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7/11)

#4

여자의 사무실이 있는 층에 가까워 졌을 때 누군가가 계단 위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더 올라가 보니 박차장이 뭔가를 손에 들고 올라오는 여자를 보고 있었다.

"어? 여기서 보네. 안 그래도 할 얘기가 있었는데."

박차장은 특유의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실실 거렸고 여자는 그 얼굴을 보자 늘 그랬듯 속이 울렁거렸다.

박차장은 모든 여직원들이 싫어하는 그런 남자였다. 키가 작고 통통한데다가 얼굴은 곰보자국이 가득하고 툭 튀어나온 두꺼운 입술은 마치 돼지의 입을 연상시켰다.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늘 여직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저질 음담패설을 늘어놨고 여자들은 이래서 문제라느니 저래서 문제라느니 하는 듣기 싫은 말들만 떠들어 댔다. 그래서 여직원들은 그가 나타나면 모두 자리를 피했고 모이면 그의 외모나 행동을 비하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의 몸을 기분 나쁠 정도로 훑어보는 그에게 마치 들으라는 듯

"어디서 돼지새끼가 쳐다 보는 거 같아."

라든가

"너 들었니? 입술만 달린 난장이가 돌아다닌다면서?"

같은 말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주변에 얼쩡거리지 않게 하고 싶었다. 이번 승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그와 같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여자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 그를 아무도 없는 밀폐된 비상계단에서 만난 것이다.

"점심시간 끝나가요. 들어가서 말씀하세요."

"이 사진 봤어? 너 아주 죽이더라. 이런 건 또 언제 찍은 거야?"

그는 출력된 여자의 사진을 흔들어 보이며 두꺼운 입술을 씰룩거렸다.그의 손에 들려 있는 사진을 보자 여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거 조작된 합성 사진이에요. 가짜라구요. 이리 줘요."

여자가 뺏으려하자 박차장은 사진을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

"가짜라면서 왜 뺏으려하지?"

"불쾌하니까요."

"아무리 봐도 너 맞는데. 이거 봐. 니 얼굴이잖아."

"어...얼굴은 맞는데 몸은 내가 아니에요."

"나도 설마 하면서 꼼꼼히 살펴봤는데 합성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흠잡을 때가 없어. 합성한 티가 안 난다고."

"잘 찾아보면 티가 날거에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난 그런 사진 찍은 적 없으니까요."

"누가 몰래 찍었을 수도 있잖아."

"아니라니까요. 더군다나 사진속의 몸은 내 몸과 틀려요."

"어디가 틀린데? 여기 가슴? 아님 엉덩이?"

"둘 다요. 둘 다 다른 사람 사진이에요."

"증명해 보일 수 있어?"

"증명이라뇨?"

"그렇게 결백하다면 지금 당장 증명해봐."

"여기서 어떻게 증명해요. 일단 사무실로 가서"

박차장은 재빨리 여자의 말을 끊으며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사무실로 가서 사장님에게 보고 드릴거야. 여직원 하나가 회사 분위기를 아주 좆같이 만들고 있다고. 조부장님이 안계시니 내가 대표로 말씀드리는 게 맞는 거 같아."

"그 사진은 가짜라니까요."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사장님이 직접 보고 판단하실 거야. 사장님도 이 사진을 보면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을 걸."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 사진은 누가 봐도 진짜 같았고 컴맹이라 안심하고 있던 사장님까지 이 사진을 본 다고 생각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지 마세요. 가짜라는 걸 증명 해 보일 테니."

"그럼 증명해 봐."

"여기서 지금 당장 어떻게 증명하라는 거 에요?"

"옷 벗어 봐."

"뭐. 뭐라구요?"

여자는 그의 말에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내가 직접 이 사진과 비교 해 보겠다고. 내 눈으로 확인해서 니 말이 맞다면 내가 직접 사람들 앞에서 가짜라고 말 해 줄게. 사장님에게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물론 사진은 보여드리지 않을 거야."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난 기회를 주는 거야. 싫으면 관두라고. 나부터도 못 믿겠는데 어떻게 내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겠어. 안 그래?"

여자는 또 다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니, 그것도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박차장은 망설이고 있는 여자를 더 강하게 윽박질렀다.

"이런 제길. 관 둬. 사장님 뵈러 가야겠다."

박차장이 사장님을 보러 간다며 벌떡 일어나자 여자는 반사적으로 박차장의 다리를 잡으며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잠깐만요. 확인시켜 드리면 되잖아요."

"좋아.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해."

