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아빠와의 첫키스. 그러나...
한 때는 이제 그렇게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새벽의 거실에서 지현이의 눈물을 본 그 날 이후에도 진우가 주희에게 마침내 결별을 선언하기
까지는 약 한 달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그 이별의 말을 듣는 순간 주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진우는 말을 이어갔다.
"딸아이가 너와의 일을 눈치채었어.. 그런데 그 때문에 그 아이가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아..
이제 중2에 올라가는.. 아직 어린아이야.. 감수성 예민하고.. 사춘기에..."
'사실은 아내가 너와의 일을 알았어.. 그녀는 지금 자신의 처지 때문에 뭐라 말하지 못하지
만.. 너무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아...'
진우는 속마음과는 다른 말들을 이어나갔다.
"나는 지금 딸아이 없이는 살 수 없어.. 아내가 죽은 후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야.. 그 아이가
상처받는 일은.. 이제 할 수가 없어..."
'나는 더 이상.. 사랑하는 아내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어...'
"그.. 그렇군요.. 결국에는 그렇군요.. ...... "
주희는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말문을 열었다.
"미안하다... 주희야.."
"아 아니에요.. 미안하기는 요.. 이해해요.. 이해 한다구요... 사 사실은.. 이렇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불안했어요.. 나..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세요... 우윽.. 윽.. 흐흐흑..."
주희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진우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소리를 죽여 울먹이는 주희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아 위로해주고 싶었
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결심이 무너질 것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주희와 헤어지고 돌아온 저녁 진우의 마음은 참담했다.
그녀에 대한 죄책감. 아니면 연민?
집에 돌아온 것은 한 9시경이었다.
"피곤하니.. 나 그냥 씻고 잘게.."
지현이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뜨거운 욕조 물에 몸을 푹 담그었다.
"아... "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도 오지를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였지만 끝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주희에 대한 상념들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식히고자 거실로 나오니 자정 12시가 좀 지난 것 같았다.
지현이는 아직 잠을 안 자는 지 문틈으로 가는 빛이 새어나왔다.
진우는 진열장에서 아직 3분의 1 밖에 마시지 않은 양주 하나를 꺼내어 소파에 앉았다.
"후 우..."
술이라도 좀 마시면 잠이 들까 했지만, 잠이 오기는커녕 긴 한숨만 새어나왔다.
눈물이 났다.
죄책감을 술로 삭이는 자신이 참담했다.
지현이는 마실 것을 가지러 방에서 나오다 소파에 앉아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어..?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왠지 아빠의 분위기는 이상했다.
저녁에 귀가를 하실 때의 느낌도 분명히 평소와는 달랐었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으신 거야... ........ '
지현이는 왠지 그런 아빠를 놔두고 그냥 방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우두커니 서서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지현이는 어느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어렸지만 여자의 직감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아빠가 그 여자와 헤어지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유는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자기 때문이었다.
소리나지 않게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빠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울고 계신다.
아마 아빠도 그동안 여자가 그리우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 여자와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자기 때문에 헤어지시고 저렇게 울고 계신다.
그런 생각을 하자 이전까지 아빠에게 들었던 실망감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아빠가 왠지 가여워
졌다.
'아빠...'
지현이는 자기도 모르게 살며시 아빠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등뒤에서 아빠를 살포시 껴안았다.
"사랑해요..."
지현이도 왠지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아..."
진우는 가슴이 뭉클했다.
등뒤에서 갑자기 따뜻한 체온이 자신을 감싸올 때의 그 느낌.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이 작게 들려올 때의 그 잔잔한 감동.
지현이는 그렇게 한동안 등뒤에서 진우를 껴안은 자세 그대도 있었다.
진우도 지현이의 체온을 느끼며 그렇게 조용히 있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이 전해졌다.
잠시 후 진우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지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가에는 이슬이 맺힌 채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지현이의 그 표정.
아름다웠다.
그 갸름하고 새하얀 얼굴. 가지런한 눈썹. 맑게 젖은 눈망울. 귀여운 콧날, 탐스러운 작은 입
술,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보드라운 볼.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입술 사이로 가늘게 새어나오는 따뜻한 숨결.
순간 진우는 가슴 저편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처음 만난 소녀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사춘기 소년처럼.
