폼탁(Vom Tag)을 취하고 상대가 공격하길 기다렸다.
막대기 자체는 대략 단창과 롱소드 사이 정도의 길이. 일반적인 롱소드 검리를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손을 보호하는 크로스가드가 없으니 관련 동작을 자제해야겠지만.
나무막대기의 마찰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 와인딩이야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리스크가 따른다. 타격과 거리 유지를 중심으로 밀고 나가야 그나마 승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니다.
저 인간의 괴이한 옷차림, 그것이 문제다.
저 단발 머리 검투사 또한 나름의 기인인 것인지, 가슴과 사타구니에 두른 천 말고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라 압박감이 컸다. 거기에 흑청색 문신들까지
반나체 검투사라니, 공포스럽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지?
"그럼 네 실력을 한 번 보자고."
한편 단발 머리도 웃음기를 거두곤 막대기를 오른손으로 한 바퀴 돌려 날 향해 쭉 내밀었다.
그렇게 대략 3초 가량 미묘한 대치상태가 이어졌을 즈음,
"핫!"
공격이 시작되었다.
왼쪽에서부터 날라오는 베기를 존하우, 대각선 베기로 막는다.
둔탁한 소리가 났고, 약간 나무 조각이 튀었으며, 강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상대가 반격하기 전에 무기에 대한 제어권을 뺏어야만 한다.
힘이 약하게 실리는 윗부분을 향해 막대기를 올려쳤으나,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촤차자자작!!
양쪽 모두 팔이 하늘을 향했고, 몸이 비었다. 근데 저기 날아오는 살색의 형체는 대체 뭐지?
망할, 발차기다!
"으악 씻팔!"
바닥을 굴러 옆으로 피하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이 미친 인간이 발차기를 써?
기만엔 기만으로 대응하는 법, 난 폼탁에서 알버(Alber)로 자세를 전환했다.
"이야, 너 좀 한다?"
단발머리는 그리 말하며, 내 주위를 빙빙 돌며 간을 보았다.
내 중앙의 빈 틈에 시선이 고정된 것이 느껴진다.
막대기가 올라가고, 시간이 느려졌다.
목을 노리며, 막대기를 쭉 내밀며 찔러 들어간다.
"읏!"
상대는 내려치려던 막대기의 방향을 전환해 내 공격을 옆으로 흘리려 했다.
하지만 내가 공격한 곳은 중앙이 아니다.
허리를 숙이며 오른쪽으로 발을 내딛어 공격을 피하고, 연이어 왼발에 체중을 싣는다.
그리고 오른손을 왼쪽으로 틀고, 왼 팔을 몸 쪽으로 비틀며 힘을 주어 뻗는다!
여기서 목을 찌르면 내가 이긴다!
"어억!"
"...윽!"
어깨에 욱씬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맞았다.
염병할, 이 지랄을 떨었는데 졌다고?
"…오호?"
근데 상대의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그저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상대를 가격했을 뿐인 듯 하다.
목 쳤으면 좀 크게 다쳤을 텐데, 공격이 약간 빗나가서 다행이다.
사실 원래 스파링할 때는 머리를 노리는 편인데, 지금은 보호구가 없지 않은가.
그 탓에 습관적으로 머리를 노리다 무의식적으로 목으로 대상을 바꾸긴 했는데, 따져보면 별 차이가 없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머리는 두개골이라도 있지.
"그런 건 처음 보는 자세인데."
단발머리는 내가 찌른 어깨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겉으로 보기엔 상처는 없는 것 같긴 한데 말이지.
그나저나 저 여자, 힘이 확실히 강하다.
웬만한 단검이나 일반적인 한손검 정도는 가뿐히 막는 갬비슨을 뚫고 충격을 전달시켰으니, 역시 검투사는 검투사다.
만약 제대로 된 무기를 들고 전력으로 싸웠다면 내 팔다리를 몸체로부터 독립시켜버렸을 지도 모르지.
근데 잠깐만.
나 따지고 보면 지금 선임 팬 거 아닌가?
좆된 거 아냐 이거?!
"죄,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서 재빨리 사과를 했다. 이 정도의 강자에게 원한을 살 생각은 없다.
"얌마, 난리 좀 떨지 마. 난 검투사라고. 멀쩡하니까 신경 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래도 묘하게 빡친 듯한 기색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적당히 조인트 까이는 게 정체불명의 위기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됐고, 그 검이나 한 번 휘둘러 봐라. 뭔 사람 키만하던데 어떻게 쓰나 한 번 보자."
단발머리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게, 그거 어떻게 쓰는 거지?
-저거 제대로 휘두를려면 고대 영웅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근데 주변의 반응이 어째 심상치가 않다. 뭐, 처음 보는 기이한 무기를 들고 왔으면 그걸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는 게 인지상정이긴 하다.
아무래도 2세기 로마인들에게 15세기 대검을 다루는 법을 보여줄 때가 온 모양이다.
쯔바이핸더(Zweihänder).
영어로 풀이하자면 투핸더, 즉 양손으로 쓰는 검이란 뜻이다.
나름 인지도는 있는 검이다. 게임 같은 데에서 은근히 많이 나오는 편이니까.
하지만 이걸 정확히 어떻게 쓰는지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뭐, 안될 것 없죠. 일단 좀 떨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칠 수도 있습니다."
쯔바이핸더 검술을 보여달라기에 연습에 쇼맨쉽을 겸해서 뭔가 멋진 것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있다.
검집에서 검을 꺼내기 전에 리카소에 감아놨던 헝겊을 풀어 내 주머니에 잘 쑤셔넣었다.
