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 아내를 훔쳐보고 있다
#1
대학가 주변의 커피전문점.
방학인데도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남자도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간신히 빈 자리를 찾아서 앉을 수 있었다.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는 자리를 잡고 앉으려 눈치를 봤지만 자리에 앉은 지 30분이 지난 지금은 아무것도 시켜놓지 않고 4인용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그 시선을 피하며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 봤다. 고객과 약속한 시간은 오후 2시 하지만 시계의 바늘은 벌써 2시 4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번잡한 곳에서 만나자고 한것도 모자라 이렇게 사람을 기다리게 하다니 하며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차분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혹시라도 늦게 도착한 고객이 자신의 화가난 표정을 보고 불편하게 생각해 그냥 돌아가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객이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의 인상착의를 대충 설명하긴 했지만 혹시나 못 알아볼까 싶어서 관심을 보였던 차량 카다로그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기로 했다.
카다록을 꺼내려고 가방 여는 순간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어머나” 하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남자의 바로 앞 쪽에서 들렸고 시선을 돌려보니 한 여자가 자신의 지갑에서 쏟아져 나온 동전들을 주어담고 있었다.
여자는 짧고 타이트한 유니폼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동전을 주우려 허리를 숙일때마다 치마단이 엉덩이 쪽으로 미끄러지며 말려올라갔고 남자의 앉은 위치에서 치마속 허벅지와 가터벨트 끈이 살짝살짝 드러나 보였다.
그 뿐만 아니라 치마가 타이트해서 그런지 여자가 들썩일때마다 마치 치마속에서 엉덩이가 숨을 쉬는 듯 실룩거렸고 그 모습이 남자를 전기에 감전된 듯 마비시키며 입안은 침으로 고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온 신경을 여자의 엉덩이와 치마속 허벅지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동전을 줍던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 순간 남자는 마치 큰 죄를 지은듯한 기분이 들어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자신과 눈이 마주친 여자의 볼이 창피함과 부끄러움에 빨개지는걸 볼 수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남은 동전을 마저 줍지 않고 서둘러 문 밖으로 빠져 나갔고 남자는 아쉬운 듯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
계속해서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여자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전까지 여자의 엉덩이가 보였던 앞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앞 자리에 한 남자가 어느 새 앉아 있었다.
“참 매력적인 여자였지요. 저도 한참을 침흘리며 지켜 봤습니다. 하하. 제가 좀 늦었죠”
그제서야 남자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신과 만나기로 한 고객이란걸 알 수 있었다.
“오..오셨군요. 근데 보...보셨습니까?”
남자는 여자를 훔쳐보던 자신의 모습을 고객에게 들킨 것 같아 안절부절했다.
“뭘요? 아까 그 여자요? 아니면?”
“아이고 제가 초면에 안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네요.저... 그런 변태같은 사람 아닙니다.”
“하하하. 변태라니요. 그런 상황에서 남자라면 당연히 본능적으로 시선이 가게 되 있는데 그런걸 보고 변태라니요. 저도 봤는데 그럼 저도 변태겠네요.”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알아요. 알아. 같은 남자끼리 뭘 그런걸 가지고 부끄러워 하십니까? 참 순진하시네요.”
“그.. 그렇죠? 본능적인건데도 초면이라 그런지 남을 의식하게 되네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죠. 신이 처음부터 만들어준 본능인데 사회라는 관습과 규범에 따라 그 본능을 억제하며 살고 있는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쳐다보다가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죄진 사람같고. 사실 대부분 저 여자를 꼭 봐야지 하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한 뒤 쳐다보는게 아니잖아요. 여자가 보이면 무의식 적으로 눈이 먼저 가게 되고 그 뒤에, 아, 내가 여자를 쳐다보고 있구나 하고 나중에 인식하는게 대부분이잖아요.”
“특히나 조금 전 그 여자처럼 엉덩이를 치켜들 때는 정상적인 남자라면 전율을 느끼게 되죠. 아까 옆에서 보는데 어찌나 만져보고 싶던지. 안그런가요?”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하하.”
“이거 초면인데 서로 말이 통하네요. 제가 늦었으니 커피는 제가 사죠. 아메리카노?”