그랬다. 어쩌면 지금 그는 한 소녀에게 반해버렸는지도 몰랐다.
약간의 술기운이 들어가서일까?
진우는 감정적으로 고조된 상태에서 미열에 들뜬 채 몸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상체를 등뒤의 지현이 쪽으로 돌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지현이의 얼굴로 가져갔
다.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보드라운 지현이의 뺨을 쓰다듬어 보았다.
그리고 사르륵 어깨까지 흘러내린 그녀의 긴 머리 결을 조용히 헤치고, 그 안에 숨은 작은 귀를
매만져 주었다.
"하 아..."
지현이가 낮게 숨을 쉬었지만 젖은 눈빛으로 진우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진우의 손은 잠시 후 지현이의 가냘픈 목덜미로 넘어가 그곳을 살며시 쥐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따뜻한 숨결을 토하는 지현이의 작은 입술 위로 자신의 갈증나는
입술을 덮었다.
지현이는 아빠의 키스에 놀랐으나 거부할 수 없었다.
여자아이는 지금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빠가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뺨을 쓰다듬어주고, 귓불을 매만져주고 할 때, 약간은 야
릇한 기분이 들었지만 사랑하는 아빠의 체온을 느끼느라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슬픈 감정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아빠의 눈빛, 아빠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체온에서 슬픈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지현이는 거부할 수 없었다.
점차 아빠의 입술이 다가오며 그 숨결이 가까이 느껴질 때, 조금씩 떨려오면서도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빠의 숨결을..
그 숨결에서 술내음이 풍겨왔다.
지현이는 어쩌면 그 술내음에 취해버렸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난생 처음 어린 소녀의 입술에 낮선 입술의 감촉이 닿자, 순간 소녀의 입술에는
감미로운 감각이 흘렀다.
"아..."
소녀의 첫키스였다.
지현이의 가슴이 쿵쾅 쿵쾅 뛰고 있었다.
두근거림, 설레임, 수줍음, 짜릿함, 그리고 난생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여자아이
의 몸 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지금 아빠와 키스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어머..!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그런 이성을 몰아내며 한편에서 이런 생각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 키스 정도는 괜찮을 거야.. 직접 그걸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엄마의 역할 정도로 할 수 있는 거잖아...'
'아빠는 그 동안 많이 참으셨고.. 또 나를 위해 다른 여자와도 헤어지셨고.. 그러니 이 정도는
아빠에게 해드려도 괜찮지 않을까..? 난 그냥 딸이 아빠에게 뽀뽀한다는 기분으로 하면 되잖
아...'
'아 아니..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나 지금 아빠와 키스를 하고 싶어... 이런 감정 알 수 없
지만.. 지금 아빠와 키스를 하고 싶어... 내가 처음으로 하는 키스를 다른 사람이 아닌 아빠와
하고 싶어...'
지현이는 점차 감정적으로 아빠와의 키스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지현이 마음속의 두근거림과 갈등은 아빠의 입술이 그녀에게 닿은 지 불과 몇 초 동안에
머릿속을 스친 생각들이었다.
그래서 작게 몸을 떨면서도 계속 얌전히 아빠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우는 지현이가 가만히 있자 용기를 얻고는 좀 더 깊게 그녀의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지현이는 키스가 처음인 것처럼 서툴렀다.
그 사이에 키스하는 법을 다 잊어먹었나? 하고 약간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여자아이가 키스를 처음 하는 것처럼 떨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지금 현재의 이 감정, 이 감각에 충실했다.
천천히 지현이의 입술을 빨아나간 진우는 이제 혀를 내어 천천히 지현이의 입술을 열기 시작했
다.
그 사이로 아직 어리고 달콤한 여자아이의 젖내가 느껴졌다.
진우는 혀로 가지런한 지현이의 하얀 치아를 훑어가다가 살며시 열린 틈으로 집어넣었다.
진우의 혀가 들어가자 지현이의 혀가 놀란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지현이의 혀는 그의 혀에 붙잡혔고 두 사람의 타액은 서로 뒤엉켰다.
아빠가 지현이의 혀를 깊게 빨아들이자 짜릿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그녀의 온몸에 흘렀다
그 느낌은 그녀가 난생 처음 경험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황홀한 기분이 여자아이의 온몸을 휘감아왔다.
지현이의 정신은 점차 혼미해지고 있었다.