여자는 밀려오는 불안감과 충격에 넋이 나간 듯 블라우스 단추를 풀기 시작했고 박차장은 바로 코앞에서 침을 꿀꺽 삼키며 지켜봤다. 단추가 풀리자 블라우스가 벌어지며 뽀얀 속살과 함께 하얀 브래지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옷 벗어서 이리 줘."

여자는 옷을 달라는 박차장의 말에 정신이 들었고 그의 얼굴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거 같았다.

"그냥 입고 있을게요. 가슴만 보여드리면 되는 거잖아요."

"무슨 소리야. 이 사진과 비교하려면 똑같아야 돼. 얼른 내놔."

박차장이 블라우스를 잡아당겨 억지로 벗기려하자 여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알았어요. 내가 벗을게요. 만지지 마요."

"진작 그럴 것이지."

여자는 블라우스 밑단을 치마 속에서 빼낸 뒤 벗어서 박차장에게 넘겨줬다.

"그것도 빨리 벗어."

여자는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거 시간 끌지 않기로 했다. 브래지어 후크를 끄르자 갇혀있던 젖가슴이 출렁거렸고 여자는 한쪽 팔로 가슴을 가리며 브래지어마저 그에게 건넸다. 그는 건네받은 브래지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팔을 치우라는 듯 턱을 움직였다.

너무도 치욕스러웠지만 여자는 천천히 팔을 옆으로 치웠고 탐스러운 가슴이 그의 눈앞에 뽀얀 살결을 드러냈다. 그는 여자의 가슴이 나온 사진을 여자 가슴 옆에 갖다 대고 고개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손에 있던 브래지어와 블라우스를 난간 손잡이에 걸쳐 놨다.

그리고 갑자기 여자의 한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엄마~ 뭐하세요. 얼른 못 놔요?"

"가만있어 봐. 이래야 비교가 되지."

여자는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떼어 낸 뒤 가슴을 가리며 주저앉았다.

"이 사진을 잘 보라구. 양쪽 가슴을 손으로 쥐고 있잖아. 똑같이 해줘야 비교할 거 아니야."

박차장은 오히려 자신이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으면 되잖아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어나서 이 사진처럼 포즈 취해봐. 계속 이러고 있을래?"

그의 말대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서 여자는 다시 일어나 사진을 보며 똑같이 가슴을 움켜쥐었다.박차장은 사진을 한 번 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여자의 가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자는 불쾌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좋을 게 없어서였다.

"어때요. 사진이랑 틀리죠?"

"가만있어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니 가슴 진짜 죽인다. 남자들이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야. 만졌을 때 감촉도 좋고. 이런 걸 숨겨 놓고 어떻게 살았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 에요?"

"내가 여자고 이런 가슴을 가졌다면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겠다."

여자가 혐오하는 그였기에 칭찬도 그의 입에서 나오니 짜증이 났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얼른 대답해요. 사진이랑 틀리죠?"

"그래. 그런 거 같다. 유두 모양이랑 색깔도 좀 틀린 거 같고. 사진 속 가슴도 훌륭하지만 니께 훨씬 더 예뻐."

그가 사진과 다르다고 말해주니 여자는 불쾌했던 기분이 조금 풀리는 거 같았다.하지만 그 앞에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확인 했으면 어서 옷 주세요."

"무슨 소리야 엉덩이도 확인해야지."

여자는 황당해서 물었다.

"사진이랑 틀린 거 확인 하셨잖아요."

"이 두 사진은 장소가 틀려. 별개의 사진이라고. 이 사진은 진짜일지 어떻게 알아. 시간 없어. 빨리 벗어."

다시 짜증이 밀려왔지만 어차피 시작한 거 끝을 봐야 했다.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 아니던가.

여자는 구두를 벗은 뒤 치마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잠시 망설인 뒤 치마를 벗어 블라우스 위에 올려놨다. 이제 여자를 보호하는 건 팬티스타킹과 팬티뿐이었다. 여자는 숨을 크게 내 쉰 뒤 조심스럽게 팬티 스타킹을 끌어 내렸다.무릎 조금 위까지 내렸을 때 박차장이 멈추게 했다.

"잠깐 스톱. 다 내릴 필요 없어. 그 정도만 내리면 돼. 엉덩이만 확인하면 되니까."

여자는 이렇게 걸쳐 입고 있으면 확인시킨 뒤 빨리 다시 입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여자가 뒤로 돌아 팬티를 내리려하자 또 다시 그가 제지했다.

"기다려봐. 거기서 말고 여기 계단으로 조금 내려와 봐. 여기 계단에 엎드리면 쇼파에 엎드린 거와 비슷해 보일거야."