“네? 아닙니다. 고객에게 신세를 질 수 없죠. 제가 사겠습니다.”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객은 먼저 일어나 빠른 동작으로 주문대로 가버렸고 남자는 못 이기는 척 살짝 들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고객을 만나 오늘 일이 잘 진행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조그만거 하나라도 더 챙겨갈 생각만 하는데 이 고객은 그런 부류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고객을 기다리다가 남자는 주변의 여자들을 둘러보며 몇 일 전 아내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 날은 아내가 남자보다 늦게 집에 들어 온 날이였다.
“오늘 좀 늦었네.” 라는 남자의 말에 아내는 상기된 얼굴로 쪼르르 달려와 재잘거렸다.
“오...오빠, 오빠. 빅뉴스, 이건 아주 빅 뉴스야.”
평소에도 회사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남자를 붙잡고 주저리주저리 그날 있었던 일들을 떠들어 댔었는데 그 날은 유독 더 흥분된 톤으로 말까지 더듬어 댔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저번에 회사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했던거 기억나?”
이상한 일들이란 이러했다.
아내의 회사는 여직원들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유니폼을 입고 근무를 하는데 탈의실에서 최근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였다.
아내가 옷을 갈아 입을 때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다른 여직원들과 얘기해보니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주변엔 아무도 없는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였다. 여직원들끼리 돌아가면서 탈의실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서로 얘기하다보니 근래에 쓰레기통을 비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였다.
다들 누군가 솔선수범해서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치웠겠거니 생각했는데 치운 사람이 없다는 말에 다들 소름이 돋았었다고 했다. 각자 자리에도 개인 쓰레기통이 있어서 탈의실 쓰레기통에는 주로 올이 나간 스타킹이나 화장을 고칠 때 사용한 티슈들이 대부분이였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여자들을 경악케 한 것은 유니폼이였다. 탈의실은 따로 개인 사물함이 있는게 아니어서 각자의 유니폼들을 벗어 옷걸이 끼운 뒤 벽쪽에 있는 행거에 걸어두고 다녔는데 어느날 보니 잘 게서 걸어 논 유니폼이 마구 꾸겨져 걸려있었다는 것이다. 한 번은 아내가 자신의 유니폼 치마 안 쪽에 알 수 없는 얼룩이 뭍어 있다며 투덜거리며 세탁하려 가지고 온 적도 있었다.
여직원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회사 동료들 중에 변태가 있다는 것이다. 남자도 그럴거라 추측했다. 아내는 많은 남자 직원들 중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꼭 알아내기 위해 여직원들끼리 다짐을 하고, 돌아가면서 퇴근 후 숨어서 알아보기로 했다고 말했었다. 그러던 중 바로 오늘이 아내가 숨어서 관찰한 날이였고 아내가 누군지 알아낸 것 같았다.
“오빠 있잖아. 정말 생각도 못 했던 인물인거 있지.”
“도대체 누군데 그래.”
아내나 다른 여직원들은 평소 응큼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김과장이나 박대리를 의심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내의 입에서 나온 인물은 의외였다.
“범인은 바로 조부장님이였어. 놀랍지 않아?”
“조부장이라면 혹시 기러기 아빠라고 했던?”
“맞아. 바로 그 사람.”
“그 사람은 대머리에 배도 나오고 징그럽게 생겼지만 평판도 좋고 직원들한테도 존칭을 써주며 자상하게 대해준다고, 너도 회사내에서 존경하는 몇 안되는 사람중 하나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더 충격이지. 그 분이 그랬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구.”
“기러기 아빠라서 너무 오래 굶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고 소름끼쳐. 조부장님 방 창문에서 보면 내 자리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거든. 그런 음흉한 생각을 하면서 창문으로 지켜봤다고 생각을 하니. 어휴...더군다나 오늘 한 일을 생각하면...”
“오늘 한 일?”
“내가 오늘 퇴근하는 척 하고 몰래 탈의실 구석에 있는 탕비실 책상 밑에 숨어 있었거든.“
“얘봐라 그러다가 큰일날려구.”
“사실 불끄고 혼자 숨어 있는데 무섭긴 하더라.”
“그래서?”
“그러다가 잠깐 잠이 들었지 뭐야.”
아내는 머리만 닿으면 조는 버릇이 있었다.
“얘 좀 봐. 점점...”
“끈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그래 얘기해 봐.”