아마 아빠와 키스를 한다는 그 상황이 소녀를 더 두근거리게 만들고 자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
'이런 것이 키스라는 거구나...'
지현이도 이제 조금씩 아빠의 입술을 마주 빨기 시작했다.
여자아이가 아빠에게서 키스를 배우고 있었다.
두 사람의 황홀한 시간은 그렇게 계속되었고, 점차 진우의 손은 자연스럽게 지현이의 등허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진우는 소파에 앉은 상태이고 지현이는 소파 뒤에 서있는 상태라 서로의 자세가 불편했지만, 점
차 감정적으로 고조되면서 진우의 손이 지현이의 몸을 더듬어 나가고 있었다.
지현이도 이런 아빠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지만, 황홀한 감정과 미열에 들떠 그냥 그대로 진우가
하는 대로 놔두고 싶었다.
이미 지현이의 이성도 마비되어 있었다.
그때 그들의 이성을 깨운 것은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였다.
날카롭게 거실 안을 울리는 그 소리에 몽롱한 상태였던 두 사람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
"어마..."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서로 떨어졌다.
진우는 제정신을 차리자 깜짝 놀랐다.
조금 취했던 술마저도 확 깨는 기분이었다.
지현이 역시 아빠의 입술을 감미롭게 받아들였던 자신에 놀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 저 저..."
지현이가 무어라 진우에게 말을 하려다가 도망치듯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 이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진우는 한동안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들을 떼어놓은 전화벨은 계속 울리다가 이제 지쳐버렸는지 그쳐버렸다.
진우는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고 방금 전의 행동을 되짚었다.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군...'
진우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키스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솔직히 키스 정도야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키스의 감정 때문에 자연스레 다음 순서, 즉 섹스로 넘어갈 뻔했다는 것
이다.
지현이도 아까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에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진우는 오늘 지현이의 몸을 범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긴장을 풀지 말고...'
만약에 오늘 그녀의 어린 몸을 범했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었다.
'언제.. 딸애의 영혼이 언제 되돌아올지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진우는 깨달았다.
방금 자신이 맛을 본 그 탐스러운 입술의 감촉은 아내의 입술이 아닌 엄연히 딸아이의 몸, 그
입술의 감촉이었다.
즉, 자신은 방금 딸아이의 입술을 즐긴 것이다.
"아 아.. 이 이러면 안 돼..."
하지만 이미 그는 금단의 작은 열매를 맛보고 말았다.
지현이는 침대 위에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아직 화끈 달아오른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 아.. 안 돼.. 부끄러워... 앞으로 아빠 얼굴을 어떻게 보지..'
그러다가 문득,
'아냐.. 그러면 아빠가 이상해 하실 거야.. 엄마가 아빠와 키스한 것 가지고 부끄러워하실 리
없잖아..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이 생각나고는
'어머..! 그런데.. 나 부끄러워하며 도망쳐 들어왔잖아.. 혹시 아빠가 눈치채셨으면..? 그러고
보니 나 많이 서툴렀잖아... 어떡해...'
그러다가 다시 좀 전의 그 첫키스의 감각이 되살아나서 멍하니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매만져 보
고 있었다.
아직 첫키스를 경험한 소녀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다음 날 지현이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빠를 대했다.
사실 속으로는 얼굴도 마주보기 부끄러울 정도였지만 애써 참고 있었다.
"어머 일찍 일어나셨네요.. 금방 아침 차려 드릴게요.."
"으 으응..."
오히려 어색해하는 것은 진우였다.
지현이는 그런 진우를 보고는 문득 중년의 아빠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풋..."
지현이가 그런 생각에 그만 살짝 웃음을 보이고 말자 진우가 당황하여 물었다.
"왜.. 왜 그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 아니에요.. 자 아침 드세요..."
사실 어젯밤 지현이는 한가지 결심을 하였다.
그것은 만약에 아빠가 앞으로 키스를 요구하시면 그것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키스 정도는.
물론, 거기에는 사춘기 소녀의 두근거리는 감정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지현이 스스로는 그런 것
을 애써 무시하고 그저 아빠에 대한 배려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빠는 지현이에게 더 이상 키스를 요구하는 일이 없었다.
물론 그 이유를 지현이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감정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아빠에게 먼저 키스해달라고 하기에는 소녀는 아직 부끄러웠다.