여자는 그가 말하는 의미를 잘 알기에 그가 있는 계단 쪽으로 몇 계단 내려간 뒤 사진 속 여자처럼 엎드렸다. 계단이 무척 차가워서 스타킹을 안 벗길 잘한 거 같았다. 하지만 무릎이 너무 아팠다.

"그래. 그렇지. 엉덩이를 더 내밀고.."

"무릎이 너무 아파요."

"그러니까 빨리 내 말대로 움직여. 그래 그렇지. 아파도 조금만 참아. 내 얼굴 보면 창피할 테니까 사진처럼 고개는 돌릴 필요 없어. 자. 이제 그 상태로 천천히 팬티를 내려 봐."

여자는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고개를 돌릴 자신이 없었다. 여자가 바라는 건 빨리 끝나는 것뿐이었다. 여자는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내 쉰 뒤 천천히 팬티를 잡아 내렸다. 그러자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하는 여자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박차장의 바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차장은 여자가 자신의 눈앞에 엉덩이를 내민 순간부터 입안에 침이 고였고 목 안을 타고 뭔가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작은 팬티 속에 숨겨져 있던 여자의 매력이 튀어 나오자 숨이 덜컥 멎는 거 같았다. 정말 흠 잡을 데 없는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엉덩이였다. 늘 여자의 골반 라인을 훔쳐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박차장은 고인 침을 꿀꺽 삼킨 뒤 엉덩이 골 사이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아봤다. 살짝 시큼한 냄새가 묘한 흥분과 함께 그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바람이 마치 머리카락에 드라이기를 갖다 대듯 여자의 음모를 흔들리게 했고 여자는 박차장의 뜨거운 콧바람이 느껴지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아 항문에 힘을 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빨리 확인안하고 뭐하세요."

그 순간 박차장의 손바닥이 여자의 볼기를 세게 내리쳤다. 박차장은 여자들이 짜증을 내면 자기도 모르게 욱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콤플렉스로 눌려있던 자아가 폭발하는 거였다. 어쨌든 무심결에 내리친 볼기가 여자의 기를 완전히 눌러버렸고 여자의 기가 꺾인 걸 감지한 그가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말했다.

"다리를 더 벌려 봐. 어서."

여자는 너무 놀라 그의 말대로 천천히 다리를 벌렸고 감추고 싶은 핑크 빛 그 곳이 음모 사이로 부끄러운 듯 조금씩 벌어졌다.

"무...무서워요. 그러지 마세요."

여자는 정말 무서워졌다. 점심시간은 이미 끝나 모두들 일을 시작 했을 거고 지금 박차장이 마음먹고 자신을 덮친다면 도와 줄 사람이 없었다.

"좀 더. 좀 더. 더 확 벌리란 말이야."

박차장이 상기된 목소리로 윽박지르자 여자는 마치 매를 들고 있는 무서운 선생님의 체벌을 피하려는 학생처럼 두려운 마음에 다리를 과감하게 벌려주었다. 그러자 여자의 핑크 빛 구멍이 뜨거운 불꽃 속에서 조개가 벌어지듯 활짝 열렸다. 박차장은 벌어진 구멍을 보자 여자의 엉덩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미친 듯이 빨고 싶어졌다. 눈앞의 구멍 사이로 혀를 깊숙이 밀어 넣고 싶었다. 떨리는 심장을 느끼며 그가 다시 큰 소리로 명령했다.

"허리를 최대한 낮추고 엉덩이를 더 내밀어 봐. 어서."

그의 무서운 목소리 때문에 여자는 점점 공포감에 휩싸였고 착한 아이처럼 그가 시키는 대로 엉덩이를 뒤로 내밀었다. 그러자 여자의 엉덩이 사이에 박차장의 비정상적으로 두꺼운 입술이 닿았고 여자가 화들짝 놀라 엉덩이를 피했다.

"이러지 마세요. 박차장님."

박차장은 아까보다 더 세게 여자의 볼기를 때렸다.

"지금 장난해?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여?"

여자는 또 맞을까봐 두려웠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확인만 한다면서 왜 건드려요."

"이게 나를 뭘로 보고. 자 봐."

박차장이 팔을 뻗어 여자의 얼굴 쪽으로 사진을 내 밀었고 여자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사진을 봤다. 사진 속에는 여자가 쇼파에 엎드려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밀고 있었다.

"사진대로 다 했잖아요."

"사진을 잘 보라고. 엉덩이 가운데 음모 부분을 잘 봐. 털들이 축축하게 젖어서 양 옆으로 바짝 붙어 있지?"