“무슨 소리가 나서 잠이 깼는데 눈을 떠 보니 탈의실에 불이 켜져있는거야. 그래서 조심스럽게 책상 틈으로 보니까 조부장님이 쓰레기통에서 내가 아침에 갈아신고 벗어 놓은 검정색 스타킹을 얼굴에 대고 킁킁 거리고 있지 뭐야. 그걸 보는 순간 닭이 되는 줄 알았어. 온 몸에 닭살이 확 돋는데. 아주 소름끼쳐서 미치겠더라구. 그냥 냄새만 맡는게 아니였어 스타킹 가랑이부분에 혀를 대고 맛을 보는거야. 오빠 이거 완전 변태 아니야? 평소에는 자상한 아빠같은 미소를 보이면서 속으로는 여직원들 보면서 음탕한 생각만 한거잖아.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이였는데. 그 사람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더라구.”
“그게 다가 아니야? 아니 이자식을 내가 당장.”
“자.자. 진정 좀 해. 난 그렇게 스타킹만 챙겨서 나갈 줄 알았거든. 근데 세상에. 오빠 이 얘기 들으면 당장 조부장한테 쫒아 갈거 같아서 말해야하나 모르겠네.”
“도대체 뭔데. 궁금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봐.”
“흥분 안 한다고 약속해.”
“알았어. 약속할게.”
“그래. 그럼 계속 할게. 옷걸이에서 내 이름표가 달린 유니폼을 꺼내더니 스타킹이랑 같이 바닥에 내려 놓는거야. 블라우스 밑에 치마 그리고 치마 속으로 스타킹을 밀어 넣었어. 순간 마치 내가 조부장 발 밑에 유니폼을 입고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니까. 그리고는 바지를 내리더니... 더 이상은 말 못하겠다.”
“뭐야. 그 새끼가 니 옷에다가 그 짓을 했단 말이야? 그 옷 어떻게 했어?”
“가져왔지. 그걸 본 이상 그냥 어떻게 입어. 빨려고 가져왔어.”
나는 아내 옆에 있는 종이봉투를 집어 그 속에 있는 아내의 유니폼을 꺼내보았다.
하얀 블라우스와 치마에 조부장의 것으로 보이는 얼룩이 축축하게 남아 있었다.
“양이 많아서 자기도 좀 불안했는지 휴지로 열심히 닦더니 다시 걸어 놓더라구. 그리고 스타킹만 주머니에 넣고 가버렸어.”
사실 아내 앞이라 화가 난 티를 많이 냈지만 아내의 옷에 낮선 남자의 흔적을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스타킹을 가져간 그 남자가 지금도 집에서 내 아내의 채취를 맡으며 멀리 있는 자신의 아내를 대신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남자를 흥분시켰다.
“이 유니폼 입어봐”
“지금? 이걸 나더러 지금 입으라구? 오빠 왜그래?”
정색을 하며 쏘아보는 아내의 반응에 남자는 순간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오빠는 그런 변태 아니지라는 아내의 물음에 당연히 아니라며, 그런 남자들이랑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소리쳤던적이 있었다.
“나 너 유니폼 입은거 좋아하잫아. 유니폼 보니까 오랜만에 입은 모습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런거야. 너 잊었어? 내가 너 유니폼 입은 모습에 반해서 쫒아다닌거 말이야.”
“그걸 누가 몰라? 조부장님이 이렇게 해논걸 어떻게 입냐구.”
“그... 그런가? 그 생각을 못했네.”
“오빠도 가만보면 좀 이상해.”
“무슨소리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너 나 몰라?”
남자는 아내가 조부장의 흔적이 남은 옷 입은 모습을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아내가 자신을 같은 부류로 생각하고 실망할까봐 그만두기로 했다.
“애구. 알아요 알아. 내가 오빠 그 순진한 모습에 반해서 시집 왔잖아. 이거나 얼른 세탁기에 돌려야겠다.”
아내가 옷을 들고 사라지자 괜히 바보같은 말을 했다고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조부장이라는 사람이 내 아내를 보며 음탕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화가면서도 잠시나마 그 상황을 떠올리며 흥분했던 자신이 챙피하게 느껴졌다.