봄이 되고 지현이는 이제 2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몇 달 동안, 지현이는 더욱 아름다워졌고 그녀의 몸은 더욱 물이 올라갔지만, 진우
는 그 아슬아슬한 감정 속에서도 무사히 상황을 넘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황에 많이 익숙해 졌기에 스스로의 감정이나 가끔 충동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욕구를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작년부터 꾸던 그 꿈들과 지난번의 키스 때문이기도 했는데, 그는 지현이의 몸에 대해
의식적으로 피하려 했다.
그 일들 이후로 아무래도 아내의 영혼보다 어린 딸의 육체에 집착해 가는 스스로가 점점 두려워
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느 순간 그의 주체할 수 없는 충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사소한 행동들이라
도 조심하게 되었다.
가끔 민주희가 생각이 날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죄를 지었다는 아픈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려고 준비를 할 때, TV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
꼈다.
그래서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방송하는 모닝와이드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는 연예인이 나왔나 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진우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TV 화면 속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여러 사람들 중에 주희가 있었다.
분명히 그녀였다.
더욱 아름다워 진 것 같았다.
곧 그녀가 리포터로 찍힌 영상이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왠지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일이 잘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렇게 우두커니 TV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학교 가려고 나오던 지현이가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
다.
"뭐.. 재미있는 거 나와요?"
"응? 아 아니.. 그냥.. 보는 거야.."
"어머..!"
"...?"
"저기.. 저 여자요.. 리포터로 나오는 여자.. 왠지 낮이 익은 것 같아요.. 어디서 봤나? 신인
같은데.."
지현이는 자신과 엄마의 인상을 닮은 여자를 보고 갸우뚱하고 있었다.
"글쎄... 그런가...?"
진우는 얼버무리며 그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8월이 며칠은 남았지만 아침이면 날씨는 초가을을 느끼게 하였다.
아침의 집안은 약간 수선스러웠다.
오늘 2학기 개학일인 지현이가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아.. 큰일이네... 늦었어.. 늦었어..."
"내 참.. 그러기에.. 일찍 자라니까.."
"피... 같이 늦게까지 비디오 본 게 누구면서..."
지현이가 진우에게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진우는 그런 그녀를 뒤에서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현이의 몸은 이제 그 교복 밑으로도 완연하게 성숙미가 흐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의 몸에 남아있던 어린아이의 흔적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한 눈에 알 수 있는 여성스
러움이 느껴졌다.
진우는 불현듯 지난 2주 전 지현이와 같이 해수욕장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원피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지현이의 몸매는 이제 완연한 여성의 곡선을 이루기 시작하고 있었
다.
그녀의 물기에 젖어 뒤로 넘겨진 긴 생머리와 그 밑으로 엿보이는 가는 목선, 그리고 아담하지
만 봉긋해진 가슴과 탄력적으로 보이는 엉덩이, 그 사이의 가녀린 허리.
그 모든 것이 아직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이제 막 피어오르는 소녀의 물이 올라가는 육
체였다.
지현이가 물에서 금방 나와 진우에게 걸어올 때면, 소녀의 몸의 곡선을 타고 흐르는 물기가 곡
선의 끝 둔덕에 고여 방울져 떨어지고는 했다.
아니면 매끈하게 뻗은 하얀 허벅지로 물기가 스며들기도 했는데, 그와 같은 모습들을 볼 때면
누가 그 모습을 눈치챌 까봐 남몰래 긴장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볼 때면 해수욕장 안의 다른 남자아이들도 아름다운 지현이의 모습에 흘깃흘
깃 눈을 돌리는 눈치였다.
아마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온 것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 자리에서 헌팅을 당했을지도 몰랐
다.
문득 그 생각이 난 진우는 지현이에게 장난스레 물었다.
"참.. 혹시 남자 친구 같은 거 없어..?"
"에..? 남자친구요..?"
"응.. 네 학교 남녀공학이잖아..."
"에이.. 같은 반 아이들은 있지만.. 남자친구가 어디 있어요..? 가만.. 만약에 나 남자친구 생
기면.. 그럼 유부녀가 바람을 피우는 건가... 푸하하..."
혼자 생각에도 무척이나 우스운지 지현이가 허리를 숙이고 웃어대었다.