여자가 좀 더 자세히 사진을 보니 정말로 그 부분이 끈적한 액체들로 번쩍거렸고 털들이 가르마를 타 듯 양 갈래로 벌어져 붙어 있었다. 여자는 그제야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고 그의 속내를 알자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닭살이 돋았다.

"어때? 이제 알겠어? 사진처럼 똑같이 해 놔야 정확하게 비교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지금은 털들이 가리고 있어서 정확한 비교가 안 된다구. 조금 전 자세로 다시 만들어. 어서."

여자는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남자에게 그곳을 빨릴 생각을 하니 분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 이 위기를 모면해야 할지 머리속을 빠르게 굴려나갔다. 잘 생각하면 뭔가 해답이 나올 것도 같았다.

하지만 여자의 바람은 그의 결정적인 말에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뭘 그렇게 고민 해? 사진 속 번들거리는 게 혹시 남자의 정액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침이라고 생각했는데. 니가 고민하는 걸 보니 정액일 수도 있겠네. 너 설마 내 정액을 원하는 거야?"

여자는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아...아니에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침이 확실해요. 알았으니까 빨리 해요."

"ㅋㅋ 놀라긴. 사실 나도 침이라고 생각했어. 협조 잘 할 거지?"

"그래요. 대신 침만 바르는 거 에요. 알았죠?"

여자가 다시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밀자 박차장은 흥분으로 말라버린 두꺼운 입술에 혀를 돌려 촉촉하게 만들었다. 그런 뒤 여자들이 징그러워하는, 비정상적으로 두꺼운 그 입술을 여자의 수풀사이로 들이 밀었다. 기분 나쁜 감촉이 여자의 몸을 움찔거리게 했지만 여자는 입술을 꽉 깨물며 참아냈다. 박차장은 여자가 가만히 있자 징그러운 미소를 짓고는 양손으로 엉덩이를 벌리며 더 깊숙이 빨기 위해 얼굴을 최대한 더 밀착시켰다.

그의 혀가 핥고 지나갈 때 마다 여자는 분함과 서러움에 복받쳐 울고 싶었다. 지금 자신의 중요한 곳을 핥고 있는 게 그의 징그럽고 두꺼운 입술과 음담패설을 나불대던 혀라고 생각하자 너무도 수치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단 맛을 알게 된 아이처럼 점점 더 미친 듯이 입술과 혀를 움직여 댔고 그 와중에서도 여자의 클리토리스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여자는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독립투사처럼 이를 악 물고 흥분하지 않기 위해 참아봤지만 그의 고문이 계속될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여자의 몸에서도 애액들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의 침과 함께 뒤섞여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 듯 또 하나의 새로운 액체로 거듭 나고 있었다.

여자는 그만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화를 내며 또 때릴 것만 같아 겁이 나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간 금방 독립군의 위치를 말하는 변절자가 돼 버릴 것 같았다. 머리속에 가득 차 있는, 혐오하는 자에 대한 분하고, 화가 나고, 기분 나쁜 생각이 밑에서부터 공격하고 있는 쾌감을 느끼고 싶은 본능에 밀릴 것만 같았다.

여자는 또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조부장 때처럼 쾌락에 못 이겨 돼지 새끼에게 박아달라며 엉덩이를 들이밀게 될 거 같았다. 아무리 쾌락이 좋아도 이 돼지새끼에게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이건 여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고 무너져 버린다면 평생 동안 수치스러움에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불쾌감과 쾌감의 힘이 팽팽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기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불쾌감이 쾌감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가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박차장이 키는 작았지만 원숭이처럼 팔이 길었는데 그 장점을 이용해 여자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고 있었다. 젖꼭지 애무는 마치 중공군이 밀려오는 것 같은 위력이 있었다. 집중공격은 제대로 먹혀 중부전선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여자의 의지는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려 버렸다.

이제 대부분의 육체는 쾌감에게 정복당했고 불쾌감이 남아 있는 곳은 여자의 뇌 속에서도 지극히 일부분이었다. 그는 전쟁에 미쳐버린 전쟁광처럼 마지막 고지를 따내기 위해 속도를 올렸고 여자도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 백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치마 속에 들어 있던 여자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밀폐된 공간 안이라 더 크게 증폭되어 들렸다.