남편이란 작자도 이런 음흉한 생각을 하는데 기러기 아빠라는 그 사람은 아내같이 어리고 예쁜 여자를 보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이 안 들수 있었겠는가. 한번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내일 회사에 알려져 직장까지 잃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왠지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자신도 최대한 본능을 숨기고 사회적 시선에 어긋나지 않도록 좀 더 철저히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그날 밤 조부장 이야기에 대한 흥분으로 아내와 관계를 하고 싶었지만 욕구를 억제 하고 아내에게 내일 조부장 일은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럼 내일 출근하면 오늘 일 회사에 알리겠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 사람인 줄 알면서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겠어.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니까 그 사람.”
“그래도 평소에 존경하던 사람이였잖아.”
“그거야 변태인지 몰랐을 때 얘기죠. 서방님.”
“그럼 그 사람 짤리겠네.”
“그러겠지. 여직원회의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
“기러기 아빠라며. 회사 짤리면 난감하겠다.”
“오빠 지금 그 사람 걱정하는거야? 사랑하는 색시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아...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 그래 솔직히 마음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 자식 죽도록 패주고 싶어. 하지만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땐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해. 실수가 없도록 말이야.”
“무슨말이야 그게?”
“만약에 니가 내일 회사에 가서 말했는데 그 사람이 아니라고, 이건 모함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떻할래?”
“뭐? 모함? 무슨 소리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증거가 없잖아. 눈으로만 본거지 조부장이 그러는거 찍어온건 아니잖아. 그 사람 되게 똑똑한 사람이라며, 잘못했다간 니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도 있어.”
“어머,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조부장의 혐의를 증명해줄게 지금 아무것도 없잖아.”
“아응. 어떻해. 캠코더라도 가져갈걸. 아 맞다. 내 유니폼. 거기에 흔적이 남아 있잖아. 어머나. 세탁기. 아. 나 어떻해. 오빠. 나 왜 이렇게 맹추같지? 중요한 증거를 빨아버렸어. 그래도 조금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소용없어. 그거 들고가서 조사의뢰라도 할 거야? 국과수에 확인해달라고? 거기다 흔적 완전히 지운다고 세제 많이 넣고 두 번이나 돌렸다며. 경찰들이 장난하냐고 그럴걸”
“그럼 어떻하지? 오빠 생각은 어때?”
“음... 일단은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까지 알리지 않는게 좋겠어.”
“그래도 다른 여직원들에게는 알려야 하지 않을까?”
“안돼. 다른 여자들 입을 믿을 수 있어? 그랬다가는 소문나는건 시간문제고. 조부장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그런 행동을 멈출 거야. 아니면 좀 더 조심하거나. 그럼 증거는 영영 못 잡게 되고 그런 찜찜한 상태로 조부장과 계속 회사생활 해야되는데 괜찮겠어? 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걸 알면 회사생활도 힘들어질 거야. 그 사람 회사내에서 영향력도 크고 따르는 직원들도 많다고 그랬잖아.”
“아잉.. 그럼 어떻해?”
“오빠 말대로 해. 일단 오늘 본 것들은 절대 말하지 마. 내일 출근해서 다른 여직원들에게는 별일 없었다고 말해. 대신 확실한 증거를 위해서 캠코더 촬영을 해서 증거를 남기는게 좋겠다고 의견을 내. 그럼 니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숨어서 지켜보기로 한 날 중에 꼭 걸리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너에게도 피해없고 모든게 다 잘될 거야.”
“그러니까 조용히 있다가 다른 사람이 증거를 잡게 하란 말이지? 오빠 되게 똑똑하다.”
“그걸 이제 알았어? 그동안 좀 신경쓰이겠지만 참고, 아무일 없는 듯 행동해. 괜히 조부장 앞에서 어색한 행동하지말고 평소대로 대해줘.”
“나 자신없는데.”
“그래도 해야되. 알았지? 다 니가 걱정되서 그러는거야.”
“알았어. 그리고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오빠까지 걱정시키고. 안그래도 요즘 오빠 실적 때문에 고민 많은거 아는데.”
“무슨소리야. 당연히 내가 알고 걱정해야지. 피곤할테니 그만 자자.”
그 뒤로 아내는 조부장 목소리가 들릴때 마다 그 일이 떠오른다고 했고 아직까지 별다른 일은 없다고 했다.