"어... 그렇고 보니까 그러네... 하 하 하..."
그 모습을 보면서 진우도 우스워졌는지 같이 붙들고 웃음을 터트렸다.
"참... 이번 주에도 바쁘세요?"
"왜..? 나야 늘 그렇지 뭐.."
"요즘에 지방이나 외국에 나가시는 일 많잖아요..?"
진우는 지난 전시영상 제작이 호평을 받아 해외 무역전시회용 프로젝트를 몇 개 더 수주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부터는 해외에 출장을 가는 일이 잦아졌다.
"글세.. 9월 중순까지는 출장이 없을 거야... 왜?"
"아이 참.. 오는 9월 2일이 아빠.. 아니 당신 생일이잖아요.. 40번째 생일.. 그동안 이런 저
런 일들로 제대로 차려드린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좀 노력해보려고요.. 이제 40대로 접어드는
기념으로요.. 그러니 그 날 꼭 일찍 들어오셔야 해요.."
"아.. 맞아.. 그날 내 생일이지..! 그래 한 번 기대해 볼게.. 정말 고마워.. 아.. 벌써부터 마
음이 설레네.. 하 하..."
'그렇구나! 나도 이제 나이가 40이구나.' 하고 진우는 생각했다.
왠지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하지만 진우는 문을 열고 나서는 지현이를 보면서 행복한 기분 또한 들었다.
'그래.. 이제 모든 게 잘 되고 있는 거야.. 다 잘 자리잡혀 갈 거야...'
한 때는 이제 그렇게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진우는 오늘 일찍 일을 마치려고 거래처와의 예정된 약속 시간을 앞당기면서까지 노력했다.
그것은 오늘이 지현이와 약속한 날, 그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지현이는 어제부터 무엇을 준비하려는지 꽤나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시계를 보니 5시였다.
서두르는 바람에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이 났지만, 그렇다고 너무 일찍 집에 들어가기도 좀 그
랬다.
집에는 7시쯤에 들어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직 준비도 못했는데 일찍 들어가면 지현이가 좀 당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로부터 예기치 않은 전화가 걸려온 것은 진우가 이런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정말 오랜만에 듣게되는 주희의 목소리였다.
아직 5시가 좀 넘었을 때였으므로 조금 만나서 이야기하면 7시까지는 늦지 않으리라 진우는 생
각했었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회사에서 가까운 리버사이드 호텔의 커피숍으로 주희를 만나러 나갔다.
사실 그는 그녀를 만나려 하지 않았었다.
몇 달만이라도 주희를 다시 보면 자신이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희를 만나기로 결심을 한 것은 그녀의 말끝에 흐른 작은 울먹임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주희는 그저 안부인사만 하고 싶다고 하였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진우는 알 수 있었
다.
때문에 그는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그녀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나갔다.
"안녕하셨어요.. 사장님.."
"그래.. 너도 잘 있었니..? 아.. 지난번에 너 TV에 나온 것 봤어.."
" .......... 그러셨어요.."
몇 달만에 보는 주희의 얼굴은 지난번 TV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많이 초췌해 보였다.
그간 마음 고생이 심한 일이 있었나 보다.
"저 회사와 결별을 했어요.."
잠시 동안의 침묵 후 그녀가 연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이 바닥에서 경험이 많은 진우는 순간 그간의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 매니지먼트사의 횡포였다.
주희는 주변의 반응이 좋아서 잘 진행되었으면 클 가능성이 있었다.
비록 크게는 아닐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매니지먼트사의 불공정 계약이었던 그녀는 설령 성공을 하더라도 이런저런 핑계
로 수입의 대부분을 그들에게 착취당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기회를 잡아야 했던 당시로서는 이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참다못한 주희가 날로 먹으려는 그들에게 항의를 했지만, 주먹 출신인 사장이 차린 그 회
사에서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고, 그녀는 말못할 큰 봉변을 치러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나마 얻었던 리포터 자리도 빼앗겨 버렸다.
지금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그 회사를 나왔지만, 업계에서 찍힌 몸이 되어서 이 바닥에서는 운
신하기가 힘들어졌다.
아니 사실상 매장 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후회하지 않니..?"
"아니 괜찮아요.."
만약 그 시기에 진우가 옆에 있어주었으면 어떠했을까?
진우 역시 큰 힘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게는 놔두지 않았을 것이
다.