벨소리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도 같았다. 역사와 달리 중공군의 공격 뒤에 상륙작전이 성공한 건 여자에게 행운이었다.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리자 그도 놀랐는지 공격을 멈췄고 여자는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성이라는 뇌의 영역에 마지막 힘을 모아 저항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전화기를 끄려는 듯 벌떡 일어나 여자의 치마가 있는 난간 쪽으로 올라갔고 여자도 그 틈을 노려 얼른 일어나 계단을 오르려 발을 뻗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엎드려 있어서 피가 안 통했는지 다리가 풀려버렸고 어느새 무릎까지 내려와 있던 스타킹 때문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몸이 쏠렸다.

여자는 반사적으로 팔을 허우적거리며 계단을 올라가긴 했지만 박차장과 부딪히며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그런데 넘어지고 보니 여자의 몸이 박차장의 몸 위로 덮쳐진 꼴이 되었다. 박차장이 전화를 가지러 올라가다가 여자의 움직임을 느껴 돌아서는 순간 여자가 덮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였다.

바로 그 때 비상계단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 왔다.

"너 여기서 뭐하는거니? 어머. 박차장님."

정선배의 목소리였다.여자는 당혹스러웠다. 지금의 모습은 옷을 다 입고 누워있는 박차장을 홀딱 벗은 자신이 덮치고 있는 상황처럼 보였다. 박차장은 여자를 밀어낸 뒤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고 여자는 스타킹과 팬티를 무릎에 걸친 요상한 자세로 계단 바닥에 널브러졌다.

올려다보니 정선배가 핸드폰을 든 채 황당한 표정으로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여자는 얼른 벌떡 일어나 팬티와 스타킹을 올려 입었다. 정선배는 혹시나 누가 올까봐 비상계단 문을 닫은 뒤 들고 있는 핸드폰을 닫았다. 그러자 시끄럽게 울리던 핸드폰 벨소리가 조용해 졌다.

"너 어떻게 된 거니?"

"고마워. 선배. 조금만 늦게 왔어도 정말 큰일 날 뻔 했어."

"무슨 큰 일? 내가 방해한 건 아니고?"

"무,,,무슨 말이야."

"사람들 말이 맞았어. 니가 이런 애인 줄도 모르고 감싸주려 했던 내가 참 한심하다. 너에게 정말 실망했어."

정선배가 마치 혐오스러운 벌레를 보는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여자는 당황스럽고 억울했다.

"조금 전 상황 때문에 그러는 거 같은데 정말 오해야. 박차장님이..."

여자가 정선배에게 조금 전 상황을 설명하려하자 정선배가 여자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 입 다물지 못해? 내 말부터 들어. 네가 조부장님 추천으로 나 대신 승진했을 때 솔직히 황당하고 자존심 상했어. 하지만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해하기로 했어.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너였으니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줬어. 그 때 다른 직원들이 그러더라 네가 순진한 조부장님을 꼬셔 나대신 승진시켜 달라 그랬다고. 조부장님이 기러기 아빠라는 걸 노리고 네 잘난 몸을 이용해 유혹했다는 거야. 난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믿었기에 근거 없는 소리로 생사람 잡지 말라고 했어. 평소 남자직원들이 너에게만 관심을 보여서 게네들이 질투하는 거라 생각했지. 누가 이런 말도 하더라 너 같은 애는 타고난 요부라서 남자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고. 저번에 부부동반으로 한 번 모인 적 있잖아. 그 때 누가 나한테 그러는거야. 니가 우리 신랑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니 신랑 단속 잘 하라고.그 때도 나는 네 편을 들었어. 너는 몰랐겠지만 몰래 불러내서 다시는 그런 소리 말라고 야단을 쳤지. 다시 말하지만 난 너를 믿었으니까. 언니 하면서 잘 따르는 네가 친동생 같았으니까."

여자는 억울했다. 저번 부부동반 모임은 여자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참석한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들 몰래 여자의 몸을 훔쳐봤고 그 중에서도 정선배의 남편이 좀 더 노골적이었다. 그 날 여자의 의상이 몸에 착 감기며 붙는 스판 재질의 원피스여서 남자들의 시선을 끌긴 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몰래 훔쳐보는 걸로 끝낸 반면 정선배의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여자와 정선배가 친해서 정선배 부부 옆자리에 앉았는데 여자의 옆자리에 앉은 정선배의 남편이 실수로 떨어뜨린 물건을 줍는 척 하면서 테이블 밑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건드렸었다. 여자는 의도적인 행동이란 걸 느꼈지만 정선배를 생각해서 그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웃으면서 넘어갔다. 그런데 그는 여자의 웃음을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생각했는지 여자의 의자 뒤로 손을 뻗어 여자의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주물럭거렸다. 여자는 불쾌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않게 계속 웃음을 지었고 따라 나오라는 뜻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른 뒤 화장실에 가는 척 밖으로 나갔다.