그 일이 생각난건 다른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흥분하고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눈을 떼지 못한 남자 자신 역시 조부장이라는 사람과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남자가 조부장처럼 기러기아빠이고 눈앞에서 젊고 예쁜 여직원들이 돌아다닌다면 충분히 그런 충동이 일지 않았을까? 더구나 그 회사의 여직원 유니폼은 상당히 섹시하지 않은가.
남자도 아내의 유니폼 입은 뒷태에 매혹되어 결혼까지 했었다. 조부장은 그때그때 여직원들을 바꿔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걸까? 아니면 유독 남자의 아내에게 더 흑심을 품었던걸까? 남자는 아내의 섹시한 뒷태를 뒤에서 흥분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조부장의 모습이 상상되자 찌릿하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추우세요? 오한이 오시나봐요.”
커피를 사러갔던 고객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남자는 정신이 돌아왔다.
남자는 마치 나쁜짓을 하다가 들킨것같은 느낌이었다.
“아...예... 에어컨이 좀 쎈가봐요.”
“이런 괜히 아이스커피로 사왔나보네요. 추우신것도 모르고.”
“아... 아닙니다. 저도 시원한게 마시고 싶었습니다.”
“하긴 나도 말입니다. 아까 그 아가씨가 동전 줍는답시고 허리를 숙일 때. 이야~ 그쪽도 보셔서 알겠지만. 골반라인이. 아. 침넘어간다. 온 몸이 타들어가는듯하면서 목이 바짝 마르더라구요. 아마 여기 있는 남자들 다 그랬을겁니다.”
“아. 예... 저도 뭐...”
“어라. 쑥스러워하시긴. 본능이잖아요. 생긴대로 사는거죠.신이 남자를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아무리 억지로 거부한다고 그게 되나요? 뭐 여자들 있는대서야 조심한다치더라도 남자끼리 있을때까지 본능을 억누를 필요 없잖아요.”
“그... 그렇죠. 영업사원인 저보다 더 말을 시원시원하게 하시네요.”
“그렇습니까? 저도 뭐 사람들 상대하는 일을 하다보니 이렇게 됬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무슨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실례는요. 무슨. 여기 제 명함입니다.”
“로망 에이전시?”
“네 로망 에이전시.”
그가 내민 명함에는 ‘로망 에이전시’라는 상호와 전화번호 그리고 이메일주소가 나와 있었다. 그리고 직함이 적혀있어야 할 자리에는 ‘대표 찌 릿’ 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성함이?”
“아. 찌릿이요? 그게 제 암호명입니다. 일종의 닉네임같은거죠.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죠.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감전된듯한 바로 그 순간을 표현한 두 글자. 생각만해도 황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르기가 좀.”
“하하. 좀 그렇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대표님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래도 뭐 자기만족이라고나 할까요? 전 이 단어 좋습니다.”
남자는 점점 이 고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일을...”
“아. 참.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셨죠? 뭐. 간략히 설명하자면 사람들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겁니다. 누구나 다 머릿속으로 꿈꾸면서 실행해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꿈같은거 말이군요.”
“아. 꿈이라고 하면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네요. 고객이 대통령이나 요리사가 꿈이라고해서 그렇게 실제로 만들어드리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런 대단한 일을 하는건 아니구요. 좀 작은 개념으로다가. 사람들이 살면서 갈망하게되는 작은 일탈들? 뭐. 그런것들을 경험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는거죠.”
“그래도 잘... 이해가 안되네요.”
“음... 뭐 저희가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중 고객들의 대부분이 요구하는건.”
그가 미소를 지으며 거기까지 말하고 뜸을 드리자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남자는 침을 삼키며 재촉하듯 물었다.
“그...그게 뭔가요?”
“지금 생각하고 계신 바로 그거 맞습니다. 성적 환타지.”
순간 그의 목소리가 너무 큰거같아 남자는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고, 그는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안쓰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혹시 마음속에 갈망하고 있으면서 사회적 시선이나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게 있으십니까?”
“어,,,없어요. 그런거.”