"그럼.. 나한테 연락이나 하지 그랬어.."
"아니에요.. 이미 헤어진 거.. 괜히 부담주긴 싫었어요.. 참.. 따님은 잘 커요..?"
"으 으응.. 그래.. 지현이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연락할 거였다면.. 좀 더 일찍 했으면..."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은 도와달라고 그런 것 아니에요.. "
"그럼..?"
"저.. 내일 충주로 내려가요.. 거기에 언니가 살거든요.. 거기서 한동안 있으면서 생각을 좀 정
리해 보려고요..."
"아..! 그래.."
"하지만.. 어쩌면 아주 안 올라올지도 몰라요.. 그래서.. 떠나기 전에.. 사장님 얼굴을 한 번
뵙고 싶었어요...."
주희가 작게 말꼬리를 흘렸다.
이미 시계는 7시가 가까워오고 있었지만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녀의 처연한 모습을 보면서 진우는 생각했다.
'오늘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 그럼 난 평생 죄책감에 후회를 할거야..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 아이를 위로해 주어야 해...'
결국 그 날 진우는 다시 주희의 따뜻한 몸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 속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 그 속의 샘을 파내었다.
심한 갈증에 들린 사람처럼, 어떤 열기에 휩싸여서..
시계가 8시를 알리고 있었다.
지현이는 점점 불안한 마음이 현실로 되어 가는 것을 알았다.
주방에는 지현이가 애를 써서 차려놓은 음식들과 생일케이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주인공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아빠는 지금 어디에 계시지..?'
핸드폰도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아직 회사에 계시는 것일까?'
지현이가 전화를 걸자 야근을 하고있던 직원 한 사람이 받았다.
"저어.. 저 지현인데요.. 혹시 아빠 아직 회사에 계세요..?"
"사장님..? 아니 안 계신데... 핸드폰 연락 안되시니..? 잠시만.. 아.. 자리에 놓고 가셨는
데.. 아마 잠시 다니러 나가신 모양인데..."
"그래요..? 언제 나가셨는데요..?"
"언제더라.. 잠시만.. 아.. 김작가님.. 사장님 언제 나가셨어요..?"
"사장님.. 아까 5시 넘어서 나가시지 않았나..?"
"아.. 맞아요.. 그때 누구 전화를 받고 나갔는데.. 그래.. 민주희씨 전화였는데.."
"어머.. 주희씨가 전화를 했었어..? 오랜만이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직원들의 대화에서 '민주희'란 이름이 들리자 지현이는 순간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민주희..? 그 여자..!'
"여보세요..? 지현아.. 듣고있니..?"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를 찾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지현이는 그저 멍하니 전화기를 무릎 위
에 놓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 어떻게.. 이러실 수가.. 나하고 오늘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무릎 위에 놓인 전화기 위로 눈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져 흘러내렸다.
진우가 "아차..!" 싶었던 것은 수 차례의 섹스 후 끝없을 것 같던 열기가 사그라져 버린 그때였
다.
지현이와의 약속이 생각난 그가 시계를 보았을 때는 이미 12시가 넘었을 때였다.
"이제 그만 댁으로 들어가세요.."
진우의 난감한 표정을 읽었는지 주희가 그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저도.. 내일 점심 때 내려갈 준비를 하려면.. 지금 집에 들어가 봐야 해요.."
"그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오늘.. 행복했어요.. 나.. 사장님으로부터.. 마음으로부터 버림
받은 것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요.."
"............"
"아마.. 사장님은 좋은 아빠가 되실 거예요.."
그것이 주희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는 그녀 먼저 호텔 객실을 떠났다.
진우는 그렇게 주희의 마지막 모습을 떠나 보냈다.
진우가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을 때 이미 시간은 1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현이는 잠도 안자고 식탁 옆에 그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식탁 위에는 그녀
가 고생해서 차린 진우의 40번째 생일상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미안해..."
진우가 나직이 지현이에게 말을 했다.
"..........."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
퍽...
그때 진우가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식탁 위에 있던 바나나가 하나 그에게 날아와 맞았다.
"......!"
진우가 놀라서 쳐다보니 지현이가 눈에는 눈물을 가득 글썽인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꼴도 보기 싫어요... 흐 흐흑..."
지현이가 울면서 진우에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