조금 뒤 그가 따라 나오자 조금전 상황이 상당히 불쾌했고 정선배와의 관계를 생각해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겠지만 또 다시 그러면 가만히 안 있겠다고 말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의 상황을 누군가 보고 정선배에게 그렇게 말한 거 같았다.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그 날의 일을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선배는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승진 발표 때 조부장님이 네가 디자인 전공자라서 승진시켰다고 했었지. 그 때도 나는 황당했어. 디자인 전공자가 너와 박차장님 뿐이었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조부장님도 사람이고 실수로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어. 그 때도 너와 조부장님을 믿었으니까. 그 다음 바로 오늘. 너에 관한 음란 사진이 화사 내에 퍼졌고 모두들 드디어 너에 대한 진실이 밝혀졌다고 했어. 너를 남자에게 환장한 음탕한 년이라고 떠들어 대더라. 나는 너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너는 내게 그 사진이 조작된 합성 사진이라고, 그런 사진은 찍은 적 없다고 말했어. 나는 또 너를 믿었어. 니가 이곳에서 박차장과 이러고 있는 동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다녔어. 너는 그런 사진을 찍은 적 없고 그 사진은 합성사진이니 죄 없는 사람을 매도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안 믿더라. 합성이라고 하기엔 너무 흠잡을 곳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부탁했어. 다시 자세히 살펴봐 달라고. 어디엔가 합성한 흔적이 나올 거라고. 그리고 네가 빨리 와서 사람들에게 직접 해명하기를 기다렸어. 그런데 점심시간이 끝났는데도 네가 오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또 그러더라. 그것 보라고. 다 들켜버려서 도망간 거 아니냐고. 그게 아니면, 박차장님도 안 보이니, 이번엔 박차장님을 꼬셔서 이번 일을 무마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거야. 나는 말도 안 돼는 소리라고 말하고 너를 찾으러 나왔어. 그런데 결국 내가 틀리고 그 사람들이 맞았다는 걸 방금 알았어. 내 두 눈으로 확인한 거지. 아무리 다급했어도 그렇지 어떻게 박차장 같은 사람에게."

여자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고 조금 전 상황을 빨리 설명해야 할 거 같았다.

"선배 정말 오해야. 박차장에게 당할 뻔 했고 선배가 와서 겨우 빠져나온 거라니까."

정선배는 가증스럽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박차장은 옷을 다 입은 채 난처한 표정으로 누워있었고 너는 옷을 다 벗고, 물론 스타킹과 팬티는 내리는 중이었지만, 박차장을 덮치고 있었어. 너 정말 남자 몸에 환장한 화냥년이니? 박차장 같은 놈을 덮치면서도 아랫도리가 아주 흥건하게 젖어 있더라. 난 네 밑에서 홍수라도 난 줄 알았어. 지금도 봐. 한참이 지났는데 스타킹과 팬티가 아직도 네가 흘린 물들로 젖어 있잖아."

“그게 아니라니까.”

여자는 억울해서 눈물을 흘렀다.

"어디서 여우 짓이야. 눈물은 남자직원들 앞에서나 써 먹어. 그게 아니면 오줌이라도 쌌니? 그리고 강제로 당하는 여자애가 옷들을 벗어서 저렇게 가지런히 걸어 논다는 게 말이 돼? 계속 속아줬더니 이게 누굴 바보 천치로 아나."

"선배 제발. 제발 믿어 줘."

"입 다물지 못 해? 앞으로 나한테 한 마디도 하지 마. 너에게 속은 걸 생각하면 분해서 당장 사람들에게 까발리고 싶지만 그래도 한 때 친했던 사이니까, 앞으로 남은 네 인생이 불쌍해서라도 모른 척 해줄게. 네가 박차장한테까지 껄덕댄 걸 알면 넌 아마 여기서 생매장 될 거야. 내가 너한테 해 주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 해. 그리고 내 충고 잘 새겨들어. 앞으로는 제발 이런 식으로 살지 마. 계속 이럴거면 차라리 내숭떨지 말고 까놓고 걸레라고 커밍아웃 하던지."

정선배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또 지은 뒤 문을 열고 사라졌다.

여자는 그대로 그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그녀의 오해를 풀 방법이 전혀 없었다. 여자는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던 정선배 마저 떠나버리자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선배의 오해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건 사진에 대한 문제를 푸는 거였다.

그 순간 여자는 부르르가 떠올랐다. 왠지 그녀라면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 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여자는 곧바로 부르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넌 그런 사진을 찍은 적이 없는데 사진이 있다는 거네."