“그거런게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하하. 아까 그 여자의 뒷태를 보면서 본능이 꿈틀대지 않았나요? 어둡고 깊은 곳에서 뛰쳐나가고 싶어하는 진짜 당신의. ”
남자는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바라보며 속닥거리고 비웃는거같은 느낌이 들어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늘 자신이 이곳에 영업을 하러 왔다는 기억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고 부끄러운 실체를 폭로당한거 같아서 정신없이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큰길을 피해 골목안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간 뒤 어느 빌라의 1층 계단에 털석주저 앉았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돌이켜보니 그러게 뛰쳐나올만한 상황이 아니였는데 오버해버린 자신이 또 한번 부끄러웠다. 그 고객은 솔직한 얘기를 했을 뿐인데 아내를 상대로 음탕한 상상을 했던 자격지심 때문에 남자들끼리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얘기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한 것 같았다.
그 순간 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음탕한 상상에 손가락질한다고 느꼈는지 자기자신이 정말 바보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 그 고객은 왠지 자신의 속마음을 꽤뚫어보고 있는 듯 했다. 남자는 더 이상 영업도 안될 것 같아서 대학가 거리를 그냥 배회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마치 오래된 종기가 터져 고름이 흘러나오듯 음탕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갔고 아무리 막으려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아니 막고싶은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꾸 거리에 오가는 여자들의 엉덩이와 다리에만 시선이 모아지고 그것이 자신의 머릿속에서는 아내의 뒷태와 그걸 뒤에서 훔쳐보고 있는 조부장이란 사람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거리를 것는 동안 벌써 몇 번이나 조부장과 아내를 머릿속으로 간음시켰는지 셀 수도 없었다.
조부장은 손으로 아내의 엉덩이는 물론 치마속 깊은 곳까지 수차례 더듬어댔고 자신의 책상 밑에서 물건을 애무하게하고 혹은 회의실 테이블위에 아내를 눕혀놓고 봉긋하게 오른 아내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힘차게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드 틈에는 남자 자신도 끼어 있었다. 조부장의 몸 아래 깔려있는 아내가 거친 신음을 하며 풀려있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고 그 순간 온몸의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듯 목이 타오르며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찌릿해왔다.
남자는 더 이상 거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간신히 큰 길가로 걸어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열고 물병을 꺼내 벌컥버컥 마셨다.
그리고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수차례 자신이 흘린 애액으로 축축히 젖어 있는 팬티를 세탁기 속으로 던져넣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음탕한 생각으로 더렵혀진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큰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그런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야~ 난 변태가 아니라구~”
하지만 몸은 씻길지언정 남자의 머릿속은 그렇지 못했다. 어느새 남자의 생각속에는 샤워기 물줄기 아래의 아내와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맨손으로 씻겨주고 있는 조부장이 들어와 있었다.
온수로 인해 습기가 차있는 욕실 거울을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은 어느새 충열되어 있고 하루사이에 바싹 늙어진거 같았다.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 쉰 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자신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들을 정리해 나갔다.
양복 상의를 옷걸이에 걸려는데 주머니에 하얀 무언가가 삐져나와 있는걸 발견했다.
‘로망 에이전시’
그 고객의 명함이였다.
참 이상한 일이였다. 분명 그 명함은 커피전문점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남자는 그것을 챙긴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남자는 자신의 무의식이 그 명함을 챙겨넣은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명함이 이러게 주머니 속에 있을 리가 없었다.
어느새 남자의 귓가에 전화기 신호음이 들리고 잠시 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 들여오는 목소리는 여자였다. 긴장하며 전화를 걸었는데 여자가 받아서 왠지 모를 안심이 되었다. 거기다 여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포근하게 느껴지면서도 매력적이였다.
“거...거기 혹시.”
“네. 말씀하세요.”
“거기가 로망 에이전시인가요?”
그러자 여자는 누군가와 잠시 속닥이는거 같더니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 번호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소개받으신건가요?”
여자의 말을 들으니 왠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영업하는 회사는 아닌거 같았다.
“저... 찌릿이라고.”
“아. 그러시군요. 그 분과 통화를 원하시나요?”
“아...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상담을 좀 했으면 하는데요.”
“상담이라면 저랑 하셔도 상관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찌릿이라는 사람보다 왠지 이 여자와 얘기하는게 편할거 같았기 때문이다.
“괘...괜찮습니다. 저는 더 좋은걸요.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세요.”
“호호. 감사합니다. 그러게 말씀해 주시니. 그런데 고객님의 로망은 뭔가요?”
“제 로망은 말이죠. 제 로망은...”