방어용 돌기인 패링 훅이 칼집의 진입을 막기 때문에, 리카소 부분은 검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해서 관리를 해놔야 하는 거고.
가죽 커버 같은 걸로 덮어놓는 사람도 있던데, 그렇게 하면 편하긴 하지만 멋지지가 않다.
-스릉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마찰음이 울리고, 플랑베르그(Flamberg) 양식의 물결치는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날의 이런 형태는 단순히 미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타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도 있다. 일단 칼날이 이따위로 생겨먹었으면 상처가 되게 더럽게 난다고 하니까.
물론 사람한테 실험해봐서 아는 건 아니다. 당연한 소리지.
-저거 한 번 휘두르면 힘 다 빠질 것 같은데.
-헤라클레이아나 아킬레스 정도는 와야 제대로 쓰겠다, 근데 저걸 전장에 들고 나간다고?
-애초에 난 저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가. 철을 저렇게 길게 만들 수가 있는 거였어?
하여간 21세기나 2세기나 사람들 반응은 거기서 거기다. 저걸 어떻게 휘두르냐는 둥, 힘이 다 빠지겠느니 뭐 그런 말이 항상 나온다.
뭐 영화나 게임에서 하는 것 마냥 힘으로 휘두르면 당연히 그리 되겠지. 단순히 힘을 때려박아서 트루 투핸더 쓰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잡생각은 됐고, 기본부터 시작해보자.
검신 끝을 땅에 닿게 하고, 중세 기사를 그린 조각상의 자세처럼 폼멜을 잡았다.
-팅!
그러고는 검신을 발로 차올려 공중에서 한 바퀴 돌리고, 머리 오른편에서 수평으로 놓이게 잡는다.
낮은 높이의 옥스(Ochs), 일명 황소의 자세다.
대개 서브컬쳐에서 검을 들면 붕쯔붕쯔거리며 회전을 하고 대검을 들면 진중한 일격으로 상대를 끝장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헛!"
쯔바이핸더 검술은 회전에서 시작해 회전으로 끝난다.
-붕붕붕!
즈버크하우, 뒷날 크럼프하우, 낮은 즈버크하우, 뒷날 쉴하우를 연계해서 물이 흐르듯이 검을 휘저으며 돌리고 또 돌린다.
그리하여 발생하는, 3.6kg의 무게에서 나오는 원심력과 관성은 일반적인 검보다 더 빠른 움직임과 파괴력을 보장해준다.
때로는 몸 자체를 회전시킬 때도 있는데, 그렇다 해서 등에 칼을 맞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빠른 공격과 웬만한 폴암 급의 긴 리치 탓에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짓만 계속 해대면 균형감각이 상실되면서 땅에 처박히겠지만.
-무, 무슨... 뭐야 저게?
-뭔 채찍을 다루는 것 같기도 하고.
르네상스의 기사들은 이 파괴적인 검술로 성문이나 다리 위에서 다수의 적을 저지하곤 했다. 물론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었다는 사실을 감안하긴 해야겠지만, 이 검 자체가 다대일에 강한 건 사실이다.
본래 검의 별명이 만병지왕이긴 하지만, 그게 검이 가장 출중한 성능을 보인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사정거리의 측면에선 창에게, 절삭력에서는 도끼에게, 타격에서는 워해머에 밀렸으니까.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검은 점점 길어졌고, 결국 폴암의 수준에 맞먹을 정도로 길어져 진정한 양손검으로 거듭나며 진정한 만병지왕이 되어버리고야 만 것이다.
창의 리치와 롱소드의 다재다능함, 할버드의 파괴력과 레이피어의 아름다움을 담은, 참된 상남자의 검.
그게 바로 쯔바이핸더의 본질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휘우우웅!
오른발에 무게를 싣고, 몸 전체를 회전시킨 존하우로 공격을 끝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꽤나 살벌했다.
"...휴!"
언제나 그렇듯 땀이 좀 났다. 이 갬비슨 밑에 땀 흡수 잘 되는 쫄쫄이 같은 걸 입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갑옷에서 땀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검신 끝을 땅에 닿게 해놓고 건틀렛을 벗어 머리에 맺힌 땀을 털어냈다. 그러면서 대충 선임들의 반응도 훑어보았다.
-뭐야? 신기한 검술을 쓰네?
-게르만 새끼들도 저거 보면 기겁하면서 도망치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는데.
-그건 망할 중장비병들이 도착해야 알 수 있겠지. 그 새끼들은 뭔 거북이 위에 타고 오냐고.
박수 소리, 휫파람 소리, 기타 등등. 역시나 반응은 좋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검보다 훨씬 강한 무기가 넘쳐나는 21세기에도 쯔바이핸더를 휘두르면 관심을 한 눈에 받으니.
그야, 누가 쯔바이핸더를 싫어하겠는가? 대검을 싫어하는 사람은 멋을 모르는 사람들밖에 없다.
"얌마, 신입! 검은 그만 휘두르고 아침 먹어! 네 꺼 죄다 식겠다!"
어느새 불가 주위로 이동한 단발 머리 검투사가 죽을 한 바가지 퍼서 입에 쑤셔넣으며 내게 말했다. 맛있게도 먹네 거.
식중독 얘기를 들어서 좀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솔직히 팔팔 끓인 보리죽 먹고 식중독 걸리면 그건 그냥 재수가 없는 거다.
그러니 뭐 어쩌겠는가. 먹어야지. 이 따위 꺼 먹고 허무하게 죽을 운명이면 그냥 다시 영면에 드는 게 낫다.
한 번 뒤져서인지, 아니면 신을 만나느라 기력을 죄다 소진해버렸는지 존나게 배고프기도 하고.
...식중독, 안 걸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