"그래요. 확실히 조작된 합성사진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믿질 않는다는 거 에요. 제가 봐도 진짜 혹시 내가 이런 사진을 찍은 게 아닌가 싶은 정도니까요."

"아직까지 완벽한 합성 사진이란 건 본 적이 없어. 확대해서 이음선 부분을 확인 해 보면 뭔가 흔적이 보일거야. 아무도 믿질 않는다고 했지? 그건 믿지 않는 걸 수도 있지만 믿고 싶지 않은 거야. 남자들에게는 그 사진이 합성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없어. 지금 당장 눈요기로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설사 합성인 걸 알더라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손을 움직여댈 거야. 그래야 더 흥분되니까. 그럼 여자들은 어떨까? 너 같은 스타일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주변 여자들이 질투하게끔 돼 있어. 그런 너에게 안 좋은 얘기꺼리가 생겼는데 그네들에게 사진의 합성 유무가 중요하겠니? 확인 해 볼 필요도 없는 거고 그냥 신나게 너를 안주심아 씹어대면 그만인 거야. 눈에 가시였는데 아주 잘 된 거지."

여자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더 절망스러워졌다.

"언니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

"물론 있지. 이 인간이란 동물이 사는 사회에선 모두가 나의 적일 수 없어. 나의 적의 적이 분명히 존재해. 모두가 증오하는 연쇄 살인마에게 조차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저에게 그 사람들은 누구죠?"

"대부분의 남자들, 그리고 극소수의 여자들. 남자들이 네 사진을 보면서 성욕을 느끼고 해소의 도구로 삼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너에게 악감정을 가지지는 않아. 남자들의 세계는 예쁜 여자에게 관대하지. 그들 중에 너를 도와줄 흑기사가 분명 나타날 거야. 난세에 영웅이 나오 듯 미인이 위기에 처하면 미인을 도와 어떻게든 점수를 따보려는 남자들이 꼭 등장하지. 아마 지금쯤이면 누군가가 합성의 증거를 찾았을 거야. 네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달려와 자신의 활약을 칭찬해달라고 꼬리를 흔들어 댈 걸. 자. 그럼 이제 네가 결백하다는 증거가 나왔어. 그 다음은 여자들 중에서도 네 편을 찾아야겠지. 회사 여직원들 중 남자들이 여자를 성적도구로 치부하는 걸 혐오하고 앞장서서 따지는 사람 있지 않아?"

여자는 여직원 회의 대표인 김과장이 바로 떠올랐다. 그녀는 늘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고 추잡한 남자들을 혐오했다.

"있어요. 그런 사람."

"그 사람을 찾아가 증거를 보여주고 네가 피해자라는 걸 알려. 그럼 그 사람이 너를 대신해서 싸워줄 거야. 넌 그저 피해 입은 불쌍하고 힘없는 여성이란 걸 어필하며 울고 있으면 돼. 그러면 언제나 미인의 편인 남자들도 나서서 너를 도와줄 거야."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렇게 되게 돼 있어.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니까. 예쁜 건 죄가 아니야. 오히려 너를 강하게 해주는 무기인 거지. 있지 마. 가서 울더라도 추잡하지 않고 예쁘게 울어. 무슨 말인지 알지?"

전화를 끊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김기혁이 웃으며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김기혁은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으로 군대를 다녀와서 여자보다 나이는 많지만 일년 선배인 여자에게 깍듯하게 선배 대접을 해줬고 그런 그에게 여자도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는 순정만화의 남자주인공처럼 생긴 꽃미남으로 모든 여직원들이, 결혼을 했든 처녀든, 그를 흠모했고 그를 보는 맛으로 출근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상큼이 였다. 그가 지나가면 상큼이가 지나간다고 했고, 그가 웃으면 상큼이가 웃는다고 했다. 그런 상큼이 였기에 여자도 그의 앞에서는 더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그런 그가 지금 여자에게 웃으며 손짓한 것이다.

그의 옆에는 여직원회의 대표인 김과장도 함께 있었다. 평소 남성 혐오증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던 김과장도 그의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보였고, 자신도 처녀임을 알라달라는 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나이가 40이 넘었지만 미혼임은 분명했다.

여자는 그의 모니터 화면을 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와 김과장이 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음탕하게 엉덩이를 내밀며 쳐다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물론 합성된 사진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런 모습을 그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여자였기에 너무 속상하면서 한 편으로 그도 이 사진 위에 자신의 정액을 뿌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졌다.

"선배, 여기 좀 보십시요. 지금 김과장님께 이 사진이 합성이라고 설명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쁘장하게 생긴 것과 다르게 군대식 말투를 썼는데 남성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인 거 같았다. 어쩌면 그에게 예쁘장한 외모는 콤플렉스인지도 몰랐다.

"그래. 우리 기혁씨가 이 사진 합성이라고 밝혀냈어."

김과장이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요?"

여자가 기뻐서 쳐다보자 그는 특유의 꽃 미소를 날리며 여자에게 설명했다.

"여기 잘 보십시요. 그냥 봤을 때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확대를 해서 보면 뭔가 다른 게 보입니다. 목의 연결부위에 여러 번 브러쉬로 손 본 자국 보이십니까? 치밀하게 작업했지만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범인이 어디서 선배의 사진을 구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선배의 개인 블로그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오전 내내 블로그의 사진들을 검색해 봤고 그 결과 이 합성사진에 사용된 똑같은 얼굴 사진을 찾았습니다. 보십시요. 바로 이 사진을 오려다가 붙인 겁니다."

그 사진은 전에 신랑이 섹시한 표정 지어보라고 해서 찍었던 사진이었다. 얼굴만 봤을 때는 생각이 안 났는데 이 사진을 보니 기억이 났다. 여자는 기뻤다. 자신의 결백이 밝혀져서도 기뻤고 자신의 결백을 밝혀준 흑기사가 김기혁 이었기에 더 기뻤다.

"김과장님, 이제 김과장님이 도와주시겠습니까? 김과장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건 한 여직원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여직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가 꽃미소를 날리며 그렇게 말하자 김과장은 신이 나서 말했다.

"물론이지. 이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여자를 성적도구로만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각성시킬 필요가 있어. 물론 우리 김기혁씨 같은 사람은 빼고 말이야. 남자들이 모두 김기혁씨 같으면 나도 결혼할 수 있은 거 같은데."

김과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끄러웠는지 어색함을 없애려는 듯 박수를 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여러분 여기 집중 해 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일어난 사건을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 동료 여직원 하나가 그 일로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로 인해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단 말입니다. "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펑펑 울기 시작했다. 부르르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억울함에 복받쳤던 설움이 한꺼번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이 울고 있는 힘없는 피해자를 보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의 동료입니다. 누군가가 재미로 퍼트린 사진 때문에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한 여인이 수치스러움을 격고 있습니다. 다들 자신의 일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판단하고 심심풀이 이야기 거리로 떠들어 대는데 지금은 이 친구 혼자 피해자인거 같지만 그냥 방관만 하고 있다가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성을 가진 지성인으로서 행동 해 주세요. 가지고 계신 사진은 다들 삭제 해 주시고 여기 있는 피해자가 더 이상 정신적 고통을 받지 않게 우리 모두가 도와줍시다. 사진이 합성이라는 증거는 게시판에 공지 해 우리 층에 있는 직원들 뿐 아니라 전 직원이 알고 각성할 수 있도록 여직원 회의 대표로서 조치시키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잘 못 된 오해로 더 이상 여기 우리 동료가 고통 받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평소에 김과장을 보며 여자 같지 않은 게 깝죽 된다고만 생각했던 여자는 오늘 일을 계기로 그녀가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워졌다.

그녀의 공지가 끝난 뒤 많은 남자직원들이 여자에게 다가와 위로를 했고 마치 자기 여자가 울고 있기라도 한 듯 안절부절 했다. 예쁜 여자의 눈물은 남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합성인지 알았다느니, 여자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느니 하는 말을 한 마디 씩 하면서도 시선은 여자의 엉덩이나 가슴으로 향해 있었다. 여직원들도 몇몇이 찾아 와 위로를 해줬는데 진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주위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사람들이 돌아간 뒤 김과장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 왔다. 여자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말했고 의심가거나 평소 여자를 괴롭혔던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조금 전 박차장에게 당했던 수모가 떠올라 화가 치밀었다. 박차장 자리를 쳐다보자 그가 눈을 모니터로 향하며 여자의 시선을 피했고 여자는 당장 박차장을 성추행으로 고발해 버리고 싶었다. 여자의 몸과 속옷에 그의 타액이 뭍어 있으니 증거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 때 여자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정선배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자가 박차장을 고소한다면 정선배가 나서서 여자가 박차장을 유혹한 거라고 말해버릴 거 같았다. 여자는 돼지새끼 같은 놈에게 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에 피가 거꾸로 흐르며 어떻게 든 분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박차장의 돼지같은 입술에 빨린 그 곳이 심한 악취로 썩어들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당장 물속에 뛰어들어 빡빡 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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